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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Ⅰ] 진정한 주인 있어야 장기적 성장 가능
류촨즈 레노버 회장의 특별한 개혁- ② 좌절과 성공
[67호] 2015년 11월 01일 (일) 왕신츠 외 economyinsight@hani.co.kr


잇따라 좌초한 개혁안…
장쩌민 지지 계기로 8년간 적립한 배당금으로 종업원 지분 확대


류촨즈 회장이 걸어온 국유기업 개혁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부 당국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가 내세운 주식제 개혁안은 잇따라 거부당했다. 하지만 물밑에서 꾸준히 해법을 모색했다. 레노버 직원들에게 배당권을 부여해 8년동안 해마다 발생한 배당금을 적립했다. 그러다가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지지로 그의 개혁안이 빛을 보게 됐다. 8년간 적립한 배당금으로 지분을 매입해 레노버 직원들은 회사 지분 35%를 확보했다. 정작 본인의 지분은 2%에도 못 미쳤다.


왕신츠 王歆慈 왕루이 王瑞 <차이신주간> 기자
 

1992년은 중국의 경제개혁이나 국유기업 개혁에 상징적 의미가 큰 해다. 당시 국가주석 덩샤오핑은 남순강화(南巡講話·1992년 중국 남부를 방문하면서 개혁·개방을 강력히 촉구한 담화)에서 ‘중국의 경제개혁 목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 목표는 중국공산당 제14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정부보고에 포함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국유기업 개혁은 새로운 동력을 찾았다. 1993년 8월 쓰퉁그룹은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됐고 직원들은 지분 10%를 얻었다. 류촨즈 레노버그룹 창업자이자 그룹의 지주회사인 레전드홀딩스 회장도 변화를 감지했다. 개혁의 기회가 온 것이다. 그는 즉시 레노버의 상장을 추진했다. 그리고 홍콩지사 직원들에게 홍콩레노버의 지분을 나눠줬다. 하지만 경영 갈등이 불거졌고, 홍콩지사와 베이징 본사의 의견 차이가 벌어졌다. 국내 사업은 급성장했지만 홍콩 사업은 1996년부터 적자를 기록했고 이 불균형은 더 큰 문제를 가져왔다. 레노버는 소유제 개혁이 절실했다.

1993년 49살이던 류촨즈 회장은 중국과학원을 찾아가 ‘주식제 개혁을 추진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말이 안 통하면 회사를 나와 다시 창업할 각오까지 품었다. 저우광자오 당시 중국과학원 원장은 류촨즈 회장의 생각에 동의했다. 하지만 중국과학원이 대주주였음에도 지분 양도 결정권은 재정부 산하 국유자산관리국이 갖고 있었다. 레노버는 ‘주식제 개혁 방안’을 국유자산관리국에 제출했다. 류촨즈 회장이 처음 구상한 방안은 레노버 재산의 55%는 정부, 45%는 직원 소유로 돌려주는 것이다.

재정부와 국유자산관리국 공무원들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결국 개혁안은 부결됐다. 류촨즈 회장이 외부에 회사를 설립하고 회사 이익을 빼내려는 속셈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실제 모회사의 상황이 악화되길 기다리다 자신이 만든 회사를 통해 다시 인수하는 사례가 있지만 류촨즈 회장은 그런 방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그렇게 하면 내 지분이 많아질지 몰라도 영원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중국과학원은 시종일관 레노버의 개혁을 지지했다. 중국과학원은 기업 지분을 처분할 권리는 없지만 정책에 따라 기업의 이윤을 처분할 수 있다. 류촨즈 회장과 저우광자오 원장은 함께 해법을 찾았다. 해마다 회사 이익의 일부를 상여금 명목으로 레노버 직원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1993년 레노버 직원들은 35%의 이익 배당권을 확보했다. 해마다 발생한 이익 배당금 35%를 직원 개인에게 지급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적립했다. 그리고 직원 개인의 배당 내역을 장부에 기록했다. 직원들에게 나눠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 한 기자가 2015년 3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레노버의 스마트폰 신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신화 뉴시스


장쩌민 지지로 주식제 개혁 탄력

쓰퉁그룹의 실패 사례를 봤고 주식제 개혁도 좌초되자 류촨즈 회장은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 정책의 변화를 주시하면서 본인과 레노버를 위한 기회를 기다렸다. 중국과학원이 배당권을 인정했지만 국유자산관리국으로부터 공식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유자산관리국이 이 일을 문제 삼아 ‘국유자산 유실’이란 죄명을 적용하면 레노버는 재기할 방법이 없었다.

살얼음 위를 걸어가듯 조심스럽게 8년 동안 배당금을 적립했다. 2001년 마침내 주식제 개혁의 기회가 찾아왔다. 정책 환경의 변화 바람을 타고 레노버가 주식제 개혁 시범기업으로 선정된 것이다. 그해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 리란칭 국무원 부총리, 류치베이징시 당위원회 서기가 레노버를 시찰했다. 리란칭 부총리가 회사의 주식제 전환을 둘러싼 추진 현황을 묻자 류촨즈 회장은 “마지막 1km만 남았다”고 대답했다.

이 대답을 들은 장쩌민 전 국가주석은 “며칠 전 <자본론>을 다시 읽었다”면서 “레노버가 설정한 방향은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장쩌민은 “내 말의 뜻을 모두 알아들었나?”라고 되물었다. 그때만 해도 관련 법규가 없었고 사무를 관장할 기관도 없었다. 베이징시 정부, 재정부, 과학기술부, 중국과학원은 공동으로 레노버의 주식제 개혁을 추진했다.

