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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에 잿빛 스며든 ‘기회의 땅’
[Special Report] ‘포스트 브렉시트’ 폭풍 전야 프랑크푸르트- ① 기대와 우려
[95호] 2018년 03월 01일 (목) 팀 바르츠 등 economyinsight@hani.co.kr
브렉시트 덕분에 새 금융 허브로 부상… 물가상승·주택난 등 지역민 혼란 우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후폭풍이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강타했다. 영국 런던의 금융기관들이 대거 프랑크푸르트로 이전했거나 준비 중이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는 아직 손님 맞을 준비가 안 돼 있다. 도시의 빈부격차가 커지는 상황에서 유입되는 돈 많고 콧대 높은 런던 출신 금융인들은 달가운 존재가 아니다. 따분하기 그지없는 프랑크푸르트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하는 런던 출신 금융인들도 반갑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주중에만 프랑크푸르트에 머물 생각까지 한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하나 있기는 하다. 바로 프랑크푸르트 부동산업자들이다.
 
팀 바르츠 Tim Bartz
마르틴 헤세 Martin Hesse <슈피겔> 기자
 
   
페터 펠트만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장이 시청광장에서 열린 축제에서 전통의상을 입은 참가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DPA 연합뉴스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일으켜 세우려는 남자는 자신의 ‘거실’을 사랑한다. 거실은, 복원된 독일 전통 목재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시청광장 뢰머베르크를 프랑크푸르트 토박이들이 일컫는 용어다. 페터 펠트만(59) 프랑크푸르트 시장은 집무실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강림절에 크리스마스 장터는 아시아인, 미국인, 바이에른주와 헤센주 출신 독일인 수천 명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펠트만 시장은 꼼짝없이 집무실에 틀어박혀 있다.
 
시청 집무실 주변은 펠트만 시장이 눈을 반짝거리며 프랑크푸르트의 기회와 도전을 언급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펠트만 시장은 양복 재킷을 벗고 테이블 위로 상체를 기울인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서 가장 국제적이고 세계화된 도시”라고 말하는 펠트만 시장은 헤센주 사투리로 머잖아 ‘실업률’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일 최초의 대도시가 될 것이라는 등 프랑크푸르트가 얼마나 멋있는 도시인지 상세하게 설명한다.
 
영국 런던에서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금융계 인재들과 자금 유입, 주택난, 타문화 유입 등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편집자) 후폭풍으로 인한 모든 현상은, 유구한 역사의 무역도시 프랑크푸르트에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라고 펠트만 시장은 강조한다. 인구 73만 명의 프랑크푸르트는 5천 명 넘게 유입한 난민들의 통합도 누워서 떡 먹기처럼 쉽게 해냈다고 말했다.
 
펠트만 시장은 브렉시트에 노골적으로 냉정한 자세를 취해 프랑크푸르트에서 적잖은 적을 만들었다. 영국이 2016년 6월23일 국민투표로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이후 프랑크푸르트는 흥분에 휩싸였다. 산업계는 펠트만 시장이 브렉시트를 활용해 프랑크푸르트를 유럽 대륙의 최대 금융중심지로 부상시키려는 계획을 잘 알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의 인지도가 올라가고, 고급 주택가의 비싼 집을 빌리고 고급 레스토랑에 다닐 부유한 은행가 수천 명이 유입될 것이라는 전망에 투기꾼들의 가슴은 부풀어오르고 있다.
 
반면 브렉시트는 프랑크푸르트 서민들의 두려움을 부채질하고 있다. 서민들의 임금은 제자리걸음이지만 주거비와 생활비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수년 전부터 매년 최대 1만5천 명이 프랑크푸르트로 순유입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주택난이 심해지며 보켄하임과 노르트엔트 등 과거 좌파 활동가 거점 지역의 주택 가격도 평범한 연봉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솟았다.
 
