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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 전쟁', 메달 경쟁보다 뜨겁다
Cover Story: 돈의 향연, 올림픽- ② 기업 스폰서의 세계
[27호] 2012년 07월 01일 (일) 김연기 ykkim@hani.co.kr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1997년 5월9일 열린 올림픽 공식 파트너 조인식 현장에서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REUTERS

올림픽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싸움은 선수들만 펼치는 것이 아니다. 기업도 함께 싸우고 있다. 상업화된 올림픽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기업으로서는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올림픽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수조원이 오가는 올림픽 스폰서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1997년 3월29일 스위스 로잔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 회의실. "당신들은 충분히 우리의 파트너가 될 자격이 있소. 이제 오륜기는 당신들의 기업을 더 빛나게 해줄 것이오." 당시 IOC 대외협력·마케팅국 총책임자가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됐다 됐어. 우리가 해냈다." 초조한 심정으로 올림픽 공식 파트너 선정 결과를 기다리던 삼성그룹 관계자들이 회의실을 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전세계 10개 안팎의 글로벌 기업만이 누릴 수 있는 올림픽 공식 파트너를 따내기 위해 지난 반년간 공들인 시간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로부터 6~7개월 전인 1996년 여름. 1996년부터 IOC 위원으로 활동하며 올림픽 현장에서 세계 일류 기업들의 스포츠마케팅 현장을 지켜본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6 애틀랜타올림픽이 끝나고 귀국하자마자 사장단 회의를 주재했다. "기업 경쟁력의 원천인 브랜드 가치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전략을 구상하라." 이 회장의 지침이 떨어지기 무섭게 당시 윤종용 삼성전자 총괄대표를 비롯한 그룹 수뇌부는 최우선적 과제로 올림픽 공식 후원을 결정했다.

그러나 IOC의 공식 파트너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삼성이 원한 무선통신 분야는 이미 세계적 휴대전화 업체인 모토로라가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IOC는 올림픽이 끝난 이듬해에 다음 대회 파트너를 정하는데, 기존 파트너에 우선 협상권을 준다. 삼성이 제아무리 뛰어난 협상력을 발휘한다 하더라도 모토로라가 계약 연장에 사인을 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하지만 삼성은 그룹의 사운을 걸고 끈질기게 매달렸다. 결국 IOC는 모토로라와의 협상을 잠정 중단하고 삼성을 협상 테이블에 앉혔다. 단 IOC는 삼성에 3일 안에 모든 결정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두 번 다시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올림픽 후원이 무엇보다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IOC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가까스로 스폰서 자격을 따낼 수 있었다"며 "1996년 이 회장의 IOC 위원 선임도 파트너 선정에 큰 힘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공식 스폰서 비용은 IOC와 기업의 계약에 따라 공개되지 않지만, 당시 삼성은 통상 금액의 2배가 넘는 4500만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2달 뒤인 1997년 5월9일,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당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과 이건희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정식 파트너 조인식이 열렸다. 이는 삼성의 본격적인 올림픽 마케팅의 출발이었다. 이후 그룹의 대표 격인 삼성전자는 1998 나가노겨울울림픽부터 14년째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올림픽 공식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 기간에 브랜드 가치가 5배 넘게 성장하며 세계시장에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를 확고하게 심었다.

런던올림픽 11개 스폰서 10억달러 후원

삼성의 사례는 기업들이 왜 올림픽 마케팅에 매달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TV와 인터넷 등 미디어를 통해 브랜드가 끊임없이 노출되는 세계 규모의 대회는 마케팅 효과가 상상 그 이상이다. 특히 전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올림픽은 스포츠마케팅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김종 한양대 스포츠산업·마케팅센터장은 "글로벌 기업이 인지도를 1% 상승시키는 데 약 1억달러의 비용이 드는 점에 비춰볼 때, 올림픽은 비용에 비해 효율적으로 기업을 노출시켜 인지도를 높인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일찍부터 올림픽에 관심을 기울여왔다"고 말했다.

사실 올림픽의 역사는 기업 후원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886년 1회 아테네올림픽부터 IOC는 기업의 후원을 받았다. 당시 자선가들의 기부로 대부분의 개최 비용을 충당했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해 필름업체 코닥이 모자란 경비를 지원했다. 올림픽이 기업 홍보의 장으로 본격적으로 활용된 것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부터였다.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이후 IOC는 공식 올림픽 파트너 제도를 도입해 특정 기업에 홍보·마케팅의 독점적 권리를 주고 재정 지원을 받아왔다. 올림픽의 '상품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스폰서 프로그램도 이때 만들어졌다.

