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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이 선진국 견인할까?
[Perspective]
[2호] 2010년 06월 01일 (화) 산드라 모아티 Sandra Moatti economyinsight@hani.co.kr

산드라 모아티 Sandra Moatti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부편집장

   
 
신흥 경제대국들이 힘차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아직 유로존을 포함한 선진국의 경기 성장을 이끌 만한 규모는 아니다.
중국을 필두로 한 신흥시장 중심국은 이미 경기회복세로 돌아섰다. 지난해의 금융위기는 갑작스러웠지만 일시적인 외부 충격이었을 뿐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회복했고,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국가들도 거의 회복 단계다. 하지만 선진국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미국과 유럽은 생산뿐만 아니라 고용 분야에까지 경제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위기는 대부분의 ‘부유국’에 대량실업과 공공부채라는 유산을 고스란히 남긴 셈이다.
BNP파리바 그룹 국가신용등급 담당자 기 롱그빌은 “현 상황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남긴 상황과 대조된다”고 평가했다. 1990년대 말 IMF는 아시아 신흥시장 국가의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이른바 ‘패거리 자본주의’라 불리며, 정부와 기업의 유착관계를 뜻함-역자)의 폐단을 지적하며 이러한 관행이 경제 불안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아시아 국가는 이러한 악습을 극복하면서 2008∼2009년 금융위기 대처 능력을 익혔다. 반면 선진국은 과도한 부채 더미에 파묻혀 위기의 늪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신용보험사 ‘율러 에르메스’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세계 산업생산에서 신흥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달하는 반면, 선진국의 비중은 2008년보다 5%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선진국의 공공부채가 급증함에 따라 국제 투자자들은 이들 국가의 상환 능력을 의심한다. 또한 대량실업 사태 이후, 이를 회복하기 위한 선진국들의 운신 폭도 점점 좁아졌다.
이제는 세계경제 회복의 새로운 견인차 역할을 하는 신흥시장에 선진국이 끌려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부채 투성이에 해고 위협까지 받는 북반구의 소비자와 작별을 고하고 빠르게 부를 축적하며 소유를 갈망하는 남반구 소비자를 새로 맞이해야 하는가. 하지만 미국·유럽의 소비자보다 덩치가 네 배나 큰 중국·인도의 소비자는 당장 그들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신흥국이 점점 자신들의 역량을 키운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아직 그들만의 힘으로 세계 경기를 견인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아시아 신흥시장, 경제회복 전초기지
남반구 국가 역시 지난해 금융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이번 위기를 통해 신흥시장과 선진국 간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역자) 이론이 일순간에 무너졌다. 금융위기 발발 뒤, 세계무역의 위축과 갑작스러운 자금 환류 여파가 전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신흥시장 국가는 재빠르게 재기했다. 이번에는 외부의 도움 없이 자신만의 힘으로 선진국보다 훨씬 빠르게 회복세로 돌아섰다는 것이 이전과 다르다.
프랑스 대외무역 보험사 ‘코파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이브 즐로토브스키는 “신흥시장이 위기관리 담당자 역할을 맡은 것은 세계경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평했다. 중국과 러시아, 남아프리카는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내수 시장을 유지함과 동시에 경기부양에 적극적이라는 선진국보다 더 큰 규모의 경기부양 정책을 시행했다. 즐로토브스키는 “이것은 단순히 자금력 문제만이 아니라, 그들이 자체적인 경제정책을 펼칠 정도의 성장력을 갖추고 신뢰성을 확보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브라질 역시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발빠르게 기준금리를 내려 위기를 극복했다. 몇 년 전 같으면 대규모 자본손실로 큰 타격을 받았을 브라질이다. 전통적으로 외부 충격에 취약한 터키 또한 이번 위기에는 IMF의 원조를 받지 않았다.
아시아와 남아메리카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과 함께 급격한 외화 유출로 타격을 입었지만 국내 자금조달을 늘려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다. BNP파리바의 롱그빌은 신흥시장의 국내 채권시장 규모가 전체 거래의 73%를 차지하고 있다며, 이는 2005년의 36%보다 크게 상승한 수치라고 강조했다.
특히 중국의 예는 눈에 띈다. 중국 정부는 2008년 11월 은행대출 확대와 더불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2009년 성장세가 약간 주춤하다 다시 전속력으로 경기 확장 국면에 진입했다. 중국의 뒤를 따라 아시아 국가뿐만 아니라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원자재 수출국도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처음으로 신흥국이 위기관리 담당
물론 이러한 상황이 모두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신흥국가는 외부 충격으로 내부 문제가 더욱 확대되었다. 특히 민간 부문의 과도한 부채 문제를 해소하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러시아를 포함한 중동부 유럽 대부분 국가들의 실정이다. 두바이 역시 2009년 말, 자금난으로 채무불이행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 외 신흥국은 돌발적인 금융위기에도 거침없는 경기확장세를 건실하게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성장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경기 확장을 넘어 중국 내 경기 과열의 위험이 커짐에 따라 중국 정부는 1년간 지속된 무절제한 대출에 제동을 걸었다. 또한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에 잇따른 갑작스러운 자본 유출 이후) 2009년 봄부터 국제자본에 개방적인 신흥시장으로 자본이 대거 몰려 위험성도 커졌다. 이와 같은 자본 유입은 투기 거품을 키우고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며 화폐를 평가절상시켰다. 이는 브라질을 포함한 일부 국가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어, 결국 해당 국가는 일부 유입 자본에 세금을 매기기로 했다. 인도네시아도 곧 같은 정책을 펼 것이다. 지난 4월에는 ‘규제 없는 세계화’를 주창한  IMF조차 이러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튼실한 경제력을 갖춘 신흥시장 국가는 금리를 인상해 통화정책을 정상화하겠지만, 미국과 유럽은 앞으로 몇 개월 간은 낮은 수준으로 금리를 유지할 것이다. 금리 격차는 점점 더 벌어져, 결국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남반구로 자본이 많이 유입될 것은 뻔한 시나리오다. 그리고 거품은 다시 부풀고….
