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특집
     
스위스로 숨어든 800억유로의 향배는?
Special Report ● 독일 부자들과 스위스 은행의 검은 공생
[30호] 2012년 10월 01일 (월) 마티아스 바르치 외 economyinsight@hani.co.kr

   
 
800억유로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이 독일에서 빠져나가 스위스 은행의 비밀금고에 숨어 있다. 독일 정부는 이 돈이 독일로 돌아오게 만들기 위해 스위스와 조세협정을 맺어 면죄부를 주려 한다. 야당인 사민당과 국민들은 검은돈을 환수해야 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조세협정은 이미 연방 하원을 통과해 연방 상원의 비준을 기다리고 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독일과 스위스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_편집자

독일 정부, 검은돈 환수 위해 탈세자에 면죄부 주는 협정 추진… 여론 질타에 성사 불투명

스위스로 도피한 독일 자금이 최대 800억유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독일 정부는 검은돈을 국내로 되돌리기 위해 탈세자들에 대한 사면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진퇴양난이다. 야당은 스위스에 대해 더 강경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마티아스 바르치 Matthias Bartsch / 알렉산더 노이바허 Alexander Neubacher / 고르돈 레핀스키 Gordon Repinski / 마티유 폰 로르 Mathieu Von Rohr / 바바라 슈미트 Barbara Schmid /그레고르 페터 슈미츠 Gregor Peter Schmitz <슈피겔> 기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있는 부퍼탈바르멘 세무서 뒤쪽에는 엄중한 보안을 유지하는 방이 하나 있다. 이 방은 독일에서 가장 무서운 세무조사관들의 지휘사령부다. 이곳에서 조사관들의 서류를 보관하고 압수수색을 준비한다. 조사관들이 얼마 전 문제의 동영상을 시청한 곳도 바로 이 방이었다. 몇 분짜리 짧은 동영상이었다. 동영상이 보여주는 것은 은행 직원과 고객의 역할을 맡은 한 남자의 대화였다. 일종의 질문·대답 역할극으로, 주제는 '어떻게 하면 독일인이 스위스 은행의 도움을 받아 세금을 내지 않고 자신의 돈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는가?'였다.

해답은 재단법인이었다. 특히 싱가포르에 설립하는 재단법인을 추천하고 있었다. 자금의 실소유자를 숨기고, 이사장 명의가 아시아인 혹은 미국인 이름으로 돼 있으면 그 자금을 다시 스위스 은행에 예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동영상은 언론에 보도된 것과는 달리 6∼7년 전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동영상이 논란이 된 직후 스위스 은행가들이 발표한 것처럼 지금 현재 일어나는 일은 아닌 듯 보인다. 스위스 은행가들은 어떤 고객에게도 더 이상 세금 도피를 부추기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무조사관들은 이 동영상이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동영상은 한 스위스 대형 은행의 교육 자료로 은행 직원들이 몇 년 동안 조직적으로 고객의 탈세를 돕도록 교육을 받아왔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조만간 정치인들은 새로운 독일-스위스 조세협정의 체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동영상의 여파는 매우 컸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문제가 이제는 올바른 태도와 도덕성과 명예의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세무조사관들은 독일연방 정부가 범죄자들에게 면죄부를 팔려 한다고 비난한다. 야당 대표들은 '조직된 범죄행위'(지그마어 가브리엘 사회민주당 대표), '정직한 납세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행위'(위르겐 트리틴 녹색당 원내대표)라고 비판한다. 총선을 1년 앞두고 흑황연정은 공정성 논란에 발목을 잡혔다. 기민·기사연합과 독일 자유민주당(FDP)은 다시 한번 부자와 은행가들에게 놀라울 정도의 관대함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최대 은행 UBS의 최고경영자(CEO) 세르지오 에르모티가 지난 7월 2분기 순익이 4억2500만스위스프랑으로 이전 분기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는 발표를 하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시스 REUTERS
탈세 모의 동영상에 독일 사회 들썩

스위스에 은닉된 자금을 밝혀내려는 수십 년에 걸친 전투를 되도록 매끄럽고 잡음 없이 끝내려 했던 연방정부의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다. 이 계획은 사면 약속을 통해 스위스에 비밀 계좌를 가진 독일인들이 그 자금을 합법적으로 세탁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비교적 적은 금액을 독일 정부에 내면 이들의 과거 행위를 불문에 붙이겠다는 것이다. 볼프강 쇼이블레(기민당·CDU) 독일연방 재무장관과 에벨린 비트머슐룸프 스위스 재무장관의 협상을 통해 만들어진 조세협정은 이미 독일연방 하원에서 통과됐다. 스위스인들의 동의도 거의 확실해 보이고 남은 것은 독일연방 상원의 비준뿐이다.

하지만 지금 이 협정은 파탄 일보 직전이다. 사민당(SPD)은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연방주에서 이 협정의 비준을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스위스와의 조세협정은 죽었다." 안드레아 나레스 사민당 사무총장은 "사민당이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연방주에서는 이 협정에 찬성할 수 없다. 이는 정치적으로 더 이상 정당하다고 인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쇼이블레 재무부 장관에게 이는 치욕이 될 것이고, 얼마 전 다시 한번 이번 조세협정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도 사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는 연방정부가 정책 노선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법무부 장관 토마스 쿠차티가 제안한 것과 같이 형법을 더 엄격하게 적용해 스위스와의 사례를 케이맨제도나 싱가포르 같은 다른 탈세 진원지를 상대하는 본보기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모범 사례는 현재 독일과 마찬가지로 스위스와 조세협정을 협상 중인 미국이다. 이 협정에서 미국 시민의 탈세 시도를 돕는 스위스 은행가는 만일 발각되면 징역형을 각오해야 한다. 탈세자들에게 면죄부뿐만 아니라 익명성까지 보장해주는 독일-스위스 조세협정과 같은 내용의 협약은 미국에는 생각해볼 가치도 없는 것이다.

