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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은 거대한 사기극이었나
[30호] 2012년 10월 01일 (월) 정남기 jnamki@hani.co.kr

   
 
3년마다 60%씩 보험료 급등 불가피… 노후 의료비 보장 꿈 물거품으로

개인 의료비는 65살 이상 노년기부터 집중적으로 지출된다. 특히 75살 이상 노인의 의료비는 65살 미만의 5배에 이른다. 이를 대비한 게 건강보험 이외의 의료실비를 보장하는 실손보험이다. 그러나 잘못된 상품 설계로 3년마다 60%씩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40살 가입자가 70대가 되면 수백만원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노후 의료비 보장은 한낱 공허한 꿈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정남기 <이코노미 인사이트> 편집장

직장인 노후 대책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게 의료비다. 고령화 추세에 따라 90대 노인이 속출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의료비 증가가 불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해주는 반가운 수단이 실손의료보험이다. 매달 7만~10만원씩 20년을 내면 100살까지 평생 의료비를 다 내준다고 하니 그만큼 좋은 게 없다. 상품에 따라 다르지만 20년 동안 1500만~2천만원의 보험료를 내면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못하는 비용을 100% 해결해준다는 게 실손보험의 주요 내용이다.

이런 장점 때문에 2007~2009년 많은 사람들이 이 보험에 가입했다. 현재 실손보험 가입자 수는 2522만 명(2012년 4월 기준)에 이른다. 그러나 예상보다 의료비 지출이 많아지면서 보험사들의 사정이 다급해졌다. 결국 금융 당국이 나서 2009년 10월 실손보험의 보장 범위를 기존 100%(손해보험 기준)에서 90%로 줄여줬다. 1차 대책이었다. 이후 별 문제가 없는 듯했다.

그러나 2012년 들어 다시 문제가 터졌다. 3년의 보험료 갱신 주기를 맞은 2009년 10월 이전 가입자들에게 60% 가까운 보험료 인상 폭탄이 떨어졌다. 잘못된 상품 설계로 보험사들의 손해가 커지자 이를 보험 가입자에게 모두 전가한 것이다. 문제는 3년마다 이런 식의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융 당국이 지난 8월 2차 대책을 내놨다. 보험료 갱신 주기를 3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고 연간 25%의 한도를 정해 그 이상 못 올리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신규 가입자에 대한 대책일 뿐 기존 가입자에 대한 대책은 아무것도 없다. 2500만여 명의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장차 자신들에게 어떤 불이익이 떨어질지조차 모르고 있다.

실손보험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는 월 7만~10만원이다. 이 가운데 실손보험료는 1만~1만5천원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일반 손해보험의 보험료다. 거기에 향후 보험료 상승을 대비한 적립보험료가 있다. 상해보험 3만~4만원, 실손보험 1만~1만5천원, 적립금 5만~6만원, 이런 식으로 보험료가 구성된 경우가 많다. 가입자들은 실손보험에 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상해보험이 주계약이고 실손보험은 특약으로 포함된 형태다. 문제는 1만~1만5천원에 불과한 실손보험료가 3년마다 60%씩 오를 경우 본격적으로 의료비 지출이 많아지는 70~80대 이후가 되면 월 보험료가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1천만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경기도 파주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이 어버이날을 맞아 이곳을 방문한 젊은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노후 의료비 마련은 중·장년층의 중요한 노후 대책 가운데 하나다. 뉴시스

한 달 납부 보험료가 1천만원?

3년마다 60%씩 오를 경우 애초 1만5천원이던 실손보험료는 3년 뒤 2만4천원이 된다. 6년 뒤에는 3만8400원, 15년 뒤면 15만7천원으로 오른다. 이후엔 더 가팔라진다. 30년 뒤엔 164만9천원이고, 36년 뒤엔 422만2천원, 42년 뒤엔 무려 1080만8천원에 이른다. 40살의 직장인이 1만5천원씩 내는 실손보험에 가입해 82살이 되면 월 보험료가 1천만원을 넘어간다는 얘기다. 45년 뒤엔 1729만3천원으로 애초 보험료의 1천 배를 넘게 된다.

설마 그렇게까지 오를까?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개연성은 매우 높다. 연령 증가 한 가지 요인만으로도 3년마다 보험료가 20%씩 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위험률 상승을 감안해야 한다. 위험률은 의료 이용량 증가, 신기술 도입에 따른 의료 단가 상승, 물가 상승분을 감안해 산정한다.

의료 이용량 증가와 의료 단가 상승으로 인한 의료비 증가는 얼마나 될까? 보건복지부의 국민의료비 현황을 보면 쉽게 추산할 수 있다. 국민의료비 가운데 공공부문 지출을 제외한 개인 의료비 중 비급여본인부담금과 법정본인부담금을 합한 가계 직접부담 의료비는 2000년 13조1천억원에서 2008년 23조3천억원으로 늘어났다. 실손보험이 2009년부터 급증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실손보험 가입으로 인한 의료 이용량 증가의 영향이 크지 않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간의 가계 부담 국민의료비 상승률은 연평균 7.5%다. 3년 단위로 계산하면 24%가 넘는다. 물론 인구 증가로 인한 상승분이 있다. 그러나 당시 연평균 인구 증가율은 0.5%에 불과하다. 3년이라 해도 1.5%에 그친다. 인구 증가를 감안한 실제 의료비 상승률이 대략 22.5%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다가 연 3%대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3년마다 10%가량의 보험료 추가 상승 요인이 존재한다.

