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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아내, 유산 찾기 소송
[SPECIAL REPORT] 세계 최대 주류회사 바카르디 일가의 상속 싸움- ① 1조원을 돌려달라
[166호] 2024년 02월 01일 (목) 잉고 말허 economyinsight@hani.co.kr
   
▲ REUTERS

억만장자 유산 봉인 해제될까
세계 최대 주류회사 ‘바카르디리미티드’는 거의 모든 주주가 창업주 일가로 꾸려져 유대가 끈끈하다. 하지만 이 회사의 지분 6%를 가진 대주주 루이스 바카르디는 술과 마약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바카르디 일가’의 눈 밖에 났다. 루이스는 죽으면서 여섯 번째 아내 모니카 바카르디에게 자산을 상속하지 않고 신탁으로 묶어놓았다. 모니카는 신탁 방식이 남편의 뜻이 아니라며 남편의 유산을 갈취하려는 바카르디 일가의 음모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쪽은 억지 주장이라고 맞서면서 치열한 법정 다툼이 이어지고 있다. _편집자

잉고 말허 Ingo Malcher <차이트> 기자

   
▲ 2023년 8월31일 제80회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경쟁부문 초청작인 <페라리>의 투자자 모니카 바카르디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REUTERS

인생 말년을 알코올과 마약에 찌들어 살았던 세계적 가족기업의 대주주, 그리고 대주주였던 남편의 사망 뒤 7억달러가 넘는 엄청난 유산에 접근할 수 없어 실망한 여섯 번째 아내. 억만장자 바카르디 창업주 일가의 유산 상속을 둘러싼 치열한 법정 다툼을 취재했다.
세계 최대 비상장 주류회사 바카르디리미티드(Bacardi Limited) 본사는 북대서양 영국령 버뮤다에 있다. 미국, 푸에르토리코, 스코틀랜드,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브라질 등 전세계에 생산기지 23곳이 있다. 바카르디 제품은 160개 이상 국가에서 판매 중이다. 이 가운데 미국과 유럽이 주력 판매시장이다. 바카르디의 주요 브랜드는 ‘바카르디 럼’ ‘봄베이 사파이어 진’ ‘테킬라 패트론’ ‘카사도레스 테킬라’ ‘윌리엄 로손스 스카치위스키’ ‘마티니 로쏘’ 등이 있다.

