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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특집] 에너지 자급자족 ‘그 섬에 가고 싶다’
신재생에너지, 미래를 밝힌다- ① ‘탄소제로 섬’ 가파도
[79호] 2016년 11월 01일 (화) 김정필 fermata@hani.co.kr
   
▲ REUTERS

풍력·태양광·저장장치 유기적으로 연결한 시스템으로 ‘에너지자립섬’ 실험 나서

2016년 7월 가파도는 섬 안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전력을 생산하고 저장하며 공급하는 독립형 전력망 구축을 완료했다. 가파도 주민들은 이 덕분에 에어컨을 펑펑 틀고도 값싼 전기요금으로 올여름 무더위를 시원하게 보냈다. 이 사업은 도서 지역 전력난을 해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 지역으로 보급이 확대되면 친환경 전력을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사업 초기 부담이 큰 투자비와 표준화 문제는 극복해야 할 과제다.
 
가파도(제주)=김정필 부편집장
 
250명 정원인 여객선이 배 높이만 한 파도에 부딪쳐 공중에 떴다 가라앉는 곡예를 반복한다. 평일 오전이라 드문드문한 객실에선 가파도 주민으로 보이는 몇몇 노인이 험상궂은 바깥 사정엔 관심 없는 듯 날씨를 소재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여객선을 집어삼킬 듯 성난 파도는 객실 유리창을 잇따라 때린다. 15분 남짓 파도와 씨름한 뒤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가파도에 발을 내딛자마자 한 주민에게 “파도가 보통이 아니네요”라고 애써 침착하게 말을 건넸다. “오늘은 심심한 거요. 선장이 바빴는지 장난친 건지 일부러 파도를 역으로 타더라고. 가파도 사람들은 육지로 나가고 싶어도, 들어오고 싶어도 내 맘대로 못해요. 섬 속의 섬이니….” 주민은 이렇게 말하며 바삐 가던 길을 간다.
 
가파도는 제주도 모슬포항에서 남쪽으로 5.5km 지점에 있다.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와 제주도 본섬 중간에 있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제주도 본섬에서도 마라도 다음으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척박한 환경 탓에 가파도는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향토사학자인 고 홍순만 제주문화원장이 제주도의 역사를 담아 펴낸 책 <사연 따라 칠백리>를 보면, 행정구역으로 가파도가 속하는 제주도 대정읍은 거리상 조정의 통치력이 닿기 어려웠던 탓에 국운이 기울던 조선시대 말 민란의 중심지였다. 또 중죄인들이 객지살이의 시름을 달래던 유배지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500여 년 동안 100여 명의 국사범 등이 대정읍에 유배됐다고 한다. 일본 어부들의 상시적 약탈을 겪기도 했다.
 
외딴섬 가파도가 최근 천혜의 자연환경 덕분에 국내 첫 ‘에너지자립섬’으로 거듭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전체 면적 0.85km²인 가파도는 해발고도 20.5m로 국내에서 가장 키 작은 섬이다. 가장 키가 큰 제주도 본섬의 한라산과 사이좋게 마주 보고 있다. 구릉이나 단애(깎아 세운 낭떠러지)가 없는 평탄한 섬으로 전체 모양은 가오리 형태를 띤다.
 
