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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디지털 기록은 안전한가요?
[Special Report] 잊히는 기억- ① 북극의 보물창고
[101호] 2018년 09월 01일 (토) 구이도 클라인후베르트 economyinsight@hani.co.kr
디지털화가 인류의 기억을 위협하고 있다. 한쪽에선 잊힐 권리를 얘기하지만 다른 쪽에선 의도치 않은 자료 손실이 문제되고 있다. 1980~90년대 플로피디스크나 CD에 저장한 데이터, 심지어 이동기억장치 USB에 저장한 정보 수명도 10년 남짓이다. 저장장치 속 추억의 기록이 온전히 보존될지 이젠 장담할 수 없다. 디지털 저장장치는 끊임없이 발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그 접점은 어디에 있는가.  _편집자
 
구이도 클라인후베르트 Guido Kleinhubbert 
힐마어 슈문트 Hilmar Schmundt <슈피겔> 기자 
 
   
▲ 디지털 기록 보관업체 피클(Piql) 관계자들이 브라질과 멕시코의 자료보관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피클 제공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 스피츠베르겐섬에 눈보라가 친다. 눈발에 얼굴이 따갑다. 온도계가 영하 10도를 가리킨다. 루네 비에르케스트란이 택시에 올라탄다. 산악지대 도로 양쪽에 세워진 ‘야생동물 주의’ 경고판들을 뒤로하고 20분을 달리니, 그가 ‘망각’에 대항해 전투를 치르는 비밀스러운 장소가 나타났다. 차를 세운 곳은 눈에 반쯤 파묻힌, 한때 탄광이었던 3번 갱도 입구다. 그가 노란색 헬멧을 머리에 쓰고, 이내 쇠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과거 석탄이 무개화차에 실려 외부로 이송됐던 선로를 따라 걸음을 옮긴 비에르케스트란이 커다란 컨테이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의 한 선반 위에, 그가 비행기로 오슬로에서 실어온 평평한 플라스틱 통을 얹었다. 재난 위험에서 안전한, 북극과 인접한 이 외진 장소를 그와 동료들이 물색한 이유는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나 중국 명대 도자기 같은 과거의 진귀품을 저장해놓기 위해서가 아니다. 금이나 호박으로 만든 보물을 보관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민감하며 가치가 큰 인공물, 바로 데이터가 이곳에 놓일 것이다. 
 
이 데이터가 훼손되면 영향받는 곳은 관청이나 연구기관, 기록물보관소만이 아니다. 그 범위는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모든 기관과 개인을 망라한다. 독일 각 가정의 서랍 안에는 가족·여행 사진, 여행 비디오 등 디지털 자료가 가득 찬 이동저장장치(USB), 시디(CD)롬, 낡은 휴대전화가 차지한다. 이 디지털 귀중품들은 여차하면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로 소실될 위험을 안고 있다.
 
데이터가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비록 이 문제가 대중의 의식 속에 아직은 선명히 자리잡지 못했더라도– 디지털 사회가 해결할 수 없는 커다란 당면 과제 중 하나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데이터 사용자 중 30%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복사본을 만들어놓지 않는다. 컴퓨터나 태블릿피시, 혹은 스마트폰의 저장 기능이 혹시 중단되지 않을까를 따질 계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기정사실이고, 그 시기가 언제인가 하는 점이 문제일 뿐이다. 상황이 심각한 만큼 전문가의 경고 역시 암울하다. 
 
구글 부회장인 빈턴 서프는 한 세대가 보유한 지식이 통째로 잊히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데이터 대부분이 사라지면 미래의 고고학자들은 그들이 발견한 자료만을 토대로 새로운 과거 사실을 제대로 밝혀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고미술사학자 호르스트 브레데캄프 역시 “우리 시대는 기록을 남기지 못하는 역사 없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 피클의 디지털 기록 보관소로 쓰이는 네덜란드 스발바르제도의 탄광 내부. 피클 제공
기록과 데이터 보관하는 북극의 저장고 
비에르케스트란이 설립한 디지털 기록 보관업체 피클(Piql)은 전세계가 겪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들은 지리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 한편으로 기상학적으로 인간이 살기에 가장 악조건인 북극에 데이터 벙커를 지었다. 데이터 저장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스피츠베르겐섬에 세워진 보관소 안에는 빛, 열, 습기뿐 아니라 산소도 희박하다. “사람이 살기엔 혹독하지만, 데이터가 보존되기엔 완벽한 조건”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피클의 저장 수단은 초현대적인 이동식 저장장치가 아니다. 이들은 유통되는 어떤 저장장치도 믿지 않는다. 몇십 년 뒤엔 전부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피클은 과거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영화 기술에서 빌린, 특수 개발한 감광성 필름에 고객의 중요한 정보를 저장한다. 고객 중에는 멕시코와 브라질, 바티칸시국도 있다. 이 필름은 최소 750년 동안 훼손되지 않은 채 저장이 가능하다.  
 