2023년 7월의 어느 일요일, 자정을 앞둔 시각에 인터뷰 일정이 다시 변경됐다. 모니카 바카르디(62)와의 인터뷰 일정이 애초 약속한 모나코가 아닌, 프랑스 남동부 생트로페의 레스토랑 골프클럽으로 바뀌었다. 모니카가 수년 만에 처음으로 언론과 하는 인터뷰이다. 인터뷰 주제는 리히텐슈타인에 꽁꽁 묶인 7억달러 이상의 보물이다. 모니카는 이 돈이 딸의 소유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보물을 관리하는 수탁자는 한사코 돈을 내놓기를 거부한다. 이 지점에서 치열한 상속 싸움이 시작됐다.
다음날 생트로페 언덕에 있는 골프클럽. 점심 무렵 레스토랑은 한산하다. 진한 화장을 하고 온몸을 핑크로 휘감은 모니카가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오랑주리 레스토랑으로 들어온다. 모니카는 측근인 브루노 카포네(54)와 팔짱을 끼고 있다. 모니카의 죽은 남편의 유산이 언급될 때면, 카포네는 인터뷰에 자신의 의견을 보탰다.
모니카는 카포네의 도움으로 현재 거주지인 모나코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죽은 남편의 가족기업과 신탁 수탁인을 상대로 소송을 다시 제기했다. 그는 남편의 성을 계속 사용한다. “리히텐슈타인에서 법정 소송을 벌인 지난 20여 년, 나는 줄곧 공격받고 수모를 당했다.” 바카르디 일가의 스토리는 보물을 되찾으려는 모니카 바카르디의 고군분투기이기도 하다.
모니카의 남편 루이스 바카르디는 2005년 사망했다. 모니카는 그의 여섯 번째 아내다. 루이스의 증조할아버지 파쿤도 바카르디는 (스페인에서 쿠바로 건너온 뒤) 1862년 쿠바에서 현재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주조업체 바카르디를 설립했다. 루이스는 어머니로부터 가족기업의 주식 140만 주 이상을 상속받았는데, 이는 세계 최대 주류회사인 바카르디 지분의 약 6%에 해당한다. 루이스는 보유한 주식을 그와 모니카 사이에서 태어난 딸 마리아 루이사에게 물려줬다. 루이스가 사망했을 때 딸 루이사는 3살에 불과했다.
루이스의 사망 뒤 모니카와 루이사는 매년 배당금 수백만달러를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정작 상속받은 주식에는 손대지 못한다. 유산으로 받은 주식은 리히텐슈타인의 ‘바스티유 트러스트’(Bastille Trust)라는 신탁펀드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일단 신탁펀드에 들어간 자산은 상속인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즉, 상속인은 이론상으로는 부유하지만 수중에 현금이 단 한 푼도 없을 수 있다. 누구도 신탁펀드에 묶인 자산에 손댈 수 없다. 위탁자가 서명한 신탁펀드 계약서류에는 자산에서 ‘누가’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은’ 돈을 받아야 하고, 신탁펀드를 얼마나 오래 유지해야 하는지 명시됐다. 이 모든 것을 신탁 수탁자가 관리한다.
신탁펀드의 자산에 관한 한, 모든 것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 모니카는 남편이 상속한 자산을 신탁펀드에 묶어두는 것이 정말 남편의 의지였는지, 아니면 바카르디 창업주 일가와 수탁자가 모니카를 겨냥해 음모를 꾸몄는지 소송에서 다투고자 한다. 모니카는 수탁자가 남편의 유언을 무시한 채 신탁펀드로 장난친다고 확신한다. 반면 신탁펀드를 자신이 당장 어찌할 수도 없고 스스로 결정하지도 못하게 된 모니카가 허위 사실을 진실로 믿고 있다고 수탁자는 주장한다. 이 분쟁에서 타협은 없다. 오로지 승자와 패자만이 있을 뿐이다.
<차이트> 취재진은 재판 문건, 기업 서류, 유언장, 서신, 신탁펀드 계약서 등을 열람했고 여러 관계자와도 인터뷰했다. 그리고 이 소송 사건으로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바카르디 창업주 일가의 은밀한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유산 싸움은 전체 이야기의 일면에 불과하고, 리히텐슈타인의 신탁제도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 ‘바카르디리미티드’ 대주주인 루이스 바카르디와 모니카는 각각 67살과 39살이던 2000년에 결혼해 딸 마리아 루이사를 낳았다. 마리아 루이사의 가족 누리집

 

   
▲ 파쿤도 바카르디는 스페인에서 쿠바로 건너온 뒤, 1862년 쿠바에서 현재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주조업체 바카르디리미티드를 설립해 크게 성공했다. 바카르디리미티드 누리집

약속
남프랑스 생트로페, 레스토랑 골프클럽, 2023년 7월
오랑주리 레스토랑은 너무 고요하다. 레스토랑에 라디오 소리가 크게 울려퍼지는 것이 감사할 지경이다. 모니카는 웨이터에게 음악을 꺼달라고 부탁했다. 동행한 카포네가 옆에 앉아 있다. 카포네는 분홍색 바지 차림에 육중한 손목시계를 착용했다.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한 이탈리아 북부 볼차노가 고향인 모니카는 독일어가 모국어로, 카포네를 배려해 영어로 인터뷰했다. 모니카는 볼차노의 도시 메라노 태생으로 어린 시절 성에서 살았다. 그의 가족은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었다. “나는 바카르디리미티드의 돈 없이도 문제없이 살 수 있다.” 그러면 모니카는 소송으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자신이 옳음을 그냥 입증하고 싶은 것일까?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삶은 기나긴 파티처럼 보인다. 모니카는 한때 <플레이보이> 프랑스 라이선스를 공동파트너와 보유했다. 모니카는 이탈리아에서 영화제작사를 운영한다. 그가 제작한 영화에 나온 가장 유명한 사람은 <비욘드 더 선>에 직접 출연한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모니카는 바스티유 트러스트로부터 매년 배당금을 받는다. 2022년 받은 배당금 1천만달러(약 132억원)는 그의 화려한 생활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모니카는 남프랑스 생트로페에 저택을, 모나코에 빌라를 한 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자동차 피아트500과 페라리를 가지고 있다. 롤스로이스를 탈 때는 운전사가 운전한다. 모나코 공국의 군주 알베르 2세는 2022년 법령에 따라 모니카에게 모나코 국적을 부여했다. 모니카의 생일파티에 영국 여배우 조앤 콜린스와 미국 배우이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 에이드리언 브로디 등이 참석했다.
인생은 이렇게 꿈처럼 흘러갈 수 있다. 남편의 유산을 둘러싼 싸움과 ‘딸의 꿈’만 아니라면 말이다. 딸은 십 대 시절 항상 멋진 저택을 원했다고 한다. “십 대들이 보통 꿈꾸는 것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유산이 신탁펀드에 묶인 탓에 18살이 돼야 “원하는 멋진 저택을 살 수 있다”고 딸을 지금까지 달래왔다. 그러나 그 꿈이 깨져버렸다. 리히텐슈타인의 수탁자는 딸이 원하는 저택을 매입하는 용도로 남편이 맡긴 돈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딸에게 18살이 되면 저택을 사주기로 약속했단 말입니다.” 딸의 꿈 때문에 이런 지난한 법정 다툼을 벌인다고?

