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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삼성·LG도 울고 갈 ‘주방기기 왕국’
글로벌 강소기업의 성공 스토리- ① 소형가전 1위 프랑스 ‘세브’
[78호] 2016년 10월 01일 (토) 로망 르니에 economyinsight@hani.co.kr

   
▲ REUTERS
최근 글로벌 대기업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세계적 수요 부진으로 성장은 일정한 한계에 부닥쳤고, 극한 경쟁 상황에서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기술력과 틈새시장 공략, 해외시장 개척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입지를 쌓는 ‘작지만 강한’ 글로벌 강소기업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들 중 4곳의 성공 스토리를 통해 강소기업에 필요한 요건들을 살펴봤다. 소형가전 시장을 주름잡는 프랑스 ‘세브’, 모터바이크의 강자 오스트리아 ‘KTM’, 위스키 본고장을 뛰어넘은 일본 위스키 브랜드 ‘닛카’, 샤오미 등의 스마트폰 제품 설계와 생산을 맡고 있는 중국 ‘윙테크’가 그 주인공이다. _편집자

테팔, 칼로 등 유명 브랜드 거느려…
철저한 기술혁신과 현지화 전략이 성공 비결

세계 가전업계는 한국의 삼성·LG를 비롯해 중국 하이얼, 일본 소니 등 아시아권 기업들의 격전장이다. 하지만 소형가전 시장은 유럽계가 아직까지 득세하고 있다. 그 가운데 프랑스에 본사를 둔 세브가 단연 눈에 띈다. 세브는 한국에 널리 알려진 테팔을 비롯해 칼로, 로벤타, 물리넥스 등 유명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싼 아시아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소형가전 업계 1위를 유지하는 세브의 비결은 뭘까. 우선 기술혁신 전략이 성공 비결로 꼽힌다. 세브는 아시아산 제품과 가격경쟁에 뛰어들기보다 제품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장기적 성장 전략을 택했다. 현지화 전략도 빼놓을 수 없다. 새 국가에 진출할 때마다 현지 브랜드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개척했다. 소형 주방기기 왕국 세브의 성공 스토리를 들여다봤다.

로망 르니에 Romain Renier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프랑스의 소형가전 업계 세계 1위 기업 세브(Seb)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발견한 것 같다. 2016년 5월 세브는 16억유로(약 1조9800억원)를 들여 전문가용 커피머신 업계 세계 1위인 독일 WMF를 전격 인수했다. WMF는 지금까지 세브가 인수한 기업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세브의 WMF 인수는 중국을 필두로 인건비가 저렴한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소형가전 시장에서 프랑스 기업이 생산라인의 상당 부분을 해외로 이전하지 않고 국내에 보유한 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세브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끊임없는 기술혁신이다. 둘째, 세계 각국 시장에 진출할 때마다 위력을 발휘한 현지 적응 전략이다.

세브는 1857년 ‘부르고뉴 금형 회사’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이래, 1953년 내놓은 압력밥솥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창립한 지 거의 100년 만에 첫 번째 전성기를 구가했다. 세브 압력밥솥은 음식이 익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했고, 그 결과 오늘날의 세브를 있게 해준 효자 아이템이 됐다. 세브는 압력밥솥의 성공을 발판 삼아 달라붙지 않는 프라이팬으로 유명한 테팔(Tefal), 헤어드라이어와 난방기의 대명사 칼로(Calor), 다리미와 청소기로 유명한 독일 기업 로벤타(Rowenta)를 차례로 인수했고, 2001년에는 경쟁사이자 세브와 마찬가지로 소형가전 업계의 프랑스 대표 기업인 물리넥스(Moulinex)까지 손에 넣었다.

   
▲ 테팔, 칼로, 로벤타 등 유명 중소형 가전 브랜드를 거느린 세브는 소형가전 업계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전자상가에 전시된 테팔의 전기다리미. REUTERS
오늘날 세브는 소형가전 업계 세계 1위 기업이다. 경쟁사인 네덜란드 필립스나 독일 보슈가 대형가전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한 것과 반대로, 세브는 여전히 매출액의 70% 정도를 소형가전에서 벌어들일 정도로 소형가전을 핵심 업종으로 삼았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브는 프랑스 국내에 13개 공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7천 명이 넘는 노동자를 거느렸다. 그러나 중국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세브도 프랑스 국내 13개 공장을 전부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더구나 전자제품 유통을 담당하는 대형 유통업체들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가격을 내리면서 급기야 고유 브랜드를 설립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유통업체 다티(Darty)가 프로라인(Proline)을 설립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이처럼 유통업체들은 독자 브랜드를 설립한 다음, 중국 하청기업에 저렴한 전자제품 생산을 발주하고 이렇게 들여온 제품을 유명 브랜드 제품과 같은 매대에 나란히 올려놓고 판매한다.

세브의 기술혁신 우선 전략

세브는 가격경쟁에 뛰어드는 것보다 신제품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장기적 성장 전략을 선택했다. 여기에는 세브의 주주 구조가 창업자 가족 위주로 구성돼 있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세브의 장기 전략은 저렴한 아시아산 제품과의 출혈경쟁을 피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제품을 제시하는 걸 목표로 했다. 1950년대 압력밥솥을 선보인 뒤 세브는 새로운 기능을 장착한 신제품을 언제나 남보다 한발 앞서 내놨다. 세브의 신제품이 시장에 나오면 이를 본뜬 제품이 줄을 잇곤 했다. 한마디로 신제품 개발이야말로 세브라는 기업의 정체성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그룹 전체에서 연구·개발, 디자인, 마케팅 등 혁신 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 수만 1300명에 이른다. 2006년, 거의 10년이라는 개발 기간을 거쳐 만들어내 800만 개 넘게 팔릴 정도로 대성공을 거둔 ‘액티프라이’(Actifry·한 숟갈 분량의 기름으로 조리가 가능한 튀김기 -편집자)가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다.

