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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적 통폐합으로 스타트업 키워내야
[국내 특집] 최순실 유탄 맞은 스타트업- ② 본래 취지 살리려면
[82호] 2017년 02월 01일 (수) 이현호 hhlee@sedaily.com

센터 폐지 놓고 찬반 엇갈려… 최순실 딱지 떼고 근본 재정비 필요

창조경제혁신센터의 미래가 암울하다. 이미 서울시가 20억원 예산 지원을 백지화하는 등 지방자치단체별 예산도 불투명해졌다. 센터 폐지 여부를 놓고선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센터 설립 때 기금을 출연한 대기업들은 폐지 입장이지만, ‘최순실 게이트’의 흙탕물이 튀었어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아예 없애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대체로 우세하다. 하루빨리 근본적 재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에는 모두 동의한다. 전문가들은 지역경제와 스타트업 활성화 차원에서 선별적으로 통폐합해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이현호 <서울경제> 경제부 기자
  
‘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인 ‘창조경제’가 존폐 기로에 서 있다. 특히 창조경제 정책의 핵심 사업인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출범 2년여 만에 좌초 위기에 몰렸다. 창조경제 구상부터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과정까지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는 정황이 하나둘 사실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전신 격인 창조경제타운 홈페이지 구축 시안을 최순실씨가 미리 받아본 사실이 드러났다. 최순실씨 소유로 추정되는 태블릿PC에서 창조경제혁신센터 홈페이지 구축안 문건이 발견됐다. ‘청와대 언급-대기업 집합-혁신센터 설립’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최순실 게이트의 도화선이 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의 설립 과정과 유사해 창조경제혁신센터 추진의 ‘순수성’이 의심받고 있다.
 
최순실씨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문화계의 각종 이권을 챙긴 의혹을 받는 차은택씨 측근인 유라이크커뮤니케이션즈 대표 김아무개씨는 회사를 설립한 지 불과 1개월 만에 전국 곳곳의 창조경제혁신센터 홈페이지 구축 사업을 따낸 정황이 확인됐다. 안종범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운영하는 민관 합동 창조경제혁신센터협의회에 뒤늦게 멤버로 합류하며 운영에 깊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이전에도 창조경제혁신센터 역할에 대한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대기업을 강제로 동원한 반시장주의 정책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마치 프로야구처럼 지역 연고제 방식으로 대기업에 할당을 줬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창업 지원 정책은 비효율적 자원 배분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창조경제혁신센터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병태 카이스트(KAIST) 경영대 교수는 “창조경제혁신센터 사업은 지나치게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며 “시장 자율 기능이 아니라 정부 중심 운영은 많은 부작용과 비효율을 초래할 수밖에 없고 관료적 습성에 기반한 정치적 전시행정 정책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서울시가 2017년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지원하기로 한 20억원을 백지화하는 등 지방자치단체별 예산이 크게 삭감됐다. 김선일 창조경제혁신센터협의회 회장이 2016년 1월 창조경제혁신센터 성과공유대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정책목표에서 사라진 ‘창조경제’ 
정부도 높아지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2017년도 경제정책 방향에서 ‘박근혜 색깔’ 빼기로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박근혜 정부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창조경제’란 표현이 대거 자취를 감췄다. 2017년 경제정책 방향 보고서를 보면 창조경제란 단어는 4차 산업혁명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창조경제혁신센터만 언급되고 있을 정도다. 2016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창조경제란 표현이 40여 회 들어간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미래창조과학부가 국회에 상정한 2017년 창조경제혁신센터 운영지원 예산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통상 창조경제혁신센터 한 곳당 연간 40억~60억원의 운영비가 필요하다. 야당에서는 ‘최순실 예산’이란 비판과 함께 2017년 예산의 대폭 삭감을 주장했다. 논란 끝에 경기 불황 시국에 지역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 등을 고려해 미래창조과학부가 올린 예산안에서 36억원이 깎인 436억5천만원이 편성됐다. 일부 지자체에서도 창조경제혁신센터 운영에 부정적이라며 서울(20억원)과 전남(10억원)은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물론 최근 정치적 이슈와 연결돼 창조경제혁신센터의 필요성과 역할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지만 출범 2년여간 올린 성과도 만만치 않다. 2016년 11월 말 기준으로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1528개 기업이 창업했다. 이를 통해 1928명이 신규 채용됐고, 3047억원 투자 유치, 2072억원 매출 증대가 이뤄졌다. 현재도 각 센터별로 10여 개 보육기업이 입주해 ‘창업의 꿈’을 키우고 있다.
 