   
▲ 더운 지방에서 즐겨 먹는 음료인 모히토에는 바카르디의 럼을 넣는 경우가 많다. REUTERS

배신
모나코, 빌라 다이키리, 2002년 9월
루이스 바카르디는 어느 목요일 서신을 작성했다. 자신의 문장(紋章)이 찍힌 종이에 몇 년 전부터 리히텐슈타인에서 자신의 자산을 운용하는 가까운 지인에게 편지를 썼다. “모니카와 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노후를 보장하고, 그래서 내가 편안히 눈감을 수 있는 법적 방법을 찾으려고 해. 그런데 신탁 방식은 최대한 피하고 싶어.”
당시 심각한 알코올중독 상태였던 루이스는 재활치료를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녔다. 후일 그는 간암 진단을 받고, 죽기 전 몇 가지 사안을 최대한 빨리 매듭지으려 했다.
루이스는 오랫동안 알코올, 마약, 여자를 가까이하며 방탕하게 살았다. 그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전아내에게 생활비를 지급하지 않아 수갑을 찬 채 구치소에 가기도 했다. 그는 수차례 이혼으로 상당한 위자료를 부담했음에도 주류회사에서 나오는 돈으로 항상 풍족하게 지냈다. 루이스는 1970년부터 모나코의 빌라에서 살았다. 이 빌라에는 현재 그의 마지막 아내 모니카가 살고 있다. 루이스는 이곳을 ‘빌라 다이키리’(Villa Daiquiri·다이키리는 럼 베이스의 대표적인 쿠바 칵테일)라고 불렀다. 그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유럽을 돌아다니며 한량 생활을 즐겼다.
루이스 바카르디라는 이름으로 성에 차지 않았는지, 루이스는 1988년 영국의 한 백작에게서 ‘로드 오브 더 매너 오브 베이필드 홀’(Lord of the Manor of Bayfield Hall)이라는 귀족 칭호를 샀다. 이후 그는 ‘루이스 경’(Lord Luis)으로 불렸다. 그의 음주 관련 일화는 엄청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 필립 공이 어떤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는데, 갑자기 이를 끊고는 웨이터에게 술 한 잔 더 가져오라고 소리친 적도 있었다. 음주 기행을 일삼던 루이스는 창업주 일가에 눈엣가시였다. 바카르디 일가는 알코올중독을 문제 삼아 바카르디리미티드 감독위원회에서 루이스를 내쫓으려 했고, 결국 루이스는 1993년 감독위원회 이사직을 내려놓았다.
모니카 바카르디(결혼 전 이름은 모니카 발트너)가 루이스의 비서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이었다. 루이스와 모니카가 결혼한 2000년에 둘은 각기 67살과 39살이었다. 이후 루이스 경의 아내로서 그는 ‘레이디 모니카’로 불렸다.
영국령 지브롤터에서 열린 둘의 결혼식에 바카르디 일가에서 참석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노령의 옛 카사노바의 여섯 번째 결혼식에 바카르디 일가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반면 루이스가 보유한 주식에 관심을 가진 일가가 있었다. 결혼식 당시에도 슬하에 자녀가 없던 루이스의 바카르디 주식 일부를 원했던 조카들이 그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조카들은 결국 패소했고, 2001년 2월 모니카와 루이스의 딸 마리아 루이사가 태어났다. 부부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딸의 유전자검사를 의뢰했고, 루이사가 루이스의 친딸임을 확인했다. 이로써 루이사는 루이스의 유산 상속 권한이 있음이 입증됐다.
루이스가 2002년 9월 빌라 다이키리에서 신탁 수탁자인 지인에게 편지를 쓴 것은 딸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당신이 내 아내와 딸을 보호할 것으로 믿습니다.” 적어도 모니카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그렇다. “남편은 신탁상품을 원치 않았다. 남편은 유산을 나와 딸에게 상속하려 했다.”
이후 상황은 루이스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갔다. 루이스의 자산 대부분은 리히텐슈타인의 신탁펀드와 금융기관에 이미 오래전부터 묶여 있었다. 그런데 루이스의 편지를 받은 수탁자는 오히려 신탁펀드를 하나 더 만들었다. 그렇게 2003년 7월14일 ‘바스티유 트러스트’ 펀드가 만들어졌다. 루이스의 모든 자산은 신탁펀드에 묶였다. 이것이 루이스가 원한 바일까?
당시 오랜 기간 바카르디 일가를 위해 일하던 금융컨설턴트들은 알코올중독에 마약까지 했던 루이스를 호시탐탐 먹잇감으로 노렸다. 루이스가 모나코의 ‘프린세스 그레이스 병원’에 입원하자, 한 의사는 이렇게 메모했다고 한다. “그는 의식은 있지만 술에 취해 헛소리하는 상태로 병원에 실려왔다(그는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과 얘기하고 싶어 했다).”
헛것을 보고 헛소리를 자주 했던 사람이라도 자신이 사기당했다고 후일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이를 되돌리려 할 수 있다. 루이스는 2003년 9월20일 이런 글을 작성했다. “내 이름으로 소유한 바카르디리미티드의 전체 주식을 딸 마리아 루이사에게 즉각 양도함을 알리는 바다.” 다만 그의 수중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보유한 주식이 거의 없었다. 루이스가 보유한 주식은 실질적으로 모두 신탁펀드에 묶여 있었다. 그래서 그는 추가로 서신을 작성했다. “현 상황은 내가 원했던 것과 정반대다.”
루이스가 무엇을 정말 원했는지는 실제로 분명하지 않다. 그는 한 친척에게 신탁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쓰기도 했다. 자신이 수탁자들을 믿을 수 없는 것뿐이라고 서신에 쓰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수탁자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당신은 내 의사에 반해 내게 결정권이 없는 신탁기관에 내 명의의 바카르디 주식을 묶어뒀다.”
그렇다면 이제 과연 무엇이 유효할까? 루이스는 2005년 1월 71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바스티유 트러스트 펀드 설립 서류에 직접 서명까지 했다. 그렇게 그의 보물 주식은 잠기게 됐다.

