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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주주에게만 맡기지 말라
[Special Report Ⅰ] 변화 필요한 주주자본주의 - ① 이해관계자 기업 모델 대안으로 거론
[23호] 2012년 03월 01일 (목) 필리프 프레모 economyinsight@hani.co.kr

   
 
“기업지배구조 이론은 실패했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프랑스의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가 최신호에서 도발적인 선언을 했다. 주주의 권한과 이익을 우선시하는 기업지배구조 이론이 소개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끔찍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다.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해 금융계가 위험천만한 투자에 나서는가 하면, 기업들은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생산공장 해외 이전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결국 기업의 단기적인 성장주의를 부추겨 오히려 성장하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걷는 ‘불임 기업’을 양산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지배구조 이론의 참담한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주주뿐 아니라 종업원과 소비자,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 모두의 이익을 위한 새로운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의 주장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무리다. 재벌에 의한 전횡이 시장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인 상황에서 재벌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업지배구조 이론이기 때문이다. 재벌의 전횡을 막으면서 소외된 이해관계자도 나오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_편집자

환경비용 등 고려 대상 늘어… 주주들만의 자본주의 벗어나야 ‘미래 비전’ 가능

기업지배구조 이론은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고, 기업 활동이 사회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 새로운 종류의 기업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이미 수십 년째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 이론이 대기업의 경영 원칙으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요컨대 경영자는 기업의 법적 주인인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논리대로라면 기업지배구조 이론에 따라 경영자를 압박하면 만인이 그 혜택을 입을 수 있다. 경영자가 기업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거나, 새로운 수요 변화에 맞춰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이다.

40년이 지난 지금, 기업지배구조 이론이 가져온 결과는 참담하다. 특히 금융계가 기업지배구조 이론을 따른 결과, 오늘날 우리는 끔찍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기업지배구조 이론은 단순히 금융계가 위험천만한 투자에 나서도록 부채질만 한 것이 아니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생산공장 해외 이전 광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불행히도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생산지 이전은 산업국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기업지배구조 이론은 기업의 단기주의 경영전략도 부추겼다. 기업의 근시안적 경영은 해당 기업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었지만, 그런 경영원칙을 따르지 않는 다른 나라, 특히 아시아의 기업이 성공하는 데 유리한 토양을 제공했다.
 
주주 이익 극대화의 함정

1970년대 모퉁이를 돌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대기업 경영자는 협력적 방식으로 부를 생산하는 관료조직의 수장이자 일원으로 자리했다. 무엇보다 업무능력과 통솔력이 있는 자가 경영자로 선출됐다. 경영자는 장기적 비전에 따라 기업을 운영했다.

미국의 정치·경제평론가 제임스 버넘이 1941년 저서 <경영자 혁명>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기업 경영에서 무엇보다 재생산이 우선시될 정도였다. 버넘의 이론은 20년 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의 <새로운 산업국가>와, 프랑스의 사회학자 레몽 아롱의 <산업사회 18강의>에 의해 계승됐다.

이미 1932년부터 미국의 아돌프 벌과 가디너 민즈는 <현대기업과 사유재산>에서 거대 산업체를 지휘하는 경영자가 실질적 경제권을 쥐기 시작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주주가 여러 명으로 분산되고, 특히 경영자의 전문적 역할이 중시되면서 그런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는 얼마 못 가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해됐다. 특히 기업지배구조 이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 책을 근거로, 경영자가 그저 주주의 완전한 재산권을 행사하기 위한 수임자나 대리인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주주의 권한이 강화됨과 동시에, 연기금이나 기타 기관투자자들의 세력도 함께 확대됐다. 가계 자산에서 금융 자산의 비중이 늘어난 덕분이었다. ‘영광의 30년’(제2차 세계대전 이후 30년 동안의 경제호황기)이라 불리는 호황기 동안 산업국에서는 임금노동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노동자는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노동자 역시 저축금을 기반으로 수익을 챙겼다. 노동자가 맡긴 종잣돈은 점차 유가증권 등의 형태로 투자됐다. 일반 법인이 직접 관리하던 노동자의 예금은 점차 전문기관의 손에 운용되기 시작했다. 이 전문기관들은 무엇보다 주주의 수익 증대에 역점을 두라고 경영자를 압박했다.

이렇게 기업 환경이 변화하면서, 경영자는 밥그릇을 잃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좀더 생산성 있는 일에 몰두하기보다는 상당한 시간을 투자자를 설득하는 데 보내야 했다. 동시에 이런 변화 덕분에 경영자 자신도 배를 불릴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 경영자는 ‘주주의 이익 증대’라는 미명 아래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자신 역시 그에 비례하는 천문학적 액수의 연봉을 챙겼다.

그렇다고 기업지배구조 이론이 지닌 최악의 모순이 비단 경제침체기에도 경영자의 보수가 인상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리라. 어쨌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주 이익을 수호하는 것이 자산관리자뿐 아니라 경영자에게도 자신의 어마어마한 소득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주주 이익 수호에 대한 압력이 거세지면서 1980년대부터 기업은 바야흐로 ‘핵심사업 집중화’ 전략에 나서기 시작했다. 경영 컨설턴트들은 복합기업(Conglomerate·서로 별 연관이 없는 다양한 부문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의 그룹)과 수직통합형 기업(Vertical Integration·한 기업이 생산에서 유통까지 전 단계에 진출하는 것)에 다양한 사업부문을 인수해 발전시키기보다 불필요한 사업부문을 정리하라고 조언했다. 시장점유율 확대를 바라는 다른 경쟁사에 이문을 남기고 팔 수 있는 부문을 매각하도록 권했다.

