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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강한 리더십 메르켈의 비밀 정치 프로젝트
[PEOPLE] 메르켈 매트릭스- ② 비더마이어
[123호] 2020년 07월 01일 (수) 디르크 쿠르뷰바이트 economyinsight@hani.co.kr

디르크 쿠르뷰바이트 Dirk Kurbjuweit <슈피겔> 기자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베를린에서 한 방송과 인터뷰하고 있다. REUTERS

메르켈 매트릭스에서 근본적으로 누락된 것은 유럽연합 강화, 지속가능한 사회, 극우주의와의 싸움 같은 순수한 정치 프로젝트다. 메르켈은 이런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한때 기후보호에 기여한다는 말도 들었지만 벌써 오래전 2007년의 이야기다. 이후 원유 가격이 오르고 독일인에게 기후보호를 위해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자 곧 이 역할을 포기했다.
이는 메르켈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메르켈 매트릭스의 네 번째 좌표가 시민사회와 다소 특이한 관계를 가지는 이유다. ‘신 비더마이어’(Biedermeier·안락함과 가정적인 작은 영역을 중시하면서 겸손과 자기만족 속에 조용히 살아가는 인간 유형)라는 표제 아래 오랫동안 침묵의 시대가 계속됐다. 분쟁이 거의 없고 사회적 토론도 빈번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철의 장막 뒤에서 메르켈은 서독을 이상화했다. 그는 서독에 효율적이고 용감하고 개방적인 사회가 진동하리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메르켈은 서독이나 동독이나 대중은 기본적으로 과감하지 못하고 겁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05년 총선에서 간신히 승리한 메르켈은 독일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애와 비더마이어의 충돌
메르켈은 전반적으로 도전적인 정책을 피하고 말을 자제하고 어떤 논쟁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독일은 서서히 새로운 비더마이어 시기로 진입했다. 메르켈 총리가 사람을 진정시킨 것이다.
그러나 2015년 늦여름, 메르켈 매트릭스 안의 인간애와 비더마이어가 충돌했다. 메르켈은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고 이후 독일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일부 국민은 난민 유입에 반발해 ‘독일을 위한 대안’(AfD)으로 돌아섰다.
코로나19 사태로 또다시 깊은 침묵이 돌아왔다. 메르켈은 이런 상황을 상상하지 않았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비더마이어와 자유는 기본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좌표다. 최초의 독일 비더마이어 시기, 즉 1815년 ‘빈 회의’(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전쟁의 수습을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럽 국가의 국제회의) 이후 몇 년 동안 검열과 감시로 얼룩진 강력한 억압의 시대였다.
현재 상황과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도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독일은 어느 때보다 일치단결돼 있다. 국민의 64%가 메르켈의 위기 극복 대책에 찬성한다. 극우정당 지지자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반대 목소리는 작다. 만일 메르켈과 대다수 사람이 현재 위기를 근본적으로 오산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된다. 하지만 이는 나중에야 알 수 있다.
현재 메르켈 정책은 ‘대안이 없다’. 민주주의는 대안 충돌로 산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메르켈 매트릭스 안 좌표의 우선순위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 시스템도 변화시켰다.
원래 독일 연방공화국은 온건한 경쟁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구성됐다. 정부와 야당은 서로 반대 진영에 서 있고 이들의 대립은 정치의 원동력이다. 메르켈은 이 시스템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다.
정치인 유형으로 보면 메르켈은 오히려 ‘협의민주주의’에 더 적합하다. 협의민주주의 시스템에선 주요 정당이 모두 정부에 참여하고 야당은 소극적인 역할을 맡는다. 그와 동시에 분쟁도 적다. 전통적으로 스위스가 이런 정치구조를 취한다. 메르켈은 독일의 경쟁 시스템에 협의민주주의를 좀더 도입하려 했다. 이것이 그의 비밀 정치 프로젝트였다. 정치적 분쟁과 활기찬 토론을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심각한 실책이겠지만 지금은 다른 시대가 됐다.
거대한 위기가 닥쳤을 때, 예를 들어 전쟁이 일어나면 영국 같은 극렬한 경쟁 민주주의도 협의 체제를 이행했다.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메르켈은 지금 그가 제일 좋아하는 시스템 안에서 제일 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해관계를 조정, 중개하고 기본 합의를 능숙하게 관리한다. 대연정에서 배운 것을 독일 연방의 각 주 총리에게 적용할 수 있다. 메르켈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정치의 원동력을 제공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의 임무는 통치다.

