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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게임을 2200년에도 하려면
[Special Report] 잊히는 기억- ② 기록물 저장 노력
[101호] 2018년 09월 01일 (토) 구이도 클라인후베르트 economyinsight@hani.co.kr
구이도 클라인후베르트 Guido Kleinhubbert 
힐마어 슈문트 Hilmar Schmundt <슈피겔> 기자
 
   
▲ 디지털카메라 속에 저장된 사진과 영상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백업(복제)을 해두거나 인화해 보관하는 것이 현명하다. REUTERS
제바스티안 글라익스너 코블렌츠 국립문서보관소 디지털매거진 연구팀장은 경제적 이윤만 따져 과거의 저장장치를 가차 없이 폐기하는 인터넷기업의 행태가 못마땅하다. 그가 속한 팀은 관청과 정당, 조합들의 활동을 기록한 자료를 보존한다. 매년 배달되는 기록물이 3㎞에 이를 정도로, 디지털 자료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외국인 등록명부 등 중앙 데이터뱅크의 백업 데이터를 비롯해 수백만 통의 전자우편, 영화,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 자료, 논문, 비디오, 그래픽 등 다양하다. 1980년대에 사용하던 저장장치도 간혹 눈에 띄는데, 이 자료를 읽는 데 필요한 하드웨어는 이곳에 없다.
 
소멸 위기에 놓인 자료를 보존하기 위해, 글라익스너의 동료들은 ‘데이터를 이민시키는 방법’을 동원한다. 도표와 통계, 전자우편 사용 기록 등 자료 전부를 현재 통용되는 포맷으로 다시 바꿔놓는 것이다. 복잡한 작업일 뿐 아니라 결과도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자주 생긴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는 개인컴퓨터 사용자도 겪을 수 있다. 변모음(움라우트)이나 문단이 갑자기 사라지고 글자 모양이나 각주가 깨지는 경우다. 
 
연방참사회의 위탁을 받아 문화계 자료의 디지털 보존 업무를 맡는 게랄트 마이어는 ‘디지털 이민’ 과정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지닌 민감성 때문에 이미 어마어마한 규모의 ‘데이터 무덤’이 생겨난 것으로 추측한다. 무덤 속으로 사라진 데이터의 양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밝혀진 바 없다. 하지만 알려진 사례만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유추할 수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디지털 이민 과정에서 오류로 토성 관측 위성이 수집한 데이터를 모두 잃었다고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마이어는 미국뿐 아니라 독일의 연구기관과 지방관청 문서고에서도 영원히 사라진 주요 문서가 최소 한두 건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는 “데이터 손실이 위험 수준까지 이르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 연구비를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스마트폰 속에 담긴 소중한 추억을 잃지 않으려면 수시로 데이터를 복제해두거나 클라우드 등에 나눠 저장해야 한다. REUTERS
컴퓨터게임 보존이 어려운 이유 
적어도 첫발은 이미 내디뎠다. 근래 연구협회들이 설립되고 ‘새로운 매체와 디지털 정보의 보존’이라는 학과가 슈투트가르트대학에서 개설을 앞두고 있다. 이 과가 만들어지면 연방문서보관소도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다. 현재 독일 안에서 데이터 붕괴 저지 전투에 참가할 만한 전문인력은 극소수다. 글라익스너는 “그런 전문가들은 대부분 우리 문서보관소보다 훨씬 수입이 많은 곳으로 옮겨간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문서의 장기 보관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다.” 대학에서 정보학을 가르치는 막시밀리안 아이블, 옌스마르틴 뢰벨, 하랄트 라이테러 교수가 공동 연구해 최근 내린 결론이다. 50년 이상 디지털 자료를 보관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이 현재의 디지털 세계가 제공하는 데이터 중 가장 복잡한 데이터, 즉 컴퓨터게임의 문서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글이나 사진 자료와 달리 게임은 종이에 인쇄할 수 없다. 이 데이터는 아날로그 세계로도 변환되지 않는다. 독일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컴퓨터게임 보존에 힘쓰지 않는 것도 이 분야의 연구를 더디게 한다.
 
독일에선 컴퓨터게임이 문화유산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 오랫동안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인류사에서 자동차 발명에 비견될 만큼 획기적 의미를 지닌 디지털 혁명 초기, 독일에는 <퐁>(Pong), <팩맨>(Pac-Man) 같은 게임이 있었다. 게임 보존에 관심을 기울였던 건 베를린에 있는 컴퓨터게임박물관이 거의 유일했다. 이 박물관을 매년 10만여 명이 찾는다. 40~50대 방문객이 많다. 조악한 픽셀 우주선이 밤하늘에 ‘드드드득’ 총을 쏘는 추억의 게임을 하며, 마치 청소년 시절로 돌아간 듯한 경험을 한다.  
 
