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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 업무 혁신 이끌려면?
[COVER STORY] 성큼 다가온 재택근무- ④ 한국
[124호] 2020년 08월 01일 (토) 이명호 leemyungho@gmail.com

이명호 (재)여시재 기획위원

   
 

미래학자가 굳게 믿는 말 중 이런 말이 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급속하게 실시된 재택근무는 이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미래학자는 “지식근로자들이 전자오두막(Electronic Cottage·자기 집에서 통신장비를 마련해 일하는 공간)에서 일하게 된다. 퍼스널컴퓨터와 영상장치, 통신장비 등을 이용해 새 유형의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1982)에서 언급한 ‘전망’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엔 전자오두막을 만들 수 있는 장비가 없었지만, 1990년대 이후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전자오두막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한 뒤에도 전자오두막에서 일하는 것은 생소한 공상에 불과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갑자기 많은 사람이 집에서 일하는 생소한 공상을 현실로 경험했다. 이미 우리는 전자오두막에서 일하는 것이 가능한 ‘미래’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미래 기술로 과거의 업무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고나 할까.

1%에서 30%로, 가능성 보여준 원격근무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회원사 312개 기업의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코로나19 이후 업무 방식 변화 실태’(2020년 6월30일 발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 화상회의 등 비대면 원격근무 방식을 시행했다’고 응답한 기업은 34.4%다. 코로나19 이전(8.3%)보다 4배 이상 늘었다. 기업 규모별로는 대기업(9.7→45.8%), 중견기업(8.2→30.6%), 중소기업(6.7→21.8%) 차례로 대기업이 적극 도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전에 여러 취업 알선 사이트에서 한 조사에서 50~60%의 기업이 재택근무 또는 원격근무를 했다는 통계와 비교하면 대한상의 조사가 30%대 수준으로 낮지만, 현실을 더 잘 반영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 수치도 여러 의문점을 남긴다.
재택근무, 화상회의 등 비대면 원격근무 방식을 시행했는지 묻는 질문에 ‘코로나19 이전에도 시행했다’는 응답이 대기업은 9.7%에 이르렀다. 제도를 시행하는 기업 비율과 제도에 참여하는 종업원 비율이 다른데, 이 수치만 보면 코로나19 이전에도 대기업 종사자 9.7%가 원격근무를 했다고 착각하게 한다.
일반적으로 원격근무(재택근무)란 조직 근무자가 적어도 주 1회 이상 집, 위성사무실, 원격근무센터 등 기존 사무실 중심 근무 현장을 벗어난 장소에서 정보통신 장비를 사용해 일하는 대안 근무를 말한다. 국제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전체 노동자의 3%, 유럽연합은 전체 노동자의 5%가 재택근무제를 활용하며, 네덜란드는 13.7%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인다. 우리나라는 통계상 재택근무 비율이 얼마일까?
통계청에 따르면 노동자의 유연근무제(활용 여부)는 11% 정도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유연근무제는 재택·원격근무제, 근로시간단축근무제, 시차출퇴근제, 선택적 근무시간제, 탄력적 근무제, 기타 유형(재량근무 등)을 모두 포함한다. 전체 유연근무제 활용 가운데 재택·원격근무제 비중은 5.8%(2017년 8월 기준)에 그친다(통계청 KOSIS).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유연근무제 활용 인원이 16.1%에 불과하고, 이 중 재택근무 유형은 1%도 안 되는 0.6%로 조사됐다. 이런 통계를 바탕으로 어림잡아, 우리나라에서 공공과 민간을 포함해 재택근무 실시율은 0.01~0.64%로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그런데 코로나19를 계기로 한시적이나마 재택근무를 포함해 원격근무를 도입하거나 체험한 경우가 30%대에 이른 것은 문화적 충격이었을 듯하다.
급작스럽게 실시된 원격근무였지만, 기업과 종업원의 원격근무 평가는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대한상의 조사에서 업무 효율성이 ‘이전과 비슷하다’(56.1%), ‘높아졌다’(27.5%)고 답한 기업이 많았고 ‘효율성이 떨어졌다’는 16.4%에 그쳤다. 직원 만족도도 ‘높다’(82.9%)는 평가가 ‘불만족했다’(17.1%)는 평가를 크게 앞질렀다.

