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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의료보험카드 갈 길 먼 독일
[FOCUS] 디지털 의료서비스- ② 과제
[111호] 2019년 07월 01일 (월) 디르크 아젠도르프 economyinsight@hani.co.kr
디르크 아젠도르프 Dirk Asendorpf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 독일에서 전자의료보험카드 전면 도입이 어려운 것은 개인정보 악용 방지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라 누구도 환자 승인 없이 해당 환자의 병력과 수술 이력 등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없다. REUTERS
최근 독일에서 미약하나마 변화의 바람이 감지된다. 계획한 시점에서 무려 13년이나 지난 2019년 12월부터 환자 개인정보가 전자의료보험카드에 저장될 것으로 보인다. 모든 건강보험공단은 2021년부터 가입자에게 전자의료보험카드를 제공해야 한다. 가입자는 전자의료보험카드 사용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 2018년부터 허용된 의사의 원격화상진료를 활용한 전자처방전 발급도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자의료보험카드에서 가장 중요한 의문이 남는다. 전자의료보험카드를 실제 사용하는 가입자가 얼마나 될까. 2018년 말 발간된 전자의료보험카드 안내서를 보면 긍정적 전망을 기대하기 힘들다. 일단 안내서 내용이 너무 복잡하고, 심지어 수천 페이지에 이르지만 여전히 담지 못한 내용이 있다. 2019년 5월 하순 환자가 자신의 전자의료보험카드 내용을 특정 의사가 보지 못하도록 지정할 수 없는 문제가 새롭게 드러났다. 환자는 치과의사에게 자신이 심리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하든지, 이를 원치 않는다면 아예 전자의료보험카드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했듯이 전자의료보험카드는 의무사항이 아닌 선택사항이다. 
 
독일에서 전자의료보험카드의 전면적 도입이 어려운 이유는 다름 아닌 ‘개인정보 악용 방지’ 때문이다. 누구도 환자 승인 없이 해당 환자의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없다. 물론 개인정보 악용 방지가 중요한 사안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개인 식별번호를 입력하고 이중 인증 과정을 거쳐야 하며, 제3자가 억지로 열려고 하면 자동으로 파괴되는 전자파 차폐 카드리더기 등 그 방식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환자는 의사 등 제3자의 전자의료보험카드 접근을 온라인에서 승인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 이를 위해 환자는 병원이나 약국에서 신청서를 작성해 서명해야 한다. 
 
개인정보 악용 방지 대책이 발목 잡아 
전자의료보험카드에는 환자의 응급정보, 입원초진기록, 처방 내역이 들어간다. 환자는 다른 의료 개인정보도 저장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의사들이 환자의 전자의료보험카드에 저장된 정보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전자의료보험카드에 암호화돼 저장된 개인정보로는 특정 질병이나 의약품을 검색할 수 없다. 도르트문트 의약정보학자 페터 하스는 “모든 것이 마구잡이로 섞여 있는 자루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하스는 다양한 형태의 전자의료보험카드를 시험했다. 그리고 명확하게 분류되지 않은 전자의료보험카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환자를 5분 내로 진료해야 하는 의사에게 분류되지 않은 서류 200개가 마구잡이로 담긴 엉망진창 전자의료보험카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스는 앞으로도 전자의료보험카드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고 우려한다. 전자의료보험카드 시스템 구축을 담당하는 ‘게마틱’(Gematik·전자의료보험카드 도입을 위해 만든 회사로 텔레매틱스 인프라 도입 업무를 하면서 설계, 승인, 운영 책임 등 핵심 역량에 주력하고 있다), 연방 공보험계약의사협회(NASHIP), 건강보험공단들이 전자의료보험카드 분류를 공동으로 맡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공단들은 가입자에게 전자의료보험카드를 제공하고 기술적 운영을 담당한다. 그런데 유독 국가만이 이 과정에서 완전히 빠져 있다. 이 구조에서 의미 있는 표준이 마련되기란 불가능하다. 
 
