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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익는 세계 넘버원 허브항의 꿈
Cover Story ● 아시아 물류 패권 다투는 부산·도쿄·상하이- ① 동북아 항만물류의 요충지 부산
[31호] 2012년 11월 01일 (목) 김연기 economyinsight@hani.co.kr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해양산업을 정보기술·우주개발·생명공학과 함께 제3의 물결을 주도할 4대 핵심 산업으로 꼽았다. 동북아시아와 미주를 연결하는 해양물류의 요충지 부산이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크게 기지개를 펴고 있다. 20년 가까이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21세기 해양혁명 시대를 맞이해 아시아의 중심 도시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해양물류 산업뿐만이 아니다. 아시아 각국에서 사람·돈·화물이 밀려들면서 관광·서비스업은 물론 제조업까지 활짝 피어나고 있다. 지리적으로도 서울·상하이·도쿄·오사카 등 아시아의 일류 도시들이 비행기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다. 더 이상 부산은 '한국 제2의 도시'가 아니다. 아시아의 중심이 점점 부산에 가까워지고 있다. _편집자

유리한 입지와 환적 조건으로 떠오르는 부산항… 북극항로 열리면 최대 수혜

21세기 해양혁명 시대의 중심에 부산이 있다. 중국 상하이와 일본 도쿄에 비해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위치 덕분에 중국 경제의 성장과 함께 항만으로서 부산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북극항로까지 열리면 부산은 싱가포르와 맞먹는 항만물류의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의 중심으로 도약하는 국제도시 부산의 원대한 미래를 조명해본다.

부산·상하이·도쿄=김연기 <이코노미 인사이트> 부편집장

10월7일 새벽 2시, 경남 창원시 안골동의 부산신항 한진해운 터미널. 한진해운 소속 8600TEU(1TEU는 가로 6m짜리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뉴욕 롱비치호가 어둠을 헤치고 육중한 뱃머리를 드러냈다. 곧바로 입항을 알리는 거대한 뱃고동 소리가 습기를 머금어 축축하게 가라앉은 새벽 바다의 적막을 깼다. 롱비치호가 안전하게 접안을 마치자 터미널의 자동 하역 시스템이 굉음과 함께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빌딩 30층 높이(90m)의 크레인이 갑판 위의 컨테이너를 집어올려 야적장으로 향하는 셔틀 트랙터에 내려놓았다. 멀리 터미널 초입에서 바라본 하역 풍경은 마치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를 부둣가에 옮겨놓은 것 같았다. 롱비치호에 실린 컨테이너가 하나둘 내려지는 사이 뒤편 터미널로 잇따라 또 다른 화물선이 접안했다. 반대쪽 터미널에서는 전날 새벽 중국 선전에서 들어온 중국 차이나시핑컨테이너라인(CSCL) 소속 컨테이너선이 선적을 마치고 미국 롱비치항을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동아시아 전역이 깊은 잠에 빠진 새벽, 부산신항은 낮보다 바빴다. 전세계의 화물이 24시간 쉴 새 없이 가동되는 부산신항에 도착해 동이 터오기 전 또 다른 목적지로 향했다. 중국의 성장세가 주춤하면서 해운사마다 북중국 항구까지 대형 컨테이너선을 들여보내지 않고 소형 컨테이너선으로 중국 화물을 부산항으로 가져오는 '피더'(Feeder) 서비스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예컨대 5천TEU급 이하 선박이 중국 항구에서 화물을 싣고 와 부산신항에 내려놓으면 롱비치호 같은 대형 컨테이너선이 이를 싣고 북미와 유럽 등지로 떠나는 식이다. 여기에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일본 기항을 피하는 선박의 부산 입항도 늘어나는 추세다. 부산항의 컨테이너 취급 물동량은 신항 개항 이전인 2003년 연간 900만TEU에서 2011년 2배 가까이 늘어난 1600만TEU에 달한다. 최철희 부산항만공사 홍보실장은 "5~6년 전만 해도 선박들이 부산항을 들르면 용량의 절반도 채우기 쉽지 않았지만, 신항이 들어선 뒤부터는 90% 이상 실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27km 해상 고속도로 상하이항의 위용

동서고금을 통틀어 세계를 지배했던 나라는 한결같이 바다를 지배했다. 바다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가경쟁력이 달라진다. 현재 해양산업이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국내총생산(GDP)의 7% 수준이다. 해양산업이 창출하는 연간 부가가치 총액은 4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항만물류 산업은 수출입 물동량의 99%를 처리하는 기간산업으로 자동차·반도체 산업 등과 함께 3대 핵심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항만물류 산업이 국가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잡으면서 세계의 주요 국가들은 항만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동아시아 물류 패권을 거머쥐기 위한 한·중·일 3국의 쟁탈전 역시 치열해지고 있다. 동아시아 항만물류의 싸움터는 크게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3개 권역으로 나뉜다. 한국이 속한 곳은 동북아권이다. 한국의 부산항·광양항, 중국의 상하이항·칭다오항, 일본의 도쿄항·한신항 등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 지역에서 전세계 컨테이너 물동량의 33%가 소화되고 있다.