노동 관행, ‘과정’ 중심 업무 문화가 문제
그러나 장기적으로 비대면 업무 방식을 지속하는 데는 많은 기업이 부담을 느꼈다. 코로나19 이후 ‘원격근무를 지속하거나 도입할 계획이 전혀 없다’는 답변이 70.8%를 차지했다. 원격근무를 꺼리는 이유로 ‘기존 업무 방식과 충돌’(62.9%), ‘업무 진행 속도 저하 우려’(16.7%), ‘정보 보안 우려’(9.2%), ‘인프라 구축 비용 부담’(7%) 등을 꼽았다. 원격근무 확대를 위한 선결 과제로 ‘보고·지시 효율화’(51.8%), ‘임직원 인식·역량 교육’(28.1%), ‘보안시스템 구축’(23.8%), ‘성과평가·보상제도 재구축’(15.3%), ‘팀워크 제고 방안’(9.5%) 등을 지적했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환경은 구비됐는데, 여전히 업무·관리 방식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 앨빈 토플러 이전에 재택근무 개념을 처음 생각한 사람은 로켓 과학자 잭 닐스다. 197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출근하던 닐스는 교통 정체로 길에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고민했다. 긴 차량 통근은 교통 정체와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닐스는 재택근무 방안을 연구해 1975년 한 보험회사에서 시도했지만 바로 중단됐다.
경영자들은 재택근무하는 직원을 전과 같은 방식으로 통제할 수 없었고, 직원은 사무실 생활에서 비롯되는 사회 분위기를 잃을 것이라는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재택근무가 처음 시도되고 45년이 지났지만,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에 따른 직원관리 방식을 마련하지 못했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문화는 앞 통계에서 보듯 재택근무 도입을 가로막고 있다.
한국 기업에 디지털화가 많이 진행됐으나 원격근무 도입이 늦어진 이유도 수직적 통제 방식의 조직문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상사 눈에 자주 띄고, 대면 보고를 많이 하는 것이 승진 조건이었다. 성과보다는 ‘성실’이 더 먼저였다. 네트워크, 클라우드, 전자우편, 협업 도구 등 디지털 환경에 맞는 업무 체계를 갖추고도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지 못했다. 눈앞에서 직원이 열심히 일하는 듯(?)이 보여야 안심하는 업무관리 방식으로는 원격근무에 성공할 수 없다. 전근대적인 기업문화가 원격근무를 막아왔다고 할 수 있다.

   
▲ 서울 KT 광화문 웨스트(West) 사옥에서 직원들이 나오고 있다. KT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자 긴급방역을 하고 전 직원에게 재택근무를 하도록 했다. 연합뉴스

원격근무 성공 조건, ‘결과’ 중심 조직문화
사무실 출근 방식 근무를 하다가 재택·원격근무로 전환하는 건 생활방식을 바꾸기 때문에 쉽지 않다. 많은 재택근무 체험자가 출퇴근 시간이 절약돼 개인적인 시간이 늘어나고 방해받지 않고 집중해서 일해 좋은 반면, 혼자 일하는 외로움, 의사소통 어려움, 불명확한 업무 지시, 일과 삶의 균형 붕괴, 근무시간 이외의 근무 지시, 논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자기검열에서 오는 스트레스, 가족과 자녀의 업무 방해 등 부정적 효과를 겪고 있다.
물론 원격근무가 정착된 기업은 그 장점을 잘 살리고 있다. 원격근무가 성공하려면 과정에 대한 감독이 아니라 성과와 결과 중심 업무 (평가) 문화, 자율적인 업무, 투명하고 명확한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요구된다. 업무 위임이 명확하고 책임과 자율권을 줘야 떨어져서 독립적,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다.
선진국 기업은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성과 중심 조직문화를 만들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재택근무가 성공하는 조건이 됐다. 여전히 코로나19로 봉쇄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진행되는 미국과 유럽의 기업은 코로나19가 완화되더라도 재택근무를 계속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더는 많은 부동산 비용을 내고 도심의 대규모 빌딩과 사무실을 유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글로벌 금융서비스 기업 바클리스(Barclays) 최고경영자의 “7천 명을 한 빌딩에 넣는다는 생각은 과거의 것이 됐다”는 말은 이런 분위기를 대변한다.
글로벌 컨설팅사 매킨지는 기업들이 재택과 사무실, 가상과 현장 작업, 온·오프 사이트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업무 모델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 모델은 인재 접근성 향상, 개인과 소규모 팀의 생산성 향상, 비용 절감, 개인 유연성 향상, 직원 만족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업무 모델은 기업 경쟁력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생산적인 업무 모델로 전환하는 데 뒤처지면 기업 경쟁력도 뒤처질 것이다.
대다수 한국 기업이 이전 노동형태로 복귀했지만, 카카오와 네이버 등 디지털기업은 재택근무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SK텔레콤에 이어 롯데쇼핑, 쿠팡 등은 직원이 기존 본사 사무실이 아닌 주거지 인근 거점 오피스로 출근하는 분산 사무실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업무 모델 경쟁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재택근무 시대를 앞당기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첫째, 주거지 인근에 공유 사무실 공간을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 집에서 일하는 게 어려운 사람이 저렴한 비용으로 공유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주거지 인근에 업무도 볼 수 있는 도서관을 많이 세워야 한다. 둘째,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기업에 지원해야 한다. 재택근무는 교통 혼잡(수요)을 줄이고 온실가스도 감축하므로,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에는 조세 감면 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 셋째, 직원이 기업에 재택근무 등을 포함한 유연근무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만들어야 한다. 업무 특성상 재택근무가 가능할 경우 직원이 재택근무를 요구하면 기업이 허락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2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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