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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메인, 시장 부침에도 ‘외길’
[Special Report] 암호화폐 채굴산업 A~Z- ① 업계 판도
[100호] 2018년 08월 01일 (수) 우위젠 economyinsight@hani.co.kr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암호화폐(가상통화) 논란이 잦아들었다. 수익성이 떨어지고, 막대한 전력을 소모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채굴 바람도 잠잠해졌다. 암호화폐 채굴산업은 중국의 비트메인이 장악하고 있다. 채굴기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비트메인은 암호화폐 가격이 숨가쁘게 요동치는 동안에도 채굴기 생산의 외길을 꾸준히 걸었다. 비트메인의 성장사를 통해 암호화폐 채굴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_편집자

우위젠 吳雨儉 우훙위란 吳紅毓然 <차이신주간> 기자
 
   
▲ 대표적 암호화폐인 리플(왼쪽부터), 비트코인, 이더리움, 라이트코인을 형상화한 동전들이 암호화폐 채굴 작업에 쓰이는 컴퓨터 메인보드 위에 놓였다. REUTERS
9년 전 탄생한 비트코인(BTC)이 전세계에서 암호화폐(가상통화) 열풍을 일으켰다. 2017년에는 가격이 1천달러에서 1만9천달러로 폭등해 주목받았고, 미국의 양대 거래소에 선물상품으로 등록됐다. 2018년에는 가격이 폭락해 6500달러(약 730만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전세계 비트코인 시가총액은 약 1100억달러다. 
 
기업 차원에서 보면 비트메인(Bitmain, 北京比特大陸科技有限公司)이 단연 선두다. 2017년 비트메인 매출은 20억달러, 순이익은 10억달러(약 1조1천억원)가 넘었다. 비트메인은 최근 새 자금조달을 마쳤고 곧 상장할 계획이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의 첫 번째 응용이다. 2008년 11월 ‘비트코인, P2P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사토시 나카모토는 2009년 1월 첫 ‘채굴’로 제네시스 블록에서 50비트코인을 얻었다. 비트코인 시스템의 공식 탄생이다. ‘채굴’이란 해시파워(hash power), 즉 컴퓨터로 비트코인을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2012년까지 비트코인은 대부분 CPU와 GPU 등 기존 컴퓨팅칩을 사용해 캐냈다. 2012년 하반기부터 장신위, 장난겅 등 채굴 전용 주문형반도체(ASIC) 개발자가 등장했고, 암호화폐는 채굴기 시대에 진입했다.
 
비트메인은 채굴기 제조부터 시작했다. 2013년 설립 뒤 몇 차례 비트코인의 하락장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경쟁 상대가 떨어져나갔다. 비트메인은 지금 채굴기 시장의 80%를 차지한다. 비트메인이 보유한 채굴장 3곳이 비트코인 해시파워의 명맥을 쥐고 있다. 비트코인 장부를 변조할 수 있는 이른바 ‘51% 공격 능력’을 갖춘 유일한 실체로 평가받는다. ‘채굴풀’은 대량 채굴기 해시파워를 통합 운영하는 홈페이지를 말한다. 비트코인은 설계 초기에 수량을 2100만 개로 한정했기에 채굴이 늘면서 해시파워 요구치가 급증했다. 채굴자는 채굴풀에 가입해야 충분한 해시파워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채굴풀 수수료는 보통 3~4%다.
 
‘신신인류’의 등장
비트코인과 디지털 암호화폐는 ‘탈중앙화’를 기본으로 하기에 누구든 절대적 권위를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우지한(32)은 분명 중요한 인물이 됐다. 비트메인 창업자로 2009년 베이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신자유주의의 원조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좋아하는 이상주의와 영민한 기업인의 기질을 겸비한 ‘신신인류’다. 비트메인이 비트코인 세계에서 차지하는 특수한 위치 때문에 업계에서는 우지한을 암호화폐 세계의 ‘채굴 맹주’ 또는 ‘테러리스트’로 평가한다.
 
