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커버스토리 > 2016년
     
[Cover Story] ‘엘리트 연대’냐 ‘시민 연합’이냐 갈림길
브렉쇼크(Brexshock)- ① 유럽 통합은 어디로 갈까
[76호] 2016년 08월 01일 (월) 구춘권 economyinsight@hani.co.kr

1946년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유럽에도 유엔 같은 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의 제안은 1950년대 초 프랑스·서독 주도의 유럽 협력 움직임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1993년 11월1일 유럽연합(EU) 창립으로 꽃을 피웠다. 그러나 70년 뒤 처칠의 후손은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선택했다. 대체 유럽연합이 그동안 무엇을 해줬느냐는 부정적 정서가 영국인을 자극한 탓이다. 이런 반공동체 정서는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연합 전반에 퍼져 있다.

브렉시트로 균열이 간 유럽연합은 혼돈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그 여파가 어디까지 갈지 누구도 모른다. 세계화와 자본 독주에 피로감을 느끼는 대중의 마음을 혁신적 조처로 되돌리지 못하면 극단의 정치가 독버섯처럼 퍼져갈 것이다. 영국, 유럽, 그리고 세계는 갈림길에 서 있다. _편집자

   
▲ REUTERS
개혁 없인 추락한 지지 회복 어려워…
민주주의 강화, 사회 통합이 해법

영국 보수당 내 당권 유지를 위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내세운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공약이 3년여 만에 유럽연합 전체를 뒤흔드는 ‘중대 결단’으로 끝을 맺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않은 일이어서 충격이 더 크다. 유럽연합에 대한 대중의 반감은 영국만의 것이 아니다. 다른 회원국에서도 그 인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유럽 통합이 처음부터 인기 없진 않았다. 유럽 시민들은 전후 평화체제 구축과 단일시장이라는 대의에 크게 호응한 바 있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찾아오면서 “유럽연합이 내 삶에 무슨 도움이 됐느냐”는 불만이 번졌다. 이제 유럽연합은 ‘엘리트 지배세력만의 연대’냐, 아니면 ‘진정한 유럽 시민의 연합’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구춘권 영남대 정치외교학 교수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2016년 6월23일 영국의 국민투표는, 부정적 의미에서 성서의 이 유명한 구절을 실감나게 한다. 유럽은 물론 세계를 뒤흔든 이 역사적 결정의 시작은 사실 미약했다. 2013년 1월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보수당 내부의 긴장을 완화하고 당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기 위해 당내 보수적 민족주의 세력이 요구하던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2015년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실행하기로 약속했다. 이 약속은 애당초 영국의 국익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과 무관했으며, 보수당 내부 민족주의적 보수파의 공세에 대한 캐머런의 당권 유지를 위한 권력 계산의 결과물이었다. 미래 재집권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약속만으로 현재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이런 성격의 도박은 캐머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정치인이 선호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2015년 5월 보수당은 모든 예측 및 여론조사와 달리 재집권에 성공한다. 대표성 왜곡이 심한 단순다수선거제 덕택에 보수당은 36.9%의 지지만으로도 아슬아슬하게 하원의 절대다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보수당은 하원의 과반 최저선인 326석보다 불과 4석이 많은 330석을 얻었다. 만약 보수당이 5석만 덜 얻었더라도 자유당과 연정이 불가피했을 것이고, 자유당의 친유럽적 성향은 캐머런의 약속을 허공으로 날렸을 것이다. 이 5개 의석 차이로 말미암아 영국 운명의 선회가 시작됐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이다. 나중에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지적한 것처럼 브렉시트는 지금까지의 유럽 통합 역사에 ‘분기점’(Einschnitt)을 의미하는 중대한 결정이다. 그러나 그 시작은 캐머런의 권력 계산이었고, 불과 5석의 의석 차이 때문에 실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미약한 시작이 부른 엄청난 결과