이영석 가파도발전소 사업소장은 “국내 하루 평균 일조량(일정한 물체의 표면이나 지표면에 비치는 햇볕의 양)이 3.5시간인데 가파도는 5.5시간 정도 된다. 태양광 부지 조건으로 아주 좋은 곳이다”라고 말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스마트그리드(Smart-Grid·전력망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에너지와 통신 네트워크를 융합한 지능형 전력망) 기술로 신재생에너지 100% 자급 섬으로 만들기 위한 인프라인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 구축 사업을 최근 마무리했다. 마이크로그리드란 소규모 지역에서 전력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독립형 전력망 시스템이다. 섬 등 전력 계통과 연계되지 않은 고립 지역에서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발전설비,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전력을 생산·저장·공급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가파도를 탄소 배출 제로 섬으로 만드려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가파도에는 현재 풍력발전기 2대(각 250kW 용량)가 하동마을 해안가 쪽에 있고, 48가구에 각 3kW 용량의 태양광발전용 패널이 설치돼 있다. 30kW 용량의 태양광발전 1개도 별도 장소에 마련돼 있다. 풍력발전기와 태양광발전에서 생산되고 남은 전력을 저장해두는 에너지저장장치(3.86MWh 용량)도 1대 있다. 풍력발전기와 태양광발전의 생산 및 저장 전력이 없을 때 필요한 디젤발전기는 3대(각 150kW 용량)가 있다.
가파도의 전력은 기본적으로 시간당 최대 250kW의 전력을 생산하는 풍력발전기 2대로 공급한다. 섬 전체 94가구 중 49가구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은 바람이 잔잔해 풍력발전기의 전력 생산이 없을 때 쓰는 보조 발전 수단이다.
   
▲ 가파도는 마이크로그리드 기술을 통해 국내 최초로 탄소 배출 없는 에너지자립섬이 되려 한다. 가파도 하동마을 가파포구 쪽에 풍력발전기 두 대가 운전 중이다. 김정필 부편집장
 
풍력·태양광은 가을·겨울에 유리
“오, 지금 바람이 너무 없네요. 풍력이 초당 6m로 떨어졌어요. 어제는 초당 14m 정도로 운전 잘해서 150kW에서 200kW 정도 전력을 생산했는데, 지금은 발전이 떨어지니 에너지저장장치에 그동안 모아놨던 전력을 방전하는 상태예요.”
 
이영석 가파도발전소 사업소장은 사업소 1층에 마련된 종합상황실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벽면을 가득 채운 이 모니터에는 풍력과 태양광, 디젤 발전 상태 등 가파도의 마이크로그리드 운영 상황이 실시간 표시된다. 가파도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으로 전력 공급이 가능하면 디젤발전기를 돌리지 않는다. 다만 발전 전력과 저장 전력이 모두 소진될 경우 디젤발전기를 수동으로 돌려야 해서 항상 발전 상황을 점검하고 주시해야 한다.
 
이영석 사업소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스마트그리드 원리는 간단하다. 예컨대, 이달에 한 가정에서 발전한 태양광이 300kW인데 사용량이 100kW에 불과하면 200kW는 스마트그리드에 연동해 저장한다. 다음달에 해당 가정이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력보다 더 소비하면 이달에 저장한 전력을 사용한다. 즉, 마일리지 적립하듯 전력을 저장해뒀다 쓰는 걸로 이해하면 된다. 이런 자급자족 전력이 다 떨어지면 디젤발전기를 돌려 수급을 맞추게 된다.”
 
가파도발전소에는 직원 3명이 상주한다. 4명이 3개조로 근무한다. 한 명은 디젤발전기를 담당하는데, 24시간 내내 풍력발전기와 태양광발전기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풍력과 태양광은 마냥 생산이 많이 된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풍력의 경우 돌풍이 불어 과도하게 출력되면 열이 발생해 전선에 입힌 절연 물질이 녹아 합선이 돼 타버린다. 이 때문에 반드시 정격 이하로 운영돼야 한다. 풍력의 충전량이 90%까지 이르면 과출력돼 꺼주고, 70~80% 이하로 떨어지면 다시 풍력으로 출력해준다.
 
가파도 에너지자립섬 사업은 2011년 11월부터 2016년 6월까지 3단계 인프라가 구축됐다. 1단계 기본 인프라 구축은 2011년 11월~2012년 9월, 2단계 운영시스템 고도화 작업은 2012년 10월~2014년 6월, 3단계 시스템 안정화는 2015년 12월~2016년 7월에 마무리됐다. 사업을 주관한 제주도가 전기자동차(EV)와 주택용 태양광패널을, 한국전력이 시스템 구축 총괄 및 운영을, 남부발전이 풍력발전기 구축을, 일본 신고베전기가 에너지저장장치 구축을, 우진산전이 전력변환장치 구축을 각각 맡아 사업에 참여했다.
 
