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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Ⅱ] “개혁 목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확립”
원로 경제학자 우징롄이 말하는 개혁·개방 30년- ① 중국식 사회주의의 탄생과 발전
[54호] 2014년 10월 01일 (수) 왕숴 economyinsight@hani.co.kr
   
 

2014년은 중국이 본격적인 개혁·개방에 나선 지 30년 되는 해다. 이를 주도한 덩샤오핑(1904~97)이 태어난 지 110년(8월22일)이 되는 해기도 하다. 낡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벗어나 오늘의 중국을 만들어낸 역사적 기점은 1984년 중국공산당 제12기 3중전회였다. 개혁·개방에 깊숙이 관여했던 원로 경제학자 우징롄으로부터 중국식 시장경제 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 들어봤다. _편집자

문화대혁명 뒤 황폐한 현실 타개 목적…
시장경제 도입, 소유권 개혁, 국가통제 완화가 핵심


1949년 신생국가 중국은 당시 소련 체제를 ‘사회주의 모델’로 여겼다. 그러나 경제성장 등 기대했던 성과는 나지 않았고 혼란과 부패가 심해졌다. 문화대혁명은 혼란의 극치였다. 1970년대 후반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은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데서 돌파구를 찾았다. 소유제도의 개혁이 핵심이었다. 실험은 과감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왕숴 王烁 <신세기주간> 기자

우징롄 선생은 개혁·개방의 거의 전 과장을 지켜보고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되돌아보면 덩샤오핑이 반드시 개혁을 단행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뭔가.

문화대혁명(1966~76년 중국에서 사회주의혁명의 완성을 기치로 벌어진 자본주의 사상과 문화 척결 운동 -편집자) 10년간의 재앙을 겪고 나니 중국 경제가 붕괴 직전이었다. 사회도 해체 위기 상태였다. 중국의 대다수 국민은 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

‘신중국’ 건립(1949년 10월1일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 선포 -편집자) 이전이든 이후든 중국은 소련식 사회주의를 진리이자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목표로 생각했다. 실제 그런 식으로 변혁을 했다면 어설픈 미봉책에 그쳤을 것이다. ‘4인방’(문화대혁명 기간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4명의 중국공산당 지도자 -편집자)이 몰락한 당시는 아직 근본적 변혁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돌을 더듬어 강을 건너던’ 때였다.

덩샤오핑은 중국의 근본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중국공산당은 사회주의를 추구하는데, 도대체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명백하지 않으니 소련의 체제를 사회주의라고 여겼다”. 문제가 많았다.

덩샤오핑은 다른 나라들의 발전 경험을 중국공산당이 줄곧 견지해온 사회주의에 적용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제시했다. 중국식 사회주의는 경제 분야에서 중요한 특징인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1984년 중국공산당 제12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제12기 3중전회)는 ‘중국공산당 중앙의 경제체제 개혁에 관한 결정’에서 ‘중국 개혁의 목표는 사회주의 상품경제를 건립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상품경제’란 곧 시장경제를 말한다. 이 결정이 통과된 뒤 덩샤오핑은 “이것이 중국의 사회주의 정치경제학”이라고 선언했다.

‘사회주의 상품경제’로부터 ‘사회주의 시장경제’까지 기나긴 과정을 거쳐왔는데.

우여곡절을 겪었다. 1984년 ‘결정’이 통과된 뒤 어떤 방향으로 개혁을 이행할지에 대해 논쟁이 일었고 개혁파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이는 급진적 개혁을, 또 어떤 이는 완만한 개혁을 주장했다.

1980년대 개혁의 진전이 부진하자 ‘심조’(尋租·본디 뜻은 ‘지대 추구’지만 권력·인맥 등 비경제적 수단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행위를 가리킴 -편집자)가 성행했다.

   
▲ 시진핑 국가주석(오른쪽 세번째)과 리커창 총리(오른쪽 두번째) 등 상무위원들이 2013년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제18기 3중전회)에 참석해 중단 없는 개혁을 다짐하고 있다. 신화 뉴시스

덩샤오핑 “개혁하지 않으면 죽음뿐”

싼값에 배급되던 계획물자를 비싼 가격으로 자유시장에 전매해 차익을 챙기는 ‘관다오’(관료 부패)가 생겨났다. 당시 생산재와 물자의 일부는 계획배정을 하고 나머지는 시장에 유통시켰다. 그 차익을 누리는 사람을 비꼬아 ‘다오예’(투기꾼)라고 불렀다. 권력을 이용해 큰돈을 버는 것이다. 나중엔 그냥 ‘다오예’가 아니라 ‘관다오’라고 불렀다.

1989년 정치적 위기(‘톈안먼 사태’로 불리는 중국의 반정부 민주화 시위 -편집자) 이후 시장개혁 반대파는 1988년 금융위기와 1989년 정치 풍파가 모두 시장화 개혁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사실상 계획경제로 돌아가 1992년까지 3년간 정체기를 겪었다.