조심스러운 국가의 어머니
메르켈은 개인적으로도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다. 어차피 그는 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신중한 정치인이지, 과감한 행보를 보이는 사람이 아니다. 평상시에는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공포가 지배하는 시기에는 매우 적합하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보여준 메르켈의 냉정하고 장황하고 관료주의적인 발언 방식은 조금 어색했다. 2020년 3월17일 주요 7개국(G7) 정상의 코로나19 대응 화상회의 내용을 언론에 발표했을 때, 메르켈은 환영·강조·관리·집행·최소화·조처·수정 등의 용어를 썼다. 많은 것이 ‘기록돼야 하고’ ‘실체가 없고’ ‘상호적’이었다. 정치적 연설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메르켈 입에서 줄줄 흘러나왔다.
중간에 메르켈은 ‘난파’라는 말을 했다. 어이쿠, 이 경솔한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을 자조하며 메르켈은 현재 유럽연합(EU) 외부에 있으면서 귀국하고 싶어도 귀국할 수 없는 사람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절제된 이성의 언어가 이어졌다. 이런 방식은 경제의 우선순위를 말하는 데는 쓸 수 있지만 인간애의 우선순위를 말하는 데는 사용할 수 없다.
메르켈을 소재로 한 TV 영화 가운데, 한 보좌관이 난민 위기에 놓인 총리에게 심장을 가지고 있지만 말고, 자신이 심장을 가진 사람임을 세상에 보여주라고 격려하는 장면이 있다. 이처럼 누군가가 메르켈의 양심을 자극한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 거북한 기자회견 하루 뒤 대국민 TV연설에서 메르켈 어조가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는 모든 생명, 모든 인간을 중시하는 공동체”라며 “진심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약속했다. 진심이 이성과 나란히 서고, 메르켈이 시민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이후 메르켈 본인도 감염된 의사와 접촉해 자가격리를 해야 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 이제 메르켈은 집에 갇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시민과 같은 처지가 됐다. 그는 평상시보다 더 친근한 느낌을 주면서도 메르켈 자신으로 머무를 수 있었다.
메르켈이 의견을 툭 터놓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런 척하지도 못했다. 대신 팟캐스트에서 메르켈은 시민에게 독일을 이끄는 강사의 모습을 보여줬다. 집에서 전화로 기자회견을 할 때, 그의 통화 목소리는 아주 먼 곳, 어쩌면 우주 저편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모든 연결이 끊어지고 독일은 총리 부재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한순간일 뿐이었다. 메르켈은 어느 때보다 존재감이 강했다. 감사 인사 외에 그가 주로 수행한 임무는 경고였다. 메르켈은 세세한 부분까지 언급했다. “손을 자주, 철저하게 씻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맙시다.” 물품은 비축해도 되지만 ‘적당히’ 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마스크는 반드시 “주기적으로 세척하고, 경우에 따라 다림질을 하거나, 오븐이나 전자레인지를 써서 열소독을 해야 한다.” 한 기자회견에서 메르켈은 기자에게 얼굴을 너무 자주 만지지 말라고 조심스럽게 경고했다. 국가의 어머니다.
부족한 것은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 그리도 중시하는 ‘오퇴르’(Hauteur), 즉 고귀함 혹은 숭고함이다. 메르켈은 정치에 감성을 더했지만 상부 구조까지 확장하지는 않았다(메르켈이 어머니라는 위치에서 감정적으로 국민 위에 존재하는 형태가 되지 않았다는 뜻 -편집자). 독일인도 이를 아쉬워하지 않는 것 같다.

늦은 대처, 그러나 위기에 강한 정치인
메르켈은 코로나19 위기에서 늦게 대처했다. 너무 오래 망설였고, 자신의 매트릭스를 위기에 맞춰 수정하는 데 시간을 소비했다. 많은 사람이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메르켈이 저지른 실수의 무게가 가장 무겁다. 그런데도 메르켈은 다른 정치인보다 ‘코로나 시대’에 적합한 총리가 될 수 있다. 위기 상황의 정치 시스템과 잘 맞는 정치인이고 침착하고 현명한 그는 개인적으로도 위기에 강한 인물이다.
문제는 독일인을 봉쇄에서 끌어내기 위해 메르켈이 언제 어떻게 좌표를 다시 설정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가 처음 봉쇄 완화를 발표했을 때, 어떤 말로 시작했는가? 당연히 감사의 인사다. 처음에는 잘 대처하는 각 연방주에, 다음에는 “독일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그다음에는 의료진과 지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교회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과연 헬무트 콜의 제자다.
바쁘게 연설 메모를 넘기면서 메르켈은 느리고 신중한 조처를 발표했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 지금은 조심해야 하며, 절대 경솔해서는 안 된다.” 본연의 메르켈이다. 인간애는 그의 매트릭스에서 최우선 순위에 있다.
언론은 “적절하다”며 대부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다만 메르켈이 자신이 내린 결정을 더는 선거로 심판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조금 얄궂다. 하지만 일부 사람이 추측 또는 희망하는 것처럼, 메르켈이 다섯 번째 임기를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독일의 다음 총선이 치러지는 2021년 가을에는 바이러스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정치는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고, 일상 정치는 메르켈의 강점이 아니다.

Ⓒ Der Spiegel 2020년 17호
Die Merkel-Matrix
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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