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국내 > 국내 특집
     
‘자유’ 없는 40~50대 프리터의 한숨
[국내특집] 늙어가는 프리터족- ① 중·장년층 ‘알바’의 삶
[80호] 2016년 12월 01일 (목) 김연기 ykkim@hani.co.kr
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프리터’(프리+아르바이트)가 크게 늘어나면서 점차 고령화하고 있다. 최근 5년 새 40~50대 프리터는 31만 명(21%) 늘어나 2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자연스럽게 10~20대가 있을 법한 주유소나 패스트푸드점에 중·장년 ‘알바생’이 몰리고 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로 가정을 꾸려야 하는 이들의 입에선 “아무리 일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탄식이 새나온다. ‘자유’와는 거리가 먼 중·장년 프리터의 삶을 들여다봤다. _편집자
 
   
 
청년층서 중·장년층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프리터… 패스트푸드점·주유소·편의점 알바 전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프리+아르바이트)가 청년층에서 중·장년층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처음에는 일본에서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시간제로 일하는 사람을 가리켰지만 한국에선 정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들이 버는 돈은 시간당 6천원 남짓이다. 패스트푸드점부터 주유소, 편의점, 목욕탕 청소, 대리운전, 행사·예식 도우미, 상품 포장까지 하는 일은 다양하다. 프리터족이 점차 고령화하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보다 먼저 프리터로 골머리를 앓은 일본이 프리터 구제를 고용정책의 우선순위로 삼는 것과 달리 한국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연기 부편집장
 
강영수(54)씨는 패스트푸드 매장 점원으로 생계를 꾸린다. 영세 제조업체 생산직으로 일하다 2014년 실직한 뒤 2년 가까이 젊은이나 할 법한 일을 한다. 그는 매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한 패스트푸드 매장으로 출근해 저녁 7시에 퇴근한다. 바지 무릎 부분이 반질반질하게 해진 유니폼을 입고 혼자서 음식물 수거대를 치우고 매장을 청소한다. 점심시간을 빼고 하루 8시간, 일주일에 6일을 일해 강씨가 받는 돈은 한 달 100만원이 조금 넘는다. 날이 갈수록 상황은 절박해지고 있다. 
 
강씨는 또래보다 결혼이 늦어 2017년 첫째딸이 고등학교에 들어간다. 자녀교육비 50만원, 월세 50만원, 통신비 10만원, 교통비 5만원, 각종 공과금 10만원…. 강씨의 수입으로 도저히 버텨내기 힘든 실정이다. 강씨의 재산은 전세보증금 3천만원이 전부다. “아이들은 계속 커가는데 수입이 늘기는커녕 되레 줄어들고 이제는 아무리 절약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아요. 밥 먹고 살면 그걸로 만족해야죠.”
 
젊은 층이 주요 고객인 패스트푸드 매장에 강씨처럼 중·장년층 아르바이트생이 늘고 있다. 이 매장에만 강씨를 비롯해 배달원 윤아무개(61)씨, 카운터에서 주문받는 박아무개(57)씨 등 같은 시간대에 일하는 10여 명 가운데 4명이 50대 이상이다. 이들은 서울시 일자리 알선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곳에서 일하게 됐다. 전국 맥도널드 매장에는 55살 이상 아르바이트(시니어 크루)가 240여 명 근무한다. 최근 9개 패스트푸드 기업이 조리, 매장 청소 등 아르바이트 사원 500명을 뽑기 위해 합동 면접을 치른 날 면접장엔 50~60대 중·장년층이 적잖게 눈에 띄었다.
 
패스트푸드점을 비롯해 예전에는 10~20대 구직자가 차지했던 주유소, 편의점 등에도 장년층과 노년층 아르바이트가 대거 진입했다. 박석원(61)씨는 벌써 4년째 24시간 영업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한다. 밤샘 근무를 하는 ‘철야조’에 속한 박씨는 밤 10시에 출근해 이튿날 아침 6시에 퇴근한다. 이렇게 하루 8시간 일하고 박씨가 받는 월급은 120만원 정도다. 박씨는 “그나마 야간수당이 붙어 이 정도 받는 것이지 주간에 같은 시간을 근무하면 100만원 벌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인근에 24시간 영업 주유소가 없어 주유부터 세차 도우미까지 밤새 일이 끊이지 않다보니 쪽잠을 청하기도 어렵다. 손님이 뜸한 새벽 시간대에 잠시 졸기라도 하면 금세 손님이 찾아와 울려대는 경적 소리에 놀라 깬다.
 