   
부산항은 중국 상하이항과 일본 도쿄항에 비해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위치 덕분에 동북아 허브항으로서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부산 북항 컨테이너 부두 전경. 부산항만공사 제공

한국은 부산항을 '아시아의 물류 허브'로 키운다는 계획 아래 1995년부터 국가 미래의 명운을 걸고 신항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동북아 허브항의 꿈을 꾸는 것은 부산뿐이 아니다. 중국의 기세가 무섭다. 물량 경쟁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항만을 압도한다. 한국무역협회가 분석한 '2011 세계 10대 컨테이너 항만의 처리 실적'을 보면 상하이항은 지난해 3170만TEU를 처리해, 싱가포르항(2994만TEU)을 제치고 2년 연속 1위 항만에 올랐다. 이어 홍콩항이 2438만TEU로 3위, 중국 선전항이 2257만TEU로 4위, 부산항이 1618만TEU로 5위를 기록했다.

2005년 완공된 상하이신항(양산항)은 물류 왕국을 꿈꾸는 중국의 의지를 보여준다. 양산항은 상하이 남쪽 루차오항에서 직선거리로 27.5km 떨어진 양산섬에 건설됐다. 양산항으로 들어가려면 육지와 이곳을 잇는 길이 31km의 왕복 6차선 고속도로 둥하이대교를 건너야 한다.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 공사는 현대의 토목 기술로는 분명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둥하이대교는 그 규모에서 혀를 내두르게 한다. 서울∼인천 거리의 바다를 왕복 6차선으로 연결하는 다리를 한번 상상해보라. 취재진을 안내한 한진해운 상하이 아주본부 신용호 차장은 "현지에서는 둥하이대교 공사를 만리장성 이후 최대 역사로 추앙할 정도"라며 "아시아의 물류 허브를 차지하려는 대륙의 자존심이 고스란히 담긴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취재진이 둥하이대교를 찾은 9월24일 육지에서 둥하이대교를 바라보니 다리 끝이 수평선에 묻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바다 위 다리를 쉬지 않고 30분가량 달리고 나서야 양산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양산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신항 전망대에서 바라본 컨테이너 터미널은 규모에서 부산항을 압도했다. 컨테이너 처리 능력만 놓고 보더라도 양산항(2500만TEU)은 부산항(804만TEU)의 3배 규모다. 주오홍웨이 양산항관리사무소 책임자는 "양산항은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 능력을 바탕으로 아시아 허브항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상하이항만 경쟁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도 '슈퍼 중추항만 육성계획'을 만들어 동북아 허브항 경쟁에 뛰어들었다. 일본 항만 산업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국제경쟁력을 차츰 상실해 한국과 중국에 허브항만의 지위를 내줘야 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일본 정부는 2005년 항만 산업의 부흥을 위해 대형 허브항을 육성하는 슈퍼 중추항만 계획을 마련했다. 그리고 2008년 도쿄항과 요코하마항을 합친 게이힌항, 오사카항과 고베항을 통합한 한신항을 슈퍼 중추항만으로 선정해 집중 육성하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 항만국의 세야 루미코 물류혁신과장은 "최첨단 물류 서비스를 구축해 하역·선적 비용을 30% 정도 줄여 부산항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추고 처리 시간도 싱가포르항과 같은 1일로 단축했다"며 "이를 바탕으로 차츰 예전의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부산항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해운·항만 업계 전문가들은 "물동량 중심의 경쟁에서 벗어나야 부산항이 살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의 항만들과 물동량 순위 경쟁을 벌이는 것은 승산이 없다는 얘기다. 김길수 한국해양대 교수는 "무엇보다 항만 체질을 개선해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과 같이 고부가가치 창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로테르담항의 지난해 취급 물동량은 1187만TEU로 세계 10위 수준이지만, 이곳을 세계 최고의 항만으로 꼽는 데 누구도 주저하지 않는다. 부가가치 창출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로테르담항의 항만물류 산업이 2011년 창출한 부가가치는 370억달러로 네덜란드 GDP의 20%에 달한다. 부산항은 지난해 8조2천억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해 부산 지역 총부가가치액의 20.3%를 차지했다.

   
 
상하이보다 규모 작지만 경쟁력 뛰어난 부산항

항만물류 산업을 통해 창출되는 부가가치는 크게 환적화물 처리와 물류기업 유치로 나뉜다. 무엇보다 허브항만의 부가가치는 환적화물에서 나온다. 환적화물이란 소형 화물선인 피더선에 실려 들어왔다가 대형 컨테이너선에 실려 다른 항만으로 운송되는 화물을 말한다. 피더선이 항구에 들어오면 일단 입항비와 하역료를 내야 한다. 또 잠시라도 화물을 보관하려면 보관료를 내야 하고 이를 다시 대형 컨테이너선에 실을 때 선적료를 추가로 내야 한다. 일반적으로 대형 컨테이너선이 하루 동안 항만에 머물게 되면 급유, 선박 수리, 선박 용품 구입 등 30가지가 넘는 항목에 총 10억원가량을 쓴다. 허브항에는 매일 대형 컨테이너 선박이 수십 척씩 드나든다. 결국 허브항을 가진 나라는 이를 통해 막대한 수입을 챙길 수 있는 셈이다.

