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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위험 분담으로 장기투자 확대
[SPECIAL REPORT] 프랑스 가계저축- ③ 과제
[130호] 2021년 02월 01일 (월) 오드 마르탱 economyinsight@hani.co.kr

프랑스 국민이 모아둔 돈으로 국내 경제를 살릴 수 있다. 다만 그 효과가 지속하려면 금융중개기관이 변해야 한다.

오드 마르탱 Aude Martin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코로나19 감염자가 다시 급증한 프랑스 파리 중심가의 상가 건물에 빈 가게를 세놓는다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REUTERS

프랑스 가계가 계좌에 넣어둔 돈이 수조유로다. 정확히는 2020년 중반 기준으로 5조4310억유로(약 7260조원)다. 이 돈이 가만히 잠들어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돈 주인이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건드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은행에 맡겨둔 것이겠지만, 사실 이런 돈은 쓰임이 따로 정해져 있다. 가계저축을 관리하는 기관의 투자 밑천으로 쓰인다. 그러니까 좋은 곳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돈이란 말이다.
가계 금융자산의 일부(14%)는 법률로 이율과 상한액을 정한 예금상품에 가입돼 있다. 이런 상품을 ‘규제 계좌’라고 한다. 은행에서 판매하는 비과세저축예금이나 지속가능한발전·연대통장(LDDS)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공탁소(CDC)는 규제 계좌에 모인 자금을 60%까지 운용한다. 주로 사회주택이나 지자체 재원으로 쓴다.
2019년에는 총 2640억유로 가운데 130억유로를 대출해주고 120억유로를 사회주택에 썼다. 2020년 9월 정부가 발표한 경기부양 계획에는 공탁소가 운용하는 가계저축 자금을 경제부양과 녹색경제 발전에 쓰는 내용이 포함됐다. 앞으로는 공익 실현에 필요한 친환경 전환 사업을 꾸리는 민간단체도 공탁소에서 대출받을 수 있다.
가계저축 자금의 나머지 40%는 은행이 직접 운용한다. 은행은 공탁소에 견줘 운용 방식이 비교적 자유롭다. 2019년 봄 ‘기업 성장과 변화에 관한 법률’, 이른바 팍트(PACTE)법이 제정돼 은행은 중소기업에 운용 가계저축 자금의 80%, 기후 관련 사업(예전에는 오로지 노후 건물의 에너지효율 개선 사업이었음)에 10%, 사회연대경제에 5%를 투자해야 한다.
이런 투자 할당 비율이 어느 정도 지켜진다면 프랑스 가계가 아껴 모아둔 돈이 지금보다 훨씬 투명하게 쓰일 것이다. 공탁소는 “에너지 사업에 직간접으로 들어간 금액은 어림잡아 합산한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통계 분류로는 은행이 에너지 사업에 얼마를 투자했는지 정확하게 계산하기 어렵다. 중소기업 투자에서도 어떤 산업 분야를 우선하는지 알 수 없다.

단기 이익 좇는 금융사
생명보험은 프랑스 가계가 가장 많이 찾는 금융자산 운용 수단이다. 법률로 상한액과 이율이 정해지지 않은 ‘비규제 계좌’다. 생명보험에 모인 돈은 (제네랄리, 아비바, 은행 계열사 등) 보험회사가 운용한다. 프랑스 기관투자자협회(Af2i) 실비 말레코 협회장에 따르면, 보험금 보장형 상품에 가입된 돈(유로)의 약 40%로 정부채권을 산다. 약 30%는 회사채권, 나머지는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한다.
2018년 말 보험회사 자금 보유 현황 조사를 주도한 말레코 협회장은 “보험회사가 장기 가입 상품에 모인 자금을 경기부양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2018년 보험회사의 투자 기간은 평균 7.2년이었다. 경제 전환에 필요한 재정을 모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프랑스 국민이 현금을 쥐고 있길 좋아해 장기 투자가 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그동안 여러 차례 제기됐다. 하지만 생명보험에 들어간 돈은 예외다. 가입자가 세제 혜택을 모두 잃을 것을 감수하고 계약을 중도에 해지하지 않는 한 최소 8년 동안 보험사에 머무는 돈이다.
저축예금에 있는 돈도 마찬가지다. 은행 지급능력에 대한 불신이 커져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가 빚어지지 않으면 장기 투자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프랑스 경제연구소 아이포시이(I4CE)에서 금융·투자 사업을 담당하는 아누쉬카 일크는 “프랑스 가계가 모은 현금은 장기 사업 재정으로 쓰기 충분하다”고 말했다.
프랑스 경제에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 것은 은행과 보험회사 같은 금융중개기관이 단기 수익만 좇기 때문이지, 소심한 가계가 돈을 쥐고 있는 탓이 아니다. 상드라 리고, 도미니크 플리옹 두 경제학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자금 운용 과정에서 법률과 여러 규정의 제약을 받는) 금융중개기관은 굴리는 자금(가계저축) 규모가 점차 커지자 경영에만 역량을 집중하려 한다. 자금 운용은 전문투자기관에 위탁한다. 프랑스 가계가 맡긴 돈을 주식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외부 회사에 매일 갖다 바친다. 2019년 금융중개기관 앞으로 모인 가계저축의 65%가 위탁 운용됐다.

‘지평선의 비극’
문제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위탁운용사는 단기 차익을 내는 데만 집중한다.”(상드라 리고, 도미니크 플리옹) 더 크게 보면, 금융시장이 돌아가는 방식 자체가 문제다. 유럽 비정부기구 파이낸스워치의 연구부장인 티에리 필리포나는 말했다. “금융시장은 투자자가 언제든 발을 뺄 수 있게 만들어졌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투자자는 경제가 장기적으로 어떻게 변할지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화석에너지 산업 등 기후변화에 책임 있는 부문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잉글랜드은행(영국 중앙은행) 총재 마크 카니는 2018년 이런 금융시장의 모순을 ‘지평선의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한눈에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복잡한 문제라는 뜻이다. 도미니크 플리옹은 “신자유주의 주류 경제학에서는 단기 수익이 보장된 사업이 무조건 경제에 이롭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사업이 경제 전환에 적합한지 묻는 말에는 침묵한다.”
장기 투자(30년이라고 치자)는 투자자(이 경우엔 금융중재기관)가 1~2년 동안 지평선 너머의 더 큰 위험을 감수할 때 가능하다. 아누쉬카 일크는 “가계가 경제 전환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하길 기대해도 괜찮을까” 묻고는 “기대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계가 금융중개기관에 맡긴 돈(예금, 보험금 등)을 정부가 어느 정도 보호해주면서 기관과 투자 위험 부담을 나누면 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공적 개입이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가 재정을 많이 쓰고 나중에 허리띠 졸라맬 일도 없다. 가계가 모아둔 돈이 넉넉하다. ‘코로나19 저축’은 이미 넘칠 듯 찰랑거리는 물잔에 떨어진 한 방울 이슬일 뿐. 이제 메마른 프랑스 경제에 물을 댈 때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21년 1월호(제408호)
L’argent ne dort jamais
번역 최혜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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