결과적으로 8년 동안 적립한 배당금으로 지분 매입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했고 레노버 직원들은 회사 지분 35%를 얻었다. 개혁이 일단락된 뒤 류촨즈 개인의 지분 비율은 2%에도 못 미쳤지만 직원들의 지분 35%는 인력자원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

같은 시기 많은 기업이 비슷한 개혁을 시도했고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로 광둥성 후이저우에 본사를 둔 가전회사 TCL도 상황이 비슷해서 먼저 직원들에게 이익을 배당한 뒤 종업원 지주제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쳤다. 리둥셩 당시 총경리와 후이저우시 정부가 협상한 결과였다. 반면 냉동공조시스템으로 유명한 국유기업 춘란(春蘭)은 그만큼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경영자에 의한 인수(MBO)를 추진했지만 국유자산위원회가 제동을 걸었고 한번 중단된 개혁은 이후 힘을 받지 못했다.

개혁의 실패 사례는 뼈아픈 교훈으로 남았다. 류촨즈 회장은 반드시 정책과 함께 움직이되 모든 상황을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큰 환경을 바꿀 수 없을 때는 작은 환경부터 바꾸고 작은 환경도 바꿀 수 없으면 자기 자신을 바꿔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8년을 기다려온 레노버는 진정한 의미의 주식제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대주주 중국과학원의 지분이 65%에 달해 “레노버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꿈”과 거리가 멀었다. 레노버는 다시 힘을 모아 주식제 개혁의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직원 이익이 회사 이익이 되도록 소유제 개혁

   
▲ 2014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레노버 직원들이 모토롤라 인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류촨즈 회장은 “중국인이 다국적기업을 경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신화 뉴시스

2001년 레노버는 레노버그룹과 디지털차이나(神州數碼·Digital China)로 기업을 분할했다. 컴퓨터 제조 등 고유 브랜드 사업은 레노버그룹이 맡고 디지털차이나는 시스템 통합과 유통을 맡았다. 남은 사람들은 레전드홀딩스로 들어갔다. 레전드홀딩스는 중국과학원과 우리사주조합에서 보유한 레노버그룹의 지분을 대표하는 직능기관이다. 레전드홀딩스는 레전드캐피털(聯想投資·Legend Capital, 이후 쥔롄캐피털(君聯投資)로 명칭 병경)을 설립하고 벤처캐피털 분야에 뛰어들었다. 부동산업체 룽커즈디(融科智地·Raycom Real Estate Development)까지 추가되면서 레전드홀딩스는 점차 투자회사로 변모했다. 레노버그룹은 2005년 IBM의 PC사업 부문을 인수해 힘겨운 내부통합 과정을 거쳤다.

IBM의 PC사업 부문을 인수한 뒤 류촨즈 회장은 레노버그룹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다가 2009년 레노버그룹의 분기별 적자가 2억달러(약 2400억원)까지 치솟은 위기의 순간에 다시 레노버그룹 회장 자리로 돌아왔다. 복귀 뒤 이사회를 설득해 외부에서 영입한 윌리엄 아멜리오 최고경영자(CEO)를 내보내고 5년 이상 국제시장에서 경험을 쌓은 양위안칭을 CEO 자리로 불러들였다. 사업 인수 5년 만에 류촨즈 회장과 그의 명장들이 다시 레노버의 운명을 결정짓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힘을 축적한다’는 류촨즈 회장의 평소 삶의 철학이 큰 힘을 발휘했다. 류촨즈 회장은 무엇보다 중국인이 다국적기업을 경영할 수 있다는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자부심을 느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기업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더 깊이 고민했다. 델(Dell) 부총재를 역임한 윌리엄 아멜리오는 훌륭한 전문경영인이었다. 그러나 레노버에서는 그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했다. 레노버 직원들과 아멜리오 CEO 사이의 갈등은 세가지로 압축됐다. 첫째, 아멜리오 CEO는 기존 IBM 고객사에 지나치게 의존했고 PC사업에 대한 신규 투자를 원하지 않았다. 둘째, 비록 적자 상황이었지만 레노버 모바일사업부를 매각했다. 셋째, 올림픽 후원을 중단했다. 류촨즈 회장은 이런 의견 차이가 발생한 원인이 아멜리오 CEO가 전문경영인이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아멜리오 CEO는 회사의 장기적 성장이 아닌 자신의 지분이나 인센티브와 직결되는 회사의 단기실적에 집중한 것이다. 레노버를 평생 직장으로 생각하는 류촨즈 회장이나 양위안칭과 다른 점이었다.

IBM PC사업부를 인수한 뒤 레노버는 외국 직원들과의 문화적 충돌과 도전에 직면했다. 신입 직원들이 대량으로 입사하고 경력이 오래된 직원들이 떠나면서 회사를 집처럼 생각하는 가족기업 문화에도 균열이 생겼다. 20년 넘게 레노버에서 일한 한 직원은 “2007년 마쉐정 레노버 CEO가 회사를 떠났을 때 그를 포함한 많은 직원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정도 직위에 있는 임원은 절대 레노버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레노버가 대규모 감원을 단행했을 때 ‘회사는 집이 아니다’라는 타이틀의 블로거가 인터넷에서 유명해졌다. 당시 60살을 훌쩍 넘긴 류촨즈 회장은 레노버의 미래에 대해 깊게 우려했다. 중국과학원이 절대적인 지분을 보유한 상태에서 그가 퇴직한 뒤에도 건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가족같은 기업으로 장수할 수 있을까?

그는 회사 지분을 나눠 핵심 직원의 장기적 이익과 회사 이익을 더욱 단단하게 묶어놓고 레전드홀딩스와 자회사의 경영진을 위한 인센티브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업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고히 해야만 미래에도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 財新週刊 2015년 30호
柳傳志和他的非典型改制
번역 유인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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