프랑크푸르트 학교와 유치원은 학생과 아이로 넘쳐난다. 마약중독자와 홍등가로 악명 높던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일대에는 ‘핫한’ 레스토랑이 늘고 있다. 투기꾼은 부동산과 주택 매입에 열을 올리고, 도시 개발로 저소득층이 내쫓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독일의 수많은 대도시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프랑크푸르트는 브렉시트와 얽히며 상황이 독특하게 흘러가고 있다. 또 다른 문제의 핵심에 2012년 전임자인 기독민주연합 페트라 로트 시장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펠트만 현 시장이 있다. 1974년 사회민주당에 입당한 펠트만 시장은 그의 거실인 뢰머광장에 평화를 정착시키려 한다. 펠트만 시장을 ‘낭만적 사회주의자’라고 하며 경량급 정계 인사쯤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일부 있다. “적절한 균형 유지가 중요하다. 프랑크푸르트는 당연히 브렉시트로 혜택을 볼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시민이 손해 보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펠트만 시장의 말이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가 브렉시트의 혜택을 입는 동시에 시민이 손해 보지 않게 하기란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러기에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자본주의 비판가와 금융권 인사, 빈자와 부자, 수혜자와 무수혜자 사이의 간극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변화에 책임의 화살이 런던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옮겨오는 투자은행가에게 향할 수도 있다. 프랑크푸르트의 맥박을 느끼는 사람은 도시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감지하지만, 이 분위기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반자본주의자들이 프랑크푸르트 시청광장인 뢰머베르크에 모여 시위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는 68세대 좌파운동의 정치적 담론이 활발하던 곳이다. REUTERS
 
로비스트
펠트만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집무실에서 2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마인강 반대편에 유럽중앙은행을 상대하는 로비기관 프랑크푸르트금융연합회 사무실이 여러 개 있다. 권력을 확대하는 유럽중앙은행은 대형 시중은행들의 몰락으로 금융도시 프랑크푸르트의 위세가 약화되던 시기에 프랑크푸르트에 활력을 불어 넣은 장본인이다.
 
몇 년 동안 프랑크푸르트 이미지 쇄신에 고군분투한 후베르투스 베트(57) 프랑크푸르트금융연합회 대표는 그동안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브렉시트로 인생 최대의 기회를 붙잡았다.
 
영국이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하던 밤, 베트 대표는 새벽 2시까지 마인니차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며 텔레비전으로 개표 결과를 지켜봤다. 그가 잠자리에 들 무렵만 해도 유럽연합 잔류 비율이 52 대 48로 우세했다.
 
그는 새벽 6시 한 기자의 전화에 잠이 깼다. 기자는 영국인들이 브렉시트에 찬성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나는 기자 전화를 받은 지 15분 만에 금융연합회 사무실에 도착했다. 우리는 미리 준비한 캠페인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시작했고 콜센터를 바로 가동했다. 프랑크푸르트 방문을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내보냈다.” 그가 지금까지 한 언론 인터뷰만 거의 800건에 이른다. 프랑크푸르트금융연합회는 94개국 2천 개 언론사의 기사 5700건에 언급됐다.
 
시장전문가와 컨설턴트, 소통전문가인 베트 금융연합회 대표는 숫자를 즐겨 인용한다. 영국 국민투표 직후 베트 대표는 모든 이들의 머리에 깊이 각인된 수치 두 개를 발표했다. 금융업계 종사자 2만5천 명이 향후 5년간 런던을 떠나고 그중 1만 명이 프랑크푸르트로 이주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유럽의 은행과 펀드회사, 보험회사가 계속 사업을 하려면 어떤 일자리를 유럽연합으로 이전해야 하는지 그는 잘 안다고 했다. 그는 최대한 많은 일자리를 프랑크푸르트로 유치하려 한다.
 
베트 프랑크푸르트금융연합회 대표는 높은 노동생산성, 유럽중앙은행과의 지리적 근접성, 탁월한 정보기술(IT) 인프라, 국제적 분위기, 적당한 시장 규모 등 경제 논리로 프랑크푸르트 이주를 설득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는 지구에 존재하는 가장 작은 국제도시다.”
 
그러나 정치권의 지원은 전무하다. 다른 국가는 대통령과 총리, 장관이 나서는 반면 독일은 베트 대표가 나서는 모양새다. 그는 런던에서 “우리 독일은 뭔가 다를 것”이라고 말했지만, 스스로 한계를 느껴 결국 비스바덴에 있는 헤센주 주총리실에 도움을 요청했다. 폴커 부피어 헤센주 총리는 뉴욕으로 건너가 미국 5대 대형 은행장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안부 인사를 전했다. “여러분이 독일로 오기를 희망한다. 독일에 오시는 것을 적극 환영한다.”
 