이렇게 구축된 스마트그리드 시스템은 2016년 4월부터 본격 가동해 9월 기준으로 신재생에너지와 디젤발전기의 누적운전율이 4 대 6에 이른다. 즉, 신재생에너지의 전력 공급 점유율이 40%라는 얘기다. 이 가운데 풍력이 30%, 태양광이 10% 정도를 차지한다. 일반적으로 풍력과 태양광 발전에는 비가 많고 바람이 없는 여름이 계절적으로 비수기인 점을 감안하면 2016년 하반기를 지나면서 신재생에너지 점유율이 훨씬 높아질 것으로 가파도발전소 쪽은 예상하고 있다. 이영석 사업소장은 “기온이 높으면 분자구조상 공기 밀도가 커서 풍력으로 바람을 돌릴 때 힘이 떨어진다. 겨울에는 돌풍이 심한 단점이 있지만 힘있는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여름보다는 풍력발전에 유리하다. 겨울에는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최대 75%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16년 여름 폭염은 각 가정에 전기요금 폭탄 고지서를 안기면서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논란을 가중했다. 가파도는 이런 논란에서 자유로웠다. 올여름 가파도 주민들의 전기요금 고지서에는 얼마가 찍혔을까.
 
가파도 주민들은 처음 가정용 태양광패널 설치 제안을 받았을 때 대부분 망설였다. 오히려 거부감이 있었다. 각 가구당 태양광패널 설치 비용이 126만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총설치비가 1300만원이지만 각종 보조금이 지원돼 자가 부담 비율을 10%로 줄인 것이다. 2013년 처음 태양광패널을 설치한 가구는 10곳에 불과했다.
 
그런데 태양광패널을 설치한 집들이 전기요금 절감 효과를 톡톡히 누리며 다른 주민들도 선뜻 손을 들고 나섰다. 이후 단계적으로 태양광발전에 동참한 가구가 늘어 현재 49가구에 이른다. 오히려 예산 부족 문제로 다른 가구들은 태양광패널을 설치하지 못한 실정이다.
 
진명환 가파도 이장은 “섬마을은 바람이 불어 여름에 냉방이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습하기 때문에 항상 선풍기나 에어컨이 필요하다. 주민들이 처음에는 거금 들여 뭣하러 설치하느냐고 하다가, 1년 지나 다른 집들의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고는 눈에 불을 켜고 서로 설치하려고 했다. 태양광 기대수명이 보통 20년이니까 1~2년 만에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이익이다”라고 말했다.
 
진 이장의 집은 중고 가전제품 매장을 연상시킨다. 에어컨 3대와 김치냉장고 1대, 일반 냉장고 1대, 물질로 잡은 해산물 보관용 냉동실 1대 등으로 집 안이 빼곡하다. 부인, 딸과 함께 사는 진 이장은 올여름 에어컨 3대를 하루 종일 틀고 지냈다. 그의 8월 전기요금 자동이체 내역이 담긴 통장에는 7만3천원이 찍혀 있었다. 텔레비전 수신료 2500원을 제외하면 순수 전기요금은 7만500원이다. 진 이장은 육지의 일반 가정에 동일 사용량을 적용하면 30만원 이상 나올 것이라고 했다. “우리 집은 굉장히 많이 쓰는 편이고, 다른 집들은 여름에 아무리 많이 전기를 써도 2만원이 안 넘는다. 사용량이 0으로 검침돼 수신료만 내는 집도 많다. 여름이 아니면 우리도 전기요금이 5천원 정도 나온다.”
 
