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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리더십의 미묘한 함수
[PEOPLE] 메르켈 매트릭스- ① 경제, 자유, 인간애
[123호] 2020년 07월 01일 (수) 디르크 쿠르뷰바이트 economyinsight@hani.co.kr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초기 바이러스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지만, 곧 자신의 좌표와 언어를 위기에 맞춰 조정했다. 메르켈은 정치적 일상보다 큰 위기에 적합한 인물인 것 같다.

디르크 쿠르뷰바이트 Dirk Kurbjuweit <슈피겔> 기자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얼굴이 베를린 총리 관저창에 실루엣으로 비친다.REUTERS

“당케”(Danke·고맙습니다)라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말했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쁘고 감사”하며 “끝없이 감사”하고 “온 마음으로 감사”하다고 메르켈은 말했다. 그의 정책이 성공하려면 도움이 필요하다. 시민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집에 머물러야 한다. 진료소, 요양원, 식료품점에서 열심히 일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도 메르켈은 감사를 퍼부었다. 최근 그가 가장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다.
이전에는 달랐던가? 그렇지는 않다. 독일 총리와 수시로 동행하는 <로이터> 기자 안드레아스 링케에 따르면, 메르켈은 예전부터 입버릇처럼 감사 인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링케는 웹사이트 ‘리프리포터’(Riff-Reporter)에서 ‘메르켈 사전’을 연재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그는 표제어 ‘감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썼다. “어쩌면 기독교적 양육 때문일 수도 있고, 영리한 교육학적 속임수일 수도 있고, 환심을 사기 위한 시도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앙겔라 메르켈만큼 자주, 그리고 많은 그룹의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한 독일의 정부 수장은 없었다.”

감사 인사가 입버릇인 총리
메르켈 자신도 예전에 독일 총리 헬무트 콜이 계속 감사 인사를 하는 게 짜증 났다며 웃으며 말했다. 이후 메르켈도 감사 인사를 정치 수단으로 삼았다. 이 점에서 그는 이번 위기에 잘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것들은?
몇 달 전 메르켈은 거의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후계자 선발 경쟁이 방해받았고, 너무 긴 전환 기간을 두어 새로운 시작을 막고 있었다. 그는 사람 앞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정치적 관심은 메르켈이 사라진 이후 시기에 쏠렸다. 사람들은 미래를 이야기했다. 메르켈은 이 미래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제 사상이 현재를 지배하고 있다. 독일연방공화국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다. 삶과 죽음, 경제 파탄 여부가 걸린 현재가 메르켈을 다시 중심 무대로 이끌었다. 온 국민이 메르켈과 연방 주총리들에게 의지하고, 메르켈은 국민에게 의지하고 있다.
얼마나 대단한 컴백인가! 얼마나 대단한 책임인가! 메르켈 이전 어떤 연방 총리도 이런 압박을 견뎌야 했던 적이 없다. 극적인 결과를 가져온 실수를 그렇게 자주 저지른 이도 없다. 아니면 그렇게 많은 올바른 결정을 내린 이도 없다고 해야 할까?
메르켈에게 조언해주는 학자가 있으며, 그에겐 정치적 감각이 있다. 하지만 그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건 자신의 정치적 좌표다. 주로 경제, 자유, 인간애 그리고 비더마이어(Biedermeier·우직한 소시민의 표상)다.
위기일 때도, 정상적 시기일 때도 메르켈 사고는 이 시스템 안에서 움직인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건 좌표의 의미와 좌표 간 관계다. 테이블 형식을 이용해 매트릭스, 즉 행렬로 정리하면 위기 상황에서 인간애·경제·자유가 메르켈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실수까지 포함해 그의 결정이 설명된다.
평상시 메르켈 평가는 ‘그럭저럭 괜찮다’ 정도다. 지금은 정말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메르켈의 정치적 좌표와 개인적 특성으로 이를 이룰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메르켈과의 대화에선 이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한다. 답은 메르켈의 정치 이력, 지금 대중에게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서 찾아야 한다. 갑작스럽게 국민에게 말하기 시작한 독일 총리 메르켈은 반복해 연설한다. 이것만 해도 새 현상이다.
2020년 1월 중순, 메르켈은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했다. 그의 큰 계획에 대한 질문에 처음에는 언짢은 반응을 보였지만, 메르켈은 곧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첫째로 “독일과 유럽은 경제적으로 강해야 한다”는 견해를 말했다.