2017년 8월 비트코인 분열 위기 때 비트메인은 비트코인캐시(BCH)를 지지했다. 이때부터 우지한은 무대 앞에 나와 비트코인캐시의 현실적 합리성을 주장했다. 2018년 3월 미국 워싱턴 블록체인포럼에 참석한 우지한이 ‘프라이빗중앙은행’에 관한 의견을 발표하자 참석자들이 술렁였다. 전통 금융 논리로 보면 깜짝 놀랄 만한 그의 구상은 암호화폐 세계에서는 기본적 신앙이었다. 
 
우지한은 “프라이빗중앙은행에 분명히 기회가 올 것”이라며 “블록체인에 기반한 은행은 한 나라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고 통화정책을 책임질 수 있으며 국민이 통화의 안정성을 신뢰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 스타트업 투자 계획을 밝힌 그는 하이에크의 <화폐의 비국가화>를 인용하면서 일부 아프리카 부족국가에서는 암호화폐가 제공하는 프라이빗중앙은행시스템이 더 안정적, 중립적, 체계적, 효율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일부 아시아·아프리카·남미 소국은 부패가 만연하고 은행의 신용 시스템이 부족한데 기술적으로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며 “프라이빗중앙은행은 은행을 대행하는 것과 비슷해 시도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금융산업 종사자들도 이런 수요를 확인했지만, 이들 지역은 정치적 위험이 커 국가신용을 양도하려면 복잡한 설계와 조작이 필요하다.
 
우지한은 ICO(암호화폐공개)와 암호화폐거래소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중국 중앙은행은 2017년 8월 ICO와 암호화폐거래소 운영을 금지했다. 우지한은 처음부터 ICO 시장은 99%가 사기라며 반감을 나타냈다. 또 거래소는 자금세탁 방지 책임이 무겁고 신용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반면 블록체인의 장기적 성장 가능성은 낙관했다. 2018년 들어 암호화폐의 기반인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앞으로 5~10년 안에 블록체인이 수십, 수백 배로 성장할 것이다. 가격이 오른다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응용과 자산 유형, 프로토콜의 탄생을 의미한다. 채굴은 작업증명(POW)이라는 합의 메커니즘의 중요한 부분이며, 거대한 시장 수요가 있기에 채굴기를 개발했다. 앞으로 블록체인 분야에 적극 투자하고 주문형 반도체에서 소프트웨어에 이르는 각 분야에서 강점을 유지할 것이다.” 우지한의 설명이다. 2018년 5월 비트메인 해외팀이 만든 분산형 거래 플랫폼 덱스닷톱(DEx.top2)이 공개 테스트를 시작했다. 블록체인 스마트계약에 기반한 덱스닷톱은 스마트계약을 시작부터 오픈소스로 진행해 해커나 플랫폼의 자산 이전 가능성을 차단했다. 
 
업계의 부침
2016년부터 비트메인은 비트코인 채굴 전용 ASIC 채굴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 전용 칩을 개발했다. 인공지능 컴퓨팅 분야를 대표하는 엔비디아(NVIDIA)를 직접 겨냥한 것이다. 동영상과 게임을 위한 엔비디아의 GPU는 인공지능 수요에도 부합해 업계의 관심을 받았다. 
 
비트메인을 이끄는 공동 최고경영자 우지한과 잔커퇀(39)은 길거리에서 만났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깊은 인상만 남긴 채 헤어졌다. 2013년 잔커퇀이 비트코인 백서를 읽은 뒤 둘은 사업 파트너가 돼 비트메인을 설립했다. 잔커퇀은 칭화대학을 졸업하고 방송과 셋톱박스용 보안칩을 개발했다. 비트메인에서는 개발과 채굴기 생산을 맡았고, 최근에는 인공지능 칩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비트메인의 ‘기술 브레인’이다. 
 
등록 자료에 따르면, 비트메인은 자본금 1천만위안으로 2013년 10월 설립됐다. 홍콩 기업 비트메인테크놀로지의 100% 자회사로, 지분 관계 없이도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가변이익실체(VIE) 방식을 채택했다. 몇 차례 자금조달에서 세쿼이아캐피털과 IDG가 참여했다. 현재 잔커퇀의 지분 비율이 우지한보다 높다. 비트메인은 최근 상장 전 기업투자(pre-IPO)를 마무리했고 홍콩이나 미국 증시에서 상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 최대 채굴기 제조사인 비트메인은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비트메인 채굴기 시장점유율이 최소 70%, 비트코인 이외 암호화폐 채굴기까지 포함하면 80%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본다. 점유율 2위 채굴기 제조사 카나안(嘉楠耘智)은 투자설명서에서 자사 아발론 채굴기의 시장점유율이 20% 미만이라고 밝혔다. 
 
