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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식량수급 불균형 시대 온다
Cover Story ● 기후변화, 경제를 지배한다- ③ 미국 50년 만의 가뭄
[29호] 2012년 09월 01일 (토) 정의길 Egil@hani.co.kr

   
지난 8월3일 미국 텍사스주 피셔 호수가 극심한 가뭄으로 갈라진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뉴시스 AP

이상기온과 온난화로 식량 생산 치명타… 인구 증가와 소비패턴 변화로 수요는 급증세

전세계를 덮치고 있는 가뭄이 곡물 가격을 급격히 끌어올리고 있다. 세계의 곡창 미국의 곡물 수확량은 1988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질 전망이다. 곡물 가격은 지난해 사상 최고치에 접근하고 있다. 가격 상승 효과는 직접 식량으로 사용하는 개도국에 고스란히 전가된다.

곡물 가격이 다시 사상 최고치에 육박하고 있다.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인 미국의 가뭄이 직접적인 이유다. 7월과 8월 들어 미국은 반세기 만의 가장 심각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곡물가 급등은 2007년부터 국제 원자재 시장의 한 조류였다. 늘어나는 인구, 기상변화, 투기세력 개입 등으로 곡물가 급등은 구조적 요인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올해 미국 가뭄처럼 변수가 등장하면 그 파장은 더욱 커진다.

더 큰 문제는 전반적인 곡물가가 미치는 영향이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선진국보다는 개도국 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생계를 위협할 정도로 파괴적이다. 2007년 이후 곡물가의 추세가 '새로운 식량 지정학'을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세계식량기구(FAO)는 지난 8월9일 자신들이 매월 집계하는 식량가격지수가 지난 7월 12포인트 올라 213으로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식량 가운데 곡물 가격만 따로 집계하는 곡물가격지수는 더 올랐다. 곡물가격지수는 7월 들어 전달보다 17%나 뛰어 평균 260을 기록했다.

식량가격지수와 곡물가격지수 급등은 밀과 옥수수가 선도했다. 미국의 곡창지대인 중서부에서 재배하는 작물들이다. 극심한 가뭄이 이 곡물들의 작황 전망을 어둡게 했다. FAO는 "결정적인 수확 단계에서 가뭄과 극도의 고온으로 미국 옥수수 수확 전망이 악화됐고, 이것이 7월 들어 옥수수 가격을 23%나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미국 농무부는 옥수수 수확이 1995~96년 이후 최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농무부는 옥수수 가격 전망을 부셸(35.239ℓ)당 5.40~6.40달러에서 7.50~8.9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실제로 옥수수는 지난 5월 이후 50% 급등해 부셸당 8달러 안팍으로 거래되고 있다. 밀도 최근 몇 달 동안 35%나 올랐다.

농무부는 올해 미국의 전반적인 곡물 수확량이 1988년 이후 최저치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옥수수는 6년 만에 110억 부셸 밑으로 떨어지고, 옥수수의 에이커(4047m²)당 생산량은 17년 만에 최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콩 생산은 5년 만에 최저, 에이커당 생산은 10년 만에 최저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의 곡물 생산을 1988년 이후 최저로 떨어뜨린 가뭄은 지난 5월부터 본격화됐다. 미 본토 48개 주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네브래스카대학 국립가뭄완화센터의 기상학자 브리언 퍽스는 8월 들어 50년 만의 가뭄이 미국에서 진행 중임을 여러 수치가 보여주고 있고, 곡물과 가축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이 완화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8월 둘쨋주 미국 전역의 62.46%가 가뭄권이고, 셋쨋주에도 61.77%가 여전히 가뭄권이다."

고온·가뭄으로 2007년부터 곡물가 상승세

또 다른 곡창지대인 브라질과 인도도 이상기후로 곡물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국제 곡물가 급등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세계 최대 설탕 생산국 브라질은 폭우로 설탕 수확이 늦어지고 있다. 설탕과 쌀 생산에서 세계 2위국인 인도는 몬순 시기에 비가 적게 와 생산 차질이 예상된다. FAO의 설탕가격지수는 지난 7월 들어 전달보다 12% 올라 평균 324를 기록했다.

그러면 올해 세계 식량 수급은 치명적인 차질을 빚게 되나? 꼭 그렇지는 않다. 미국·브라질·인도의 작황 부진에도 전반적인 수급은 예년에 비해 오히려 안정적일 수 있다고 FAO는 밝혔다. 미국은 가뭄에 시달리지만 캐나다는 식물성 기름의 원료인 유채씨앗 등에서 기록적인 수확이 기대되고, 아시아에서도 전반적으로 쌀 생산이 양호하다는 것이다. FAO는 2012~2013년 전반적인 공급과 수요는 안정적이라며 특히 아시아 국가에서 쌀 생산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밀과 다른 곡물들도 수출용으로는 부족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여름 이후 곡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으나 전반적인 가격지수는 아직 역대 최고치를 보였던 지난해보다 낮다. 식량가격지수는 7월 현재 213으로, 사상 최고치인 지난해 2월의 238에 비해 여유가 있다. 곡물가격지수도 260으로, 사상 최고치인 2008년 4월에 비해 14포인트 모자란다.

