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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뀌면 센터 사라질 것” 소문 흉흉
[국내 특집] 최순실 유탄 맞은 스타트업- ①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 르포
[82호] 2017년 02월 01일 (수) 김연기 ykkim@hani.co.kr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한 스타트업들이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다. 최순실 등 비선 실세들이 창조경제혁신센터 사업에 관여한 흔적이 드러나며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출범 2년여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그사이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지원을 받아 창업에 나선 스타트업들의 눈물과 탄식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근본적 재정비를 통해 실의에 빠진 스타트업을 되살려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최순실 사태에 직격탄을 맞은 스타트업의 하소연을 들어봤다. _편집자
 
   
 

투자 유치 차질, 이미지 훼손 등 역풍… “센터 폐지 땐 스타트업 설 곳 잃어” 하소연

‘최순실 사태’ 이후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창조경제’가 스타트업에 주홍글씨가 되고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해 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투자 유치 차질과 이미지 추락 등 역풍에 휘말린 것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만난 젊은 예비 창업자들의 얼굴에선 희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권이 바뀌면 아예 센터가 사라질 것”이란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센터가 폐지된다면 최근 1~2년 사이 창업한 스타트업은 설 자리마저 잃게 된다. 예비 창업자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센터 폐지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하소연하는 이유다.
 
김연기 부편집장
  
추적추적 겨울비가 흩뿌린 2017년 1월6일 오후. 땅거미가 내려앉은 나주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 제2센터는 을씨년스러웠다. 나주 빛가람혁신도시의 중심부인 한국전력 본사 앞에 자리잡은 이곳은 예정대로라면 스타트업(소규모 신생 벤처기업)들의 창업 열기로 늦은 밤까지 건물이 훤히 불을 밝혀야 했지만 이날은 적막만 감돌았다. 애초 2016년 말 개소식과 함께 문을 열 예정이었으나 ‘최순실 사태’가 불거지면서 대통령 참석이 어려워지자 개소식도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이곳에 입주할 스타트업의 업무 공간인 센터 2층 인큐베이팅(창업지원 활동) 사무실로 들어서자 소파와 탁자 몇 개만 덩그러니 놓인 채 주변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곳은 미래 성장동력인 4차 산업혁명의 첨병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센터 운영을 지원하는 한전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해 스마트그리드(Smart Grid·차세대 지능형 전력망), 전기자동차(EV),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는 기술을 키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재 센터장 인선을 비롯해 구체적인 센터 운영협의회도 꾸려지지 못한 채 무기한 개점휴업 상태에 놓여 있다. 여수에 있는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 제1센터와 에너지산업 분야 업무 협력을 통해 전남도 전체를 에너지 혁신 지역으로 특화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이마저 요원하다.
 
