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커버스토리 > 2012년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IOC는 비밀결사 같은 조직이다"
Cover Story: 돈의 향연, 올림픽- ⑤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인터뷰
[27호] 2012년 07월 01일 (일) 김학준 kimhj@hani.co.kr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스캔들이 터진 것은 드문 일이었다. 이후 그런 큰 스캔들은 나오지 않았다. 올림픽을 둘러싼 돈거래의 잡음이 사라졌거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이 전원 청백리로 교체된 것도 아닌데…. 이전과 달라진 것은 없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는 게 진실에 근접한 얘기 아닐까.

   
김운용(81) 전 IOC 부위원장. 한겨레 자료
오는 7월27일 영국 런던에서 제30회 올림픽이 열린다. 올림픽을 세계인의 제전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사실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소유물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개최 장소를 선정하고, 종목을 정하는 등 모든 분야에서 IOC가 전권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김운용(81·사진) 전 IOC 부위원장은 1988년부터 2005년까지 위원으로 지냈고, 20여 년 동안 IOC 위원장을 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측근으로 역할했다. 한국 체육계와 IOC에서 그는 한때 막강한 파워를 휘둘렀다. 지난 5월30일 서울 연세대 강의실과, 6월1일 여의도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그를 만나 IOC를 둘러싼 막전막후의 얘기를 들어봤다.

스포츠 단체에서 손을 뗀 지 오랜데,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여러 대학에 특강을 나가고 있다. 많지는 않지만 기쁘게 다닌다. 텔레비전 방송 등에서도 한국전쟁, 올림픽, 군사정권 시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인터뷰 요청이 종종 들어온다. 내가 남들에게 얘기해줄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다시 올림픽의 계절이 됐는데, 예전처럼 행사에 참가하는가.

IOC 위원을 그만두고는 그 근처에 가지 않는다. 내가 가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은 맞지 않다. 내가 경험이 많으니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기꺼이 응하지만 내가 나서서 하겠다고는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 스포츠에 관여하게 됐는가.

예전에 청와대 경호실에 있었다. 박종규 경호실장과 같이 있었다. 그러다가 경호실장이 차지철로 바뀌었다. 그 밑에서 일할 수 없어서 박종규 실장과 나는 그만뒀다. 그때 청와대에서 스포츠 단체장을 맡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결국 태권도협회장을 받아들였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곳이지만 개척자의 정신으로 새롭게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88 서울올림픽에도 깊이 관여했는데, 당시 상황이 어땠는가.

애초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올림픽 유치를 추진했다. 박 대통령 주변에 있던 참모들이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국가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는지 찾다가 올림픽에 눈을 돌린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중단됐다. 그러다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좀더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IOC 위원이 '내부 거래' 흘려

1999년 IOC에 대규모 스캔들이 터졌다. 위원들이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유치위원회로부터 향응과 금품을 받은 것이 폭로됐다. 몇몇 IOC 위원들은 이 일로 인해 퇴진했다.

IOC는 비밀결사처럼 운영된다. 안에서 일어난 일들이 밖으로 새나갈 수 없다. 당시 한 IOC 위원이 이를 밖으로 흘렸기 때문에 스캔들로 비화한 것이다. 아니면 그냥 묻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지나갔을 것이다. 일부 무리한 금품 요구가 있었지만,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선물을 주는 관행이 호화 향응 제공으로 지나치게 포장된 사례도 있었던 듯하다.

김 전 부위원장도 스캔들을 피해가지 못했다.

나도 과장된 부분이 있다. 솔트레이크시티 조직위와 거래하는 회사에 내 아들이 허위로 고용계약을 맺고 월급을 받았다고 매스컴이 보도를 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위성방송 사업자인 키스턴커뮤니케이션의 아시아 판매담당 부장으로 정식 고용 계약을 맺고 1년6개월 정도 일했다. 나중에 허위 사실을 흘린 그 회사를 상대로 소송해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내 딸도 세계적 콩쿠르에 여러 번 입상했을 정도로 인정받아 미국 뉴욕 등 대도시에서 연주회를 많이 했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서는 굳이 안 해도 되는 것이었다. 돈도 적게 받고 연주했는데, 그걸 특혜라고 주장하는 건 지나치다.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이 흑자를 낸 이후 올림픽 유치 경쟁이 치열해졌다. 당연히 금품이나 향응 제공이 더 많아졌을 것이다. 내가 올림픽 유치에 나섰다면 IOC 위원들에게 접근해 그들의 신상을 파악해 원하는 것을 해주려고 했을 듯하다. 득표에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사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투표할 때 객관적으로만 하겠는가. 실제로 IOC 위원들은 개인적 이득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어느 나라 IOC 위원을 공략한다고 치자. 그 지역에 스포츠 시설을 지어준다고 하는 것보다 그 위원에게 선물이나 돈을 주는 게 효과적이다. 스포츠 시설은 해당 IOC 위원과는 별 관계가 없을 수 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태권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IOC의 실세인 김 부위원장이 직접 추진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지 않았을까 싶다.