   
일본의 수영 영웅 기타지마 고스케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코카콜라 로고가 새겨진 수영모자를 쓰고 역영을 펼치고 있다(위).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가운데)이 2010년 7월 올림픽 공식 파트너인 세계적 화학기업 다우케미컬의 앤드루 리버리스 최고경영자(왼쪽)와 기자회견 자리에서 나란히 앉아 있다(아래). 뉴시스 REUTERS
LA올림픽 이후 스폰서 프로그램 도입

IOC는 1985년부터 겨울올림픽과 여름올림픽을 패키지로 묶어 팔고 있는데, 공식 스폰서는 등급에 따라 크게 '월드와이드 파트너' '올림픽 파트너' '지역 파트너'로 나뉜다. 흔히 'TOP'(The Olympic Partners)로 불리는 월드와이드 파트너는 직전 여름올림픽 이듬해부터 4년 동안 올림픽과 관련한 전세계의 마케팅 독점권을 갖는다. 또한 대회 기간 중에 자사 제품을 우선적으로 조직위에 납품할 권리를 보장받고, 다음 올림픽 후원 협상의 우선권을 갖는다. 월드와이드 파트너는 분야별로 1개 업체만 선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때문에 무선통신 분야의 월드와이드 파트너인 삼성전자는 차기 올림픽에 우선적으로 후원할 권리가 있고, 삼성전자가 이를 포기하지 않는 한 IOC는 이 분야를 경쟁사인 노키아 등에 내줄 수 없다.

2012 런던올림픽의 TOP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코카콜라(음료)·아토스(정보기술)·GE(발전·헬스케어)·맥도널드(패스트푸드)·오메가(시계)·파나소닉(AV)·비자(신용카드)·에이서(컴퓨터)·P&G(생활용품)·다우케미컬(화학) 등 11곳이다. 베이징올림픽과 견주면 레노버·코닥·존슨앤드존슨·매뉴라이프 등 4개 업체가 빠지고 P&G·다우케미컬·에이서 등 3개 업체가 새로 들어왔다. 올림픽 규모가 커지면서 이들 최상위 파트너의 후원금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IOC는 개별 기업의 후원 규모를 철저하게 비밀에 부친다. 다만 기업 전체의 후원 규모는 대회가 끝난 뒤 개최국 조직위원회의 결산보고서를 통해 공개된다. 1988 서울올림픽 당시 TOP에 참여한 코카콜라, 코닥 등 9개 기업의 후원금은 9600만달러였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선 12개 기업이 8억6600만달러(약 1조140억원)를 지불했다. 20년 만에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스포츠마케팅 업계의 예측 조사를 보면, 이번 런던올림픽에선 11개 기업이 사상 최대인 10억달러(약 1조1820억원)를 낸 것으로 추산된다. 1개 기업당 1억달러꼴이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의 공식 스폰서십 규모가 6억6천만달러(약 7800억원)였던 것에 견주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보다 한 등급 낮은 올림픽 파트너는 여름이나 겨울 올림픽 하나만을 상대로 1년 동안 홍보 및 마케팅 활동을 벌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개최국 기업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런던올림픽에선 베이징올림픽 당시 올림픽 파트너였던 차이나모바일·시노펙·에어차이나 등 중국 기업들이 빠지고 브리티시에어웨이·BP 등 영국 기업들이 참여했다. 올림픽 파트너의 스폰서 비용은 일반적으로 TOP의 절반 수준이다. 모두 44개 영국 업체들의 스폰서십 가격은 7억파운드(약 1조2660억원) 정도다. 이번에 '올림픽 파트너'로 참여하는 국내 기업은 없다. 지역 파트너는 IOC가 아니라 개최국 조직위원회와 계약을 맺는 파트너다. 제한된 마케팅 활동만 벌이게 된다. 지역 파트너를 포함한 전체 스폰서 기업 수는 대회 때마다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1988 서울올림픽 당시 96개이던 스폰서 기업 수는 2000 시드니올림픽 579개, 2004 아테네올림픽 663개, 2008 베이징올림픽 866개로 늘었다. 이번 런던올림픽은 957개에 이른다. 전용배 동명대 교수(체육학)는 "스폰서 금액 외에 대회 기간 프로모션 비용을 합치면 이번 런던올림픽에 투입되는 스포츠마케팅 관련 비용은 30억달러에 이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올림픽 마케팅의 바이블 코카콜라

기업들이 올림픽 마케팅을 통해 얻는 최고 효과는 기업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 향상이다. 올림픽 마케팅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기업은 코카콜라다. 코카콜라는 1928 암스테르담올림픽부터 80년 넘게 올림픽 후원에 참여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극대화했다. 암스테르담 대회 때 미국 대표팀에 1천 상자의 음료를 공짜로 보냈는데, 톡 쏘는 맛의 검은색 물이 당시 올림픽에 참가한 세계 선수들 사이에 화제가 되면서 코카콜라가 미국의 음료에서 세계적 음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 또한 1996 애틀랜타올림픽은 지금까지 '코카콜라 올림픽'이라는 별칭이 따라붙을 정도로 스포츠마케팅의 최고 성공 사례로 꼽힌다. 당시 코카콜라는 소규모 이벤트부터 기념관 설립까지 애틀랜타 거리를 온통 코카콜라의 붉은색으로 물들였다. 코카콜라는 2020년 여름올림픽까지 월드와이드 파트너 계약을 따내며 경쟁사인 펩시가 스폰서로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아예 없앴다.