비트코인 채굴기 시장은 초기에 상상 이상으로 경쟁이 치열했고, 비트메인은 후발 주자에 속했다. 당시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채굴기는 아발론과 에이직마이너(烤貓礦機)였다. 전자는 세계 최초의 ASIC 채굴기로 평가받았고, 후자는 한때 해시파워의 30%를 차지했다. 2013년 이후 외국에서도 KNC, 비트퓨리 등이 나타나 중국 업체들을 추격했다.
 
비트메인을 창업하기 전 우지한은 에이직마이너의 중요한 투자자였다. 2013년 에이직마이너는 개발과 수익성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자체 개발한 칩을 사용해 직접 채굴하고 채굴기를 외부에 판매하지 않는 것이 에이직마이너의 전략이었다. 당시 아발론의 시장점유율이 약 40%였고, 외국 기업들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이런 상황에서 우지한은 비트메인을 창업해 채굴기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2013년 10월 비트코인이 첫 상승장에 진입했을 때 비트메인이 탄생했다. 처음 출시한 55나노미터 공정의 앤트마이너 S1은 상승장을 타고 0.68W/GH/s까지 낮춘 저전력 강점을 앞세워 비트퓨리를 시장에서 밀어냈다. 우지한은 당시 시장에서 전력 효율이 가장 우수한 1J/GH를 목표로 설정했지만 잔커퇀이 이끄는 기술팀은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우지한은 “기술팀의 개발 속도는 항상 만족스러웠다”며 “우리는 2년 동안 칩 4종을 개발했고, 모든 칩은 출시되자마자 채굴기 생산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시장은 눈 깜짝할 사이 하락장으로 돌아섰다. 2013년 11월 1200달러의 최고점을 찍은 뒤 세계 최대 거래소 마운트곡스 사기 사건이 폭로되자 가격이 폭락했다. 2014년 피해가 확산됐고, 비트코인 가격이 내려가자 채굴 채산성이 악화됐다. 전체 해시파워가 줄었고 채굴기 판매량도 급감해 국내외 채굴기 제조사의 물갈이가 진행됐다. 해시패스트·버터플라이랩스가 파산했고, 중국에서는 제우스(宙斯)·비티시가든(花園)이 제품 출하를 중단했다. 에이직마이너는 시장에서 사라졌다. 2년 동안 하락장이 지속되자 비트메인, 아발론, 룽쾅(龍礦) 등 몇 개 중국 업체만 살아남았다. 
 
리페이차이 상하이와이(上海挖易)네트워크테크놀로지 공동 창업자는 “그때 룽쾅의 하청공장에서 생산한 A1 채굴기는 이노실리콘(心動科技)이 개발한 국내 최초의 28나노미터 칩을 사용했고 전력 소모량이 앤트 40나노미터 칩보다 우수했다”며 “게다가 시장이 불황이어서 앤트마이너 채굴기는 파산할 뻔했다”고 설명했다. 비트메인을 다시 살린 것은 5세대 채굴기인 앤트마이너 S5였다. 리페이차이는 “S5는 전력 소모량이 A1보다 낮았고 시장이 침체돼 이노실리콘도 개발을 중단한 상태였다”며 “앤트마이너 S5가 단번에 시중에서 가장 우수한 채굴기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하락장에서 비상
하락장이 이어지는 2년 동안 비트메인은 다음 세대 채굴기를 개발했다. 다른 채굴기 제조사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매우 힘든, 어쩌면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리페이차이는 “우지한은 비트코인의 미래를 낙관했기에 무리한 생산계획을 세웠다”며 “코인 가격이 오른 뒤 시장 전체가 공급 부족 상태가 됐을 때 비트메인이 대량 채굴기를 공급해 시장을 장악했다”고 말했다. 우지한은 담담하게 “채굴기 제조사는 물론 고객까지 주기가 있고 최고점과 최저점의 격차는 열 배 넘게 벌어진다”며 “업계 모든 종사자는 이런 주기적 위험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SIC 채굴기는 진입 문턱이 낮지만 우수한 제품을 만들기 힘든 분야다. 2017년 비트코인이 두 번째 상승장을 맞이하자 한때 100개 넘는 채굴기 제조사가 시장에 진입했다. 주요 제조업체로는 비트메인과 아발론 외에 이비트마이너(Ebit Miner), BW, 비트퓨리, 션마(神馬),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이노실리콘이 있다. 이들 경쟁사에 비해 비트메인이 자체 개발한 5세대 16나노미터 공정의 BM1387칩은 현재 시장에서 양산하는 최고 성능의 ASIC 칩이다.
 