태권도가 훌륭한 종목이어서 됐다고 보는 사람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동안 쌓은 인맥을 총동원했다. 정식 종목 채택을 노리는 다른 종목들과의 경쟁도 치열했다. 인맥을 쌓는 것도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다양한 수단을 동원한 로비 등이 치열하게 벌어졌고 거기서 이긴 결과로 보는 것이 당연하다.

사마란치, IOC 위원장 선거서 배신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퇴진하기로 함에 따라 2001년 IOC 위원장 선거가 치러졌다. 김 부위원장이 위원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는데, 결국 유럽계 자크 로게가 당선됐다.

사마란치와 이권을 놓치기 싫어하는 유럽 위원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 같다. IOC는 각국에 한 표가 있는 유엔과는 다르다. IOC 위원 가운데 유럽 쪽 위원이 절반이어서 선거가 유럽 위주로 돌아간다. 내가 위원장이 되면 자신들이 그동안 누렸던 기득권을 뺏기게 될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내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자 사마란치 위원장은 내가 위원들을 만나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각국 위원들에게 편지를 한 통 쓴 게 내 선거운동의 전부다. 또한 기자들이 물어서 앞으로 위원들에게 활동비를 줄 계획이라고 한 것을 위원들을 매수하기 위해 5만달러를 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만들어 나를 윤리위원회에 회부했다. 사마란치는 로게와 함께 유럽 여러 나라를 다니며 직접 선거 운동을 해주었다. 유럽연맹은 로게에게 50만달러를 지원해줬다. 결국 나는 선거에 지고 말았다.

특히 솔트레이크시티 스캔들로 사임한 위원들은 주로 내 편이었다. 내가 안건을 올리면 나서서 지지 발언을 해주고 표를 몰아주던 사람들이었다. 내 세력이 커지니 수족을 잘라낸 것이다. 그들이 음모를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사마란치 덕분에 IOC 위원이 됐고 그와 호흡을 잘 맞춰왔는데, 결국 김 부위원장을 배신한 것 아닌가.

그가 여러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그중 일부를 거부한 것이 나에게 등을 돌린 한 원인이 된 것 같다.

김 부위원장은 <세계를 향한 도전>이라는 책에서 사마란치를 '이중인격자'라고 규정하면서 "프랑코 독재 권력에 협조했던 사마란치는 시대가 변하면 그 시대에 맞춰 권력을 향해 움직인 기회주의자"로 표현했다.

한국이 평창겨울올림픽 유치에 나서 세 번의 도전 끝에 가까스로 성공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긴 것인가.

2010 겨울올림픽 개최지를 선정하는 2003년 체코 프라하 IOC 총회에서 사마란치 위원장이 "이번엔 밴쿠버다. 한국은 2위를 지켜 다음을 노려라"라는 얘기를 했다. 이미 IOC 내부에서 어느 정도 결정이 난 것이다. 나는 뒤집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마란치의 권고대로 부위원장에 나갔고 당선됐다. 당시 체육계와 한국 언론에서 외쳤듯이, 부위원장과 평창겨울올림픽을 바꾼 것은 아니다. 나는 이미 부위원장을 했기 때문에 꼭 다시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올가미가 됐다. 모든 사람이 나에게 돌을 던졌다.