연령 증가, 가계 의료비 증가, 물가 상승 이 세 가지만 감안하더라도 3년마다 53%가량의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올해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연령 증가 20%, 위험률 증가 40%를 합쳐 60%의 보험료 인상을 감수해야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와 보험회사들은 실손보험 가입자들의 과도한 의료기관 이용으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진짜 원인은 잘못된 상품 설계에 있었던 것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다음에도 올해처럼 보험료가 60%씩 오를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보험료 인상을 최대한 억제해서 3년마다 50%씩 오른다고 가정해보자. 그래도 보험료 폭탄을 피할 수 없다. 애초 월 1만5천원이던 보험료는 15년 뒤엔 11만4천원, 30년 뒤 86만5천원, 36년 뒤 194만6천원, 42년 뒤 438만원으로 급증하게 된다. 40살에 가입해 82살이 되는 해다. 개인 의료비 지출이 70대나 80대 이후에 집중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가입자들은 거의 아무런 이득을 볼 수 없게 된다. 정작 많은 의료비 지출이 예상되는 70대 이후에는 보험 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건강보험 가입자의 1인당 월평균 진료비는 65살 미만이 5만8297원, 65~74살 29만1645원(5배), 85살 이상 32만5370원(5.58배)에 이른다.

중요한 것은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보험료 인상액이 적기 때문에 실감하지 못한다. 적립보험료를 내는 경우 적립금에서 인상분을 보충하기 때문에 납부 총액이 늘지 않는다. 따라서 보험료가 올랐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된다. 하지만 적립금이 바닥나면 보험료가 급증하고 가입자들은 그때서야 실상을 알게 된다. 결국 보험 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다. 실제 실손보험 유지율은 5년차가 48.5%, 10년차가 14.7%다. 10년이 지나면 85.3%가 해약한다는 얘기다.

더 심각한 것은 15~20년납 100살 만기 실손보험에 가입한 가입자들이 15~20년만 보험료를 내면 더 이상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착각하는 점이다. 그것은 보험료가 오르지 않을 때 얘기다. 보험료가 3년마다 60%씩 오르면 12~15년만 지나도 매달 고액의 추가 보험료를 내야 한다.

실제 사례를 보자. 직장인 A씨가 2009년 3월에 가입한 실손보험은 20년납 100살 만기 보험으로, 1억원 한도에서 의료비의 100%가 보장되는 실손보험이다. 월 보험료는 6만8500원이다. 보험료 내역을 자세히 보면 △상해사망·후유장애 5240원 △질병사망 1만3720원 △적립보험료 4만9540원으로 돼 있다. 이 가운데 적립보험료에서 실손보험료 1만8475원이 빠져나간다. 나머지 3만1천여원 가운데 보험사가 사업비 명목으로 1만5천원을 가져간다. 실제 적립되는 돈은 1만6천원에 불과하다.

이 사람의 실손보험료는 애초 1만1554원이었으나 올해 3월 59.9% 올랐다. 인상액이 6921원이어서 그다지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게다가 보험료 납부 총액은 달라지지 않았다. 기존에 쌓아놓은 적립금에서 인상분을 충당하니 본인은 보험료가 오른지도 몰랐다. 그러나 실손보험료가 60%씩 계속 오를 경우 큰 문제가 발생한다. 보험료는 가입 시점에서 9년 뒤 4만7천원, 12년 뒤 7만5천여원, 15년 뒤엔 12만1천원으로 불어난다.

이때쯤이면 적립금이 바닥나고, 그 순간 6만8500원이던 보험료는 급등 행진을 시작한다. 상해보험 1만9천원에 실손보험 12만1천원을 더해 14만원가량으로 보험료가 두 배 이상 뛰는 것이다. 보험 가입자는 그때까지 6만8500원만 내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가 비로소 보험료 급등을 실감하게 된다. 20년납이라 해도 보험료가 부족하면 추가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보험료는 18년 뒤 21만2천원, 30년 뒤 128만9천원 등으로 급등한다. 30년이 지나면 연간 보험료 납부액만 1547만원이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보험 가입자들

이런 식으로는 보험 계약 유지가 불가능하다. 결국 해약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보험료 인상률이 5~10%에 불과할 것이고, 또 20년만 내면 더 이상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고 알고 계약했다. 거의 대부분 불완전판매가 이뤄진 것이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료 인상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급등하게 되는 문제점 때문에 적립보험료 방식의 실손보험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번에 2500만여 명에 이르는 기존 가입자에 대한 대책을 전혀 내놓지 않았다. 이번 대책은 대부분 신규 가입자를 위한 것이다. 이런 문제점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기존 가입자들은 대책 없이 방치돼 있다. 이들은 조만간 보험료 인상 폭탄을 맞게 돼 있다. 금융 당국이 하는 말은 "쉽게 갈아탈 수 있게 하겠다"는 것뿐이다. 기존 계약을 해약하고 새 상품에 가입하라는 얘기다. 그러나 해약으로 인한 손해는 누가 보상해줄 것인지 대답이 없다. 실손보험은 결국 한판의 거대한 사기극으로 끝나고 마는 것일까?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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