전반적인 수급 전망이 안정적이고 아직은 가격도 최고치에 못 미치지만 곡물가 급등 영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곡물 가격의 불안에 취약한 계층, 즉 개도국의 서민과 빈민 계층에 사활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곡물가 불안은 2007~2008년부터 시작됐다. 식량 가격은 2007년부터 급등세를 보였고, 이후 롤러코스트 양상을 보였다. '식량위기'라 불리는 이 사태는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이다. 식량위기는 발발 직후 금융위기로 식량 수요가 줄면서 완화됐을 뿐이다. 그 이전까지 곡물가 급등은 기상 악화가 원인이었다. 인도의 몬순 강우량 이상, 소련 곡창 지대의 가뭄, 미국 중서부의 고온 현상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기상 악화로 인한 곡물가 급등이 잦지 않았고, 또 기상이 원상태로 돌아오면 떨어졌다. 하지만 2007년 이후 식량 가격 급등은 폭발하는 수요와 생산 확대의 어려움이라는 수급 불안이 근본적 원인이다. 특히 개도국을 중심으로 급속히 팽창하는 인구, 온난화로 상징되는 기온 상승, 이로 인한 관개시설의 악화가 주범이다. 통계를 보면 매일 21만9천 명의 입이 지구상에 더 생겨나고 있다.

2007년 이후 식량위기는 수급 불안을 막을 식량 생산의 여력이 없는 데서도 발생한다. 1965년 인도에서 작황 부진으로 기아 사태가 벌어지자 미국은 잉여 농산물을 활용해 이를 타개해줬다. 미국은 당시 국내 생산 밀의 20%를 인도로 보냈다. 1995년까지 미국은 세계 식량 생산의 수급이 불안해지면 잉여 농산물이나 놀고 있는 경작지를 활용해 수급을 조절했다. 하지만 미국은 더 이상 그런 능력이 없다.

수요 측면에서 늘어나는 인구는 매년 8천만 명이다. 인구는 1970년대에 비해 두 배로 늘고, 2100년대 중반이면 90억 명에 이른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중 30억 명이 식량 소비의 상위층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소박하게 곡물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고기·우유·달걀 등의 수요가 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소득 상승이 이를 선도하고 있다. 가금류와 낙농 제품의 소비는 더 많은 곡물을 필요로 한다. 가금류와 가축이 먹을 곡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득이 높은 미국은 인도보다 1인당 4배나 많은 곡물을 소비한다. 육류 생산을 위한 곡물 때문이다.

세계 식량 생산의 안전판이던 미국은 최근 들어 곡물을 다른 용도로 전용하고 있다. 바이오연료 생산이다. 미국은 옥수수 생산량의 40%를 바이오연료 생산에 쓰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22억t의 곡물이 매년 연료용으로 전용되고 있으며, 그 양이 빠르게 늘고 있다. 2010년 미국은 4억t의 곡물을 수확해 이 중 1억2600만t을 바이오연료 생산으로 전용했다. 미국만이 아니라 브라질도 사탕수수의 바이오연료 전용에 적극적이다.

   
지난 7월 한 남성이 미국 아이오와주의 농장에서 창고에 있던 옥수수를 트럭으로 옮겨 싣고 있다. 뉴시스 REUTERS
육류 소비 늘면서 곡물 수요 급증

지구온난화는 생산에 더 치명적이다. 기온이 1℃ 오를 때마다 곡물 생산의 10%가 감소한다는 것이 기상학자들의 연구다. 2010년 러시아에서의 고온 현상으로 곡물 생산의 40%가 급감했다. 관개시설도 문제다. 높은 기온으로 물이 더 필요해지고 관개시설 확충을 통한 물 소비의 급증이 오히려 물 부족 현상을 불러오고 있다. 중동은 과거 관개시설 확장으로 식량 생산이 급증했지만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다. 이른바 인공 관개시설로 생산한 식량의 거품 현상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20년 동안 관개시설을 확장해 밀을 자급자족할 정도로 생산했다. 하지만 갑자기 밀 생산이 파탄났다. 지난 20년 동안 인공 관개시설로 끌어올린 물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세계은행(IBRD)은 인도 인구 1억7500만 명이 무리하게 퍼낸 물로 재배한 곡물에 의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에서도 밀 생산의 절반과 옥수수 생산의 3분의 1이 능력을 초과해 물을 뽑아내는 인공 관개시설에 의존하고 있다.

식량 및 곡물 가격 급등의 영향은 불평등하다. 지난해 밀 가격이 75%나 급등했다. 미국에서는 밀 가격 상승으로 빵 가격이 2달러에서 2.1달러로 올랐다. 미국 시민에게도 편치 않는 가격 인상이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인도 등 개도국 서민에게는 그 충격이 다르다. 이들에게는 거의 두 배로 인상 효과가 증폭됐다. 이들은 직접 밀을 사서 집에서 밀빵을 만들어 먹기 때문이다. 쌀 가격 급등도 아시아 개도국 서민과 빈민층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이들은 소득 대부분을 먹는 데 쓰기 때문에 그 충격이 더욱 크다.

지구정책연구소 레스터 브라운 소장은 지난해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의 '새로운 식량 지정학'이란 기고에서 "식량위기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2007년 식량 가격 급등이 중동에서 민주화 시위의 불을 지폈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는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오히려 최근 선진국들은 식량 확보를 위해 개도국에까지 찾아가 경작지 땅을 임차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생산되는 식량의 대부분은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선진국 산업 생산의 원료로 쓰인다. 개도국은 장기적으로 식량 생산 여력이 더 줄어드는 것이다.

정의길 <한겨레>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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