   
▲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바카르디리미티드의 주조공장. 바카르디리미티드는 전세계에 생산기지 23곳이 있다. 푸에르토리코 데이트립 누리집

음모
생트로페, 골프클럽, 2023년 7월
“남편은 자신을 둘러싼 음모에 대한 울분으로 울면서 눈감았다.” 바카르디 일가가 남편의 나쁜 건강상태를 악용해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신탁펀드를 만들었다고 모니카는 주장한다. 지금 자신은 평범한 유산 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자신과 딸 외에 다른 상속인이 없는데도, 상속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은 있는 특이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미 1991년 가족기업 바카르디리미티드 대표이사는 루이스에게 그가 보유한 주식 일부를 조카들에게 양도하라고 권유하는 서신을 보냈고, 그 서신을 읽은 루이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바카르디리미티드 본사가 있는 버뮤다와 루이스가 남긴 유산이 신탁으로 묻힌 리히텐슈타인 사이에 자신들이 받을 유산을 가로채려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모니카는 확신했다. 모니카는 변호사들과의 회의에서 자신이 살해 협박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번은 차량 두 대가 운전기사가 모는 자신의 차량을 쫓아 모나코를 질주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혹시 모니카가 범죄영화의 전형적인 장면을 마치 자신에게 벌어진 일처럼 부풀렸을까?
모니카는 이 외에 의문스러운 끔찍한 상황을 많이 겪었다. <차이트> 취재진과 골프클럽에서 인터뷰한 뒤, 모니카가 받았다는 이상한 서신을 그의 지인이 취재진에 전달했다. 자신을 스위스인이라고 밝힌 익명의 발신자는 편지에서 벤저민 폰 로스차일드 남작도 의문사를 당했다고 했다. 경고문일까, 아니면 협박일까. 정확히 알 수 없다. 모니카와 동행한 카포네는 인터뷰 중에 모니카를 안심시키려 팔을 쓰다듬어준다. “바카르디 일가에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바카르디는 막강한 대기업이다. 하지만 나와 딸은 홀로 있다.”

ⓒ Die Zeit 2023년 제54호
Mein Schatz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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