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특집 > 특집 2013
     
민생과 현장 정치의 대명사 리커창
리커창 중국 총리 집중탐구- ① 그가 걸어온 길
[37호] 2013년 05월 01일 (수) 훠칸 등 economyinsight@hani.co.kr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취임 이후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기자회견장에서 원고를 보는 일이 거의 없이 기자들의 질문에 빠른 속도로 답한다.대중을 상대로 연설할 때도 원고 없이 즉석에서 한다.이른바 '리커창 스타일'이다.그러면서도 성실하게 일하는 자세로는 중국 최고지도부 인사 가운데 그를 따라올 사람이 거의 없다는 평가다.리커창은 앞으로 10년간 중국 경제의 조타수 역할을 맡는다.경제발전 방식을 전환해야 하는 갈림길에 놓인 중국 경제를 그가 어떻게 꾸려나갈지 대내외의 이목이 쏠려 있다._편집자 밑바닥서 시작해 최고지도부 진입… 주거 안정과 국유기업 개혁에서 두드러진 성과 리커창 중국 총리는 민생을 최우선으로 삼는다.그는 차기 총리로 내정된 18차 당대회 이후 첫 외부 시찰지로 농민공 숙소를 택했다.그만큼 서민들의 삶을 꼼꼼히 챙기는 민생 총리가 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주변 인사들은 그를 '능력이 출중해 일을 잘하면서도 성과를 자랑하지 않는 관리'라고 평가한다. 훠칸 霍侃 양저위 楊哲宇 <신세기주간> 기자 지난 3월15일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 1차 회의에서 57살인 리커창이 국무원 총리에 임명됐다.그로부터 며칠 전 원자바오 전 국무원 총리는 '어린 봉황의 울음소리가 나이 든 봉황의 소리보다 맑다'(雛鳳淸于老鳳聲)는 당시(唐詩)의 한 구절을 인용해 후임자에 대한 신뢰와 환영의 뜻을 전했다. 안후이성 딩위안현 출신인 리커창은 문화대혁명의 혼란 속에서 청소년 시기를 보냈다.'지식청년'이던 그는 낮에는 밭에서 땀을 흘리고 밤이 되면 등불 밑에서 책을 읽었다.혁명이 끝나고 대학 입시가 부활되자 안후이성 펑양현 다먀오공사 소속이던 그는 베이징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리커창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생산대대(生産大隊) 당지부 서기로 시작해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지도부로, 다시 농업이 발달한 허난성과 공업의 중심 랴오닝성 성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국가 최고지도부에 진입했다.이 과정을 통해 중국 국정에 대한 이해를 넓혔고 경험을 쌓았다. 2008년 3월 리커창은 국무원 부총리에 올랐다.그 뒤 5년 동안 부동산세 시범사업, 유류세 개혁, 의료보건제도 개혁을 이끌었다.또한 저가로 토지를 공급해 건립 비용을 낮춘 뒤 주변보다 낮은 시세에 공급하는 보장성주택(저가임대주택, 공공임대주택, 가격제한분양주택 등) 건설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식품 안전 문제 해결에 주력했다.일부 언론에서는 그를 두고 '난제 해결사'라고 평했지만 늘 치적을 내세우지 않는 그의 성품 때문에 외부에 알려진 내용은 많지 않았다. 개혁·개방 이후 여섯번째로 취임한 행정부 수반의 입장에서 보면 개혁 심화 단계에 들어선 중국은 지금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장차 어떤 목표와 생각을 갖고 정책을 추진할지, 그리고 국민이 어떤 기대를 품고 있는지는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스타일을 통해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가파르게 비탈진 진흙길을 따라 올라온 리커창은 손으로 바닥에 있는 흙을 만지며 한탄했다."땅이 너무 척박합니다.산 속이라 땅이 좁고 척박하니 농민들이 소득을 늘리기 힘들겠군요." 리커창이 18차 당대회에서 차기 총리로 내정된 이후인 2012년 12월2...
비공개 기사 전문은 종이 잡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