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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묵적 강요의 ‘드레스코드’ 깨가길”
[국내특집] 드레스코드에 갇힌 그들- ③관행을 깨는 사람
[98호] 2018년 06월 01일 (금) 정혁준 june@hani.co.kr

안경 쓰고 뉴스 진행한 임현주 MBC 아나운서 첫 단독 인터뷰

5월21일 월요일,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5월에’처럼 안경 너머 보이는 하늘은 눈부시도록 맑았다. 서울 상암동 MBC 2층 라운지에서 임현주 아나운서를 만났다. 임 아나운서는 4월12일 지상파 뉴스에서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남자 아나운서와 달리 여자 아나운서에게 안경은 ‘암묵적인 금기’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그동안 전화 인터뷰를 했으나 실제 만나 인터뷰를 한 것은 <이코노미 인사이트>가 처음이라 했다. 아침뉴스에서도 썼던 ‘동그란 안경’을 쓴 그는 남색 스트라이프 정장 원피스에 깔끔한 베이지 구두 차림이었다.

정혁준 편집장

   
▲ 임현주 MBC 아나운서. 김진수 기자
MBC 아침뉴스 <뉴스투데이>는 언제부터 진행했나요.
MBC 파업이 끝나고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2017년 12월 26일부터 진행했어요. 5개월 됐네요.
 
안경을 쓰기 전에는 어땠나요.
아침 6시부터 뉴스를 진행하려면, 새벽 2시40분에 일어나 회사에 와서 메이크업을 하고 방송에 들어가요. 하루 3~5시간밖에 잘 수 없어요. 자는 시간이 부족하니 눈이 늘 피곤했어요. 매일 인공눈물을 한 통씩 썼을 정도예요.
 
안경을 쓰고 진행하니 어떤 점이 좋아졌나요.
속눈썹을 안 붙여도 되고 눈 화장 시간도 좀 줄어들었죠. 그 대신 뉴스를 챙겨보는 시간이 늘어 뉴스에 좀더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안경을 쓰기로 결정한 건 언제였나요.
3월 말께 아침뉴스를 진행한 뒤 신문을 봤어요. 평창겨울올림픽 때 컬링 국가대표팀 김은정 선수의 안경 쓴 모습이 화제였지만, 실제 여성이 회사에서 안경을 쓰고 일하는 건 금기 아닌 금기라는 내용이었어요. 방송국에서도 암묵적으로 여성 아나운서는 안경을 안 쓰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때 ‘나부터 안경을 써볼
까’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3주 뒤에 안경을 쓴 건가요.
네, 안경을 쓰기로 결정하고 안경원을 3군데 정도 돌아다녔어요. 막상 사놓고 쓰지는 못했어요. 시청자가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했어요. 프로답지 못하다는 얘기를 들을까 걱정되기도 했고요. <뉴스투데이>를 같이 진행하는 박경추 선배에게 “안경 쓰고 진행하면 어때요?”라고 했더니 “한번 시도해봐” 하시더라고요. 박 선배에게 용기를 얻었죠.
 
반응은 어땠나요.
많은 언론에서 전화가 왔어요. 진보 언론뿐만 아니라 보수까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인터뷰를 요청했어요. 거의 여성 기자 분이셨어요. (웃음) ‘보수적인 방송국에서 어떻게 그런 시도를 했나’ ‘신선했다’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왔나’를 물었어요.
 
친구들에게도 메시지를 진짜 많이 받았어요. 신기한 건, 외국에서도 뉴스가 됐나봐요. 프랑스 <르몽드>에서도 다뤘다고 친구가 얘기해줬어요. 일본에서도 포털 뉴스 1위에 올랐다고 해요. 홍콩, 타이뿐만 아니라 아랍에서도 화제가 됐다고 했어요.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제가 안경을 쓰기 전까지,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는 게 금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사람들에게 이런 것을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기회가 된 것 같아요. 신선하든 낯설든 새로운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제주항공에서도 여성 승무원에게 안경을 쓸 수 있게 했는데 알고 있나요.
네, 그 뉴스 봤어요. 반가웠어요. 뉴스가 나온 뒤에야 많은 사람이 ‘아, 그동안 안경 쓴 여성 승무원을 본 적이 없구나’ 하고 생각했대요. 저도 비행기를 탈 때마다 기내가 건조했는데,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를 낀 승무원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게 되죠.
 
안경을 쓰고 난 뒤 변화가 있나요.
안경을 쓰기 전엔 늘 하던 대로 화사한 속눈썹을 붙이고 전형적인 아나운서 이미지에 맞췄어요.
‘안경 사건’ 뒤 여성 아나운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봤어
 
요. 여성 아나운서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화제가 되고, 또 노출이 됐다는 게 화제가 돼요. 여성은 젊고 예쁘고 섹시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죠. ‘왜 여성 아나운서의 수명은 짧을까’ 생각해봤어요. 아름다움과 젊음에 초점이 맞춰져 그런 것 같아요.
 
이런 평가는 본질과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 아나운서의 본질은 뉴스를 잘 분석하고 시청자에게 신뢰를 주는 거거든요. 이렇게 본질이 아닌 것을 조금씩 끊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지 안경을 쓰면서부터는 완벽하게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지우려고 해요. 예전에는 화사하고 튀는 원피스를 입었다면, 이제는 편하고 심플한 옷을 입으려고 해요.
 
‘안경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생각해볼 게 있다면.합리적이지 않은 금기나 관행을 생각해보고 깨나가면 좋겠어요. 관행을 깨는 사람을 응원해주고요. ‘작은 날갯짓’이지만, 이런 ‘작은 선택’이 모이면 좀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사회가 될 거예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관행을 깨는 일을 남녀 갈등으로 몰아가는 댓글을 본 적 있어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남성에게도 금기가 있어요. 그런 관행을 함께 풀어나가야 해요. 남녀의 성 이슈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깨는 거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임 아나운서는 안경을 쓰면서 좀더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했다. 그동안 뉴스를 진행할 때 많이 조심스러웠단다. ‘여자 아나운서가 멘트를 바꿀 수 있을까’ ‘내가 그럴 능력이 될까’라고 고민하며 혼자 속앓이를 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공을 쌓고 지금보다 좀더 주체적인 아나운서가 되도록 노력할 거예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가 말한 ‘작은 날갯짓’이 떠올랐다. 미세한 변화가 예상하지 못한 큰 결과를 낳는 ‘나비효과’를 상상해봤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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