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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없는 ‘채무자본주의’ 벗어나라!
[Cover Story]월스트리트 점거, 무엇을 상징하나
[19호] 2011년 11월 01일 (화) 고병권 economyinsight@hani.co.kr

   
 
지난 9월17일 미국 맨해튼 월스트리트 근처의 작은 공원 주코티 스퀘어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거시위가 전세계에 엄청난 반향을 몰고 오고 있다. 시위는 한 달 만인 10월15일, 전세계 1천여 곳의 도시로 확산됐다. 마치 월스트리트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부패한 자본주의’ 전체를 점령해버릴 기세다. 1980년대부터 세계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에 대해 이렇게 세계인이 한목소리를 낸 건 처음이다. <이코노미 인사이트>는 주코티 스퀘어 점거시위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해온 고병권 수유넘어R 연구원의 분석글 등을 통해 현재 시위가 갖는 시대사적 의미를 점검해보았다. _편집자


고병권 수유너머R 연구원

지난 9월17일에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거는 이제 한 달을 넘어섰다. 그런데도 시위는 확대·고양 국면에 있다. 이 점거는 두 달 전부터 예고돼 있었다. 몇몇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서 시위를 제안했다. 나는 이들이 사회과학자의 치밀한 분석이나 혁명가의 본능적 직관을 통해 그런 제안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시위가 시작되기 보름 전쯤 공개된 준비모임을 참관했을 때도 그들이 지금 같은 규모와 양상을 보일 거라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
 
점거- 쉽게 공감하는 vs 이해하기 쉽지 않은
   
지난 10월 중순 월스트리트 점거시위 현장의 다양한 모습. 왼쪽부터 ‘월스트리트의 은행가 깡패들을 구속하라’는 손팻말을 든 남성 시위자, 주코티 광장에 붙어 있는 ‘우리는 공정을 원한다’는 팻말.
어찌 보면 이들의 제안은 한국에서 촛불시위 관행을 처음 만들어낸 2003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항의 시위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앙마’라는 아이디를 가진 젊은이가 처음 인터넷을 통해 촛불시위를 제안했고, 거기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응했다. 2008년 다음 아고라에 올랐던 ‘대통령 탄핵 청원’도 마찬가지다. ‘안단테’라는 아이디를 쓰는 중학생이 올린 글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매일 10만 명 단위로 늘어났다. 말하자면 시위가 그 제안자의 상상을 넘어서 확대되는 것이다. 누구나 알 듯, 큰불을 일으키는 데 큰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바싹 말라 있는 환경에서는 작은 불씨로도 큰불이 일어난다. 즉, ‘사건’의 양상과 규모를 결정하는 건 사건 자체의 성격보다는 그것이 일어나는 환경과 관련이 깊다. 그리고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라고 불러온 1980년대 이후의 세계체제- 한국에서는 금융시장 개방과 사회 구조조정 논의가 본격화된 199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체제- 가 그런 환경을 조성해왔다.
이번 시위의 분위기는 9월17일 당일부터 심상치 않았다. 점거 예정 장소인 증권거래소 주변이 경찰에 의해 오전부터 원천봉쇄됐을 때만 해도 점거시위는 성공하기 어려워 보였다. 월스트리트의 유명한 황소상 근처에서 몇몇 사람이 점거를 알리며 작은 행진을 할 때도 활기는 있었지만 역시 큰 집회로 발전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예고된 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삽시간에 모여들었다. 특히 경찰의 봉쇄를 피해 집회 장소를 지금의 ‘주코티 공원’(점거자들은 이곳을 ‘리버티 스퀘어’라고 부른다)으로 옮긴 뒤, 그곳에서 사람들이 보여준 열기는 이번 점거가 누구도 가늠하기 어려운 양상으로 전개될 것임을 예감케 했다.
점거 제안자들은 공원에 도착했을 때 토론을 제안했다. 마이크 사용이 금지된 곳이므로 주변 사람들과 모여서 서로 이야기해보자는 것이었다. ‘이런 게 가능할까.’ 내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사람들은 벌써 곳곳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대출이자를 내지 못해 은행에 집을 빼앗긴 아주머니, 대출받은 학자금 때문에 공부를 포기한 학생, 최근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노동자, 거기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군 철군을 주장하는 참전군인, 의료보험 없이 아이를 키우고 있다며 울먹이는 젊은 엄마,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관통하는 가스관 건설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환경운동가…. 처음엔 이들의 사연에 귀기울이며 메모를 하다가 곧바로 포기해버렸다. 그야말로 모든 요구와 문제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봇물이 터진다’는 이걸 두고 하는 말일 듯하다. 여기저기서 울분을 토하고 울먹이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지난 수십 년간 지속된 체제가 이제는 버티기 힘든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이날 토론에서 쏟아져나온 말들은 다음날 다양한 피켓들로 재등장했다. 공원 한쪽에는 사람들이 쏟아낸 온갖 말들이 퀼트처럼 아름답게 수놓여 있었다. 아름답다고는 했지만 거기엔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그저 종이박스를 뜯어 매직펜으로 꾹꾹 눌러쓴 것들이다. 수많은 요구가 그 자체로 소박한 대중이 되어 거기 누워 있었다. 모두가 절실했고 누구나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말들이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직접 매직펜을 들고 하고 싶은 말을 적기도 했다. 나와 함께 그 광경을 보던 지인은 참 희한하다고 했다. 서로 다른 요구들이 어찌 그렇게 모순되지 않고 잘 어울리는지 말이다.
지난 10월15일 ‘지구행동의 날’에는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의 1천 개 넘는 도시에서 점거시위가 일어났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수의 미국인들이 이번 시위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많은 이들이 이번 점거에 공감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금세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며 공감한다. 이렇게 많은 요구가 왜 동시에 쏟아져나왔을까. 사람들은 왜 서로 다른 요구들에 쉽게 공감해 함께하는 것일까.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통일된 목소리와 단일한 지도부가 없다는 점에서, 도무지 누가 뭘 요구하는 시위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보수우파 정치인들은 실직자들의 난동쯤으로 치부하고, 자유주의 정치인들은 좌절을 이해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이번 점거에 대중은 크게 공감하는 반면, 정치권과 언론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월스트리트의 정치경제학
   
