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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가 쉬워야 실업이 준다?
[Insight]경제현실과 경제학 특강
[8호] 2010년 12월 01일 (수) 장 가드레 외 economyinsight@hani.co.kr

 고용을 활성화하려면 최저임금이나 해고수당을 없애야만 하는 것일까?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지지하는 이들은 온갖 노력을 해도 유연성이 실업을 해소한다는 사실을 입증해내지 못했다. 아마 노동이 여느 상품과는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현대화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왜 몇몇 유럽 국가에서는 그토록 오랫동안 높은 실업률이 지속되는 것일까? 이 중대한 질문에 대해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넌지시 ‘노동시장의 유연성 부족’이 답이라고 귀띔해준다. 그러므로 해고 또는 임금수준에 관한 규정을 완화하거나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영미 국가의 낮은 실업률과 유럽 대륙의 대량실업이 확연히 대조를 보이는 것도 모두 유연성 탓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과거 낮은 실업률을 보인 것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한 덕분이라는 식이다.
 
유연성과 실업의 연관성 입증 안 돼 

 회원국을 상대로 유연성의 장점을 널리 알리기를 바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경험적 측면에서 이 주장을 입증해보려 했다. OECD 연구팀은 ‘고용보호법제지수’(EPL)를 만들어, 보호의 수준과 실업률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지 조사했다. 하지만 연구 결과 법규의 엄격함(경직성)이 실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명한 연관성은 입증해내지 못했다(<그림> 참조). 포르투갈을 비롯한 몇몇 국가는 노동규정이 매우 엄격함에도 완전고용에 근접한 반면, 캐나다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은 유연한 근로계약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실업률을 나타냈다. 실업률이 높은 슬로바키아와 폴란드도 다른 국가에 비해 특별히 노동시장이 더 경직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OECD는 엄격한 규제가 노동시장의 기능을 둔화시킨다고 말한다. 그래서 유연성이 떨어지는 국가는 실업 기간이 더 길고, 고용 비율이 더 낮다는 것이다. 이는 동일한 주제를 다룬 기존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 역설적이게도 실직의 두려움은 유연성이 높은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 보호 규정이 엄격한(유연성이 낮은) 국가에서 더욱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유연성이 낮은 국가는 실업 기간이 더 긴 데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OECD가 측정한 선진국 가운데 유연성이 가장 낮은 국가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임시직 조건에 대한 규제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해고 규정이 엄격한 나라는 아니다. 이런 결과는 근로계약에 관한 법규정을 기반으로 한 평가다. 그런데 실제적인 고용 유연성은 근로자의 태도에 좌우되기도 한다. 프랑스는 개인이 동일한 일자리를 유지하는 평균 기간은 과거보다 늘어났다. 오늘날 프랑스의 평균 근속연수는 11년이 넘는다(미국은 채 6년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근속연수가 증가한 것이 노동시장의 규정 변화에 따른 영향은 아닌 듯싶다. 20년 전 해고를 위한 행정승인제도가 철폐되는 등 프랑스에서 고용 규제가 상당 부분 완화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취업 장벽이 높은 시기에 근로자가 다소 일자리가 불만족스럽더라도 최대한 직장에 붙어 있으려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라는 게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1990년대 말과 같이 고용이 활성화된 시기에는 이직률이 급증한 반면, 침체기에는 하락했다. 경제학자 야니크 로르티는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근로자의 이직 가능성은 현재나 1970년대 초, 혹은 1980년대나 거의 비슷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청년층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청년층의 고용조건은 실제로 매우 불안정하다. 대량실업으로 실직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근로자가 어떻게든 밥그릇을 사수하기 위해 애쓰는 것도 프랑스의 고용 유연성이 낮은 한 원인이다.
 한편, 노동시장의 자유화가 실업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은 입증하기 어렵다. 역설적이게도 유연성이 실업을 더욱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장기적 관계