특별한 기술이나 큰 힘을 요하지 않는 주유원은 60대 이상 노인 아르바이트의 대표 격으로 꼽힌다. 고령화가 심해지다보니 지금은 주유원 취직마저 어렵다. 박씨는 “어느 주유소든 주유원 대기자가 서너 명씩 밀려 있다”며 “다른 일거리를 쉽게 찾을 수 없어서 4년 넘게 이 일을 한다”고 말했다. 박씨를 비롯해 대부분의 아르바이트 주유원은 1년 미만의 고용계약을 맺으며 최저임금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고용 환경 악화가 가속화하고 조기 퇴직 압력이 갈수록 강해지다보니 일자리를 잃은 중·장년층이 아르바이트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고용 상황은 앞으로도 이어져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40~50대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 서울 용산구의 주유소에서 중년 남성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프리+아르바이트)가 점차 고령화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프리터, 생산가능인구의 13.1%
 
일자리 기회를 박탈당한 청년층 프리터에 이어 중·장년층 프리터까지 많아지면서 우려가 더 크다. 프리터는 자유(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의 일본식 합성어로, 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을 말한다. 1987년 일본 리크루트가 구인잡지에 ‘학생 아르바이트’가 아닌 ‘사회인 아르바이트’를 지칭하면서 사용한 용어로, 일본에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류상윤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프리터라는 용어는 ‘프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처음 만들어질 때는 부정적 뜻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사람을 의미했다”며 “일본이 거품경제 붕괴 전 한창 경기가 좋았을 때 ‘이제는 아르바이트만 해도 훨씬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프리터 실태를 처음 조사한 현대경제연구원은 장기실업자 외에 △시간제·비전형 노동자(파견·용역·재택·일일)나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준비자도 ‘노동의 현재와 미래’가 불안하다는 측면에서 프리터에 포함하고 있다. 특히 중·장년층 프리터의 생활은 ‘수입은 적지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일본식 프리터의 삶과 거리가 한참 멀다. 일본은 정규직이 아니어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사회환경상 ‘자발적 프리터’에 가깝다면, 한국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비자발적 프리터’라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아르바이트 같은 비정규직으로 취업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청년 프리터들이 중·장년이 되어서도 안정된 직장을 얻지 못한 탓이다.
 
통계청의 ‘경제활동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프리터족은 2015년 8월 기준 523만 명에 이른다. 2010년 8월 429만 명에서 5년 새 100만 명 가까이 늘어났다. 전체 생산가능인구에서 프리터가 차지하는 비중도 5년 새 11.2%에서 13.1%까지 상승했다. 특히 프리터족이 청년층에서 중·장년층으로 옮아가고 있다. 40대 프리터는 2010년 93만1천 명에서 2015년 99만1천 명으로, 50대 프리터도 5년 만에 79만3천 명에서 104만4천 명으로 늘었다. 
 
프리터가 청년층에서 중·장년층으로 빠르게 확산된 배경은 고용 환경 악화의 장기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금융위기 이후 성장세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새로 고용시장에 진입하는 구직자들을 끌어안을 만큼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못했고 경기 침체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기존 일자리마저 줄어드는 추세다”라고 지적했다.
 
‘늙어가는 프리터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지만 정부는 이를 해결할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일본은 거품경제 붕괴 이후 프리터의 부정적 의미가 부각되면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대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류상윤 책임연구원은 “거품경제 붕괴 뒤에 프리터는 정규직을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 직원으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며 “이제 일본에서 프리터는 불안정 고용을 상징하는 대표 계층으로 굳어져 정부가 고용정책을 내놓을 때 프리터 구제에 초점을 맞춘다”고 말했다.
 
   
▲ 편의점을 비롯해 예전에는 10~20대 점원이 주를 이뤘던 주유소, 패스트푸드점 등에도 중·장년층 아르바이트가 대거 진입했다. 50대 후반인 김봉중씨가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돈을 계산하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프리터 구제에 초점 맞춘 일본, 한국은?
 
‘국가공무원 중도 채용자 선발시험’은 일본 정부가 프리터를 구제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 가운데 하나다. 이 시험은 1990년대 이후 이른바 ‘취직 빙하기’에 사회로 나온 이들에게 재도전 기회를 주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40대 프리터가 대상이다. 행정사무, 세무, 교도관, 왕실 경호원, 입국 경비원 등의 직종에서 채용한다. 또한 프리터를 정규직으로 고용한 기업에 세제 혜택을 부여해 기업들의 프리터 채용을 유도하고 있다. 김유선 선임연구원은 “일본 정부가 프리터 구제를 위해 직업훈련과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것처럼 우리도 근본적인 해결책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체 일자리의 질을 높여야 프리터의 중·장년화를 막을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고부가가치 서비스 부문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계청의 2016년 10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9월 기준 실업자 수는 92만3천 명이다. 프리터족의 대부분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류상윤 책임연구원은 “어느 연령대나 마찬가지로 실업통계에는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프리터 등 이른바 ‘실망실업자’를 포함하면 실업자 수는 더 늘어난다”고 말했다. 단순 통계에는 중·장년층 프리터 같은 고단한 인생이 포착되지 않는 셈이다. 반면 일본에선 프리터를 빈부 격차의 상징으로 규정한 정부가 이들의 취업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내 중·장년 프리터족의 상당수는 가족을 거느린 가장이다. 하루하루 줄타기하듯 살아가는 이들의 불안과 고통을 우리 사회가 언제쯤 헤아려줄까.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권태호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장철규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