이것으로 충분할까? 독일 금융업계도 베트 대표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게 현실이다. “독일 금융업계조차 오랫동안 프랑크푸르트를 금융중심지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베트 대표는 호소한다. 도이체방크 전 최고경영자(CEO)는 전세계에서 독일 금융업을 대표하는 얼굴이었다. 2000년 즈음 도이체방크 CEO인 롤프 브로이어는 지금도 ‘미스터 금융센터’라는 별명으로 불리길 좋아한다. 브로이어와 후임자 요제프 아커만은 도이체방크를, 머리는 런던의 지휘를 받고 가슴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문드러지는 앵글로색슨계 은행으로 변질시켰다.
 
영국 국민투표로 브렉시트가 결정된 뒤에도 프랑크푸르트 금융계 대표 인사들은 프랑크푸르트에 부정적 발언을 일삼았다. 베트 대표는 “브렉시트가 프랑크푸르트에 긍정적 자극을 불어넣을 수 있는데도 그렇다”고 푸념했다. 브렉시트는 프랑크푸르트에 구매력을 제고하고, 혁신을 불어넣으며, 금융권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베트 대표는 “브렉시트가 프랑크푸르트에 기회”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프랑크푸르트 금융계는 지금까지 너무 많은 인재를 놓쳤다고 했다. “프랑크푸르트는 국제 금융업계에서 런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베트 대표는 이제 이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프랑크푸르트는 부활자들의 도시이기 때문이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폭격으로 쑥대밭이 됐던 프랑크푸르트는 과거의 역사가 아닌 바로 지금이 중요한 도시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프랑크푸르트로 몰려오는 전문 투자은행가들에게 아무런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대다수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은 자신이 부에서 배제됐다고 느낀다. 프랑크푸르트 상업지구의 출입금지 건물 현관에서 노숙인이 천을 뒤집어쓴 채 자고 있다. REUTERS
 
회의론자
로타르 라이닝거 클럽볼테르(Club Voltaire) 대표 역시 런던 출신 투자은행가들이 두렵지 않지만, 그렇다고 프랑크푸르트에 투자은행가가 더 필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가로수가 늘어선 번화가 옆 골목에 자리잡은 이 선술집은 프랑크푸르트 좌파 진영의 저항정신이 남아 있는 마지막 보루 중 한 곳이다. 최근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의 옛 동료가 클럽볼테르를 방문했을 때 그를 보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당시 모인 사람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투쟁했다는 감정을 공유했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후드 스웨터를 입은 68세대인 라이닝거 대표는 클럽볼테르를 찾는 사람들이 단순히 서로의 세계관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적 담론을 활발하게 나누길 원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좌파 진영의 시위는 점점 찾기 힘들다. 고급 주택가인 노르트엔트가 과거 학생운동과 길거리 야당의 보루였고, 좌파들이 주택을 점유하고 거리투쟁을 벌였으며, 혁명을 꿈꾸던 독일적군파(RAF) 테러리스트의 중심지였다는 흔적은 깨끗이 사라졌다.
 
오늘날 프랑크푸르트에서 볼 수 있는 저항운동은 주택난을 호소하는 각 행정구역 단위의 평화적 시위뿐이다.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 68혁명 주동자인 다니엘 콘벤디트 독일 녹색당 당수, 조니 클린케 등 68세대의 기득권 편입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선 시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다. ‘블로큐파이’(세계화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운동 -편집자)의 시위 소음은 금융권 임원들이 자성하는 목소리만큼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뒤에 은행가들도 클럽볼테르를 곧잘 찾았다. 라이닝거 클럽볼테르 대표는 “은행가들이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서 아닐까 싶다”며 재밌지 않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대다수 은행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프랑크푸르트 번화가의 스탠딩 테이블에서 샴페인을 홀짝거렸다고 한다.
 
라이닝거 클럽볼테르 대표는 금융위기를 잊지 않았다. 그가 베트 프랑크푸르트금융연합회 대표 같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다. “시간을 되돌려 프랑크푸르트를 유럽의 금융수도로 만들려는 건 미친 짓이다.”
 