 유연성은 마르크스를 비롯한 19세기의 여러 학자가 예견한 ‘파괴’를 막아주는 자본주의의 최대 가치 중 하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본주의는 각 사회에 맞게 제도를 변화시켜왔다. 이런 유연성은 대개 상황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조직과 기술을 선별해내는 시장의 메커니즘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임이 분명하다. 기초적인 신고전학파 이론서에 따르면, 유연성은 심지어 경제성장률과 관계없이 언제나 완전고용을 유지해주는 요소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노동시장은 최소 세 가지 이유로 다른 시장과 구분된다. 첫째, 케인스가 증명한 바와 같이, 노동의 대가인 임금은 재화시장의 수요를 좌우하는 요소이다. 그러므로 임금노동자의 유연성이 높아지면, 기업이 판매하는 재화의 수요가 불안정해진다. 둘째, 대부분의 사람에게 임금은 주요한 생존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득은 규칙적이고 예상 가능할수록 더 바람직하다. 셋째, 근로계약은 사고파는 대상의 특징까지 완벽하게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실 인력의 수준이나 근로 동기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장기적인 관계만이 적극적이고 능력 있는 직원을 확보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높은 유연성이 곧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엄격한 근로계약은 고용은 물론 해고까지 어렵게 한다. 일단 고용에 걸림돌이 되는 이유는, 고용주가 오래 근무할 것 같지 않은 근로자의 채용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해고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절차가 까다로우며, 수당 지급 비용까지 발생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프랑스의 대다수 고용주는 노동재판소에 회부되는 일을 가장 두려워하는데, 이런 경우는 전체 해고의 4분의 1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해고가 줄어드는 이유는 해고 비용이 높을수록 고용주가 다른 대안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임금근로자의 불안정한 상황을 해소하는 데 기여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물질적 안정을 추구하는 만큼, 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물질적 안정은 저축의 필요성을 약화하고, 그 결과 소비를 진작시키는 데 기여한다. 그런데 이런 소비 증대야말로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성장을 촉진하는 요소다. 마지막으로 고용 안정성은 조직 간 통합, 기업문화 형성, 인력 양성 등에도 기여한다. 노동자가 언제든 직장을 떠날 위험이 있다면 어떤 고용주가 근로자 교육에 투자하기를 바라겠는가? 미국의 경제학자 게리 베커는 인적자원에 관한 이론에서, 다양한 노동환경에 모두 활용이 가능한 총체적 교육(대개 고용주가 투자를 꺼리는 교육)과 한 기업의 개별적 기능만을 위한 특수교육을 서로 구분했다. 하지만 임금 등 기타 메커니즘을 통해 노동자가 한 기업에 오래 머물도록 만들 수만 있다면, 이같은 구분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미국과 일본 노동시장의 차이

 반대로 경직성은 경제구조가 환경 변화에 적응해나가는 것을 방해한다. 이 주장은 중요하다. 사실상 경제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기술, 수요, 활용 가능한 자원,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힘 등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애덤 스미스의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도 시장 메커니즘이 노동 등의 생산요소를 더욱 효율적인 활동으로 이끄는 데 있지 않은가. 이 상황에서 경직성은 비효율성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이제는 지금까지의 주장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상황이나 분야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생산조직을 비교한 경제학자 마사히로 아오키에 따르면, 미국 모델은 변화가 급격한 시기나 반대로 안정성 수준이 높은 시기에 가장 효율적인 반면, 일본 모델은 변화의 양상이 완만한 시기에 더욱 적합하다고 한다. 일본 조직의 큰 장점은 끝없는 혁신이다. 조직의 안정성과 높은 인력 수준으로 인해 수평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할뿐더러, 각 주체가 작은 혁신을 발견하고 이를 금세 적용하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대적인 규모의 기술 변화 관리는 시장이 자유로이 기능할 때 더욱 용이하다. 설령 일정 기업이나 분야 전체가 사라진다고 해도, 근로자가 회사나 전문 분야를 찾아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왼쪽:아마도 너무 유연한 근로자

오른쪽:아마도 너무 경직된 경영자


 또한 유연성 수준은 분야에 따라 좌우된다. 미국의 한 연구팀에 따르면 오늘날 전자 부문은 시스템이 모듈화돼 있어, 상대적으로 표준화된 부품을 조립해 제품이 완성된다. 그러므로 각 부품을 자체 생산하는 것도 가능하고, 적당한 하청회사를 찾아 대신 맡길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 유연성, 다시 말해 고용·해고·조직개편 등에 너무 많은 시간이나 비용이 소요되지 않는 것이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반대로 자동차 제조 부문은 각 회사를 위해 일하는 하청회사의 비중이 높아졌지만, 다양한 부품의 상호 연관성으로 인해 아직까지 통합생산 비중이 높다. 이 때문에 인력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 이런 연구 결과는 정보기술(IT) 분야에 진출한 유럽 기업이 전무하거나 일본 기업이 최근 이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자동차 분야에서는 강세를 나타내는 현상을 잘 설명해준다.
 경제 전체에 관한 경험적 연구조사를 통해 어떤 명확한 결론을 도출해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연성은 이처럼 시기나 분야에 따라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다. 경직성은 인력 수준이 우수한 분야에 효율적인 반면, 유연성은 어느 정도 시장을 보완하는 구실을 한다. 또 유연성은 노동시장뿐 아니라 거의 모든 시장에서 추구할 수 있다.
 경제 현실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단순히 노동시장 기능에 관한 규정의 문제가 아니다. 근로자 보호 수준을 낮춘다고 실업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경제 전체의 유연성 문제를 배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식 자유주의, 북유럽식 유연안정성, 일본 대기업의 부단한 혁신 등에서 보듯이 다양한 해법을 통해 적절히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국의 문화와 전통, 제도에 적합한 길을 찾아내야 한다. 일관성 있는 총체적 변화만 가능하다면 일부 규제를 완화하고, 특히 덴마크같이 실업 보호책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