무엇보다 창조경제혁신센터 운영의 한 축인 전담 대기업이 부담하는 재정 지원은 단비 같은 존재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최근 공개한 ‘창조경제혁신센터 대기업 기부금 현황’ 자료를 보면 기업별로 많게는 100억원 이상 창조경제혁신센터에 기부했다. 참여 대기업들 상당수가 기부금 외에 자체 재원 출연을 통한 투자펀드 등을 조성해 창조경제혁신센터 운영 비용에 많은 재정을 지원하고 있어 창업·벤처기업에 큰 힘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일련의 성과에도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지속가능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창조경제혁신센터의 태생적 문제점과 역할 논란 등을 들어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지역경제와 스타트업 활성화 차원에서 선별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폐지 쪽에 선 것은 주로 참여 대기업들이다. 제조업 기반 대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지속가능성에 부정적이다. 투자 대비 얻을 수 있는 성과가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운영하는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사실 스타트업들의 창업 분야와 우리 사업부문 간 연관성이 크지 않고 혁신센터 운영 결과 투자 대비 별다른 성과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사업 참여 여부를 재고해야 한다”며 “하지만 운영을 그만하고 싶어도 일단 정부 눈치가 보이니 당분간은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정부의 성과만을 강요하는 지나친 간섭이 대기업의 혁신센터 운영을 꺼리게 하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혁신센터를 얼마나 발전적으로 운영할지는 몰라도 내실보다는 성과 부풀리기에 집착하는 것 같다”며 “지난번 혁신센터 설립 1주년 기념 보도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부 관계자로부터 성과 창출에 신경 쓰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일부 폐지론 주장이 나오지만 창조경제혁신센터는 4차 산업혁명의 첨병 구실을 하는 동시에 경제에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고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공생을 이끌어갈 창업 허브라는 점에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최근 힘이 실리고 있다.
 
통신·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대기업은 혁신센터의 지속적 운영에 긍정적이다. KT(경기), 네이버(강원), 카카오(제주) 등은 공개적으로 계속 운영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국내 스타트업 상당수가 서비스 관련 업종이란 점에서 이들 대기업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진 결과다. 네이버 관계자는 “기업들마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성장동력으로 키워나가는 게 큰 과제”라며 “회사 처지에서 혁신센터 운영은 우수한 아이디어와 기획력을 가진 스타트업과의 제휴가 가능해 성공적인 동반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옥석 가려 선택과 집중을
전문가들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선별적으로 통폐합해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황보윤 국민대 글로벌창업벤처대학원 교수는 “차기 정권에서도 스타트업 정책을 이어갈 경우 기존에 마련된 혁신센터들이 관련 경험과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며 “17곳의 센터를 다 끌고 갈 수 없다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옥석 가리기에 들어가고 센터 간 유사 중복되는 기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스타트업,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위상에 대해 최근 세계가 알아주기 시작한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 최대 스타트업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2016 보스턴 매스챌린지’에서 최고상인 다이아몬드상을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보육기업인 EYL이 받았다. 2016년 11월 핀란드에서 열린 유럽 최대 창업콘퍼런스 ‘슬러시’에서도 1700여 개 기업 중 톱4 기업에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보육기업인 스케치온과 샌드버드 등 2개 한국 기업이 선정됐다.
 
김선일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협의회 회장은 “창조경제혁신센터라는 정책 방향이 글로벌 트렌드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정권에 관계없이 일관성 있는 면모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보다 세계시장에서 글로벌 인지도가 상당 수준 올라간 사업을 일부러 변경하고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스타트업 창업자들도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지속되길 바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창업과 시장 안착, 그리고 성장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정권 교체를 빌미로 단절된다면 창업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센서 개발 스타트업 ‘비쥬터치’의 이희승 대표는 “창조경제가 작금의 사태에 희생양이 되지 않고 수많은 스타트업에 성공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본연의 기조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며 “다음 정권에서 창조경제 전략이 혹여나 폐기된다면 최근 1~2년 사이 창업한 우리 같은 스타트업들은 한순간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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