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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노인 외면한 '소득대체율’ 꼼수
[Special Report] 독일의 연금개혁- ① 잘못된 약속
[105호] 2019년 01월 01일 (화) 크리스토프 코프만 등 economyinsight@hani.co.kr
공적연금은 국민 복지와 사회안전망의 한 축이다. 하지만 고령화와 저출산이 맞물리면서 절박해진 재원 압박에 각국 정부가 연금에 칼을 대고 있다. 자금 고갈을 막기 위해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가야 하지만 국민 저항이 만만치 않다. ‘연금 선진국’이라는 독일도 예외가 아니다. 1957년 70%였던 소득대체율이 2018년 48%까지 떨어졌다. 2025년까지 소득대체율 48%를 보장하기로 했지만, 재원이 발목을 잡는다. 지금껏 개인이 내는 보험료는 임금의 11%에서 18.6%로 올랐다. 65살인 수급 나이도 2029년까지 67살로 조정됐다. 확실한 노후 대비책을 장담했던 과거의 약속이 무색해지고 있다.  _편집자

크리스토프 코프만 Christoph Koopmann
코르넬리아 슈메르가 Cornelia Schmerga <슈피겔> 기자 
 
   
▲ 독일 대연정 정부가 2018년 11월 수십억유로 규모의 연금개혁안을 통과시켰지만 ‘완벽한 노후 대비’라는 목표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다. REUTERS
하인츠 브레베(79)와 그의 아내 게르트루트(75)는 일요일마다 루르 지역 국도를 달리며 스트레스를 날린다. 이를 위해 4년 전 미국의 라이프 스타일을 상징하는 반짝거리는 크롬색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샀다. 미국 최초의 횡단도로 루트66가 아니어도, 이들은 독일 아우토반 B60을 질주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이 부부는 노년에 재정적 여유를 갖춘 행복한 사례에 속한다. 뒤스부르크에 소유한 소형 연립주택 대출도 오래전 상환을 마쳤다.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외에 소형 오펠 코르사도 소유하고 있다. 지금의 물질적 여유가 가능한 것은 성실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연금을 착실히 부었고, 무엇 하나 공짜로 누리는 것이 없다.” 이렇게 말하는 브레베는 40년간 금속 세공사 등 현역으로 일했고 그동안 연금을 납부했다. 아내 게르트루트는 서구사회 워킹맘에게 생소했던 반나절 근무를 꾸준히 했다. 부부가 현재 받는 연금은 풍족하진 않지만 먹고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딸을 비롯한 젊은 세대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출산율이 낮아지고 노년층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후세대가 연금만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한평생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린 저소득층이 노후에 쥐꼬리만 한 연금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싶다.” 
 
