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민련, 좌파 사민주의 가치 수용해 총선에서 승리… 전통 자유주의는 설 땅 잃어

앙겔라 메르켈의 총선 압승은 독일 정치 지형의 큰 변화를 보여준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유권자들의 거부감은 명확했다. 보수 정당으로 분류되던 ‘기민-기사 연합’은 경제, 이민, 주택 문제 등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전통적 자유주의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은 정치적 실향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보수 우파가 승리했지만 독일 정치가 한걸음 좌클릭한 건 분명해 보인다.

얀 로스 Jan Ross <차이트> 기자

독일 시민계급을 대표하는 ‘기독민주연합(기민련·CDU)-기독사회연합(기사련·CSU) 연합’(기민-기사 연합)의 총선 승리는 역설적으로 시민계급의 정치적 입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 시민계급(통상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고 부유한, 보수적인 중산층을 의미 -편집자)을 위한 정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두가지를 언급할 수 있다. 하나는 개인의 능력, 책임감, 자기 결정, 법, 개인의 자유에 대한 선호다. 다른 하나는 제도와 안정적 삶의 형태에 대한 존중이다. 전자는 자유주의적 요소고, 후자는 보수주의적 요소다.

2013년 9월22일 독일 총선이 끝난 뒤 등장한 정치 풍경에서 이런 시민계급적 정치가 설 땅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기민-기사 연합’은 보수당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사회민주주의적이고 녹색당의 색채도 지닌 정당이다. 독일 인문고등학교인 ‘김나지움’ 보호 같은 전통적인 보수 진영의 가치나 국가가 기업 경영진의 소득과 남녀 성비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자유주의적 견해는 이제 기민련에서 더 이상 당연한 내용이 아니다. 어쩌면 소수 견해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는 정치의 현대화, 메르켈의 선거 승리가 가져온 피할 수 없는 대가인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이는 탈시민계급화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