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특집
     
안정적인 재원 확보 대책 논의부터
[Special Report] 독일의 연금개혁- ② 근본적 대안
[105호] 2019년 01월 01일 (화) 크리스토프 코프만 등 economyinsight@hani.co.kr
크리스토프 코프만 Christoph Koopmann
코르넬리아 슈메르가 Cornelia Schmerga <슈피겔> 기자 
 
   
▲ 독일에서 은퇴한 뒤 상대적으로 낮은 연금을 받는 이들은 연금개혁안 통과로 소득대체율이 오르더라도 그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다. REUTERS
에버하르트 하이니히는 연금 소득대체율이 오르더라도 혜택을 거의 못 본다. (동)베를린 프렌츠라우어베르크 지구에서 채소나 요구르트를 받기 위해 대기번호를 뽑아야 하는 연금 수급자의 상황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사람 중 하나가 대기번호 39번을 뽑은 얀케(74)다. 직공 출신으로 퇴직 전까지 요양보호사로 일한 그가 현재 받는 연금은 700유로(약 88만원)가 채 안 된다. 대기번호 5번을 손에 쥔 헤메(68)는 6개월 동안 이사업체에서 일한 뒤 현재 사회복지국에서 월세를 지원받고 있다.  
 
독일 거대 양당이 ‘용돈연금’ 인상을 위해 여러 묘안을 짜낸 지도 10여 년이 흘렀다. 보조금연금(Zuschussrente·기독교민주연합 소속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당시 노동부 장관, 현 국방부 장관이 2012년 주장한 용돈연금을 매달 850유로로 인상하자는 뼈대의 연금안), 연대연금(Solidarrente·보조금연금의 2012년 사회민주당 버전), 생애업적연금(Lebensleistungsrente·보조금연금과 연대연금의 타협안. 2013년 기민·기사련과 사민당의 대연정 정부 연정계약서에 합의한 연금안), 보증연금(Garantierente·녹색당이 노년 빈곤에 대응하기 위해 주장한 매달 최저 850유로 상당의 연금안) 등 여러 명칭이 붙은 연금의 덫에 빠져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각 원내 정당이 명칭만 다른 비슷한 내용의 연금개혁안을 이미 법안으로 제시했지만, 이 중에서 어느 것도 국회 문턱을 통과하지 못했다. 현재 기초연금(Grundrente)으로 불리는 연금안은 2018년 3월 연정 계약서에 명시됐지만 새 연금개혁안에선 제외됐다. 기민·기사련과 사민당은 다른 용돈연금 수급자를 위한 연금개혁안의 결정을 일러도 2019년 여름으로 연기했다.  
 
2017년 8월 당시 사민당 대표인 지그마어 가브리엘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최저연금 도입을 요구했다. 그가 제시한 방안은 사민당에서조차 반대에 부딪혔다. “당의 크나큰 실책이었다. 40년 이상 정규직으로 일했는데도 매달 세후 급여가 1천유로가 안 되는 사람을 수없이 봤다. 옛 동독과 저소득 지역에서 특히 심각한데 이런 유권자들이 사민당을 대거 이탈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순 연금 모델로 최저연금 도입을 주장한다. 40년 이상 정규직으로 일한 사람은 노후에 매달 최소 1천유로(약 127만원) 연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다수 사회복지 전문가도 연금 소득대체율 논의에 발목 잡히지 말고 일단 저소득층을 위한 연금개혁안을 발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래의 연금 부과 방식은 경기와 이민자 수 등 수많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토대로 한다. 사전에 확실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미래의 고령층 인구뿐이다. 2025년, 2030년, 2040년 퇴직해 연금을 받는 이들의 수는 인구 통계치에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도 연금 개혁 방안을 둘러싼 논의에서 해당 통계치는 무시되기 일쑤다. 베이비붐 세대(1955~68년 출생)가 퇴직 대열에 동참해 연금 수급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하필 기민·기사련과 사민당은 연금급여 산식에서 ‘지속가능성’을 없애려 한다. 
 