이처럼 사업영역을 전문화하면서 기업은 핵심부문의 몸집을 불리거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기업이 취약해지는 역효과도 일어났다. 자산 증식에만 목매는 근시안적 경영은 총체적 경제성장이나 혁신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많은 기업이 자사가 가장 잘하는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지만, 그로 인해 일부 자회사나 사업부문을 접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일정 시기에는 다소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자회사나 사업부문도 한 기업의 노하우나 역량의 폭을 넓혀 결국 미래 성장 잠재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랬다면 기술 변화가 급격한 시기에도 기업은 좀더 다양한 경영전략을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기업지배구조’가 인기 없는 까닭

기업지배구조 이론이 맬서스주의적인 축소 지향 경향을 띠는 탓인지,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신흥국에서 이 이론은 좀처럼 인기가 없다. 다른 나라와 정반대로 신흥국의 기업들은 ‘경영자 중심 자본주의’(Managerial Capitalism)에 입각한 경영전략을 펼치고 있다. 내적 성장에 역점을 두고 사업 다각화나 수직 통합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의 ‘재벌’이다. 비단 신흥국 기업만이 아니다. 전통적인 유럽 산업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 기업 중에도 여전히 주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장기적 시각의 경영전략을 펼치거나 다양한 상품군을 유지하면서 주주의 요구까지 충족한 기업들이 더러 있다. 대표적인 예가 생고뱅과 제너럴일렉트릭(GE)이다. 더욱이 GE는 금융부문 악화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기업이어서 더욱 놀랍다.

어쨌든 기업지배구조 이론은 적어도 주주의 수익을 늘리는 데는 기여하지 않았을까? 사실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먼저 기업지배구조 이론이 임금노동자에게 이롭지 않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주주를 위한 가치 창출’이라는 미명 아래 구조조정과 생산공장 해외 이전의 붐이 일어나면서 노동자는 고용불안의 제물로 전락했다.

여기에 저성장과 그로 인해 발생한 대량실업은 자본에 대한 노동의 지위를 더욱 약화시켰다. 경제호황기 동안 노동자에게 더 많은 안전망을 제공하는 사회적 협약이 반드시 주주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주주는 배당금 형태의 수익 배분 비중이 줄어들었고, 생산성 향상에 따라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며 성장의 파이를 함께 나눠먹어야 했다. 동시에 수익 가운데 일부가 주주에게 배분되지 않고 기업에 재투자된 덕분에 장기적으로 주주의 수익이 더욱 배가됐다. 반면 오늘날 기업은 매번 막대한 규모의 배당금 배분에 나서야 하는 까닭에 정작 투자나 발전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과거에는 비교적 대출금리가 낮고 물가상승률이 높은 탓에 은행의 자본이 대개 금융 외 기업으로 흘러들어갔다. 반면 오늘날에는 모든 자본이 금융권으로 쏠리고 있다. 심지어 일부 기업은 단기 수익을 올릴 별다른 투자처를 찾지 못한 채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막대한 현금을 쏟아붓고 있다.

한 예로 2010년 프랑스 CAC40 상장기업이 자사주 매입에 지출한 금액은 무려 59억유로(약 8조7252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기업은 어떻게 부를 창출할지 몰라 그저 파이를 나눌 입이라도 줄여보겠다며 자기자본을 잠식하고 있다. 훨씬 더 맬서스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셈이다. 그럼에도 그토록 생각이 짧은 경영진에게 어쩌자고 후한 보수를 챙겨주는 것일까?

하루빨리 ‘게임의 법칙’을 바꾸어야 한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광의 30년’ 시대의 기업 경영은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 적합한 방식이었다. 당시 유럽은 오늘날 신흥국과 같이 전쟁으로 무너진 경제를 재건하고 낙후된 경제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고도의 경제성장기를 구가했다.
 
   
미국 뉴욕의 주식시장에서 미국 기업 메릴린치 직원들이 상황판을 들여다보고 있다. 주주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계경제가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뉴시스 AP.

이해관계자 기업 모델로 가야

앞으로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부를 측정하고 환경비용까지 고려해야 하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런 새로운 세상에 적합한 좀더 장기적인 비전에 입각한 시장경제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스스로 사회와 환경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 외에 새로운 규범과 규칙을 부과해야 한다.

주주의 이윤 증대를 강요하는 독재적인 경영과 단절한 새로운 형태의 기업 모델을 창안해야 한다.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 (노동자뿐 아니라 납품업체, 고객, 토지 소유자까지) 위험부담을 나눠가져서, 장기적으로 기업이 잘 운영되는 게 이로운 모든 이들이 동참할 수 있는 기업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 필리프 프레모 Philippe Fremaux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Alternatives Economiques·번역 허보미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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