당시 노무현(대통령)이 총회에 참석해야 하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이번에는 안 되니 참석하지 말라고 권했다. 그때 정부 관리, 국회의원, 사회 각계 인사들이 대거 몰려갔다. 하지만 나와 이건희 위원을 빼고는 표를 모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이 누구에게 어떻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2014년 올림픽 유치도 실패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열심히 뛰었지만 러시아의 소치에 졌다. 내가 부위원장 자리를 내놓은 뒤니까 당연히 성공했어야 한다. 하지만 유럽과 가까운 러시아와의 경쟁에서 이기기는 버거웠다. 두 번이나 진 뒤여서 세 번째 도전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부담이 더욱 컸을 것이다. IOC도 세 번째인데 더 이상 탈락시킬 순 없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평창겨울올림픽을 유치하면서 한국이 1억달러를 썼다는 소문도 있다. 아마 유치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쓴 것만 계산한 듯하다. 삼성 등 기업이 나서서 IOC 위원들에 대한 지원 약속을 했을 텐데, 이런 간접적인 비용을 포함하면 더 많을 수도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은 국가원수급 대접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누구나 '한 번쯤 돼봤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게 된다. 이건희 IOC 위원(왼쪽 사진 오른쪽)과 박용성 전 IOC 위원이 2007년 청와대에서 만나는 모습. 자크 로게 IOC 위원장(오른쪽 사진 왼쪽)이 벨기에의 루벤가톨릭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있다. 한겨레 자료

올림픽 유치 실패 책임 나에게 뒤집어씌워

2004년 1월 횡령 등 혐의로 구속됐고 유죄가 확정됐다. 억울함을 호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무현 정권이 올림픽 유치 실패의 책임을 나에게 뒤집어씌웠다.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IOC 위원 사퇴를 요구했는데, 내가 못 들은 체하니 잡아넣은 것이다. 이들이 수사 내용을 일부 신문에 흘려 내가 아방궁처럼 호화스럽게 살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는 등 흠집내기가 이어졌다. 내 집이 80평(264㎡)짜리 아파트지만 일하는 사람을 따로 두지 않고 살았다. 내가 IOC 부위원장이어서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접대할 경우가 많았는데, 직위에 비춰볼 때 호화스럽게 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05년 유엔 인권위 연차보고서에서도 내가 부당하게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유죄판결을 받아서 2005년 IOC 위원직을 사퇴해야만 했는데.

내가 구치소에 있을 때, 또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두 차례 김정길 당시 대한체육회장이 사표를 받으러 왔다. 그때 두 번 써준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정권의 실력자가 IOC 위원을 하려 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때 사퇴하지 않고 버텼으면 IOC 위원을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와 관계가 깊거나 동정적인 위원들이 상당수 있어서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나를 퇴출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사표를 강요하면서 나를 몰아붙였고, IOC는 그걸 빌미로 내 위원직을 정지시켰다. 양쪽이 똑같이 나의 불행을 이용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직함을 아예 빼고 얘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막말 수준의 언급을 많이 했다. 아마 검찰 수사를 받고 IOC 위원직을 뺏긴 것이 그의 감정을 이렇게 몰아간 것 같다.

2005년 정권과의 밀약설이 흘러나왔다. IOC 위원을 사퇴하면 석방해준다는 것이었다.

밀약은 없었다. 구속 기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석방된 것이다.

비리가 있는 IOC 위원 명단을 폭로하겠다면서 정부와 IOC를 협박했다는 설도 돌았다.

그런 것은 내 얼굴에 침 뱉는 일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요즘 올림픽이 너무 상업화돼 있다는 비판이 많은데.

아마추어 선수들도 지금은 돈을 주지 않으면 대회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회를 하는 쪽에서는 유명 선수가 없으면 대회 가치가 떨어지게 되니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들여 유명 선수를 초청하지 않을 수 없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 대회를 치르겠는가.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다만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마구잡이로 대회를 유치하는 것은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다. 올림픽과 월드컵, 육상처럼 인기가 있고 수지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대회는 괜찮지만 다른 종목들은 대회 비용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 주최하는 단체장이야 자기의 업적이지만 남은 빚은 국민이 오랫동안 지고 가야 한다.

IOC 위원은 국가원수급 대접을 받는다는데.

언론이 걸핏하면 IOC 위원이 그런 대접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건 아닌 듯하다. 실제로는 의전상 장관급 정도의 대접을 받는 것 같다.

요즘 한국의 스포츠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스포츠 행정은 구태의연한 것 같다.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경기단체의 장을 기업인이 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체육 행정을 관장하는 대한체육회의 경우는 전문가가 맡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기업인은 기업 운영만 열심히 해야 한다. 기업 운영과 경기단체 운영을 모두 잘할 수는 없다. 스포츠 외교는 특별한 전문성이 필요하다.

김학준 <이코노미 인사이트> 부편집장 kimhj@hani.co.kr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1)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고경태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윤종훈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