외국 제조사의 채굴기도 다시 등장했다. 일본 GMO는 7나노미터 공정의 ASIC 비트코인 채굴기 GMO 마이너 B2를 출시했다. 판매 가격이 1999달러였다. B2는 실질적 위협이 되지 못했다. 비트메인 관계자는 “GMO의 채굴기는 양산을 시작하지 못했고, 세계에서 전력 소모량이 가장 적다고 밝혔지만 가성비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채굴을 시작한 지난 6년을 돌아보면 채굴자들이 비트코인을 열심히 캐냈지만 정작 돈을 번 장본인은 채굴기 제조사였다. 비트메인은 암호 세계에서 가장 멀리, 가장 넓게 진출했고 제품을 판매하고 산업가치사슬 전체를 장악했다. 하락장에서도 꿋꿋이 버틴 것이 성공으로 이어져 업계를 선도했다.
 
채굴기 제조사들은 대부분 주문자생산(OEM) 방식을 선택해 ASIC 칩과 채굴기를 각각 다른 공장에서 생산했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해지고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자 이 방식으로는 제조원가와 품질, 시장을 통제할 수 없고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칩을 개발했던 카나안은 비교적 보수적 선택을 해 칩만 만들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채굴기 생산 공장을 찾기 힘들었다. 우지한은 “채굴기 생산은 시간에 쫓길 때가 많아 밤낮으로 가동해야 하는데 공장에서는 이런 불안정한 주문을 가장 싫어한다”며 “생산과정을 직접 통제하기로 결정하고 자체 구매와 공급 시스템을 구축하자 비용을 절감하고 융통성도 늘었다”고 말했다.
 
비트메인의 성공 원인에 대한 리페차이의 분석은 이렇다. 첫째, 창업자가 암호화폐에 대한 신념을 갖고 하락장에서 견뎌내고 상승장에서 과감히 제품을 공급했다. 둘째, 상업적 도의를 지키고, 뛰어난 사용자 체험을 제공하며, 되도록 사용자가 위험을 지지 않도록 배려했다. 셋째, 처음부터 제품 생산의 전 과정을 직접 처리했고 채굴기 성능도 안정적이었다. 최종 고객에게 직접 제품을 판매해 이익률이 높았다.
 
2018년 비트코인 가격이 1만9천달러에서 6천달러로 폭락했다. 비트코인 중심 암호화폐 시장은 다시 하락장에 진입했다. 소규모 채굴장들은 지난 두 달 동안 채굴을 멈췄다. 비트코인 가격 변동과 함께 채굴의 수익성이 떨어진 게 원인이었다. 채굴이 너무 어려워져 아무리 저렴한 채굴기를 사도 적자였다. 비트메인 채굴기 판매도 큰 영향을 받았다. 우지한은 2018년 판매 현황과 관련해 “하락장이 채굴업계에 큰 충격을 가져왔지만 이런 주기적 위험을 피할 순 없다”며 “하지만 지금도 개발 지속으로 경쟁력을 높여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비트메인 관계자는 “2014~2015년 하락장에서도 살아남았는데,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심각했다”며 “아직까지 채굴기 판매는 남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2018년 8월호 종이잡지 91쪽에 실렸습니다.
 
ⓒ 財新週刊 2018년 제24호 
比特大陸野蠻生長
번역 유인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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