프랑크푸르트 금융기관들은 금융위기를 거치며 경제적 위상을 잃었다. 프랑크푸르트 세수의 40%는 제조업에서 나온다. “하지만 브렉시트로 인한 붐은 프랑크푸르트 산업구조의 판도를 다시 금융업계 중심으로 바꿀 수 있다”고 라이닝거 클럽볼테르 대표는 우려한다. 하필 적잖은 경제전문가들이 새로운 금융위기를 경고하는 시점에 말이다. “만일 금융위기가 재발하면 프랑크푸르트는 얼마나 바닥으로 떨어지겠는가?”
 
프랑크푸르트는 1990년대에 탈산업화를 경험했다. 화학기업 회히스트(Hoechst)가 합병되며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 파우데오(VDO), 텔레노르마(Telenorma), 하르트만&브라운(Hartmann & Braun), 트리움프 아들러(Triumph Adler) 등의 기업 역시 일자리를 줄이거나 허허벌판으로 옮겨가거나 문을 닫았다. 라이닝거 클럽볼테르 대표는 당시 아들러 공장의 경영 참여 노동자대표회 대표로서 일자리 감축에 반대하는 운동을 조직했다. 당시 일자리 감축의 여파는 아직까지 남아 있다.
 
대다수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은 서비스 사회로의 전환을 겪으며 수입 감소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프랑크푸르트 시민의 30~40%는 지난 25년 동안 실질임금 인상을 경험하지 못했고, 절반은 세후 임금이 2천유로(약 270만원)가 넘지 않는다.” 라이닝거 대표의 추정이다. 동시에 프랑크푸르트와 인근 지역으로 고소득자들이 밀려오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 때문에 수천 명에 이르는 통화정책자, 이코노미스트, 금융감독위원회 인사, 기타 고학력·고소득층이 프랑크푸르트로 몰려왔다.
 
라이닝거 클럽볼테르 대표는 “수년 전부터 임대료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고 했다. 프랑크푸르트의 부에서 배제된다고 느끼는 시민이 점점 늘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 인재가 유입될 것이란 전망만으로도 물가와 임대료가 계속 오르고 있다. 골드러시 분위기가 파다하다.”
 
펠트만 프랑크푸르트 시장은 “부동산 붐이 프랑크푸르트를 분열시킬 위험이 있다”고 하면서도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음을 넌지시 내비친다. “브렉시트 열풍은 무엇보다 부동산 투기꾼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금은 부동산 거품을 빼기 위해 밸브를 열어야 할 때다.” 펠트만 시장이 단호히 말했다.
 
그는 도시주택공사협회 아베게(ABG)의 주택 5만2천 가구에 임대료를 동결하고 주택 신축시 40% 저렴한 가격으로 짓는다는 규정이 있다고 했다. 게다가 프랑크푸르트시는 현재 수천 가구의 아파트를 건설 중이며, 민간 투자자가 주택을 건설할 때 3분의 1을 임대주택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요건도 있다. “이런 규정이 있어도 주택 신축에 활발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펠트만 시장의 설명과 달리 도시개발이 매끄럽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프랑크푸르트는 한때 임대주택이 4만 가구에 이르렀다. 지금은 2만〜2만3천 가구에 불과하다. 임대주택이 점점 그 딱지를 떼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닝거 클럽볼테르 대표의 지적이다. 프랑크푸르트시는 제때 주택 공급을 확대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는 주변 지역의 제멋대로인 지자체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펠트만 시장은 타우누스 지역의 소규모 지자체 슈타인바흐에 주거지를 조성하려 하지만, 슈타인바흐는 녹색 초원과 프랑크푸르트가 보이는 전경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펠트만 시장이 강조하는 대로 오펜바흐 등 지자체와의 협력이 순조롭게 되고 있지만 과연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라이닝거 클럽볼테르 대표는 전혀 충분하지 않다고 확신한다. 브렉시트는 프랑크푸르트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은행원 1만 명이 유입되면 프랑크푸르트는 사회·정치적으로 균형이 무너질 것이다.”
 
ⓒ Der Spiegel 2018년 3호
Stadt unter Strom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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