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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민은 현명한 소비자다
[SPECIAL REPORT] 프랑스 가계저축- ② 다섯 가지 편견
[130호] 2021년 02월 01일 (월) 크리스티앙 샤바뇌 economyinsight@hani.co.kr

프랑스 국민은 투자에 소극적이고 금융 상식이 부족하다? 다수가 하는 말이라고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금융에 관해 잘못 알려진 사실 다섯 가지를 골라 하나하나 고쳐본다.

오드 마르탱 Aude Martin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크리스티앙 샤바뇌 Christian Chavagneux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ECB) 본부 건물. ECB 조사 결과, 프랑스 가계의 금융자산 운용 방법은 다른 유럽 나라 국민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REUTERS

1. 위험한 투자보다 저축 선호
몇 년 전부터 읊고 있는 주문이다. ‘프랑스 국민이 돈을 통장에 묵혀두지 않고 기업을 위해 쓰기를. 그렇게 해서 나라 경제가 더 강력해지기를.’ 하지만 프랑스 국민은 겁쟁이라고들 한다. 손실 위험이 있는 주식을 피해 원리금이 보장되는 저축을 선호하는 겁쟁이. 이 말이 사실일까.
2020년 3월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럽 가계의 금융자산 운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보면 프랑스 가계의 금융자산 운용 방법은 다른 유럽 국가 국민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금 계좌에 넣은 자금이 전체 투자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8.6%로 유로존 평균 43.7%보다 낮다. 반면 프랑스 가계가 상장 주식을 사는 데 쓴 자금은 전체 투자액의 8.1%였다. 유로존 평균은 8%다.
프랑스 중앙은행의 조사 범위는 이보다 더 크다. 상장 주식 말고도 사업에 직접 투자하는 자금(비상장 주식)과 간접 투자 자금(생명보험, 투자기금)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했다. 프랑스은행은 프랑스 가계가 이런 ‘사업 투자 상품’ 구매에 전체 금융자산의 32%를 썼다고 2020년 6월 말 발표했다. 결코 적은 비율이 아니다.
물론 벨기에나 스페인, 미국처럼 개인의 투자 실적에 따라 연금 수령액이 달라지는(확정기여형 연금제) 나라는 프랑스보다 가계 투자 성향이 더 적극적이다. 하지만 일본, 독일, 영국에 견주면 프랑스 가계가 훨씬 대담한 편이다. 그러니까 ‘프랑스 국민은 소심한 투자자’라는 속설은 전혀 근거가 없다.

2. 금융 문외한
금융교육이 필요한 나라 50곳에 프랑스가 포함됐다. 프랑스 정부는 국민의 금융 상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나보다. 정부는 무엇을 더 가르치겠다는 것일까. 고위험 고수익을 좇는 은행이 어떻게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 왜 금융시장에 투기 거품이 잘 끼는지? 아니면, 금융시장 통제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려는 것일까?
천만에! 몇 년 전부터 프랑스 국민의 모자란 금융상식을 지적하는 이들이 우려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다. 그들 눈에 보이는 문제는 따로 있다. 프랑스 국민이 금융상식이 없어 연금제도와 금융시장을 충분히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각 나라 국민에게 하는 정기 설문조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설문조사 질문은 세 개로 나뉜다. 첫째는 상식이다. 이를테면 100유로에 연이자 5%가 붙으면 모두 얼마를 얻을 수 있는가 따위를 묻는다. 둘째로 대출에 거부감이 있는지, 평소 투자 상품 정보를 찾아보는지 등 금융 행위에 대해 질문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의 장기적 자산관리 능력을 평가한다.
2020년 가장 최근 설문조사에서 프랑스는 아쉽게도 ‘상식’ 문항에만 답하기로 했다. 결과는 20점 만점에 13.6점. OECD 평균 13.2점보다 높았다. ‘수준 미달’이라고 딱지 붙인 것치고는 점수가 나쁘지 않다. 더 정확한 비교를 위해 프랑스가 세 문항에 모두 답한 2016년 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21점 만점에 프랑스 국민은 14.9점을 얻었다. 가장 높은 점수였다.
두 경제학자 뤼크 아롱델과 앙드레 마송은 프랑스 국민이 거짓말에 속지 말도록 당부한다. 프랑스 국민에게 금융상식이 떨어진다고 하는 이들의 머릿속엔 치밀한 계획이 세워져 있다. 금융소득세를 깎고(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정책 어젠다에 들어 있다), 연금제를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는 확정급부형에서) 확정기여형으로 바꾸는 것이다(연금개혁안에 포함됐다). 정부의 교육 목적은 교육적이기보다 정치적이다.