최근 2년 동안 세브가 출시한 제품 10개 중 6개가 개발 기간이 3년이 안 된 제품이다. 신제품 개발 기간이 크게 단축된 것이다. 그렇다고 연구·개발 예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아니다. 2015년 세브의 연구·개발 예산은 9300만유로(약 1150억원)로 매출액의 2%를 살짝 밑도는 수준이었다. 반면 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소비자의 기대를 끌어올리는 것이 목적인 전략 마케팅에는 6800만유로(약 840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아웃소싱 버리고 인소싱으로 승부

   
▲ 세브는 2016년 5월 16억유로(약 1조9800억원)를 들여 전문가용 커피머신 업계 세계 1위인 독일의 WMF를 전격 인수했다. 2014년 9월 독일 베를린 가전박람회에서 공개된 WMF의 주방기기들. REUTERS
세브가 전혀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전략을 써도 세브가 프랑스 국내의 모든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시아 국가들과 경쟁에 밀려 수익을 내기 어려운 제품군인 초보 사용자용 일반 제품 생산 공장들은 해외로 이전했다. 또한 13개 공장 중 3개 공장이 문을 닫았으며 그 과정에서 1천여 개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교육 수준이 높은 숙련노동자를 바탕으로 타사와 차별화된 제품을 공급한다는 세브의 전략은 어느 정도 결실을 보았다. 세브의 29개 공장 중 10개는 지금도 프랑스에 있다. 그리고 전세계에서 세브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 2만5천 명 중 약 6천 명은 여전히 프랑스에서 일한다.

세브의 두 번째 전략은 제품을 현지 시장의 특성에 맞춰 공급하는 것이다. 세브는 새로운 국가에 진출할 때마다 자사 브랜드로 시장을 개척하기보다 현지 브랜드를 인수하는 것을 선호한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소형가전 시장은 고객의 성향이 제각각이어서 하나로 통합돼 있지 않고 분할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현지 소비자의 습관에 크게 영향받는다.

세브는 현지에서 오랫동안 인지도를 쌓아온 브랜드를 인수함으로써,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별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현지 브랜드가 보유한 여러 시장 관련 정보를 활용해 손쉽게 우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예컨대 세브는 2006년 중국 진출 때 현지 주방가전 브랜드 쑤포얼(Supor)을 인수한 덕분에 중국 프리미엄 밥솥 시장에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모기퇴치용 환풍기를 발명한 브라질 기업 아르누(Arno) 인수 뒤 남미 시장에서 유리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세브의 WMF 인수도 마찬가지로 성장과 다변화 논리에서 이해할 수 있다. WMF는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에서 고급 식기와 조리기구로 유명한 회사다. 2015년 세브는 총매출액의 54%를 선진국에서, 나머지 46%는 개발도상국에서 올렸다. 이런 현지화 및 다각화 전략 덕분에 세브는 특정 시장에서 적자가 발생해도 다른 시장에서 본 흑자로 상쇄할 수 있었다. 한 예로 예전에는 유럽 시장의 경기 침체를 남미 시장의 성장으로 상쇄했다면, 지금은 남미 시장의 둔화를 유럽의 경기회복으로 상쇄하고 있다.

세브는 다양한 시장의 소비자에게 맞춤 상품을 제공하는 현지화 전략 외에 아웃소싱이 대세인 오늘날, 인소싱(In-sourcing)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전세계에서 팔린 세브 제품의 72%는 세브 자체 공장에서 생산됐다. 인소싱 전략 덕분에 세브는 생산과정 전체를 직접 챙기면서 엄격하게 품질을 관리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핵심 기술이 외부로 빠져나갈 위험도 많이 줄었다. 세브가 대부분의 제품 생산과정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다보니, 하청업체들의 가혹한 노동자 착취도 막을 수 있었다. 현재 세브가 하청업체에 맡긴 제품은 기술 집약도가 낮은 일반 제품들로 전체 제품의 28%를 차지한다.

그러나 세브의 ‘메이드 인 월드’(made in world) 성공 스토리는 두 가지 중요한 위험이 존재하는 것을 감안해 평가해야 한다. 첫째, 세브는 보슈나 필립스 같은 대기업보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대기업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세브가 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단순한 판로 다변화 전략을 넘어서는 외형 성장 전략을 반드시 택해야 한다. 세브가 몸집을 키울수록 잠재적 약탈자들이 세브 인수전에 나서기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2015년 11억유로(약 1조4천억원)의 매출액을 올린 WMF를 인수함으로써 세브의 2015년 총매출액은 58억유로(약 7조2천억원)가 되었다. 세브의 WMF 인수는 몸집을 불려 포식자에게 먹히지 않으려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이미 세브 기업 활동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아시아 시장의 급성장으로 장차 세브가 기업의 중심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6년 7월호(제359호)
Seb, un champion français made in monde
번역 박수현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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