‘메르켈 매트릭스’ 1순위, 경제
지금까지 메르켈의 매트릭스 맨 위와 맨 앞에 경제가 있었다. 메르켈이 최우선으로 삼은 건 독일의 부를 늘리는 것이었다. 메르켈의 대권 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2003년 기독교민주연합(CDU) 라이프치히 전당대회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사람을 끌어들였지만, 2005년 총선에서 거의 몰락할 뻔했다.
이후 메르켈의 ‘단련’ 프로젝트를 더 조심스럽게 사회 균형을 고려하며 추진했지만,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 계속해서 보여줬다. 예를 들어 ‘시장 순응적 민주주의’ 같은 말도 안 되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국가 형태조차 경제에 종속돼야 했다. 그래서 메르켈은 독일 부를 쌓기 위해서라면 중국 같은 나라와 접촉하는 것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유럽과의 관계도 경제적 관점에 치중해 있다. 메르켈은 독일 기업 제품을 팔 기회는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남유럽 국가의 방만한 재정 운영은 두려워했다. 이런 이유로 메르켈은 금융위기 때 그리스의 유로본드 발행 제안을 거부했고, ‘코로나 본드’ 발행도 반대했다. 공동 부채는 예측하기 어렵고, 메르켈의 국가 번영 프로젝트에 위협을 가한다.
총괄적으로 메르켈의 경제정책은 효과가 있었다. 물론 혼자만의 공로는 아니다. 메르켈의 집권 기간에 독일은 긴 호황기를 경험했고 국가에 흑자예산을 가져다줬다. 메르켈이 거둔 가장 큰 성공이다. 코로나19가 지금 이 성공을 소멸시키는 것이 메르켈의 비극이다. 메르켈은 여전히 ‘가치사슬’에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매트릭스 우선순위는 달라졌다. 어쩌면 약간 늦은 것일 수도 있다. 번영 프로젝트를 포기하기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유를 사랑하는 시민”
2020년 4월6일 기자회견에서 메르켈은 자신을 ‘독일 통일 30주년의 자유를 사랑하는 시민”이라고 했다. “정치인으로서 다른 사람과 함께 이런 일을 명령해야만 하는 것이 나에게 쉽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독일 연방공화국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자유 제한인 봉쇄령을 말하는 것이다.
때로 과소평가되기도 하지만 ‘자유’는 메르켈의 매트릭스에서 중요한 요소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게 허용되지 않는 부자유를 겪었다. 여행의 자유, 미국에 대한 갈망을 충족하는 자유를 누리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3월18일 텔레비전(TV) 연설에서 메르켈은 “여행과 이동 자유는 어렵게 쟁취한 권리였다”고 상기시켰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쟁취한 권리는 아니다. 메르켈은 내적으로 옛동독 사회주의 통일당(SED) 정권에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정권에 저항하지는 않았다.
2015년 9월 메르켈이 헝가리에서 발이 묶인 시리아 난민을 독일에 받아들인 이유 중 하나도 개방된 국경이 자유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좁은 의미의 자유주의자는 아니다. 메르켈 정부도 자유를 제한하는 보안법을 제정했다. 다른 민족의 자유를 위한 메르켈의 헌신도 다소 느슨해졌다. 메르켈 매트릭스의 두 좌표가 충돌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경제를 선택했다.
코로나19 위기를 놓고 메르켈은 처음에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3월18일 TV 연설에서 그는 사회적 거리 두기와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거의 간청하다시피 했다. “현명하게 행동하여 자유를 지키시오.”
우연하게도 3월18일은 독일 역사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 일어난 날이다. 1848년 이날 베를린의 노동자와 시민이 국가의 강압에 맞서 싸우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왔다. 정확히 152년 후, 시민은 국가 강압을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집에 있어야 한다.
메르켈은 ‘통행금지’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경고 수단으로도 쓰지 않았다. 그에게는 너무 독재적으로 느껴지는 용어였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인은 이 기회를 이용하지 않았고, 메르켈은 자유주의적 접근 방법으로 실패했다. 그는 곧 호소로는 충분하지 않고 강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독일은 오스트리아 같은 국가보다 늦게 접촉금지령을 발효했다. 자유라는 좌표도 메르켈의 매트릭스에서 처음에는 억제 요소였다. 존경할 만한 이유지만 그 때문에 시간을 잃어버렸다.

약자를 연민하는 인간애
앙겔라 메르켈은 템플린의 발트호프 지역에 있는 한 장애인시설에서 성장했다. 목사인 아버지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기독교 가치를 내면화했다. 이 시절을 회상할 때 메르켈은 종종 한 가지 점을 강조한다. 당시 그는 장애의 정상성을 보는 법을 배웠다. 발트호프를 방문하는 것을 꺼리는 급우에게 메르켈은 이렇게 말했다. “두려워할 필요 없어. 정말 좋아.” 메르켈의 발트호프 신조는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속해 있다”였다. 메르켈 시스템에서 ‘인간애’는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좌표였다. 그는 이를 크게 강조하지 않았고 사람과 거리를 두는 태도 때문에 박애주의자로 인식되기도 힘들었다.
2015년 난민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이 메르켈 총리가 약자를 연민하고 타인 고통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됐다. 독일 제1공영방송 <ARD>에서 방송된 영화 <떼밀린 자>(Die Getriebenen)에선 메르켈 역을 맡은 배우가 아이패드로 방황하는 비참한 난민 사진을 보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 현실에서도 고통받는 이들의 사진은 메르켈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메르켈은 난민 문제에 “우리는 모든 개인의 존엄성을 중점에 두는 국가”라고 말했다. 발트호프의 목소리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인간애는 경제와 자유에 앞선다. 메르켈은 “건강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사회’ ‘보살핌’ ‘약자’를 말하고 인간 존엄성을 훼손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독일 기본법 제1조를 언급했다.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다.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자유와 경제는 당분간 포기해야 한다. 메르켈 위기 매트릭스의 기본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다.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다. 나라마다 뉘앙스가 다를 뿐이다. 이탈리아는 독일보다 훨씬 더 강하게 자국의 경제 시스템을 억제했고, 프랑스는 독일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개인 자유를 제한했다. 영국은 처음에 인간애를 그다지 가치 있게 두지 않았다. 무엇보다 젊고 건강한 사람이 이전과 같은 삶을 계속할 수 있도록 노인과 약자를 격리하려 했다.
메르켈의 발트호프 시절 경험으로 볼 때 이런 조처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코로나19 위기에서 그는 좌파에서 중도 성향까지 정치인에게 지금까지 금기시되던 개념인 ‘공동체’를 이야기한다. 다양성을 표현하고 모순적인 사회에 관해 이야기한다. 공동체는 단합을 강조한다. 메르켈의 인간애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 Der Spiegel 2020년 17호
Die Merkel-Matrix
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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