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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토토’ 묘수냐 자충수냐
[Focus] 바둑도 스포츠토토 종목 되나 - ① 경위 및 논란
[21호] 2012년 01월 01일 (일) 김연기 ykkim@hani.co.kr

스포츠토토를 바둑에 적용할지 여부가 논란에 휩싸여 있다. 찬성파는 바둑 저변을 넓히는 좋은 수단이 토토라고 본다. 소장파들은 대부분 반대표를 던졌다. 승부조작 의혹에 시달려야 하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팬들에게 끼칠 사행심 조장도 우려한다.

“난 이창호에게 10만원 걸었어. 요즘 완전히 살아났거든.” “무슨 소리? 랭킹 1위는 여전히 이세돌이라고. 난 이세돌에게 베팅할 테야.”

이르면 2012년부터 스포츠토토 판매점에서 들을 수 있는 대화의 한 장면이다. ‘바둑토토’ 도입이 바둑 용어를 빌리자면 ‘초읽기’에 들어갔다. 한국기원은 2011년 10월20일 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에 스포츠토토 주최 단체 신청을 내고 바둑토토 시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제 인가권자인 문화부의 결정만 남은 상황이다. 한국기원은 문화부의 허가가 떨어지면 내년부터 바둑토토 복표를 발행해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스포츠토토는 미래에 열릴 경기를 예측해 베팅한 뒤 경기 결과에 따라 배당액을 환급받는 것으로, 국내에서는 2001년부터 시작됐다. 현재 스포츠토토에는 축구·야구·농구·배구·골프 5개 종목이 참여하고 있으며, 지난해 약 1조8천억원의 매출을 올려 500억원가량을 각 경기 단체에 지원했다.
 
찬성파 “제2의 르네상스 위해 꼭 필요”

한국기원은 바둑이 스포츠로 전환하면서부터 스포츠토토 참여를 꾸준히 모색해왔다. 스포츠토토에 들어갈 경우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바둑 보급, 바둑 회관 건립 등 현안 사업에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바둑이 스포츠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현실에서 스포츠토토 참여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단순히 경제적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과 접촉하는 면을 늘려 바둑 이미지를 개선하고 저변 확대에도 도움이 돼, 1980~90년대 ‘조훈현 시대’에 버금가는 제2의 르네상스를 맞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바둑토토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정정택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은 “세계 최고였던 한국 바둑이 최근 중국에 밀리고 있다. 한국 바둑이 위상을 회복하려면 저변이 넓어져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자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스포츠토토의 순기능은 다른 종목에서 검증됐다.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스포츠토토의 본질에 대해 스포츠의 일부분이며, 스포츠 발전에 공헌하고, 체육기금을 조성하는 주요 수단이라는 선언문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 유럽 등 축구 선진국들의 막강한 경쟁력은 뛰어난 실력의 선수에게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축구토토 시장을 기반으로 한 막강한 재정 시스템이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과 어우러져 축구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한국기원은 바둑 보급이 활성화되면 국민의 여가 생활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유소년의 두뇌 개발 효과가 과학적으로 이미 입증됐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독성이 강한 컴퓨터 게임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에 바둑이 치매 예방에도 효과적이어서 고령화 사회에 더욱 요구된다는 것이 한국기원의 주장이다. 양재호 사무총장은 “최근 유소년은 물론 젊은 바둑 인구가 갈수록 줄고 있다”며 “우선적으로 유소년 및 청소년에게 바둑을 보급하고 직장바둑 활성화에 토토 수익금을 쓸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2011년 10월7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2층에서 열린 바둑 프로기사 정기총회 장소 입구. 이날 비공개로 스포츠토토 관련 토론 및 찬반 투표가 진행됐다. 타이젬 제공.

반대파 “도입 땐 바둑 품격 떨어질 것”

하지만 최근 국내 프로축구에서 터진 승부조작 사건처럼 자칫 승부조작 등에 휘말리면 그나마 바둑이 지켜왔던 품위마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 때문에 프로기사들 가운데 바둑토토를 반대하는 이가 적지 않다. 한국기원이 10월7일 정기총회에서 투표권이 있는 18살 이상 프로기사 178명을 상대로 찬반투표를 했더니, 51명이 ‘반대’에 표를 던졌다. 기권도 8명이 나왔다.

바둑토토 반대쪽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조한승 9단은 “바둑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이며, 승부조작에 휘말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데다 착각이나 실수를 할 경우 선수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굉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토토 수익금이 대국 당사자인 프로기사들에게 돌아가지 않아 금전적 유혹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바둑 전문 사이트 ‘타이젬’에도 바둑토토 도입을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찬성 쪽의 대다수는 “현재 한국 바둑은 최대 위기다. 토토를 통해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의견이고, 반대쪽은 “바둑이 얼마 전부터 스포츠라고 하지만, 그래도 격이 있다. 다른 동네에서 한다고 무작정 따라갈 수는 없다”며 맞선다. 반대쪽은 특히 승부조작에 노출되기 쉽다는 점에 주목한다. 아이디 ‘돌부처’는 “11명이 뛰는 축구에서도 승부조작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일대일 승부인 바둑은 오죽하겠느냐”며 “요즘 사이버머니를 걸고 하는 인터넷 바둑에서도 ‘작전대국’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고 지적했다. 조한승 9단은 “문화부의 승인이 떨어진다면 서둘러 시행하기에 앞서 먼저 제도적 보완장치를 빈틈없이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한국기원에서도 무작정 몰아붙이기보다는 공청회 등을 통해 프로기사와 시민단체 등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합법적으로 바둑토토가 시행되면 불법 베팅 시장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합법적 업체들은 수익의 상당 부분을 공익에 쓰지만, 불법 베팅은 그렇지 않다”며 “그만큼 판돈이 커지고 더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불법 베팅은 더 큰 몫을 챙기기 위해 자연스럽게 승부조작으로 이어진다. 프로기사가 한번 승부조작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헤어나기 어렵다.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도 힘들지만, 한번 가담하면 이후에는 협박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2011년 한국 스포츠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프로축구 승부조작도 조직폭력단과 깊숙이 연관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한국기원은 바둑토토를 시행할 경우 우선 단체전인 한국바둑리그를 대상 경기로 할 방침이다. 개인전에 견줘 승부조작에 휘말릴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재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바둑리그 경기를 하루에 다섯 판을 모두 치르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경기위원회를 신설해 심판 체제를 더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사행산업감독위 의견 들어 결정”

인가권자인 문화부도 신중한 자세다. 문화부는 복권과 스포츠토토를 관리·감독하는 사행산업감독위원회의 의견 수렴을 거쳐 내부적으로 충분히 논의한 뒤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문화부 관계자는 “현재 사행산업감독위에 한국기원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건넨 상태”라며 “사행산업감독위에서 회신이 오면 이를 바탕으로 한국기원의 개최 능력 등 지정 요건을 충분히 갖추었는지를 판단해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기 <한겨레> 스포츠부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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