   
▲ 1998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시민들이 “민중의, 민주 유럽을 위해 유로 반대”라고 쓰인 팻말 등을 들고 마스트리흐트 조약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럽연합은 유로 도입을 결정한 마스트리흐트 조약 비준 과정에서도 큰 진통을 겪었다. REUTERS
브렉시트 국민투표처럼 유럽연합(EU)에서 탈퇴냐 잔류냐를 묻는 투표는 협상을 통해 타협점을 찾는 정치적 이성과 거리가 멀다. 여기서 제3, 제4의 대안은 애당초 배제돼 있다. 유럽 통합은 정치·군사·경제·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복합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인데 탈퇴냐 잔류냐 묻는 것은 이 복합성을 흑백논리로 단순화한다. 예컨대 혹자는 유럽연합의 긴축정책에 반대하고 단일시장과 단일화폐에 회의적일 수 있지만, 사회적 유럽을 지지하며 문화적 교류에 찬성하고 인권과 평화라는 통합의 이상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입장은 탈퇴냐 잔류냐는 양자택일에서 대표되지 않을 뿐 아니라 왜곡된다. 유럽 통합의 복합적 과정은 통합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다면적 태도를 낳을 수밖에 없는데, 탈퇴 아니면 잔류라는 선택은 이 복합성과 다면성을 애당초 왜곡할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동반한 캠페인이 통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매우 자극적이고 단순한 구호로 일관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브렉시트를 찬성한 쪽은 유럽 통합을 전적으로 이주 문제로 치환했고, 이주민에 대한 국수주의적·인종주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공격적인 전략을 택했다. 유럽연합 잔류를 원한 쪽은 유럽 통합을 경제적 이익 문제로 단순화해 탈퇴시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과 손실을 강조함으로써 시민들의 불안감을 부추기는 데 주력했다. 전자는 보수당의 민족주의 세력과 영국독립당 같은 극우세력이 적극적으로 주도했으며, 후자는 보수당의 신자유주의 세력에 더해 노동당이 마지못해 참여하는 형국- 애당초 있어서는 안 될 투표였기에- 이었다. 어느 캠페인이 더 효과적이었는지 이미 투표 결과가 말해준다.

브렉시트는 72.21%의 투표 참여율에 51.89%라는 빠듯한 다수에 의해 결정되긴 했지만, 유럽 통합의 심각한 딜레마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유럽 통합은 더 이상 시민 또는 대중이 열광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보통 사람들은 유럽 통합을 부정적 눈으로 바라보며, 유럽 통합의 미래를 불안해한다. 이는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유럽연합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그렇다. 브렉시트 이전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는 독일과 스페인 인구의 절반이, 프랑스에서는 60%, 그리스에선 무려 70% 이상의 시민들이 유럽연합에 부정적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 유럽 통합은 이다지도 인기 없는 프로젝트로 전락했는가?

유럽 통합이 유럽인들에게 항상 인기 없는 프로젝트였던 것은 아니다. 역사는 대중이 유럽 통합에 열광했던 두 시기를 보여준다. 첫 번째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합중국’이라는 원대한 이상이 매력을 발휘한 시기였다. 수천만 명을 살해한 두 번의 세계대전, 그리고 파시즘이라는 광란을 겪은 유럽인들은 무엇보다 평화를 갈구했다. 전후 유럽 통합은 연방주의라는 더 급진적인 방식으로, 전쟁의 원인으로 지목되던 퇴행적 민족주의와 민족국가로의 분열을 극복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했다. 유럽 통합은 대중의 적극적 지지를 동반한 일종의 평화 프로젝트로 시작한 것이다.

전후 평화 프로젝트에서 출발

   
▲ 2015년 11월4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장애인들이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긴축을 제안한 유럽연합의 조처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REUTERS
동·서유럽을 망라해 유럽을 단번에 통합하려던 급진적 시도는 냉전이 시작되면서 후퇴했고, 유럽 통합은 미국의 거대한 영향력 아래 좀더 현실주의적인 유럽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 추진됐다. 유럽 통합에 대한 대중적 열정도 점차 소진돼갔다. 나중에 유럽공동체(EC)로 합쳐진 유럽석탄철강공동체, 유럽원자력공동체, 유럽경제공동체 등은 1950년대 유럽 통합의 중요한 성과물이었다. 유럽 통합은 1960년대 말에 이르면 서유럽에서 일종의 자유무역지대와 관세동맹을 완성했다. 영국은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의 반대로 유럽공동체에 참여하지 못했고, 그가 사망하고 난 뒤 1973년에야 합류했다.

유럽 통합에 대한 유럽인들의 적극적 지지는 1980년대 중반 단일유럽의정서(SEA)가 채택되고, 유럽의 역내 단일시장이 준비되면서 되살아난다. 이른바 자본주의의 황금시대에 속하는 1950년대와 60년대만 해도 유럽 통합의 경제적 기능은 기본적으로 국민국가 중심 성장모델을 보조하는 것이었다. 농가 소득을 지원하는 성격이 강한 공동농업 정책이나 동일 관세를 실현한 공동무역 정책은 개별 국가의 성장모델을 지원하는 것이었지 재편하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학자들이 흔히 포드주의적 축적 체제로 지칭하는, 국민국가의 강력한 수요 중심적 개입에 의존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결합한 성장모델이 잘 굴러가던 상황에서 유럽연합의 경제적 기능은 부차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심각한 경제위기를 경험하고, 1980년대 초반 들어 유럽 곳곳에서 신자유주의적 세력이 집권하며 유럽 통합은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된다.