독일 연금개혁안 통과
독일 정부가 연금개혁이라는 칼을 빼 들었다. 독일연방의회는 2018년 11월15일 연금개혁안을 통과시켰다. 2019년 1월에 발효되는데 개정 규정이 10여 개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어머니연금(1992년 이전 자녀를 출산한 여성의 자녀 양육 기간을 연금 기간에 포함시켜 인정해주는 제도) 인상, 질병으로 인한 조기 퇴직자에게 추가 연금 지급, 연금급여 지급을 위한 조세 항목 신설, 저소득층 보험료 인하 등을 총망라한다. 특히 연금 소득대체율(연금액이 개인의 생애평균소득 몇%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비율) 유지에 방점이 찍혔다. 현재의 연금 소득대체율 48%가 2025년까지 유지된다. 연금 보험료율은 최대 20%를 넘어서는 안 된다. 2025년까지 연금개혁안 이행에 360억유로(약 46조1천억원)가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대연정이 내놓은 연금개혁안은 후세대의 부담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이전 개혁안에 담긴 근본적 가치와 결별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그 후폭풍은 가늠하기 힘들다. 연금개혁안은 일단 2025년까지만 적용되고 이후 연금위원회가 연금을 결정한다. 연금위원회는 정부로부터 독립적이고 어떤 제약 없이 연금개혁안에 착수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민주당은 첫 연금위원회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2040년까지 연금 소득대체율 동결을 요구하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2018년 8월 사민당 올라프 숄츠 부총리는 “안정적인 연금 소득대체율은 독일판 도널드 트럼프의 출현을 막는 최상의 보험”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연금개혁 논의의 핵심은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을 반대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 독일의 두 거대 정당이 포퓰리즘에 포퓰리즘으로 맞서려 한다. ‘독일을 위한 대안당’의 뵈른 회케를 중심으로 한 극우민족주의 정치인들은 2018년 6월 첫 연금개혁안을 제안했다. 104쪽에 이르는 문서에서 현 연금제도는 고령층의 빈곤과 박탈감, ‘연금 시스템 파괴’ 등 참담한 상태로 그려졌다. ‘독일을 위한 대안당’의 대다수 관계자가 주장하는 소득대체율 50%에 사민당도 동조하는 모양새다. 더 높은 소득대체율을 요구하는 정당은 좌파당 정도다. 국수주의적인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적잖은 유권자가 자신의 노후생활을 두려워한다. 구체적으로는 2004년부터다. 당시 사민당-녹색당 연립정부는 인구 노령화가 가속화되자 연금급여 산식에 칼을 들이댔다. 노령인구가 크게 늘면 연금급여 인상을 억제하겠다는 것이었다.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해 후세대의 연금 부담을 덜겠다는 복안이다.  
 
정치인들의 연금정책 호도 
현재 고령층은 연금개혁안에 공포를 느낀다. 연금 소득대체율이 평균 세후소득의 53%에서 현재 48%까지 떨어졌다. 부족분을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으로 메워야 하는 연금 수령자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독일 정부는 빈곤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삶의 어느 단계에서 빈곤 위험이 가장 높은지 설문조사를 했다. 독일 국민 67%가 “노후의 빈곤 위험이 아주 높거나 혹은 높다”고 답했다. “젊은층의 빈곤 위험이 아주 높다”고 답한 독일인은 9%에 불과했다. 현실은 정반대다. 기초보장제도나 소득 통계에서 문제가 되는 대상은 고령층이 아닌 젊은층, 한부모 가정, 저소득층, 이민자다. 마르틴 베르딩 보훔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체감 현실과 실제 자료는 괴리가 있다. 현 상황에서 노년층 빈곤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연금개혁 논의에서 “국민연금이 노후의 삶 수준을 전적으로 결정하며, 연금 소득대체율을 조금 올리면 고령층이 여유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남발하는 사실에 맞지 않은 주장이다. 포퓰리스트들은 더 나아가 “많은 고령층에서 빈곤이 심각하며, 젊은 세대도 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으로 언젠가는 혜택을 볼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들의 잘못된 주장이 사회 곳곳과 거대 정당까지 파고들었다는 사실이다. 
 
안정적인 노후 보장은 어느 사회에서나 중요하다. 이제 연금제도를 논의할 때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 허위 사실을 명확히 걸러낼 필요가 있다. 연금 논의에서 비극은 연금에 투여되는 엄청난 비용이 아니다. 정치권이 빈곤한 연금 수령자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지도 못하고, 젊은 세대를 위해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는 데 있다. 브레베 부부는 연금제도에서 문제가 되는 사례가 아니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등에서 나오는 이들의 매달 가처분 소득은 독일 전체 노년층의 평균 수준이다. 독일 정부의 노후 대비 보고서에 의하면 고령층 부부의 매달 순가처분소득은 총 2543유로(약 325만원)이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이어지는 사민당-녹색당 연립정부의 연금개혁 이후 연금 인상률은 임금 인상률보다 낮아졌다. 그럼에도 8년 전부터 매년 7월이면 연금이 인상된다. 옛 동독 지역이 약 3%, 옛 서독 지역이 2% 수준이다.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2019년 7월 연금급여는 3% 이상 인상될 예정이다. 2018년 7월 하인츠 브레베와 아내의 국민연금 인상액은 각각 50유로, 20유로 수준이었다. 큰돈은 아니어도 일상에서 체감이 가능하다.
 
