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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차별의 유니폼’ 물려줘야 하나?”
[국내특집] 드레스코드에 갇힌 그들- ① 이중 차별의 유니폼
[98호] 2018년 06월 01일 (금) 정혁준 june@hani.co.kr

직급 낮은 은행 여직원만 입는 유니폼… ‘아가씨’로 불리며 스트레스 호소

‘드레스코드’(Dress Cord)의 사전적 의미는 ‘모임 목적, 시간, 만나는 사람에 따라 갖추어야 할 옷차림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한 에티켓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드레스코드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금융회사는 직원들이 유니폼을 입어야 고객이 신뢰한다, 여자 아나운서는 안경을 쓰면 안 된다, 이렇게 암묵적으로 복장을 강요한다. 이런 규정에 갇힌 사람, 이를 깨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_편집자

정혁준 편집장

   
▲ 은행 창구 너머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한 은행에서 일하는 김희정(35·이하 모두 가명) 대리는 10살과 6살 두 딸이 잠든 이른 아침 6시50분에 집을 나선다. 출근 시간보다 매일 10분 일찍 은행에 도착한다. 퇴근도 10분 늦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출근길에는 편한 청바지 차림이지만, 회사에 도착하면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다. 어두컴컴한 탈의실 불을 켜고, 옷을 하나씩 바꿔 입는다. 청바지 대신 타이트한 블라우스와 무릎까지 오는 스커트를 입는다. 조끼도 입어야 한다. 무늬가 없는 살구색이나 커피색 스타킹을 신는다. 머리카락은 얼굴로 흘러내리지 않게 매만져야 한다.
 
김 대리는 유니폼을 입고 은행에서 하루 10시간, 일주일에 50시간을 보낸다. 한 달이면 200시간, 14년을 일했으니 유니폼과 함께한 시간만 3만5천 시간이 넘는다.
 
지점에서 일하는 사람은 12명이다. 남성 7명은 유니폼을 입지 않는다. 여성은 5명이다. 여성 모두가 유니폼을 입는 건 아니다. 사원·계장·대리 여직원만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과장은 입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유니폼을 입는 직원은 단 3명이다. 김 대리에겐 ‘슬픈 유니폼 추억’이 있다. 그가 다니는 은행의 한 주주가 백화점에서 유니폼을 입고 경품수령처에 서 있는 여직원 몇 명을 목격했다. 그 모습이 안 좋아 보였던 주주는 해당 은행 임원에게 ‘유니폼 입은 여직원들이 백화점 경품수령처에 있으면 주주 가치를 떨어뜨리니 시정하라’고 요구했다.
 
“곧바로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어요. 점심시간에 유니폼 입고 백화점에 가지 말라는 거였죠. 백화점 지하 식당가에서 밥을 먹거나, 어버이날이나 명절을 앞두고 잠깐 짬을 내 어른들 선물을 사기도 했는데 이제 그럴 수 없게 됐죠.”
 
김 대리는 검은색 머리끈만 산다. 은행에서 색이 있거나 큐빅이 들어간 머리핀을 쓰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큐빅 머리핀을 꽂으면 왜 안 되죠”라고 CS(고객만족)팀에 물어봤다. “그랬더니 ‘손님보다 우월감을 주면 안 된다’고 했어요. ‘손님이 소박한데 직원이 화려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그거 얼마나 한다고…”라는 말이 나올 뻔했으나 입 밖으로 내놓지 않았다.
 
   
▲ 유니폼을 입은 은행 직원들이 인사 연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직급 낮은 여성에게만 유니폼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기업 등 은행 대부분은 직급이 낮은 여성에게만 유니폼을 입게 한다. 대리 이하 여성은 유니폼을 입지만 관리직은 입지 않는다. 남성은 직급이 낮더라도 유니폼을 안 입는다.
 
은행과 같은 금융권이지만 증권사나 보험사에서는 직급이 낮아 유니폼을 입지 않는다. 증권·보험사에서도 이전에는 여직원만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전문성이 떨어져 보인다는 이유와 개인화되는 사회현상을 반영해 유니폼을 없앴다.
 
은행원들은 입사 후 유니폼을 받았을 땐 은행 구성원이 된 소속감에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유니폼을 입으면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으로 평가받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단정한 이미지와 여성성만을 강조한 유니폼을 종일 입다보면 일할 때도 불편하다. 그들은 유니폼을 입으면 전문성을 의심받아 고객이 하대한다고 한결같이 얘기한다. ㄱ은행 박지희 대리는 “유니폼을 입은 여성 직원보다 안 입는 남성 직원에게 상담받고 싶다고 말하는 고객이 많아요. 나보다 어린 남자 직원한테는 ‘대리님’ 하며 존댓말을 쓰고, 유니폼을 입은 제게는 ‘야’ ‘아가씨’ 이렇게 부르는 분이 많아요”라고 했다.
 
유니폼을 입으면 주위 눈치를 보게 돼 마음이 불편할 때도 많다. 다른 사람들이 소속을 알아보니 개인행동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점심식사 때도 고객이 알아보니 근무의 연속 같다고 했다. ㅎ은행 김은정씨가 말했다. “지점장님이 고생한 직원에게 점심을 사준다고 해서 따라갔죠. 푸짐한 묵은지김치찜에 밥을 먹고 있는데, 지점장님이 반주로 한 잔씩 마시자며 소주 1병을 시켰어요. 저 혼자만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소주잔 받는 것도 눈치가 보였어요. 유니폼은 족쇄 아닌 족쇄였죠.”
 