부산항은 상하이항이나 도쿄항과 견줘 환적항으로서의 경쟁력이 월등하다. 올해 상반기 부산항이 처리한 환적화물량은 전년 동기보다 17.1% 늘어난 407만TEU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부산항 컨테이너 물동량에서 환적화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44.1%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전체 물동량 취급 기준으로는 5위지만, 환적화물 취급 물량은 싱가포르와 홍콩에 이어 3위다. 반면 상하이항은 환적화물 비중이 2% 안팎에 머물고 있다. 최철희 부산항만공사 홍보실장은 "부산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물동량을 유발하는 중국과 일본의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어 지리상 환적항으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항을 거치는 컨테이너선 정기 항로는 일본 70개, 중국 45개, 동남아 72개, 북미 46개 등 전세계에 걸쳐 368개에 달한다. 이는 물동량 처리 1위인 상하이항(352개)을 앞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여기에 항만의 안정성도 뛰어나다. 반면 중국 항만들은 짙은 안개 등 기상 악화로 항만 운영이 매우 불안정하다. 올해 들어 지난 8월까지 상하이항은 기상 악화로 모두 27일 동안 문을 닫았다. 같은 기간 칭다오항은 35일 동안 폐쇄됐다. 이 기간에 부산항은 한 번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 최철희 홍보실장은 "항만이 폐쇄되면 해운사들은 항구 주변에 대기해야 하기 때문에 그 기간만큼 수백만달러의 손해를 보게 된다"며 "여기에 부산항의 국제 환적 가격은 상하이보다 20%가량 저렴해 해외 주요 선사들이 환적항으로 부산항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항 아오미 부두에 선적을 기다리는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한국과 중국에 허브항만 지위를 빼앗긴 일본은 항만산업의 부흥을 위해 대형 허브항을 육성하는 슈퍼 중추항만 계획을 마련했다. 도쿄도 항만국 제공

환적화물이 늘면 자연스럽게 배후에 물류 산업이 발달한다. 현재 170만4천m² 규모로 조성이 완료된 부산신항 북컨테이너 배후단지에는 30개 다국적 물류 기업이 입주했다. 이들의 초기 투자 금액만 4천억원에 달하고, 약 2400명의 신규 고용이 창출됐다. 부산항만공사는 2017년 완공을 목표로 총 6514억원을 투자해 670만4천m²의 배후단지를 추가로 조성할 예정이다. 배후단지는 단순히 화물을 보관해놓는 창고 개념을 벗어나 조립·수리·재포장 등 가공센터로 이용된다. 이를테면 굴뚝만 없을 뿐이지 공단 하나가 새로 들어서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2009년 입주한 세계적 다단계 마케팅 업체 암웨이는 이곳을 동북아시아의 거점 공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암웨이코리아 관계자는 "미국의 암웨이 본사에서 들어온 제품은 이곳 물류기지에서 재가공·포장 등을 거쳐 아시아 각지로 다시 보내진다"고 말했다. 임기택 부산항만공사 사장은 "항만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려면 단순히 하역기지 역할에서 벗어나, 화물의 포장·보관·육상운송·통관·하역·해상운송 등을 연결한 국제 물류기지로 발전해야 한다"며 "값싼 임대료와 다양한 세제 혜택을 통해 항만 배후단지에 유수한 물류 기업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꿈의 항로'로 불리는 북극항로의 선점은 앞으로 10년 뒤 항만 패권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항만·물류 산업 전문가들은 북극항로가 본격적으로 뚫리면 부산항이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북극항로에서 부산항은 아시아와 유럽을 가장 가깝게 잇는 루트다. 북극해를 통하면 부산항에서 유럽의 허브항인 로테르담항까지의 거리가 1만2700km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운항 기간으로 치면 열흘이나 짧아지는 셈이다. 유럽 항로를 잇는 아시아의 거점이 지금의 싱가포르항에서 부산항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러면 부산항은 세계 1위의 환적항인 싱가포르항의 역할을 이어받아 세계 최대의 환적 허브로 거듭나게 된다.

북극항로 뚫리면 세계 최대 환적항 가능

그러나 부산항의 미래가 마냥 밝은 것은 아니다. 우선 컨테이너 화물 의존도가 너무 높다. 부산항이 지난해 처리한 화물 가운데 컨테이너는 90%를 차지한다. 반면 로테르담항·싱가포르항·홍콩항 등 세계 선진 항만들은 컨테이너 외에 유류·화학·벌크 등 다양한 부두 구성을 갖고 있다. 김길수 한국해양대 교수는 "더 이상 컨테이너 물동량이 항만의 절대 평가 기준이 되지 못하는 만큼 그 외의 다양한 분야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고부가가치 항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국가적 지원이 필수적인데 정부 정책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점도 걸림돌로 지적된다. 과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며 10년 넘게 존속했던 해양수산부가 현 정부 들어 해체된 이후 신항 개발이 탄력을 잃었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푸념이다.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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