지난 10월 중순 월스트리트 점거시위 현장의 다양한 모습. ‘나는 99%다’라는 배지를 단 시위대(왼쪽), ‘부자에게 과세하라’는 팻말을 든 청년 시위자의 모습.
앞서 말한 것처럼 사건이 정말 ‘사건’이 되는 것은 그것이 일어나는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월스트리트’라는 이름은 지난 수십 년간(최소한 1980년대 이후) 조성된 사회적 환경을 상징한다. 물론 이번 점거가 그런 사회적 환경에 대한 치밀한 분석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마치 처음 점거를 제안했던 이들이 그랬듯이, 그 제안에 호응한 사람들 역시 냉정한 분석과 계산의 결과로 나선 것은 아니다. 단지 몇몇의 계기가 맞물리면서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월스트리트’라는 직관에 도달한 것 같다.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는 요구가 대중의 가슴에 불꽃을 튀게 한 직접적 계기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리먼브러더스를 시발로 세계적 수준의 금융위기가 일어났다. 대규모 투자은행들이 파산 위험에 처하자 미국 정부는 천문학적 규모의 구제금융을 월스트리트에 제공했다. 그 돈은 재무부의 긴급 요청으로 의회나 법원의 심사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말 그대로 돈을 그냥 준 것이다. 그런데 그 돈을 받은 투자은행들이 경영진에게 막대한 보너스를 지급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피해를 입은 것은 투자은행들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정말 위험에 처한 것은 집을 내놓고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이었다. 금융회사들이 막대한 투자 손실로 경영위기에 처한 이면에는 집을 잃고 길거리로 쫓겨난 사람들의 생존 위험이 있었다. 그런데 대규모 투자은행에는 천문학적 규모의 구제금융이 제공된 반면, 생존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제공해야 할 복지는 축소됐다. 게다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의 투자 노력은 재정 삭감을 요구한 의회의 요구에 발목이 잡혀버렸다. 구제금융 여파로 이미 막대한 재정 적자가 초래됐기에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논리였다. 재정을 확충하기 위한 증세 노력은 낡은 이념 논쟁 속에서 좌절됐다. 그동안 막대한 부를 독식해온 월스트리트는 구제금융으로 보너스 잔치를 벌이는데, 그동안 가난에 내몰린 사람들에게 제공될 복지는 삭감된 상황이다. 사람들의 눈에 불꽃이 튄 것은 당연했다.
이 불꽃이 이토록 크게 타오르는 데는 더 깊은 이유가 있다. 월스트리트는 단순히 구제금융으로 보너스 잔치를 한 정신 나간 탐욕가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지난 수십 년간 지속돼온 체제의 상징적 이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월스트리트’를 맨해튼의 특정 지역이나 특정 기업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 사람들에게 월스트리트는 누군가는 ‘신자유주의’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금융자본주의’라고 하는 체제 속에서 이뤄지는 일반적 삶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의료보험 없이, 공교육이 망가진 채로, 학자금 대출에 연명해서, 고용 불안에 시달리면서, 집의 대출이자를 갚아가는, 그런데도 정부는 군대를 파병하고 부의 양극화에 아랑곳하지 않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삶 일반을 ‘월스트리트’라고 부른다.
이 다양한 요구들이 왜 ‘월스트리트’라는 이름 하나로 수렴됐을까. 그것은 그 이름으로 대표되는 금융자본의 축적 방식과 깊이 관련돼 있다. 산업자본은 상품 생산에 지급된 가치와 그 상품의 시장 가치 차이를 이용해 이윤을 남긴다. 마르크스의 설명을 빌리면,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력이 생산한 가치의 차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금융자본은 산업자본에 자본을 선대하고 거기에 대한 이자를 받는다. 즉, 산업자본이 생산한 영여의 일부를 이자로서 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금융자본의 축적 규모는 이런 식으로 운영되기에는 너무 크다. 현실적으로 운용되는 양상도 많이 다르다. 금융자본이 움직이는 금융시장에는 전통적 의미의 상품과는 다른 다양한 권리(상품에 대한 권리, 이익에 대한 배당권, 화폐 등)가 상품화돼 있다. 주식과 채권, 통화 등 그 자체로는 상품이 아닌 권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묶여 파생상품들로 태어난다. 이 상품들의 수익성은 그동안 경제학에서 ‘외부재’라고 부른 환경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 나쁜 기후나 지진 등 자연재해는 물론, 사회구조와 정책이 수익성에 대한 기대를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환율·세금·주택·토목·고용·교육·의료·국방 정책 등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해당 금융상품들의 가치가 요동친다. 이 때문에 금융자본가들은 그동안 공공정책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는 한국 사회가 1997년 외환위기 때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왜 사회 전체의 구조조정을 요구받았는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금융자본 규모가 커질수록 그것은 특정 기업에 관여하는 대신 사회 전체에 관여하게 된다. 지진에서 전쟁까지, 자동차에서 주택까지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과 재화에 수익성을 걸고 관여한다. 특정 기업의 노동자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그 수익성을 떠받치는 꼴이다. 이번 월스트리트 사태는 이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사연은 구구절절 많지만 그 모든 사연이 ‘깔때기’처럼 월스트리트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에 투자한 적 없고 취업한 적도 없는 이들이 ‘우리 돈을 돌려달라’(Take back our money)고 말하는 것은, 대중이 월스트리트를 향해 ‘우리 모두가 착취당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채무자본주의와 저당 잡힌 미래
   