북극과 같은 조건에서라면 이 저장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 피클 고객들의 자료는 디지털 저장장치와 아날로그 매체가 서로 호환되도록 하기 위해 오슬로 인근 드람멘에 있는 피클 본부에서 특수 QR코드로 변환된다. 이 코드는 다시 영화용 필름에 빛의 암호로 기록된다. 미세한 정사각형마다 각각 2MB의 데이터를 저장한다. 대략 사진 한 장, 이(e)북 한 권, 또는 MP3 노래 한 곡에 해당한다. 
 
비에르케스트란이 개발한 이 방법 덕분에 컴퓨터로 제작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비디오게임, 더 나아가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소장 자료까지 전부 QR코드로 변환할 수 있게 됐다. 연방문서보관소 자료를 모두 저장하려면 수천km에 이르는 필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 저장 방식은 지금껏 다른 어떤 서버도 장담하지 못한 고도의 안전성을 보장해준다. 북극 산악지대에 있는 데이터 저장고는 원자폭탄이 터져도 전혀 영향받지 않는다. 게다가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 사이버 공격에도 안전하다. 
 
   
▲ 피클의 저장장치. 과거 흑백영화의 기술을 응용해 필름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이다. 피클 제공
플로피디스크·CD·DVD 등 수명 한계
데이터 소멸을 막기 위한 전투는 북극뿐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동시에 치러지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수많은 연구·개발자, 독일의 문서보관소에서도 이 논의가 한창이다. 이를 연구하는 학과는 물론 ‘자료구조자’(Datenretter)라는 새로운 직업도 생겼다.
 
46살의 샤힌 네스바트게이트의 직업은 자료구조자다. 햇살이 따스한 어느 날, 그가 함부르크 바름베크에 있는 사무실에서 화면이 깨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관찰하고 있다. 이 스마트폰은 전날 화장실 변기 속에 빠진 것이다. 고객이 소변을 보면서 스마트폰으로 전자우편을 열어보던 중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엄지손톱만 한 메모리칩을 스마트폰에서 꺼낸 네스바트게이트는 칩 표면을 유심히 살피더니, 다른 기계 안에 그 칩을 끼웠다. 물에 빠진 뒤 다시 열리지 않는 사진과 필름의 복원을 돕는 기계다. “침수 피해의 전형적 사례”라고 말문을 연 그는 “사진 자료를 되찾을 방법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네스바트게이트는 법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대학 시절 수년간 정보기술(IT) 시스템 관리자로 일하며 깨달았다. 변호사 한 명쯤이야 더 생기든 말든 별 문제가 없지만, 잃어버린 데이터를 복구하는 사람은 확실히 필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오래 생각할 필요 없이, 그는 사무실을 열었다. 현재 그는 저장장치를 복구하는 일에 밤낮으로 몰두하고 있다. 그의 책상 위에는 DVD, 디지털카메라 칩 카드, 2000년대 초반 생산된 휴대전화 등 고장난 각종 저장장치가 즐비하게 놓여 있다. 
 
변기 속에 빠져야만 디지털 장치가 고장나는 건 아니다. 한동안 쓰지 않아 방치된 채 먼지만 쌓여도 고장의 충분한 조건이 된다. 습기도 원인이다. 저장장치 수명이 ‘몇 년’이라고 정해진 건 아니다. 하지만 직접 저장한 CD·DVD, USB, SD카드(휴대 전자기기에 쓰이는 플래시메모리카드) 등은 10년 이상 기능을 유지하지 못한다. 5.25인치 디스크는 고사하고 그 후속 모델인 1990년대산 3.5인치 디스크도 현재 거의 사용이 불가능할 것이다. 데이터를 읽는 장치들이 기껏해야 고물 수준의 가치만 인정받는 이유다.  
 
네스바트게이트는 “워낙 아주 민감한 제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저장장치들을 읽는 기계를 소유한 그는, “완전히 파괴된 하드디스크에 저장됐던 데이터까지 재생시킨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때마다 그는 고객에게 “앞으로는 반드시 백업(복제) 장치를 해놓으라”고 조언한다. 
 
인터넷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법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조차 100% 안전하지는 않다. 클라우드 쪽에서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자신의 실수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다면 난감하다. 클라우드의 기본 구조도 평범한 전산센터나 다름없다. 번개, 정전, 시스템 관리자 실수, 기술적 사고 등 여러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몇 년 전, 마이크로소프트 고객이 클라우드에 저장한 캘린더와 주소 데이터를 부분적으로 잃어버렸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조차 백업 장치를 해두지 않았던 것이다.
 