   
▲ 자영업자, 공무원 등은 은퇴 뒤 높은 연금을 받아 실버주택에 입주하기도 하지만, 젊을 때 고소득자가 아니었던 많은 고령층은 낮은 연금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REUTERS
지속가능성 간과하는 정부
2018년 9월 연금위원회의 한 위원은 연방하원의 기민·기사련 원내단체를 향해 연금 재정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연금이 고갈됨으로써 그 지속가능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막스플랑크 사회법·사회정책연구소 악셀 뵈르슈슈판 소장이 제시한 독일 인구 고령화 수치를 보면, 현재 70·80대가 있는 가장 왼쪽에 ‘젊은이 다수’가 있는 반면, 미래를 가리키는 맨 오른쪽에 ‘노년층 다수’라고 굵은 글씨로 적혀 있다. 
 
2018년 기준 65살 이하 성인 3명이 65살 이상 고령층 1명을 부양한다. 2035년이면 성인 2명이 고령층 1명을 부양해야 한다. 연금개혁안을 논외로 치더라도 후세대 부담이 점점 늘어나는 구조다. 대연정 정부는 “연금개혁안이 후세대에 부담을 가중한다는 비난은 틀린 주장”이며 “이들도 훗날 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혜택을 받는다”고 반박한다.  
 
이는 정치권이 남발한 주장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오류다. 독일경제연구소 분배전문연구원 마르쿠스 그라브카는 “이 말은 후세대가 연금기금에 보험료를 내도 된다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우아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연금 논의에서 미래에 대한 쓸데없는 우려는 되도록 안 하려 한다. 연금이 신구 세대가 분배 투쟁을 하는 장이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연금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각 세대는 물론이고 한 세대 안에서도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으로 양분돼 있다. 연령층마다 형태만 다를 뿐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 
 
단, 그라브카가 위험하다고 보는 불길한 트렌드는 나이가 낮을수록 빈곤 위험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생들의 30살 기준 빈곤 위험은 10%에 불과한 반면, 1980년대생의 30살 빈곤 위험은 23%로 치솟았다. 노동시장·직업연구소 역시 신구 세대 사이 임금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 자녀 세대는 부모 세대와 비교해 고소득을 얻기 더 힘들어졌고, 자녀 세대가 후일 받을 연금도 낮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다비트 스추보틱스(28)의 연금가입 내용 안내서를 보면, 그는 연금 수급 첫해인 2057년 매달 775.47유로(약 98만원)를 받는다. “이걸 보니, 연금 수급자가 되기 전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모든 세대에게 연금제도의 신뢰와 공정성을 약속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저소득층 연금을 올리고, 연금 인상분을 기초연금과 연계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REUTERS
젊은 세대 연금 수혜 불확실
대다수 고령층의 직업 일대기는 직업교육에서 시작해 첫 직장, 정규직, 연금으로 이어지는 장편소설과 닮았다. 스추보틱스는 이미 수많은 단편소설을 썼다. 그의 이력은 실업학교 졸업으로 시작해 요리사 직업교육, 1년 단기계약의 연속, 1200유로에도 못 미치는 매달 세전소득으로 이어진다. 그는 기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휴가 때면 음악잡지에 사진을 찍어 부수입을 벌었다.  
 
스추보틱스는 2년 전부터 주업으로 사진작가로 일하고 있다. 독일 패션 이커머스 플랫폼 찰란도(Zalando) 홈페이지에 올릴 신발과 셔츠 사진을 찍고 모델 스타일링을 한다. 노동계약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정규직으로 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매달 세전 1850유로(약 233만원), 세후 1310유로(약 165만원)를 번다. 스추보틱스의 옷장에는 후드재킷 4벌과 바지 3벌이 전부다. 그에게 옷이 더 필요하지도, 더 많은 옷을 누릴 여유도 없다. 스추보틱스는 임금 인상 투쟁을 위해 공공부문 노동조합연합에 가입했다.
 
스추보틱스의 꿈은 베스파 브랜드의 스쿠터 한 대를 장만하는 것이다. 미래를 위한 저축도 꿈꾼다. “현재 개인연금은 엄두도 못 낸다. 개인연금까지 가입하면 거지가 될 처지다.” 안타깝게 그의 세전 급여는 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연금공단 추정치에 따르면, 2019년 1월 연금 보험료율이 현재 18.6%에서 18.2%로 내리지만, 늦어도 2025년 20%로 인상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가 세수를 대대적으로 추가 투입해야만 그나마 상한선을 20%로 유지할 수 있다. 지금도 연간 국고 940억유로가 연금공단으로 흘러간다. 
 