브레베 부부의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모델은 기본 사양만으로도 금액이 만만치 않다. 이들은 오토바이에 아낌없이 돈을 썼다. 검은 플라스틱 제동장치 대신 은색 제동장치를, 검은 손잡이 대신 번쩍거리는 크롬 손잡이를 달았다. 오토바이를 탈 때면 등에 해골 문양이 있는 가죽점퍼를 입는 게르트루트는 “오토바이는 내 자랑거리”라고 했다. 브레베 부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신호등에서 기다리면 자동차 운전자, 특히 고령층 운전자들이 존경의 눈길로 부부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고령층 다수 중산층 속해
부부를 부러워하는 이들은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의 주요 고객으로 평균연령은 50살 전후다. 고령층은 신차 구매와 국내 여행에서 가장 구매력이 높은 고객층이다. 그들은 재정적 여력이 있다. 경제학자 유디트 니후에스(36)는 “현재 적잖은 고령층 인구가 중산층에 속한다”고 했다. 
 
니후에스는 1년 전 발표해 주목받은 연구보고서에서 “지난 30년간 고령층이 빈곤의 나락에 빠질 위험이 크게 줄었다”고 적었다. 언론은 보고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일부 고령층은 해당 보고서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한 남성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폭탄을 터뜨렸다”고 역정을 내기도 했다. 니후에스의 보고서는 ‘노후=빈곤’이라는 고정관념을 포함해 연금개혁 논의의 바탕이 되는 수많은 믿음이 잘못됐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그는 “고령층 상황이 무조건 좋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20년 전과 비교하면 현재 많은 고령층이 대체로 잘 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니후에스는 1991년 이후 다양한 연령층의 실질임금 추이를 연구했고 그 결과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55살 이상 연령층에서 가구별 실질 가처분 세후소득 평균치가 34살 이하 연령층의 실질 가처분 세후소득 평균치보다 인상폭이 훨씬 높았던 것이다.
 
니후에스는 그 이유를 시대 변화를 들어 설명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고령층 1인 가구 비율이 줄었다. 값비싼 1인 가구 주택을 재정적으로 감당하는 젊은층과 젊은 한부모 가정이 늘어난 반면, 고령층은 2인 가구가 늘었다.” 노후를 함께 보내는 고령층 부부 대부분이 젊을 때부터 각자 연금보험을 납입했다. 부부가 각각 연금을 받기에 큰 액수가 아니더라도 1인 연금보다는 재정적으로 훨씬 윤택하다. 특히 옛 서독 지역에선 많은 노년층이 부동산, 퇴직연금, 고성장 시기에 납입을 시작한 개인연금을 보유하고 있다. 66~70살의 평균 순자산이 17만5천유로(약 2억2천만원)로, 전체 성인의 순자산 중간값인 8만3천유로보다 훨씬 높았다. 
 
실버주택 입주하는 노령층
로젠호프 케테, 아우구스티눔 등 실버주택 업체는 재정적 여유가 있는 고령층을 집중 공략한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소수의 고령층은 뮌헨, 베를린, 콘스탄츠 등지의 테르티아눔 레지던스에 입주한다. 안나 싱겐 마케팅 이사는 “실버주택이나 레지던스 입주자는 집 같은 안락함과 고급 호텔의 편리함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고 홍보한다. 
 
가브리엘 론데(92)는 4년 전 테르티아눔에 입주했다. 테르티아눔은 노후에도 젊은 시절 수준의 높은 생활 여건을 기대하는 고령층을 위한 레지던스다. “이곳에서 충분히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레지던스에서 러시아의 민속악기 발랄라이카 공연 등을 볼 수 있는 게 좋다.” 
 