이 박물관은 독일에서 출시된 2만5천여 개의 컴퓨터게임을 보관하고 있다. 게임 자료를 실제 쓸 수 있도록 구형 비디오게임기와 ‘아미가(Amiga) 500’ 같은 국민 컴퓨터, 아타리(Atari) ST 컴퓨터, 심지어 통일 전 동독 회사에서 출시한 로보트론(Robotron)까지 전부 수집해 관리하고 있다. 가정용 컴퓨터로 역사상 가장 인기 있었던 C64 모델도 20개나 확보했다. 얼핏 많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노후된 코모도어(Commodore) 컴퓨터(미국 컴퓨터 회사 이름의 앞글자인 C를 따서 간단히 ‘C컴퓨터’라고 불렀다)는 하나둘 고장났고, 그 부품들만 다른 기계를 위해 쓰일 뿐이다.
 
“언젠가는 하드웨어가 완전히 마비되고 프로그램도 정지할 것임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이 박물관의 컴퓨터 수집 매니저인 빈프리트 베르크마이어가 말했다. 30년 뒤면 디지털 혁명 시대의 컴퓨터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컴퓨터 기술자가 단 한 명도 없을지 모른다. 오래된 게임이나 응용프로그램을 2200년에도 쓰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베르크마이어가 이를 위해 쓰는 방법은 ‘(단말기) 에뮬레이션(Emulation)’이다. 애플 ‘맥북 에어’ 같은 새 컴퓨터에 특수 소프트웨어를 써서 착각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스스로 마치 오래된 가정용 컴퓨터 C64로 여기도록 말이다. 하지만 이 방법도 곧 한계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새 컴퓨터가 출시되면 이에 맞춰 새 에뮬레이션 기계를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 에뮬레이션 기계도 옛 컴퓨터에 내장된 자료를 그때그때 쓰는 새 저장장치에 전부 복사해야만 비로소 작동할 수 있다.
 
   
▲ 한때 저장장치로 각광받았던 CD와 DVD의 수명은 고작 몇십 년에 불과하다. 특히 직접 데이터를 저장한 CD는 수명이 10년도 되지 않는다. REUTERS
견고하지 못한 지식사회 토대
이런 노력은 정말 해볼 가치가 있나. 마이어는 “보존 가치 여부는 논의할 사항”이라고 했다. 그는 “가치 없는 데이터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며 취사선택에 동의하면서도 “되도록 많은 자료를 건지도록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레브스터 칼레의 생각도 게랄트 마이어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공익단체 ‘인터넷 아카이브(문서보관소)’ 대표다. 칼레는 인류가 일찍이 창출했던 최대의 문서보관소, 다시 말해 ‘월드와이드웹’이 현재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인물이다.
 
인터넷 아카이브는 150여 명의 직원과 동수의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된다. 이들은 ‘보츠’(Bots)라는 자동화 프로그램으로 인터넷을 훑으며 웹사이트에서 발생한 변동사항을 찾아 목록을 작성해 저장한다. 지금까지 문서화한 웹사이트 수는 3조 개가 넘는다. 이 과정에서 만난 이(e)북, 음악 데이터, 영화도 저장 목록에 추가된다. 인터넷 아카이브 규모는 어느덧 30페타바이트를 웃돈다. 독일 국립도서관의 소장도서 전부를 저장할 용량의 1천 배 되는 크기다. 
 
칼레의 아카이브는 무척 정교하다. 1996년 12월16일 <슈피겔> 온라인에 어떤 기사가 났는지 그의 웹사이트(Archive.org)에서 찾을 수 있다.
 
칼레는 말한다. “지식사회의 토대는 기껏해야 모래언덕만큼만 견고할 뿐이다.” 웹사이트 한 개의 평균수명은 겨우 100일, 이후에는 변하거나 사라진다. 웹 링크를 눌렀을 때, 해당 사이트가 뜨지 않으면 그제야 사용자는 사이트가 없어졌음을 알게 된다. 소식도 없이 사라진 링크보다 더 나쁜 사례도 있다. 웹사이트 주소는 여전히 있는데, 그 내용이 다르게 변해버린 것이다.
 