전세계 신용카드 결제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비자카드도 1986 캘거리겨울올림픽 후원을 통해 급성장할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 비자카드는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경기장 주변 1천여 곳에 현금자동인출기를 마련해 사람들에게 신용카드 대표 회사로서의 인식을 심어줬다. 이 밖에 미즈노와 아식스는 1964 도쿄올림픽을 통해 세계적 스포츠용품 회사로 성장했고, 1972 뮌헨올림픽은 아디다스를 나이키에 버금가는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았다.

   
 
신흥국으로 진출을 원하는 기업들에도 올림픽은 그들의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미국의 종합화학회사 다우케미컬은 베이징올림픽 직후인 2009년 IOC와 10년 장기 계약을 맺었다. 다우는 2014 소치겨울올림픽과 난징청소년게임,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공식 파트너로 참여하게 돼 러시아·중국·브라질 지역에 브랜드 가치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국내 기업 가운데 올림픽 마케팅 효과를 가장 톡톡히 누린 곳은 삼성전자다. 세계적인 브랜드 평가기관인 인터브랜드의 조사를 보면, 1999년 32억달러(43위)에 머물렀던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2011년 234억달러(17위)까지 치솟았다. 올림픽 마케팅을 통한 직접적 매출 증가 효과도 눈에 띈다. 2008 베이징올림픽 공식 파트너로 참여하면서 중국 내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이 2007년 11.5%에서 올림픽이 끝난 직후인 2008년 말에는 21.2%까지 확대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품질 향상이 가장 우선이지만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는 데는 올림픽 마케팅이 큰 역할을 했다"며 "삼성전자의 후원 계약은 2016 여름올림픽까지지만 2018 겨울올림픽이 한국(평창)에서 열리는 만큼 스폰서 계약을 연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연기 <이코노미 인사이트> 부편집장 ykkim@hani.co.kr


올림픽 '매복 마케팅'을 막아라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최고의 홍보 효과를 누린 기업은 어디일까. 스포츠마케팅 전문가들은 주저 없이 스포츠용품 회사 푸마를 꼽는다. 푸마는 베이징올림픽 공식 스폰서는 아니지만, 1억달러에 가까운 거금을 들여 파트너로 참여한 기업들 이상의 홍보 효과를 누렸다. 푸마는 남자육상 100m에서 우승한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와 스폰서 계약을 맺었고, 볼트는 세계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한 뒤 세리머니를 하면서 푸마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운동화를 들어 보였다. 이 장면은 중계 화면을 타고 전세계에 퍼졌고, 이후 푸마는 나이키·아디다스와 함께 세계 3대 스포츠용품 회사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이처럼 공식 파트너로 참여하지 못하는 기업들에도 올림픽 마케팅의 길은 열려 있다. 이른바 '매복 마케팅'이다. 매복 마케팅은 올림픽 같은 초대형 스포츠 이벤트에서 공식 스폰서가 아니면서도 교묘한 방법으로 기업 브랜드를 노출시켜 광고 효과를 올리는 마케팅 기법이다. '앰부시(Ambush) 마케팅'이라고도 불린다. 볼트의 경우처럼 선수 유니폼, 신발, 모자에 기업 로고를 새겨 마케팅 효과를 노리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IOC도 이를 막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IOC는 매복 마케팅이 공식 후원사의 마케팅 효과를 반감시킨다고 보고, 이를 감시하는 별도의 기구까지 마련해 엄격히 대응하고 있다. 특히 푸마처럼 선수들을 개별적으로 후원하는 기업의 매복 마케팅을 막기 위해 메달리스트가 시상대에 오를 때는 반드시 공식 후원사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도록 하고 있다. IOC는 자체 헌장에서 올림픽을 '독점적 재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런던올림픽 개막을 코앞에 두고 대한체육회(KOC)도 '매복 마케팅과의 전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국민체육진흥법 제21조를 보면 '올림픽 오륜을 포함한 모든 표지 도안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KOC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적고 있다. KOC 관계자는 "올림픽을 후원하지 않는 기업은 길거리 응원전에서 런던올림픽 로고나 공식 엠블럼, 마스코트 등을 사용할 수 없다"며 "공식 승인 절차를 받지 않을 경우 소송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림픽의 독점적 권리를 사수하려는 IOC와 기발한 방법으로 틈새를 노리는 기업 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 역시 또 하나의 올림픽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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