미국 뉴욕시 경찰들이 지난 10월15일 맨해튼 타임스퀘어에서 점거시위를 벌이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자들이 경찰 저지선을 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월스트리트가 그동안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에 대한 설명만으로 현재 대중의 투쟁을 해명할 수는 없다. 사회운동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정치경제학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월스트리트가 대중의 삶과 마주치는 장면을 이해해야 그들이 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금융자본가가 이러저런 모기지 상품들을 갈아타는 동안, 대출받아 집을 사고 학교에 다녀야 했던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노동생산성과 임금의 추이는 1980년대 이후 미국 사회에서 일어난 일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1980년대 이후, 생산성과 임금의 격차는 급격히 벌어졌다. 생산성 향상과 견줘볼 때 지난 30여 년간 실질임금 상승은 거의 없었다.
높아진 생산성을 떠받치려면 소비가 늘어나야 하지만, 소득은 그대로이거나 심지어 줄어버렸다. 이 간극을 메워온 것이 채무였다. 신용카드를 발행해줘 빚을 내서라도 소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소득은 늘지 않았는데 주거·교육·의료 등 생활에 필요한 가치 총계가 높다면, 결국 사람들이 의지할 곳은 대출뿐이다. 일반 서민들은 장기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하고, 학자금 대출을 받아 폭등한 대학 등록금을 내왔다. 정부가 주택 가격이나 학비를 낮추기보다 빚을 내기 쉬운 구조를 만들어온 것이다. 채무로 곤궁에 처한 가난한 이들을 돕는 방식도 대출이었다. ‘저리 장기 융자’, ‘취업 뒤 상환’, ‘마이크로 크레디트’ 등 빚내서 빚을 갚게 하는, 말 그대로 ‘채무 경제’가 구축됐다.
사람들은 집이든 자동차든 대학이든 빚내서 구해야 했고, 무슨 수를 쓰든 그것을 죽을 때까지 갚아야 했다(‘모기지’(Mortgage)라는 말 안에는 ‘죽음’(Mort)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무슨 수를 쓰든지’라는 말은 참 의미심장하다. 교통비를 줄이든, 교육비를 줄이든, 식비를 줄이든, 의료비를 줄이든, 파트타임을 몇 개나 뛰든 그런 건 관심사가 아니다. 금융자본주의가 노동을 착취하기보다 삶 전체를 착취한다고 주장하는 건 이런 맥락에서다. 삶 자체를 그야말로 비틀어 짜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을 지속한 금융자본주의의 이면이 이런 ‘채무자본주의’였다. 한동안 빚이 안겨준 풍요 덕분에 미국민들은 이 문제를 인식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미 이들은 더 이상 짜낼 게 없는 마른 수건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월스트리트에 대한 대규모 구제금융과 복지예산 삭감은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었음이 틀림없다. 그것은 정부, 즉 메인스트리트가 월스트리트를 구제하고 대중은 외면한다는 표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은행들을 ‘실패하게 두기에는 너무 크다’(Too Big To Fail)고 했다. 사회가 그 여파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뒤집어 말하면 미국 사회가 그동안 이들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키워주었고, 사회 전체가 이들을 위해, 이들 위에서 구축돼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암담한 대중에게는 정부가 유일한 구원자이지만, 정부는 현재 속수무책의 상황 속에 있다. 연방정부의 지출은 대형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과 전쟁비용 지출로 바닥나 있다. 부자들에 대한 증세 노력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가로막혀 있다. 재정 적자 때문에 복지 확충과 의료보험 개혁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구원자가 더 이상 구원자일 수 없다고 판단될 때, 대중은 스스로를 구원자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올해 출간된 <채무>(Debt)에서 “채무란 약속의 전도(the perversion of a promise)”라고 주장했다. 대출받을 때 우리는 미래에 그것을 갚겠다고 약속한다. 채무란 미래의 지급 약속이다. 하지만 그 ‘약속’을 통해 우리는 ‘미래를 약속할 능력’을 잃어버린다. 미래를 저당 잡히는 것이다. 채무란 약속이면서 동시에 약속의 상실이기도 하다. 은행 직원이 ‘당신은 더 이상 대출받기 어렵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당신에게 어떤 미래도 남아 있지 않음을 뜻한다.
 