주민 권화자(75)씨는 “2013년 태양광패널을 설치했다. 그 전에는 에어컨 틀면 여름에 전기요금이 한 달 10만원 넘게 나왔는데 지금은 1만원을 넘지 않는다. 1~2년 만에 설치비 본전을 뽑았다”고 말했다.
가파도의 이런 변화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가파도는 육지로부터 외딴섬인 탓에 1970~80년대 자체 발전소를 지어 자가발전을 했다. 1975년 당시 남제주군청이 가파도에 발전소를 세워준 뒤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발전소를 운영했다. 이후 1991년에야 한전에서 디젤발전소를 설치해 육지와 마찬가지로 전기요금을 납부했다. 진 이장은 “자가발전으로 전기를 쓸 때는 엄청나게 많은 돈을 써야 했다. 그것도 24시간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제한적으로 송전했다. 당시 전체 120가구가 발전소 운영비 등을 충당하느라 전기 사용료 부담이 굉장히 컸다”고 말했다.
 
   
▲ 가파도의 집 앞 마당에 태양광패널이 설치돼 있다. 태양광패널 설치비는 126만원이지만 가파도 주민들은 전기요금 절감으로 1~2년 만에 설치비를 회수했다. 김정필 부편집장
 
전기차 4대 한 달 운용비 ‘5만원’
매년 4~5월이면 가파도에는 봄바람 가득 머금은 초록의 청보리 물결을 즐기러 오는 상춘객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청보리 축제 기간 모슬포항∼가파도를 매일 10차례씩 여객선(정원 250명)이 오가는데 하루에만 관광객 2500명이 신기루 같은 ‘키 작은’ 섬을 찾는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연간 10만 명이 가파도를 찾는다. 가파도가 제주도 관광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은 이유는 청보리 말고도 여럿 있다. <하멜표류기>의 주인공 네덜란드인 하멜이 난파로 표류한 곳이기도 하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영화 및 드라마 촬영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탄소 녹색성장의 아이콘으로 ‘친환경 녹색섬’ 이미지를 부각시킨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가파도에는 전기자동차 4대가 2012년부터 운행 중이다. 보건소와 어촌계, 마을회, 초등학교에 1대씩 배치돼 있다. 충전시설도 5곳 있다. 해안선 길이가 4.2km에 불과한 가파도에서는 전기차만큼 유용한 이동 수단이 없다. 소음도 적고 유지비도 싸다. 4시간 정도 충전하면 가파도 같은 평지에서는 96km를 탈 수 있다. 진명환 이장은 “전기차는 단점을 찾기 어렵다. 주행거리와 충전시설 등 육지와 절대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가파도 같은 지역에선 최적의 교통수단이다. 4대를 각각 한 달에 서너 번 정도 충전하는데 전기요금이 5만원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파도는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을 갖추면서 부수 효과도 누리고 있다. 마이크로그리드는 원격 조종 및 검침이 가능하도록 각 발전시설과 에너지저장장치, 개별 가정 등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데, 전선이나 통신선을 늘여 맨 전봇대를 모두 땅속에 묻어 설치했다. 이 때문에 매년 태풍이 올 때마다 전봇대가 넘어지거나 파손돼 겪은 피해를 올해는 입지 않게 됐다.
 
물론 탄소 배출 제로를 향한 가파도의 실험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우선 초기 투자비 부담이 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태양광과 에너지저장장치 등 관련 제품의 단가가 아직은 높기 때문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지원이 필수다. 가파도의 에너지자립섬 사업의 경우 총 소요 예산이 143억원에 달했다. 표준화 작업도 관건이다. 가파도 마이크로그리드는 태양광과 풍력, 디젤발전기, 배터리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자동운영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연구원들이 3~4년 동안 섬 곳곳을 누비며 수많은 알고리즘을 실험한 끝에 탄생했다. 문제는 완전한 자동화가 되지 않은 탓에 시스템 운용 과정에서 불편한 부분이 발생할 때마다 수시로 업데이트를 한다는 점이다.
 
이영석 사업소장은 “사업 초기는 출혈이 많다. 사업에 참여하는 민간기업에는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얼마나 빨리 표준화를 완성하느냐에 마이크로그리드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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