3. 낮을수록 좋은 자본세 
자본과 자본소득에 세금을 덜 매기자고 한다. 그러면 나라 곳간이 풍성해지고, 부자가 돈뭉치를 들고 외국으로 도망가지 않는다고. 외국으로 도망간 사람은 돌아오고, 외국인 투자자도 더 많이 몰릴 것이라고 한다. 좋은 점이 한도 끝도 없다.
2017년 프랑스 정부는 이 논리를 따랐다. 부유세(ISF)를 폐지하고, (이자·배당소득 등) 자본소득 최고세율을 30%로 낮췄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보기에 아름다운 이 논리가 현실에서도 진짜 유효한지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20년 10월 총리 산하 정책연구기관 ‘프랑스 스트라테지’가 발표한 보고서에는 세제 개편의 긍정적 지표가 꽤 있어 보인다. “2018년 조세 부담을 피해 외국으로 이주한 사례가 줄고, 프랑스로 돌아온 부유층이 늘었다.”
숫자로 이야기해볼까. 떠난 사람은 163명, 돌아온 사람은 240명이다. 부유세 적용 대상의 각각 0.004%와 0.006%다. 이 정도 결과로 세제 개편의 보편적 효과를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업 때문이든 아니든 프랑스에 있기로 한 것은 개인이 선택한 결과이지, 바뀐 세제가 한 계층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줬다고 보기 어렵다.
외국인투자 유치 효과는 어떤가. 2019년 말 기준으로, 프랑스는 산업 선진국 가운데 여덟 번째로 외국인투자 자본이 많은 나라다(외국인투자 규모는 한 나라의 장기 매력도를 평가하는 잣대다). 네덜란드, 스위스, 아일랜드 같은 조세회피처를 빼면 5위다. 이들 나라에 들어가는 돈은 빈 껍데기 투자가 섞여 있어 통계 신뢰도가 떨어진다.
세계경제포럼은 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국가 경쟁력 지수와 넓은 의미의 자본세(금융자산과 부동산, 소득, 유산 등에 매기는 세금)로 얻는 세수 사이에 분명한 상관관계가 없다고 평가했다. 다시 말해, 어떤 나라의 자본세가 낮다고 그 나라의 매력도가 오르는 것이 아님은 확실해 보인다.

4. 베짱이보다 강한 개미
장 드 라퐁텐이 쓴 우화 <개미와 베짱이>의 교훈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성실하게 일해 저금통장이 빵빵한 개미의 손에 베짱이 목숨이 달렸다. 베짱이는 개미에게 원금과 이자를 모두 성실하게 갚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베짱이의 소득(가계)과 전략(기업), 경제정책(정부)이 개미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개미는 베짱이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채권자와 채무자의 역학관계가 그렇다. 힘은 채권자에게 있다.
과연 그럴까. 미국 기자 데이비드 인리치는 한 탐사기사에서 도이체방크가 도널드 트럼프 일가에 3억5천만달러(약 3800억원)를 빌려준 최대 채권자라고 밝혔다. 하지만 도이체방크는 채무자 트럼프에게 불리하게 채권자의 권리를 행사할 때, 그 즉시 골치 아픈 소송에 휘말리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트럼프가 이미 여러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전적이 있어서다. 채권자(채무자)답지 않은 채권자(채무자)다. 대기업이 새 사업을 꾸리려고 은행에 돈을 빌릴 때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상대로 하는 채권자가 힘을 못 쓰기도 한다. 미국은 벌써 몇십 년째 외국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그전에는 일본이 모아둔 돈을 가져다 쓰더니, 어느새 중국으로 넘어갔다. 이제는 유로존과 개도국에도 손을 벌리고 있다. 미국 베짱이를 먹여 살리느라 전세계 개미의 등골이 휘는 셈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미국 베짱이처럼 살 수 없다. 미국은 자국 화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니까 그래도 된다. 외국에 돈을 빌리려는 다른 나라들은 금융시장이 계획한 대로 살아야 한다. 아르헨티나, 그리스, 여러 개도국 등 빚이 많은 나라가 그렇다. 그러나 프랑스처럼 빚을 잘 관리하는 나라는 다른 나라에 돈을 빌려서 살 수 있다.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가 주 35시간제를 도입하고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집권 초기 자본세를 올렸지만, 투자자는 프랑스를 떠나지 않았다. 마크롱 대통령이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자본세를 내린 뒤 프랑스를 찾은 투자자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빚 갚을 능력이 있는 베짱이가 노래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5. 저축과 대출, 양자택일? 
보통 차를 살 때 적금을 깨거나 은행에서 대출받는다. 기업이 투자금을 구할 때도 같다. 가진 돈으로 투자할 수 있지만, 은행에서 빌릴 수도 있다. 내 돈이냐 남의 돈이냐, 저축이냐 대출이냐, 둘 중 하나를 택한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한다. 소득에 따라 또는 대출에 대한 인식 차이로 대출을 받거나 받지 않는다.
부채 규모가 클수록 상환 부담은 늘어난다. 하지만 내가 빚 갚는 데 쓰는 돈이 내 앞으로 쌓인다면? 주택담보대출을 생각해보자. 다달이 은행에 갖다 바치는 원금과 이자는 부동자산이 된다. 프랑스에서 2000년 초 국내총생산(GDP)의 34.1%였던 가계대출 총액은 2020년 초 62.7%로 뛰었다. 그렇다면 가계 자산 대비 대출 규모는? 답은 “모름”이다.
통계청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 없었다. 경제학자 앙드레 바보는 여러 학자의 의견을 종합해 가계대출 규모가 가계 가처분 금융자산의 3분 1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했다. 상당히 높은 비율이다. 이제 저축과 대출은 서로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 됐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1년 1월호(제408호)
5 idées reçues sur l’épargne
번역 최혜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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