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특집
     
낡은 방식·이념 편향 새싹 질식
[집중기획] 현대 경제학 진단 ① 주류 경제학이 실패한 이유
[128호] 2020년 12월 01일 (화) 크리스티앙 샤바뇌 economyinsight@hani.co.kr

끊이지 않는 금융위기와 불황에 주치의처럼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온 현대 경제학이 중병을 앓고 있다. 주류 경제학의 실패는 비판적인 학자들만 주장하는 게 아니다.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엘리트 주류 경제학자들도 동의한다. 낡은 사고방식과 편향된 이념에 갇힌 채 현실과 괴리돼 ‘과학’이기를 포기한 듯하다. 주류 경제학이 실패한 원인과 무기력한 비주류 경제학의 한계, 불신당하는 경제 미디어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_편집자

크리스티앙 샤바뇌 Christian Chavagneux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2018년 12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경제학자 폴 로머가 스웨덴 스톡홀름대학에서 ‘진보의 가능성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수상 연설을 하고 있다. REUTERS

“30년 넘은 지적 퇴보.” 2016년 미국 경제학자 폴 로머는 현대 경제학을 이렇게 평가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주류 경제학을 대표하는 미국 엘리트가 이런 잔혹한 말을 하다니! 당시 폴 로머는 세계은행 수석경제학자였다. 얼마 안 있으면 2018년 노벨경제학상도 받을 사람이었다.
비슷한 평가가 다른 사람들 입에서도 나왔다. 잦은 미디어 노출과 정부 고문 활동으로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제학자들이 몇십 년 전부터 차가운 비판의 비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일하는 방식이 일의 성과를 의심하게 한다.

사고방식 문제
경제학자는 자신이 다른 사회과학자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자의 수학적 논증은 빈틈이 없고 그의 이론은 경험적 연구로 검증할 수 있다고 한다. 과학자가 따로 없다. 영국 워릭대학 로버트 스키델스키 명예교수는 경제‘과학’의 가장 큰 문제가 “결과 도출 방식에 있다”고 말한다. 비전문가 눈에도 문제가 빤히 보인다.
첫째는 수학적 모형의 남용이다. 미국 예일대 교수이자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는 현대 경제학계가 ‘과학자병’을 앓고 있다고 말한다. “모두가 아인슈타인이 되려 한다”는 것이다. 경제 전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변수가 너무 많다.
스마트폰 GPS가 실제 지형을 보고 그린 간이지도는 길을 찾아가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자가 현실을 본떠 만든 모형은 경제 기능을 왜곡하는 거울에 가깝다. 거울 속 인간은 합리적이고, 위기가 닥친 경제는 스스로 균형을 찾아간다. 화폐는 아무 구실을 하지 못한다. 이런 거울에 과학성을 입혀야 하는데 수준 이상의 복잡한 수학 공식은 피하고 싶다. 그래서 한계가 많은 가설에 집착한다.
주류 경제학이 세운 변수들의 인과관계는 법칙이 되기에 지나치게 단순하다. 2013년 도입한 ‘경쟁력과 일자리를 위한 세액공제’(CICE)와 고용률 사이의 직접적 관계를 찾으려는 연구가 쏟아지지만, 어떤 것도 여럿이 동의할 만한 연관성을 내세우지 못한다. 연결 작업에 끼어드는 변수가 너무 많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 주류 경제학은 여러 가설 가운데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경험적 연구로 선택을 검증한다. 경험적 연구는 유용하지만 완전하지 않다.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은 “지금껏 반증되지 않은 경험적 연구 결과는 없었다”고 말한다. “경제 현실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경제 현실 속 변수가 너무 많기에 경험적 연구로 얻은 어떤 결과도 일반화할 수 없다.”
연구 자체가 제대로 됐는지 모를 때는 더 그렇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두 연구원이 대표적 경제학술지에 실린 경험적 연구 논문 67건을 재검증했더니, 처음과 결과가 바뀌지 않은 연구는 고작 절반이었다. 주류 경제학자가 주장하는 진실은 (좋게 봐서) 반쪽짜리 진실이다.