센터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신산업 분야 창업 희망자 15명 지원을 시작으로 창업 지원을 점차 늘려나갈 예정이었으나, 최순실 사태 여파로 개소식이 무기한 연기된 뒤 모든 업무가 중지된 상태”라고 말했다. 더욱이 최순실 사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면서 언제 센터가 문을 열고 정상 가동될지 기약이 없다. 센터 관계자는 “창조경제혁신센터 주무 부서인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개소식과 관련해 아직 정확한 일정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센터가 정상 가동되면 우여곡절 끝에 여는 것인 만큼 4차 산업혁명 분야 창업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창조경제혁신센터 사업이 엮여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혁신센터는 출범 2년여 만에 좌초 위기에 몰렸다. 2016년 12월 서울 종로구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예비 창업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원 삭감에 출장비 걱정할 판
2014년 9월 대구창조경제센터가 처음 문을 연 이후 전국 17개 시도에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들어섰다. 각 시도의 창조경제혁신센터가 개소식을 열 때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만큼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바라보는 정부의 기대가 남달랐다. 대기업들도 앞다퉈 동참했다. 서울(CJ), 경기(KT), 인천(한진), 경북(삼성), 충북(LG), 광주(현대자동차), 전남(한전) 등 지역 거점별로 1:1 맞춤 형식으로 센터를 맡고 기금을 모아 센터 운영을 지원했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에 창조경제 사업이 엮여 있다는 의혹이 커지면서 상황이 180도 뒤바뀌었다. <이코노미 인사이트> 취재진이 주요 센터를 돌며 분위기를 체험해보니 저마다 활기를 잃고 암울한 모습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예비 창업자들은 “이러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 “예산이 삭감되면 그만큼 센터 지원에도 제약이 따르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내비쳤다. 실제 최근 <매일경제>가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 입주 기업 75곳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최순실 사태 뒤 센터 폐지 등 미래 불안감(36%), 이미지 하락(22.7%), 지원 감소(21.3%), 투자 유치 차질(5.3%)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수도권을 뺀 지방의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예비 창업자를 만나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다. 1월4일 찾아간 창원의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 대통령이 2015년 4월 개소식에 참석해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는 동남권 메커트로닉스(기계공학과 전자공학의 합성어)의 허브가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현주소는 딴판이다. 이곳에는 모두 16곳의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오전 시간에 센터를 찾았지만 4개층에 걸쳐 자리잡은 인큐베이팅 사무실에서 만난 예비 창업자는 5명 남짓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입주기업 대표는 “그저 답답할 따름”이라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가장 큰 것은 불안과 불확실이 가시지 않는다는 거다. 최순실 사태는 잠잠해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선 예산 삭감에 나서는 상황이지 않은가. 게다가 스타트업 육성이란 기본 취지마저 크게 훼손됐다. 언제 센터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당장 투자자들의 발길이 뚝 끊어지면서 창업투자 시장이 된서리를 맞았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전국적 창업 열기 속에 벤처투자를 겨냥한 사업모델이 성황을 이뤘다. 여기에 정부가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한 기업을 중심으로 창업 지원 정책을 쏟아내면서 창업투자 시장에는 돈이 넘쳤다. 하지만 달아오른 투자 열기는 최순실 사태의 충격 속에 자취를 감췄다.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만난 한 예비 창업자는 “세계 도처에서 기술 선점을 위해 스타트업들이 밤낮없이 기술 개발로 경쟁력을 키워가는데 우리는 정치적 이유로 업무 추진에 제약을 받고 있다”며 “실제 창업 아이템의 가치와 자금 조달 규모는 대부분 반토막 났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투자를 약속했던 벤처캐피털이 최순실 사태 뒤 결정을 미루고 있다”며 “창조경제 자체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커지면서 멀쩡한 스타트업들로 불똥이 튀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줄어든 예산 탓에 당장 출장비 걱정으로 발을 구르는 스타트업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예비 창업자는 “보통 기술 전시 행사에 참여하면 부스 설치, 바이어 면담 등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며 “그러나 2017년부터 출장비 지원이 절반으로 줄어서 행사 참석조차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지 추락도 예비 창업자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취재 기간에 만난 스타트업 관계자 대부분은 최순실 사태로 혁신센터에 입주한 스타트업이 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주변에서 바라보는 것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입주한 뒤 야심차게 사업 추진에 나섰지만, 최근 혁신센터와 최순실을 한 묶음으로 인식하면서 우리를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선 역시 곱지 않아 맥이 빠지곤 한다”고 말했다.
  
이미지 추락에 맥 빠지는 스타트업
사정이 이렇다보니 투자 유치에 부담이 될까봐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창조경제혁신센터 지원을 받았다는 내용을 삭제하는 곳마저 생겨나고 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했다는 사실만으로 어느 정도 기술력이 검증됐다고 볼 수 있지만, 이제는 이게 오히려 독이 돼 기업 소개 자료에서 창조경제혁신센터 관련 내용을 빼야 되는 것 아닌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한 스타트업은 센터의 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투자 유치 차질과 이미지 추락 등 역풍에 휘말리고 있다. 내방객이 없어 한산한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법률금융특허 지원실. 연합뉴스
자연스럽게 ‘센터 폐지’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한 한 업체는 “혁신센터에 입주한 뒤 특허출원과 법률 자문을 비롯해 많은 분야에서 센터의 지원을 받고 있다”며 “하지만 센터가 폐지될 경우 이런 일들을 누구를 통해 도움을 받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그는 “창업과 시장 안착, 그리고 성장까지 스타트업이 커가는 과정에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일하는 지원 인력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운영 예산이 줄줄이 삭감되면서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2016년 말 현재 17개 혁신센터는 외부에서 파견 온 직원 외에 자체적으로 직원 235명을 고용했다. 비영리 재단법인인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재정 보조로 운영된다. 그러나 재정 지원이 수월하지 않으면 우선적으로 감원하는 등 조직을 대폭 축소할 수밖에 없다. 실제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는 2016년 말 정규직 12명 중 4명이 사직했다.
 
거꾸로 센터를 책임지는 센터장을 구하지 못해 애먹는 곳도 많다.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는 2016년 11월 말 임기가 끝난 박인수 센터장 후임자를 뽑기 위해 센터장을 모집했으나 단 2명이 지원했다. 2014년 11월 초대 센터장을 뽑을 때 14명이 지원했던 것과 대비된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역시 2016년 말 센터장 모집 공고를 냈으나 지원자가 1명에 그쳤다.
 
물론 그동안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밤을 새워가며 피워 올린 창업 열기가 최순실 사태로 꺼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의 잘못을 왜 기업에 전가하느냐, 사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 대다수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한 3차원(3D) 프린터 제작업체 대표는 “정권이 바뀐 뒤 그동안 진행돼온 창조경제 관련 정책이 폐지된다면 최근 1~2년 사이 창업한 스타트업들은 설 곳을 잃게 된다”며 “문제 되는 것이 있다면 이참에 확실히 도려내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본래 취지를 살려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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