단일시장 계기로 다시 인기 얻어

   
▲ 2011년 12월12일 올리 렌 유럽연합 경제·통화 담당 집행위원이 회원국의 재정 적자 규제 법규인 식스팩 도입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긴축 일변도의 경제정책이 위기에 처한 회원국들의 사회문제를 증폭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REUTERS
이 시기 들어 유럽 통합은 단일시장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탈규제 프로젝트를 실현함으로써 기존 국민국가 중심 성장모델의 구조적 재편에 기여하는 새로운 과제를 부여받았다. 학문적 용어로 표현하면, 국민국가라는 자본 축적의 공간적 제약을 유럽적 차원의 단일시장을 통해 해체하는 것이다. 시장을 관리하던 개별 국가의 촘촘한 규제망은, 상호 인정이 단일시장의 원칙으로 채택됨으로써 규제가 약한 쪽으로 대폭 느슨해졌다. 상품, 자본, 노동력의 완전히 자유로운 이동을 단일시장을 통해 실현함으로써 유럽연합은 미국-북아메리카, 일본-동아시아와의 지구적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것으로 기대됐다.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 거기에 인플레이션까지 가세한 경제위기를 경험한 유럽인들에게 단일시장 프로젝트가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음은 명백하다. 단일시장에 대한 유럽인들의 압도적 지지는 이 시기 여러 매체가 기록하고 있다.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이 급작스레 붕괴하고 독일이 통일되면서 유럽 통합은 또다시 새 전기를 맞게 된다. 20세기 두 차례나 세계전쟁을 일으킨 독일이라는 나라가 정상국가로 복귀했을 뿐 아니라, 동유럽 포스트공산주의 국가들의 향방 또한 문제였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유럽 정치 엘리트들의 선택은, 유럽 통합을 심화하고 동유럽으로 통합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단일시장 이후 유럽 통합의 방향을 설정한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은 단일화폐인 유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고, 공동외교와 안보정책은 물론 사법과 내무 분야에서도 협력을 명시했다.

그러나 마스트리흐트 조약의 험난한 비준 과정은 유럽 통합의 새로운 길에 대해 유럽인들이 매우 불안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국민투표에 부친 덴마크와 프랑스에서 비준 과정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덴마크는 1차 국민투표의 벽을 넘어서지 못해 자국에 대한 일련의 예외조항을 허용한 에든버러 합의를 거쳐 2차 투표를 한 뒤에야 비준됐다. 프랑스 국민투표에선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대한 찬성이 많기는 했지만, 이는 불과 0.05%라는 아슬아슬한 차이였다. 영국은 다행히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국민투표에 부치지 않았지만 의회에서 큰 논쟁이 벌어졌고 당시 존 메이저 정부는 해산 직전까지 내몰렸다. 학자들은 마스트리흐트 조약 이후 이 험난한 상황을 ‘포스트마스트리흐트 위기’로 지칭한다.

2007년 금융위기 뒤 불만 폭발

   
▲ 개와 함께 프랑스 니스 해변에서 햇볕을 쬐는 노인들. 유럽 통합은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REUTERS
21세기 들어 유럽 통합은 정치 엘리트들이 기대한 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더라도, 2007~2008년 지구적 금융위기가 유럽연합에서 유로위기로 폭발하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굴러갔다. 다수의 시민들은 브뤼셀의 두꺼운 관료층과 매우 복잡하고 투명하지 않은 정책 결정 과정에 불만을 가졌지만, 개별 국가만으로 대응할 수 없는 지구적 문제가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유럽 통합을 불가피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유로위기에 대한 유럽연합의 대응이 독일의 주도 아래 이른바 식스팩(Six Pack·재정 적자 기준 규제 법규)과 투팩(Two Pack·정부 예산 감시 법규 -편집자) 등 긴축 일변도로 진행되고 이 대응이 위기에 처한 회원국들의 사회적 문제를 크게 증폭시켰을 때, 유럽인들의 유럽 통합에 대한 시선은 고울 수 없었다. 2015년 여름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의 긴축안이 부결됐음에도, 이후 협상에서 유럽연합이 더 가혹한 긴축안을 그리스에 강제했을 때 유럽의 매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유럽연합에 대한 반발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영국의 국민투표는 브렉시트를 결정한다.