쇼이블레는 여전히 이 조세협정이 체결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사민당이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연방주 중 몇몇 주의 결정을 바꾸도록 설득하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다. 그가 보기엔 세금도피자들에 대한 면책 조치는 전체적으로 이득이 되는 협정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부일 뿐이다. 그는 면책으로 수십억유로가 연방과 주 정부의 금고에 들어오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쇼이블레는 적들 내부에 균열이 생기게 하려고 한다. 11월 말로 예정된 연방 상원 비준까지 사민당과의 연립정부가 들어서 있는 연방주 중 최소 3개 주의 의견을 바꿔야만 한다. 그 후보로는 함부르크·자를란트·라인란트팔츠·베를린 그리고 바덴뷔르템베르크가 거론되고 있다. 이를 위한 조정 과정에서 필요하면 메르켈 총리도 쇼이블레를 도울 것이다. 연방의 계획에 찬성하는 주에는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해서 보상해주는 일도 가능하다.

하지만 사민당은 이 협정을 무효화하기로 단단히 결심한 듯하다. 지난 8월 중순 한넬로레 크라프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총리는 영상 회의를 통해 당 수뇌부에게 동영상에 대해 보고하고, 얼마 전 매입한 CD에 탈세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의 정보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조세협정 반대를 되도록 빨리 확정하기로 합의했다. 심지어 원칙적으로 스위스와의 협정에 개방적 태도를 보인 올라프 숄츠 함부르크 시장도 감히 반대 의견을 내세우지 못했다.

   
지난 8월 스위스 취리히 중심가에 있는 UBS와 크레디스위스은행의 건물 위로 번개가 치고 있다. 뉴시스 REUTERS

세금 30%만 내고 사면받는 조세협정 논란

사민당원이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재무장관인 노베르트 발터 보르얀스는 "되도록 값싸게 죄를 면하려는 탈세자들의 희망이 조세협정에 상당 부분 반영돼 있기 때문에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베를린의 의회 대변인인 리하르트 멩(사민당) 역시 "현재 같은 형태의 조세협정을 비준하기 위한 연방 상원의 과반수 찬성에 베를린은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했고,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재무장관 닐스 슈미트(사민당)는 "비준 가능성이 더욱 낮아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협정은 정직한 납세자들이 가지고 있는 정의 관념에 어긋나는 항목이 많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모든 영수증을 세무서에 제출하게 하고 센트 단위의 금액마저 규정에 따라 세금을 매기면서, 국가는 스위스에 검은돈 계좌를 만들어 세금도피를 한 사람들에게는 관용을 베풀려는 까닭이다.

예를 들어 10년 전 세금을 내지 않은 목돈 120만유로를 스위스의 한 은행에 예치하고 그 돈에 이자가 붙어 그사이 160만유로로 불어났다면, 조세협정이 맺어진 이후에는 이 돈을 공식적으로 세탁하기 위해 단지 전체 금액의 21%만 내면 된다. 즉 34만유로만 내면 독일 국고에 대한 모든 의무가 해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득이 독일 내에서 법에 따라 올바르게 과세됐다면 그 금액은 77만유로로 2배 이상이 된다. 이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재무부 전문가들이 추산한 금액이다.

자진 신고자들이 내야 하는 금액과 비교하면 조세협정으로 과세되는 금액은 한층 더 저렴해 보인다. 현재 적용되는 법에 따르면, 앞선 사례의 경우 세금도피자가 자수하면 체납세금 77만유로를 내야 할 뿐 아니라 추가로 연체이자까지 붙는다. 세무 공무원들의 계산에 따르면 이런 자진신고자들이 납부해야 하는 금액은 약 120만유로로, 조세협정이 체결된 뒤 사면을 받기 위해 내야 하는 금액의 3배가 넘는다.

또한 새 협정에 따르면 세금도피자들은 익명이 보장된다. 스위스 은행이 예금주에게 증명서를 발급하고 부과 금액을 독일 국고로 송금한다. 만일 나중에 이 예금에 대한 탈세 조사가 이뤄지면 예금주들은 스위스 은행이 발급한 증명서만 조사관들에게 보여주면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이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재무부의 예상에 따르면, 대부분의 검은돈 소유주들이 쇼이블레가 만든 조세협정에 예정된 과세율 중 최저 세율을 적용받을 것이라고 한다. 과세 범위는 공식적으로 21∼41%지만 실제로는 탈세자의 80%가 최소 과세율을 적용받을 것이다. 그들이 은닉한 금액이 몇백만유로에 달하는 거액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최저 세율을 적용받게 될 금액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스위스에 쌓여 있는 독일인 소유의 검은돈은 최대 800억유로로 추정된다. 수십 년 동안 독일의 세금도피자들과 스위스의 자산관리사들은 완벽한 공생관계를 이루었다. 은행 비밀 준수법의 보호 아래 함부르크나 하이델베르크의 의사·변호사·기업가들은 세금을 피해 그들의 자산을 스위스로 보냈고, 그 대가로 스위스 은행은 취리히의 황금 해변에서 전세계 금융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자금을 얻었다.

ⓒ Der Spiegel 2012년 34호 Eine Frage der Ehre 번역 황수경 위원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김현대 | 편집인 : 강대성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백기철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