신흥국가의 수요 급등은 이미 원자재 가격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원유와 비철금속 가격은 2008년 중순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곡물 가격은 큰 폭으로 올라 중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이미 정상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는 지지부진한 유럽시장의 경기회복 흐름세에 다시 한번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선진국, 지지부진한 회복세
선진국의 내수 경기 둔화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우선, 금융위기를 촉발한 주범인 가계부채와 부동산 거품이 아직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미국을 포함한 스페인·영국 등 일부 유럽 국가의 가계들은 아직도 빚더미에 허덕인다. 부동산 가격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실업 증가는 가계 소비에 부담을 주고, 국가의 재정 악화는  조기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는 내수에 더욱 부담을 줄 것이다. 이것이 현 유로존의 상황이다. 유럽 국가는 국제 금융시장으로 긴축정책을 실시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으며, 그리스는 물론 아일랜드와 스페인, 영국도 이미 긴축예산을 마련했다.
유럽과 달리 미국은 어느 정도 활기를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상 흐름을 되찾기에는 갈 길이 멀다. 서브프라임 사태도 아직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2008년 중순 이후 미국 내에서만 800만 명 이상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덱시아자산운용의 이코노미스트 플로랑스 피사니는 “경제활동 인구 증가율을 고려해볼 때 완전고용 상태가 되려면 약 1천만 개 일자리가 창출돼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200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2% 수준의 예산 적자를 균형 상태로 끌어올려야만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유로존은 미국보다 전체적으로 부채는 적고 실업률은 낮지만 성장에 대한 전망에서는 미국보다 훨씬 암울하다. 유럽의 부진한 회복세는 경기침체가 덜 급격했다는 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위기 당시 미국 기업은 대량 해고를 단행한 반면, 독일과 프랑스 기업은 노동자의 노동시간만 줄이고 임금은 유지하는 정책을 선택했다. 따라서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설 때, 미국의 고용 회복이 더 빠르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유로존의 내수 부진이다. 프랑스는 지난해 내수 시장 감소세를 보이지 않은 유럽의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였다. 스페인처럼 금융위기 직전에 엄청난 양의 부채를 상환한 국가만 내수 부진을 겪는 것은 아니다. 독일도 지난해 3% 이상 내수 감소를 기록했다. 독일 고용시장의 굳건한 저항이 실제로는 소득 감소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세계시장의 새로운 주도자?
선진국, 특히 유로존 국가는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흥시장의 성장에 기댈 수 있을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말도 안 된다고 믿었던 이 질문을 프랑스 국립통계청(INSEE)의 이코노미스트들까지도 자문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의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아시아 신흥시장이 세계 경기회복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했다.
전통적으로 경기회복기에는 “선진국의 경제활동이 신흥국의 경제를 이끌어왔다. 선진국의 내수 시장이 신흥국의 수출을 촉진했기 때문이다”라고 INSEE의 한 담당자가 설명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역할이 뒤바뀐 것 같다”며 “아시아의 수요 증가 덕분에 2009년 말, 선진국이 경기침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물론 수출의 지리적 접근성에 따라 그 기여도는 달랐다.
특히 아시아의 일본 수출 기여도가 컸다. 일본 전체 수출 물량의 50%가 아시아로 향했고, 미국의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수출량은 약 25%를 기록했다. 유럽의 아시아 수출량은 12.4%에 그쳤다. 아시아 시장과의 무역이 미치는 직접적인 결과뿐만 아니라 간접적 영향력을 고려해볼 때, 대아시아 수출량의 증대로 2009년 2·4분기 프랑스에서는 성장폭이 약 0.4%포인트에 그쳤지만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1.4%포인트나 끌어올렸다고 INSEE는 측정했다.
그렇다고 신흥국가가 그들만의 힘으로 선진국의 경기회복을 지속적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성급하게 결론지을 수는 없다. 그들의 견인력이 적절한 시기에 경기 활성화에 크게 일조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 힘은 한계가 있고, 일시적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신흥시장이 선진국의 경기 활성화를 견인하기에는 아직 능력이 제한적이다.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로 세계무역의 지리적 접근성을 들 수 있다. 특히 아시아 시장의 유럽 수출 기여도는 미국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두 번째 이유는 생활수준 격차에 있다. 비록 신흥국가의 내수가 빠르게 증가하고는 있지만 거대한 인구 규모에 비해 그 수준은 매우 미미하다. 실제 현 달러 기준으로, 13억 중국인의 소비력은 3억 미국인 소비력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번역 배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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