은행에서는 유니폼 디자인을 보통 2~3년에 한 번씩 바꾼다. 은행원들은 막상 유니폼을 입는 직원의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은행장이 하얀색을 좋아하면 하얀색 유니폼으로 바뀌고, 다음 은행장이 항공사 승무원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면 그렇게 결정된다고 했다.
 
ㄴ은행 최아영씨는 “유니폼을 보기 좋게만 하다보니 몇 번 입으면 닳기 일쑤였죠. 게다가 속이 비치는 소재로 만들어 민망한 경우도 있었어요”라고 했다. ㅇ은행 김주희 계장도 불만을 토로했다. “몇 해 전 유니폼은 너무 하얀색이었어요. 겨울에 고객들이 추워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언젠가는 유니폼이 니트 조끼였는데 배가 나와 보여 여직원 모두 임신한 걸로 생각하는 고객이 많았어요. 입고 일하는 직원 편에서 한 번 더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ㄱ은행 장수연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유니폼을 입으니 회사에서도 복장 규정 매뉴얼을 만들어놓았어요. 얼굴과 체형이 모두 다른데도 유니폼에 맞춰 화장해야 하고 긴 머리는 올려야 해요. 스타킹, 머리끈, 매니큐어도 제대로 못해요. 통일성을 위해서라지만 제약이 너무 많아요.”
 
남성도 자유로울 수 없는 드레스코드
은행 대부분은 자체적으로 규정한 깨알 같은 드레스코드를 직원에게 강요한다. 여성 직원에게 간섭 수준이 훨씬 높은 편이지만, 남성 직원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신한은행은 ‘복장 가이드라인’에서 여성 직원은 살구색과 커피색 스타킹만 신고, 겨울에는 재색 스타킹만 신도록 했다. 검은색 스타킹은 신을 수 없는 것이다. 남성 직원은 정장 안에 니트 조끼나 카디건을 입지 않아야 하고, 와이셔츠 단추를 풀거나 소매를 걷지 말도록 했다.
 
하나은행 ‘CS매뉴얼’에서는 여성 직원에게 무릎 길이의 스커트를 입도록 했고, 구두는 검정 또는 진갈색 정장용을 신으라고 했다. 머리 모양은 유행을 지나치게 따르지 말라고 했다. 남성 직원에게는 밝고 산뜻한 색상의 와이셔츠를 입으라고 했다.
 
우리은행이 몇 해 전 만든 ‘우리 드레스코드’를 보면, 여성 직원의 손톱 길이는 2㎜ 이내로 하고, 바지를 입을 때도 스타킹을 신고, 반지는 한 손에 한 개만 끼도록 했다. 남성 직원에게는 안경이 잘 닦여 있는지 확인하고, 셔츠 첫 번째 단추는 반드시 채워 입도록 요구했다.
 
농협은 2017년 각 지역 농·축협에 보낸 ‘직원 평가기준 문서’에 여성 직원의 머리카락과 액세서리가 깔끔하고 화장이 지워지지 않았는지, 머리카락이 얼굴에 흘러내리지 않는지, 이는 깨끗하고 입냄새는 나지 않는지 등 외모 위주로 평가하도록 했다.
 
일부 여성 직원은 유니폼이 편하다고도 얘기한다. ㅅ은행 최미은 계장이 그렇다. “사복을 입고 출근할 때는 아침 일찍 일어나 옷을 골라야 하잖아요. 유니폼을 입으면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죠. 사복을 살 필요가 없어 쇼핑 비용도 줄일 수 있거든요. 저는 유니폼이 나쁘지 않아요.”
 
은행들은 서비스업이니 유니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시중 은행 부행장은 “신뢰가 생명인 금융업은 고객에게 단정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디지털과 4차 산업을 강조하는 은행에서, 여전히 유니폼을 신줏단지처럼 생각하는 것을 두고 개선의 목소리가 높다. 외국계 은행에서 일하는 장세현 과장은 “2000년 이전까지 은행에서 하위직 여성에게 유니폼을 입도록 했죠. 지금은 직원에게 선택권을 주고 있어요. 하위직 여직원이 사복을 입거나 고위직 여직원이 편하다고 유니폼을 입기도 해요”라고 했다.
 
“이른 아침에 출근할 때 잠자는 두 딸들을 물끄러미 볼 때가 있어요. 두 딸에게 ‘차별의 유니폼’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 딸들이 어른이 됐을 때 유니폼은 여자가 입는 것, 직급이 낮은 사람이 입는 것이란 편견이 사라진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 두 딸의 엄마 김희정 대리의 작은 소망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는 6월호부터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드레스코드에서 벗어나자’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최근 들어 많은 기업과 공공기관이 엄격한 드레스코드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복을 강제하는 곳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한 임현주 MBC 아나운서는 우리 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이 뉴스가 화제가 된 뒤 제주항공은 승무원의 안경 착용과 네일 케어를 허용한다고 객실승무원 서비스규정을 바꾸었습니다. 이런 변화가 활발해져 우리 사회가 드레스코드에서 좀더 자유로워지길 바랍니다. 첫 시리즈는 여자라는 이유로, 직급이 낮다는 이유로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 은행 직원 이야기를 다룹니다. 드레스코드와 관련한 제보는 이메일(june@hani.co.kr), 전화(02-710-0591), <이코노미 인사이트> 홈페이지(economyinsight.co.kr)로 보내주시면 기사에 반영하겠습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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