마르틴 베르딩 교수에 따르면, 이번 개혁안이 연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명확하다. 지금 고령층은 남은 생애에 낸 보험료보다 더 많이 연금급여를 받는다. 이 돈은 실질적으로 젊은 세대에게 미리 가져와서 쓰는 것이다. “후일 젊은 세대가 연금 수혜를 받을지 불확실하다.” 앞으로 몇 년 동안 공적연금 압박이 거세질 것이다. 최악의 경우 연금은 어느 순간 완전히 고갈될 수 있다. 실망으로 변한 연금의 기대치는 정치적 위험이 될 것이다.  
 
   
▲ 전문가들은 후세대의 부담을 덜어주고 지속가능한 국민연금을 위해 정년 연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REUTERS
연금 수급 나이 연장도 제안돼
베르딩 교수는 해결책으로 연금 수급 나이 연장을 제안한다. “연금 보험료나 세금을 올리지 않고 지속가능한 연금을 보장하는 방법이다. 정치적 모험을 걸어야 하지만, 정년 연장은 고령화 부담을 전 세대에 공평하게 나누는 지렛대가 될 것이다.” 
 
‘부과 방식’(적립금 없이 그해 가입자가 낸 돈만으로 연금을 주는 방식)이 도입된 1957년, 당시 연금 가입자의 수급 기간은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지금은 거의 20년에 이른다. 독일 경제전문가그룹(경제 5현)은 2018년 11월14일 연간 전문가 보고서에 연금 수급 나이 연장을 요구했다. 헤르만 그뢰헤 기민·기사련 원내 부대표 역시 11월8일 “사고에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70살까지 일한다면 고령화에 따른 부담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연금 보험료 납부자는 늘어나는 대신 연금급여 수급자는 줄어든다. 연금공단에서 주는 연금급여도 자동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다행히 연금개혁 논의에서 연금 수급 나이 연장이라는 금기가 서서히 깨지고 있다. 포퓰리즘 정치 덕분이다. 
 
정치권 공약과 법정연금 대안을 불신하는 수많은 젊은이는 지금도 충분히 착취당한다고 생각한다. 에바 비들(31)과 그의 남편 하네스 비들(28)도 마찬가지다. 2018년 8월 결혼한 이들은 집이 없다. 노후 대비를 위해 자가주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부모 소유의 방 2개가 있는 54㎡  크기의 집에 살고 있다.
 
비들 부부는 3년 전부터 뮌헨에서 북동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에르딩 인근에서 집을 알아보고 있다. “자녀 한두 명과 작업실 공간을 갖춘 집을 찾고 있는데, 때때로 힘이 쭉 빠진다.” 하네스의 푸념이다. 뮌헨의 위치 좋은 부유한 근교 주택은 지난 몇 년간 매매 가격이 폭등했다. “20년 전 부모님은 집을 살 여력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내 집 마련을 하면 재정이 파탄 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부부의 수입은 비교적 좋다. 에바는 뮌헨과 프라이징 대교구에서 청소년 상담사로 일한다. 목수인 하네스는 직업교사가 되기 위해 재교육을 받고 있다. 둘은 현재 수준으로 노후에 매달 2854.13유로(약 360만원)를 연금으로 받는다. 적잖은 액수 같지만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둘은 연금에만 기대어 노후 대비를 할 생각이 없다. 자가주택은 재정 안정을 가져다주겠지만 도무지 마련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부가 저축액을 늘리기도 무리다. 소액에 불과한 개인연금은 노후를 대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에바는 “우리 노후는 부모님처럼 여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금 불신하는 젊은 세대 
모든 세대에게 연금제도의 신뢰와 공정성을 약속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저소득층 연금을 충분히 올리고, 연금 인상분을 기초연금과 연계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정년 연장이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방법이 될 수 있을지 솔직한 논의가 필요하다. 국가가 지원하는 추가 연금에 대한 실용적인 개선 방안도 요구된다. 이 모든 것이 수년째 논의만 될 뿐, 연금개혁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비들 부부는 정부 대책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2019년 여름 직업학교 교사 재교육이 끝나는 하네스는 다른 경로로 노후를 대비할 생각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된다면 그는 공무원이 될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과의 작별, 공무원연금의 시작을 의미한다. 

* 2019년 1월호 종이잡지 65쪽에 실렸습니다.
 
ⓒ Der Spiegel 2018년 46호
Falsche Versprechen
번역 김태영 위원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크리스토프 코프만 등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권태호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장철규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