칼레는 소년 시절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하는 꿈을 꿨다. 지금 그는 인터넷 아카이브로 이 꿈을 나름 실현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을 다닌 칼레는 졸업 뒤 성능이 뛰어난 검색기와 데이터 뱅크를 만들었다. 1999년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 이름을 따서 명명한 인터넷회사 ‘알렉사’를 2억5천만달러에 아마존에 팔았다. 이후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진 그는 인류의 디지털 유산을 보존하려는 투쟁을 해오고 있다. 인터넷 아카이브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를 통해 다른 실질적인 역할, 이를테면 가짜뉴스를 찾아내 알리는 도구가 되려 한다. MH17기 격추 사건이 그 사례다.
 
   
▲ 최근 휴대성과 이동성을 장점으로 널리 쓰이는 이동저장장치 USB. 이 매력적인 저장장치도 기능이 영구적이지 않다. REUTERS
가짜뉴스와 역사 왜곡 막는 증거들
2014년 7월17일 말레이시아항공 소속 여객기 한 대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공항에서 쿠알라룸푸르를 향해 이륙했다. 3시간 뒤, MH17기는 친러시아 반군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에서 자취를 감췄다. 동시에 러시아의 소셜네트워크 ‘브이-콘탁테’(V-Kontakte)에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 수장이 자신들이 MH17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하는 동영상이 올라왔다. MH17기는 러시아산 부크(Buk) 로켓미사일을 맞고 추락했다. 이 사고로 비행기 탑승자 298명 모두가 목숨을 잃었다. 
 
여객기가 추락하고 3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이 끔찍한 사진들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분리주의자들이 재빨리 비디오파일을 삭제했지만 너무 늦었다. 그사이 그곳에서 1만여㎞ 떨어진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터넷 아카이브’ 서버 안에 (그 사태에 책임 있는 인물을 색출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인) 비디오파일의 보관용 복사본이 이미 만들어졌다. 
 
유력 정치인이나 보좌관 역시 훗날 돌이켰을 때 당황스러울 수 있는 발언을 인터넷에서 뒤늦게 지우곤 한다. 그리고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발뺌하거나 거짓말을 한다. 자발적인 데이터 저장운동이 역사 왜곡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중요한 공헌을 하는 셈이다. 인터넷 아카이브가 운영하는 보관소와 서버가 스피츠베르겐섬 저장소만큼 안전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칼레 역시 위기에 대처할 방안을 마련해두었다. 아카이브 자료를 복사해 미국 캘리포니아, 캐나다, 유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디지털 도서관에 분산·저장해놓았다. 
 
칼레의 직원들이 지난 몇 년간 수집한 자료가 정치·역사적으로 중요한 내용만 담고 있는 건 아니다. 인터넷 아카이브 서버에는 포럼에서 오가던 객쩍은 소리, 낯 뜨거운 유튜브 동영상, 포르노 사진, 누구도 다시 들여다볼 것 같지 않은 글·사진·비디오가 가득하다. 그럼에도 칼레는 “여러 해가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를 분간할 수 있다”며 “자료를 너무 일찍 추려 나머지 자료를 지워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인터넷 아카이브의 사옥 앞 정원에 세워진 오래되고 낡은 축음기 한 대를 소개했다. 모든 기술이 시간과 함께 사장된다는 것을 경고하는 골동품이다. 칼레가 검정색으로 반짝이는 ‘셸락 레코드판’(표면에 광칠한 축음기용 디스크)을 봉투에서 꺼낸다. 판을 축음기 걸이에 얹고 한두 번 돌린 다음, 디스크 위에 사운드 박스를 얹는다. 댄스용 반주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미 고인이 된 옛 음악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의 유행가를 연주한다.
 
과거에서 건네는 인사라고나 할까. 칼레가 허밍으로 노래를 따라 한다. 지휘자 몸짓을 흉내 내거나, 춤추듯이 허리를 약간씩 흔든다. 디지털 형태로만 존재하는 요즘 히트송을 2100년쯤에도 사람들은 들을 수 있을까. 그조차 전혀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칼레는 자신의 부모가 청년 시절에 듣던 음악을 하드디스크뿐 아니라 20만 개나 되는 레코드판에 저장해 뿌듯하다. 그 20만 장은 그가 지난 몇 년간 직접 수집한 것이다. 확실한 게 좋으니까.  

*2018년 9월호 종이잡지 56쪽에 실렸습니다.
 
ⓒ Der Spiegel 2018년 제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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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장현숙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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