오랫동안 정상적인 상태로 데이터가 유지되도록 확실한 조처를 해두고 싶다면 여러 개의 백업 장치를 만들어놓아야 한다. 중요 문서를 인쇄해놓는 것도 필요하다. 전자우편과 와츠앱(페이스북 메시지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으면 연애 시절 나눴던 매혹적인 대화들이 영원히 사장되는 불상사를 맞을지 모른다.
 
한 여성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 5년 된 휴대전화를 들고 네스바트게이트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휴대전화 속 메모리칩에 미세한 금이 가 있었다. 흔히 있는 사고지만, 그는 고객을 도울 수 없었다. 고객은 딸이 탄생한 순간부터 두 살이 될 때까지 찍은 사진과 영상 데이터를 모두 잃어버렸다. 어린 아들 둘이 있기에 네스바트게이트는 고객을 더욱 딱하게 여겼다. 고객은 백업을 전혀 하지 않았고, 클라우드에 사진을 저장하지 않았으며, 단 한 장의 사진도 인쇄하지 않았다. 그는 아주 솔직하게, 고객의 경솔함을 지적했다. “자녀의 성장 사진 같은 중요한 자료는 디지털 기술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중요한 자료라면 손톱만큼의 작은 위험이라도 다 예방해야 한다. 사진은 반드시 인화지에 인쇄된 형태로도 갖고 있어야 한다.”   
 
   
▲ 디지털 저장장치 연혁
백업, 클라우드·분산 저장, 인쇄가 최선
토비아스 슈타인케도 같은 상황이라면 이렇게 충고했을 것이다. 슈타인케는 독일 최대 데이터뱅크를 책임지고 있다. 그는 데이터가 컴퓨터에 저장됐을 뿐 아니라 종이에 인쇄된 형태로도 존재한다는 것을 뿌듯해한다. 그는 수집 자료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 방문객이 가늠할 수 있도록 매번 그들을 지하실로 안내한다. 면적이 축구장 4배에 이를 정도로 독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그럼에도 이 광대한 공간이 언젠가는 좁게 느껴질 것이다. 
 
이 지하실은 바로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독일 국립도서관 창고다. 1946년부터 최근까지 큐레이터들이 선정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여기엔 중요한 소설과 실용서, 잡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일 안에서 출판·집필된 것은 물론 독일을 주제로 한 출판물을 총망라한다. 픽시북(Pixi-book·손바닥 크기의 정사각형 모양 아동용 그림책 시리즈로, 1954년부터 지금까지 발행되고 있다), 모든 박사학위 논문, 독일 여행 안내서 등 1100만 건 넘는 문서가 소장됐다. 지금도 날마다 수천 자료가 들어오고, 이는 모두 디지털로 저장된다. 서적뿐 아니라 영상 자료도 보관하는데, 이는 라이프치히 국립도서관 소관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모든 영상 자료가 수집되는데 작센주 오샤츠 지역 교사 합창단의 공연 녹화 테이프도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슈타인케는 “왜 종이 자료와 비디오·오디오 테이프 자료 수집을 완전히 중단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국립도서관의 경우, 독일 안에서 출간된 이(e)북이나 대학교 입학시험 답안지를 포함한 많은 자료를 하드디스크에만 저장한 지 오래다. 슈타인케는 “종이와 그 밖의 아날로그 데이터 저장장치 사용을 전적으로 포기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고 여긴다. 
 
기후 조건에 따라 종이책은 수백 년을 견디는 반면, 디지털북은 단 몇 년만 지나도 보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게다가 디지털 자료 보존에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저장장치는 민감한 기계가 아니다. 하지만 데이터 포맷이 끊임없이 변한다. 시장에 새로 출시되는 컴퓨터가 기존의 모든 데이터 포맷을 아우를 수 있다면, 다시 말해 호환성이 있다면 매우 실용적일 것이다. 현실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애플, 삼성 등의 업체가 쓰는 DOC, DOCX, PDF, TXT, XLS, GIF, MP3, WMA, FLV 등의 확장명을 가진 파일이나 그 외의 옛 자료를 훗날 열어볼 수 있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들 컴퓨터 업체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과거 자신들이 개발한 각종 디지털 저장장치를 폐기한다. 그리고 새로 개발한 컴퓨터에 맞춰 새 저장장치를 시장에 내놓는다. 
 
코블렌츠 국립문서보관소 디지털매거진 연구팀장인 제바스티안 글라익스너는 개탄했다. “이건 마치 거대한 포맷 동물원 같은 형국 아닌가?”  
 
*2018년 9월호 종이잡지 51쪽에 실렸습니다.

ⓒ Der Spiegel 2018년 제26호
Vergessene Generation
번역 장현숙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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