유연성과 안정성의 장점을 모두 겸비한 모델은 없을까? 처음으로 ‘유연안정성’(Flexicurity) 개념을 창안한 것은 네덜란드다. 1995년 보고서를 통해 소개된 이 개념은 훗날 일자리 보호 대신 ‘고용지위 보호’를 뼈대로 한 법안으로 완결된다.
덴마크는 1999년 기존 관행을 법제화하고, 다음 세 가지 요소를 주축으로 한 절충안을 만들어낸다. 첫째, 유럽에서 가장 유연한 수준의 해고 조건을 실현함으로써 고용을 활성화하고, 생산조직의 시대적 변화를 도모한다. 둘째, 유연성에서 발생하는 불안정성은 높은 수준의 실업수당으로 보완한다(덴마크의 실업수당은 5년 임금 평균치의 3분의 2 수준이다. 프랑스는 40% 이하에 불과하다). 셋째, ‘실업의 함정’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적극적인 실업자 교육 대책과 재취업 기회를 거절할 수 없도록 강력한 대책을 마련한다.
덴마크식 모델을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은 일본의 대기업과 달리
내부적 유연성을 위한 수단이 전무한 중소기업의 생산조직이나,
고용대책 및 기업정책에 높은 통제권을 지닌 노조 가입률이
매우 높은 노동자 조직이다.

<‘빈곤의 함정’은 없다>
 
개인이 일자리를 되찾을 때 받게 될 수입이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지원받는 급여와 비슷하거나 적으면, ‘빈곤의 함정’(Poverty Trap)이 발생할 수 있다. 개인은 현재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지만, 이런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첫 단계인 일자리 복귀가 종전보다 금전적 이익을 주지 못하거나 오히려 소득원(실업급여)을 잃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임금과 사회수당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프랑스는 사회수당 수급자로 지내다가 일자리를 얻게 되면 전액을 주는 주택수당, 주민세나 방송수신료 등에 대한 세금감면 혜택, 크리스마스 특별수당, 무료 보편건강보험, 전화가입료 할인 혜택, 지자체의 복지지원금 등을 잃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새로 얻은 일자리는 대개 불안정하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 기초생활수급자가 재취업을 주저하는 것도 일견 이해가 간다.
하지만 기존 경험적 연구자료에 따르면, 이와 같이 ‘빈곤의 함정’이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보수가 적은 불안정한 시간제 일자리는 이후 급료가 높고 더 안정된 종일제 일자리를 얻는 디딤돌이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자리는 사회급여가 줄 수 없는
혜택을 제공한다. 사회적 지위와 관계망이 바로 그것이다.

<노동시장은 주식시장이 아니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기본 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자유로운 시장에서는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루는 일정한 가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노동시장에 적용해보면, 일하기를 원하는 개인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적정한 수준의 임금이 언제나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결과 실업은 임금수준이 너무 낮아 자발적으로 발생하거나, 노동시장의 기능이 원활하지 못해 일어난다.
일단 신고전학파 입문서에서 말하는 ‘완벽한’ 시장에 부합하는 자유로운 노동시장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완벽한’ 시장이란, 예를 들어 주식시장의 ‘계속매매’(개장과 함께 시간 우선 원칙에 따라 조건이 맞는 주문이 있으면 즉시 거래를 체결하는 방법으로, 주가는 거래가 체결되는 대로 변화한다)처럼, 모든 근로자의 임금을 지속적으로 재협상해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아침에 사무실에 도착해 예상했던 적정 임금을 발견한 임금근로자는 노동비용과 휴식비용을 따져본 뒤, 그날은 2시간만 일하겠노라고 고용주에게 통보할 수도 있다. 이런 견디기 힘든 만성적인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은 노동을 거래하는 선물시장이다. 선물시장은 미래에 인도될 ‘노동’을 오늘 사거나 파는 일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런데 다른 선물시장과 마찬가지로 노동을 거래하는 선물시장에도 투기가 성행할 우려가 있다. 예를 들어 일정 숙련도를 요구하는 일자리의 인력난을 예견한 어느 임시직 인력회사가 그에 해당하는 인력을 선물시장에서 다량으로 사들여, 몇 달 뒤 더 비싼 값에 되팔 수도 있다.
아직 우리가 사는 세계는 당연히 여기 소개된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과연 그런 세계와 가까워지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을까?

ⓒ Alternatives Economiques
번역 허보미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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