이 시기에 덩샤오핑은 비교적 영향력이 있는 담화를 여러 번 발표했다. 1990년 말 중앙당 지도자들과의 담화와 1991년 초 상하이 지도자들과의 담화 요점은 “자본주의에도 계획에 의한 통제가 있고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다. 시장경제를 하지 않으면 낙후함을 자초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1992년 초 남순강화 때 “개혁하지 않으면 죽음 뿐”이라고 못박았다. 1992년 중국공산당 제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개혁의 목표가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확립하는 데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1984년에 제시된 ‘사회주의 상품경제’가 1992년에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더 명확해진 것인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제14기 전인대 보고는 “시장경제란 시장이 자원배분의 기초적 구실을 하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1993년 11월 제14기 3중전회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수립에 관한 몇가지 문제에 대한 결정’을 통과시켰다. 이 결정에서는 50개 항목에 이르는 총체적 로드맵이 제안됐고, 1994년부터 전면적인 개혁이 추진됐다.

1990년대 중반 이후의 개혁은 모두 이 문건을 기초로 한 것인가.

그렇다. 이후 중국 경제는 고속성장을 했다. 그러나 개혁이 재산권 제도 개혁에는 미치지 못했다.

1989~92년 정체기를 겪었다고 했는데, 그러면 1992년 덩샤오핑의 개혁 가속화는 그 위기감에서 비롯한 것인가.

물론이다. 3년간의 정체기 동안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국유경제체제 아래 대량의 상품이 팔리지 못해 창고에 쌓여 있었다. 당시 시장개혁이 추진되지 않으니 국유기업에 대량으로 상품을 풀게 되었고 그 결과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과잉생산과 개혁은 관련이 있다. 즉, 개혁하지 않으면서 성장을 유지하려면 화폐를 투입하는 방법밖에 없다.

당시와 지금이 비슷하니 여기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은 경제력이 훨씬 커졌지만 직면한 문제도 더욱 복잡해졌다. 오로지 개혁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1994년 시작된 사회주의 시장경제 개혁은 재정세부터 착수했다.

재정·은행·외환·국유기업·사회보장이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5대 기둥이다. 1993년 11월 제14기 3중전회에서 ‘최소 포괄적 개혁’을 제안했다. 개혁은 포괄적·체계적으로 하고, 개혁을 제한하는 항목은 최소 범위로 한정한 것이다. 개혁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공백이 있었는데, 바로 재산권과 소유제도의 개혁이 문제였다.

1997년 제15기 전인대에서 (생산수단의) ‘소유’ 제도가 주요 문제로 거론됐다. 공유제를 기본으로 하되 다양한 소유제를 함께 발전시키는 시스템이 제시됐다.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내용 면에서 큰 발전이 있었다. 공유제를 기본으로 하지만 공유제의 형식이 다양하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생산력 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공유제 형식을 찾아야 했다. 

   
▲ 덩샤오핑 개혁·개방 정책의 성공과 현대 중국 경제의 성장을 상징하는 광둥성 선전. 신화 뉴시스

지난 20년간 중국은 수차례 재산권 개혁을 단행했다. 하지만 아직도 이상과는 거리가 있고 재산권 개혁 논란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는가.

1990년대 중반 이래 소유제도의 조정과 개선 과정을 봐야 한다. 소유권 규제 완화로 중소기업이 활성화하면서 전반적으로 발전했다. 소형 국유기업과 지방정부 소유 기업은 1990년대 말에, 그리고 성급 기업은 2000년대 초까지 대부분 소유권 개혁이 완료됐다. 이것이 중국 경제에 엄청난 추진력을 가져왔다.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중국이 1600억위안(약 27조2700억원)을 기초 인프라 건설과 국채에 투자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중요한 점은 당시 중국이 중소기업의 발전을 적극 지지했다는 것이다. 제15기 전인대에서 비공유제 기업이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중요 구성 부분이라고 밝혔다. 이전까지 ‘보완적’ 존재가 이제 ‘중요 구성 부분’으로 된 것이다. 이로써 중국은 순조롭게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국유기업의 상황은 복잡하고 기복이 심하다. 제15기 전인대의 소유제 구조조정에 대한 결정에 따라 국유경제 문제에 대해 ‘진보와 후퇴’라는 슬로건이 제시됐다. 어떤 부분을 추진하고 어떤 부분을 후퇴할 것인가? 여기서 ‘국유경제의 주도적 역할’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국유경제는 경제에 관한 통제가 핵심 기능인데 모든 산업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국민경제의 명맥인 중요 산업과 핵심 영역에서만 통제한다는 것이다.

국유기업 개혁이 정책 성패 좌우

이 경계가 좀 추상적이다. 1999년 제15기 4중전회에서 중점적으로 국유경제 개혁을 다룬 ‘중국공산당 중앙의 국유기업 개혁과 발전에 관한 몇가지 중대문제에 대한 결정’이 통과됐다. 여기서 국민경제의 명맥인 3대 중요 산업과 핵심 영역 하나를 확정했다. ‘3대 중요 산업’은 국가안보산업, 자연독점산업(전기·통신·군수·중요자원 등), 공공서비스·공공재산업이고, 핵심 영역은 첨단과학기술산업 분야의 주력 기업이다.

이 결정에 따라 대대적인 국유경제 개혁이 시작됐다. 중앙에서는 주요 전략 부분이 모두 개편됐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기업을 회사제(公司制) 기업으로 전환했다. 회사제 기업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다양한 소유제를 가진 지주회사, 즉 혼합소유제다. 제15기 4중전회에서는 국유경제 개혁에 대해 “극소수 국가독점 경영이 요구되는 기업을 제외하고는 지분의 다원화를 실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지분의 다원화, 바로 혼합소유제를 말하는 것이다.

ⓒ 新世紀週刊 2014년 33호 吳敬璉談鄧小平與市場經濟改革
번역 심소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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