론데는 테르티아눔에서 아주 작은 면적(55㎡)의 아파트에 사는데, 매달 3600유로(약 455만원) 정도를 내고 있다. 이 금액에는 코스 요리, 문화 프로그램, 거주자의 다양한 요구를 들어주는 서비스, 위급 상황일 때 외래진료가 포함됐다. 그가 받는 국민연금 1100유로(약 140만원)와 유족연금만으로는 레지던스 거주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론데는 레지던스 거주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전의 삶을 모두 정리했다. 생명보험료를 쏟아부었고, 자가주택은 월세를 줬으며, 소형 메르세데스 자가용은 처분했다. 여느 연금수령자라면 꿈도 못 꾸겠지만 론데에게는 재정적으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령층에서도 재정적 상황은 극과 극의 차이를 보인다.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테르티아눔 레지던스나 호화 크루즈 여행을 다닐 정도로 여유가 있는 연금생활자, 상속인, 기업인, 전직 공무원이 있다. 이들은 노후에 법정연금의 2배에 이르는 풍족한 연금을 받는다.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는 얼마 안 되는 법정연금에 의지하는 대다수 고령층이 자리한다. 이들은 한평생 쥐꼬리만 한 임금을 받으며 힘들게 살아왔고 실직 등 시대 변화를 온몸으로 부딪쳐야 했다. 에버하르트 하이니히(77)가 이 유형에 속한다.
 
하이니히는 “독일 통일과 함께 내 인생은 지워졌다”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베를린장벽 붕괴 뒤 그는 수차례 인생 항로를 변경해야 했다. 통일 전 옛 동독에서 잘나가는 산업디자이너이던 그는 버킷 굴착기와 도로 청소차, 조립식 캠핑 트레일러, 플라스틱 유모차 모델을 설계했다. 학술지에는 그의 진보적인 산업디자인 기사가 여전히 실린다. 옛 동독에서 보기 드문 자영업자였던 그는 연금공단에 최저 수준의 보험료만 냈다. “노후 자금이 어떻게든 충분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동독 몰락과 함께 하이니히의 고용주들이 파산했다. 일거리와 함께 그의 노하우도 사라졌다. 3년간 실직 상태에 있었지만, 하이니히는 포기하지 않았다. 직업 재교육을 받았고, 컴퓨터그래픽 프로그램 작업을 시도했으며, 베를린에서 태양광기술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베를린 프렌츠라우어베르크에 연 매장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그는 퇴직 전까지 교회 건물 관리인으로 일했다. 
 
현재 히이니히가 받는 연금은 800유로(약 101만원)가 채 되지 않는다. 그는 때때로 유치원에서 주방보조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나마 살고 있는 소형 주택 임대료가 싸고 불우이웃 급식소에서 전날 빵을 가져와 겨우 입에 풀칠하고 있다. 하이니히는 오랫동안 연금제도 개선에 대해 생각해왔다. 그의 아이디어에 따르면, 고소득층이나 저소득층 모두를 위해 연금 소득대체율이 인상돼야 한다는 건 틀렸다. “훨씬 더 나은 방법은 전적으로 연금에만 의존하는 저소득층의 ‘용돈연금’을 인상해야 한다.” 
 
소득대체율 인상이 만병통치약?
많은 경제학자가 하이니히의 의견에 손을 들 것이다. 연금 소득대체율을 소득과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올리면, 고소득층과 평균소득자의 전반적인 연금 수령액이 커진다. 그 체감 수준은 하인츠 브레베, 가브리엘 론데와 레지던스 입주민 등 넉넉한 연금을 받는 퇴직자들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반면 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이 저소득층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군둘라 로스바흐 독일연금보험 대표 역시 “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이 노년 빈곤을 극복하기 위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연금 소득대체율이 오르면 형편이 아주 어려운 연금 수급자나 어머니연금 수혜자가 국가에서 받는 추가 지원 효과를 반감시킨다. 현재 연금 수급자 3%는 국가가 지급하는 기초연금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연금 가입 기간이 짧았거나, 아주 낮은 보험료를 낸 이들이다.  

* 2019년 1월호 종이잡지 60쪽에 실렸습니다.
 
ⓒ Der Spiegel 2018년 46호
Falsche Versprechen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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