   
▲ 독일은 2019년 12월부터 환자 개인정보를 전자의료보험카드에 저장한다.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 등의 문제로 디지털 의료가 정착하는 데는 시간이 좀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REUTERS
시스템 구축에 정부만 빠져
일부 건강보험공단들이 제공하는 전자의료 앱은 의료부문 디지털화가 어떤 어려움에 맞닥뜨릴지 여실히 보여준다. 무엇보다 전자의료 앱은 전자의료보험카드와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 그래서 전자의료 앱은 ‘전자건강카드’로 불린다. 대표적인 전자의료 앱으로 ‘TK-Safe’와 ‘Vivy’가 있다. 독일에서 법정 건강보험 가입자 7300만 명의 약 25%가 두 앱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중 해당 앱을 내려받은 가입자는 100만 명이 채 안 되고, 실제 사용자는 이보다 더 적다. 두 앱은 환자를 위한 유용한 도구라기보다 건강한 가입자를 위한 헬스용 앱에 더 가까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전자건강카드를 사용하다보면 금방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원칙적으로 전자건강카드를 통해 엑스레이 사진이나 검진 결과를 요청해 받아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의료정보 전송 방식이 너무 까다로워 의사들은 전자건강카드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의사들은 부지불식간에 정보보호 규정을 위반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는데다 의료정보를 전송할 때 자신에게 익숙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도 없다. 동네 의원이 대상인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154개 가운데 클릭 몇 번으로 건강보험공단들이 운용하는 앱과 정보를 나누는 프로그램은 단 하나도 없다. 복잡다단한 IT 시스템,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국가의 철저한 부재, 정보 유출에 대한 두려움 등이 독일의 전면적 ‘전자의료보험카드’ 도입을 복잡하고도 지난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 에스토니아는 독일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베르텔스만재단의 국가별 비교에서 에스토니아는 의료부문 디지털화에서 단연 1위를 차지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개인정보 악용 방지’가 아니라 ‘개인정보 악용 인지’가 원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에서 개인정보 악용 소지가 있어서 주저되는 사안도 에스토니아에서는 과감하게 실현될 수 있었다. 프리트 토버는 “의료계 종사자가 자신의 전자주민등록증으로 환자 의료정보를 상시 열람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해당 시스템을 환자로서도 경험했지만, 에스토니아 보건부의 디지털 서비스 담당자이기에 익히 잘 알고 있다. “개인정보 악용은 에스토니아에서 실질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불법적으로 이뤄지는 정보 접속이나 취득은 100% 발각되기 때문이다. 환자는 누가 언제 자신의 전자의료보험카드를 열람했는지 온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자의료보험카드는 국가의 관리·감독을 받으며 블록체인에 저장되므로 삭제나 조작이 불가능하다. 
 
특별한 사유 없이 전자의료보험카드를 열람하는 사람은 형사처벌 대상이며 직장에서 해고까지 각오해야 한다. 초기에는 개인정보를 불법 열람한 사례가 몇 건 있었다. 당시 야당 지도자 출신인 에드가르 사비사르 탈린 시장이 개인정보 불법 열람 피해를 입기도 했다. 패혈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사비사르 시장의 전자의료보험카드에 담긴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진료팀에 속하지 않은 한 의사가 그의 전자의료보험카드를 열람했던 것이다. 범인으로 확인된 의사는 의사면허증을 박탈당했다. 해당 사건이 공개되면서 이후 개인정보 유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 에스토니아는 10년 전 전자의료보험카드 등을 도입해 디지털 의료에서 새 장을 열었다. 의사는 컴퓨터에 접속해 환자의 이전 진료 내용과 처방전 등을 확인해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REUTERS
에스토니아의 ‘개인정보 악용 인지’ 원칙
에스토니아에서는 누구나 개인정보 공개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클릭 두 번만으로 자신의 전자의료보험카드 일부 내용을 ‘열람 불가’로 지정할 수 있다. 열람 불가로 지정된 내용은 전자의료보험카드에는 계속 들어 있지만, 오로지 당사자만 열람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정보 열람 불가를 지정한 사람은 전체 국민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토버는 “정부 시스템에 대한 국민 신뢰가 얼마나 굳건한지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에스토니아 모델은 인구 8천만 명이 넘는 독일에도 기술적으로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반면 독일처럼 규정이 점점 복잡해진다면 국민 신뢰를 얻기 힘들다. 에스토니아 정보부에서 정보보안을 담당하는 리사 파스트는 “전자의료보험카드가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면 신뢰는 저절로 생기게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전자의료보험카드 사용법이 간단해야 한다. 전자의료보험카드는 건강한 젊은 세대보다 병들고 돌봄이 필요한 노년 세대의 사용 빈도가 아무래도 높기 때문이다. 피터 하스는 지적한다. “당신이 정말 아픈 상태라면, 전자의료보험카드를 관리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디지털 천국의 비결
 
인구 130만의 소국 에스토니아는 스스로를 ‘이에스토니아’(E-Estonia)로 부른다. 실제 에스토니아의 3천여 개에 이르는 디지털 행정서비스는 국민 부담을 크게 덜어준다. 유치원 입학 신청부터 투표, 자동차 소유주 이전 신고 그리고 회사 설립까지 대부분의 행정 업무가 온라인과 스마트폰 앱으로 처리된다. 
 
에스토니아는 디지털 의료 부문에서도 국제적으로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베르텔스만재단 디지털헬스지수에서 에스토니아는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전자처방전만 발급된다. 그리고 에스토니아 국민에게는 전자의료보험카드가 발급된다. 국가 관리·감독 아래 시스템 20개의 진료기록부, 엑스레이 사진에 이르기까지 각종 의료정보가 전자의료보험카드에 입력된다. 이 시스템은 국가 보건통계에도 익명 처리된 정보를 제공한다. 
 
에스토니아는 암호화된 정보 교류를 위해 2001년 모든 행정망과 민간 데이터베이스(DB)를 연계하는 시스템 엑스로드(X-Road)를 마련했다. 전체 국가기관 외에 5만 곳 이상의 기업과 조직이 엑스로드에 연계돼 있다. 지금까지 엑스로드 보안은 안전하게 유지되고 있다.

 
* 2019년 7월호 종이잡지 68쪽에 실렸습니다.
 
ⓒ Die Zeit 2019년 22호
Der digitale Patient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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