민주주의- 인류의 비상 브레이크
하지만 ‘미래가 없다’는 것이 개인이 아닌 대중의 판단일 때는 어떻게 되는가. 대중이 지금의 체제, 지금의 궤도로 나아가서는 ‘미래가 없다’고 판단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이번 월스트리트 점거는 그것에 대한 답변으로 봐도 좋다. ‘혁명’이든 ‘반란’이든 ‘저항’이든 무엇으로 부르든지 대중은 역사의 궤도를 바꿔 탈 권리가 있다. 끝이 막힌 철로를 달리는 열차 안에 계속 머무를 이유가 없다. 역사의 지정된 궤도에서 이탈할 권리, 그것이 바로 대중, 즉 데모스(Demos)의 고유 권한이자 힘이다.
‘데모스의 힘’, 그것을 글자 그대로 옮기면 ‘민주주의’가 된다. 지금 민주주의는 아랍에서 유럽을 거쳐, 미국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공통 슬로건이 되고 있다. 다시 ‘민주주의’란 이름이 도래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보편선거, 언론 자유, 삼권 분립에 대한 요구가 아니다. 사람들은 지금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더 원초적인 권리 행사를 선언하고 있다. 그것은 수십 년간 지속된 현 체제로부터의 단절과 이탈에 대한 선언이다. 아랍에서 미국까지 사람들이 많이 외치는 단어가 있다. “Enough!”(이젠 충분하다!) 이번 점거를 통해 사람들은 명확히 말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지속된 체제가 이제 충분하다고, 아니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발터 베냐민은 이런 말을 했다. “혁명이란, 기차에 타고 있는 인류가 비상 브레이크를 잡는 게 아닐까.” 그의 표현을 빌리면, 지금 인류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비상 브레이크를 잡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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