유럽인들이 통합에 회의적인 이유는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단일시장이 실현되고 단일화폐가 정착한 뒤 대다수 유럽인은 통합으로부터 어떠한 물질적 혜택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구조기금이나 농업보조금이 제공하는 혜택은 주민의 압도적 다수와 상관없는 얘기다. 그러나 반대로 다수의 유럽인이 누린, 기존 복지국가가 제공했던 물질적 혜택은 유럽 통합을 빌미로 축소되거나 사라졌다. 경쟁 관련 정책과 화폐정책, 그리고 유로위기 이후에는 긴축정책까지 완전히 유럽화돼 개별 회원국들의 거시경제 정책을 제약하거나 무력화한다. 시장·화폐·재정 관련 유럽연합 조약은 사실상 회원국의 헌법 위에 군림하고, 이 상황에서 개별 회원국이 경제적·사회적 문제에 대응할 방안은 매우 제한적이다. 예컨대 그리스의 운명은 시리자 좌파정부는 물론 그리스 시민 손에 놓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유럽연합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유럽연합은 민영화, 금융시장 통합, 서비스 자유화 등 유럽인들의 물질적 삶과 관련된 많은 영역에서 다양한 지침을 만들어냈는데, 회원국에서 이 지침의 채택과 관철은 대다수 주민에게 부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투표 방식으로 유럽연합 지지 여부를 묻는 것은 이번 영국 사태를 또다시 재현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유럽의 극우 민족주의 세력이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자국에서도 실시할 것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다.

다행히도 오늘날 유럽의 정치 엘리트들은 캐머런이 야기한 창대한 결과를 보았기에 극우파들이 정권을 잡거나 연정 형태로 참여하지 않는 한 영국과 같은 국민투표를 실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브렉시트 이후, 즉 유럽연합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크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유럽 통합은 어디로 갈까? 세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해 보인다.

유럽연합의 세 선택지

첫째, ‘진흙탕에서 버둥거리는’(muddling through) 모습으로 지금처럼 그냥 가는 것이다. 브렉시트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영국은 독일이나 프랑스만큼 유럽 통합의 주축이 아니다. 영국은 통합에 처음부터 참여한 나라가 아니며, 유로존과 솅겐조약에도 빠져 있고(유로존은 유로를 화폐로 쓰는 지역을 뜻하고, 솅겐조약은 국가 간 통행 제한을 없애는 걸 뼈대로 한 조약이다 -편집자) 여러 영역에서 선택적 면제(Opt-out)를 누렸기에 브렉시트가 핵폭풍급 결과를 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유럽연합은 영국과 적당한 수준에서 자유무역지대를 협상할 것이고, 영국은 다시 섬나라로 돌아간다.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유럽 통합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만회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둘째, 유럽연합을 어느 정도 개혁하고 특히 시민들의 민주주의적 참여 몫을 늘린다.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유럽의회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회원국 정부 수반들의 집합체인 유럽이사회의 의장을 유럽연합 ‘대통령’으로 만들어 시민들이 직접 선출하게 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의 직접 선출도 고려해볼 만하다. 유럽연합 기관 및 제도의 민주주의적 개혁은 향후 유럽에서 사민주의 세력이 다수가 될 때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로 부상할 것이다.

셋째, 유럽 통합을 새롭게 정의하고 유럽연합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이다. 시장·화폐·재정 관련 유럽연합 조약이 지금처럼 작동하는 한 유럽인의 물질적 삶을 개선하려는 시도, 예컨대 ‘유럽을 위한 뉴딜’ 같은 제안은 조약 위반으로 의제화될 수 없다. 따라서 단일시장, 단일화폐, 긴축만을 위한 통합이 아닌 유럽 통합의 오랜 숙원이었지만 지금까지 상징적 차원에 머무른 ‘사회적 유럽’(Social Europe)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통합을 새롭게 정의하고, 기존 조약을 재협상하며, 유럽연합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유럽 통합에 대한 유럽인들의 열정을 다시 고무할 수 있어 보이지만, 그 실현은 신자유주의와의 작별이라는 험난한 과제를 전제한다.

ckkoo@ynu.ac.kr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구춘권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고경태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윤종훈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