주류 경제학의 편향
학계가 인정하는 학술지라면 여러 논문 가운데서도 으뜸만 가려 실어야 한다. 200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헤크먼이 5대 경제학술지를 대상으로 실제로 그런지 살펴봤다. 학계에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고른 논문은 전부 다른 학술지에 이미 게재된 것이었다.
“진짜 혁신적인 논문은 주류를 뚫고 살아남지 못한다. 주류는 ‘새 과학’보다 ‘정상 과학’을 좋아한다.” 그뿐이 아니다. 논문을 실어줄 사람을 찾아 사회생활도 해야 한다. 고객 관리? 헤크먼의 표현을 빌리면 “근친관계”가 학계에 판을 친다. 사교 놀이판에서 승자는 최고가 아니다.
주류 경제학자는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을 대표하겠다고 꿈꾼다. 그러면서 이념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모셴 재브대니 교수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장하준 교수가 진행한 실험이 흥미롭다. 경제학자 2400명에게 여러 경제학자가 한 15개 발언을 보여주며 그에 동의하는지 물었다.
두 교수는 ‘부자는 부를 세습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의 주장을 앵거스 디턴이 한 말이라고도 하고 토마 피케티가 한 말이라고도 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불공정성에 관한 주장을 두고 학계에서 인정받는 경제학자 로런스 서머스, 또 한 번은 그리스 전 재무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가 한 말이라고 소개했다.
두 교수의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같은 말이라도 비주류 경제학자가 한 말이라고 하면 신뢰도가 떨어졌다.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이 이야기한 대로다. “(나를 포함한) 경제학자는 때때로 자신의 정치적 선택에 맞게 미리 재단한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판결은 나왔다. “순수과학의 꿈은 죽었다.”
그러나 현실도 주류 경제학의 꿈을 깨지 못했다.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자가 정한 연구 주제 1~15위에서 13가지가 금융위기 이전과 같았다. 물론 ‘금융위기’는 132위에서 12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연구하는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금융시장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거품이 생길 수 없다는 가설, 금융시장은 본질적으로 거품을 만들 수 없다는 출발점은 그대로였다. 폴 크루그먼이 주류 경제학자를 겨냥해 한 말이 있지 않은가(그도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주류 경제학자에게 현실은 취객의 가로등과 같다. 불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몸을 기대는 것이다.”

   
▲ 2020년 10월 아르헨티나 중앙은행 앞에서 시민들이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약을 맺지 말도록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IMF가 채무국에 강요하는 긴축재정의 부작용에 대해선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REUTERS

‘경제학 일병’ 구하기
연장은 빈약하고 시야는 비뚤어져 현실에 무감각한 경제학자들, 목욕물을 버리면서 같이 버리면 되지 않을까. 잠시 기다려보자. 그들 방법이 약점은 많아도 쓸모가 있다.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도 그들과 같은 언어를 써야 대화가 통한다.
주류 경제학의 사고방식으로 (중력의 법칙처럼) 순수과학 정리를 세울 수는 없다. 그래도 주류 방식은 어느 정도 논리적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무 말이나 내뱉지 않으려면. 세금을 계속 낮춰주길 바라면서 공공서비스 질은 높여달라 하든지, 임금은 못 올리게 막으면서 내수가 침체했다고 불평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프랑스경제전망연구소(OFCE)의 자비에 라고 소장은 현대 경제학이 더디지만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산업 선진국이 고장 난 성장 체제, 불평등, 기후변화를 논의하다보니 경제 변화를 짚어보고 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점차 중요해졌다. 경제가 항상 균형을 유지한다는 기본 명제는 사라졌다. 시장경제의 불안정성은 연구 대상이 됐다.
주류 경제학자들도 그들의 모델이 정확한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도 긴축재정이 경제에 끼치는 나쁜 영향을 IMF가 간과한 점을 인정했다. 주류 경제학자의 눈을 빌리면 논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여러 경제 변수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다만 특수 상황에서만 유효한 연관관계다. 이 정도만 해도 나쁘지 않다.
이제 경제학은 과학이 되기를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주류의 사전에 포기란 없다! 주류 경제학이 겸손함을 갖추고 비주류를 받아들이기만 해도 좋겠다. 이참에 다른 사회과학에도 문을 열어주고. 주류 경제학자들은 “자존감이 지나친” “하나의 돌덩이” 같은 집단이라고 폴 로머는 말한다. “집단 외부에서 나온 생각과 의견, 논문은 경계하고 무시한다.” 안타깝다. 민주적 논의에 필요한 목소리가 스스로 불신을 걷어낼 기회를 걷어차는 꼴이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0년 11월호(제406호)
À QUOI SERVENT LES ÉCONOMISTES?
번역 최혜민 위원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