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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70km 영양떼’가 일자리를 만든다
[Issue]한국경제의 허리, 중소기업
[2호] 2010년 06월 01일 (화) 서정대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economyinsight@hani.co.kr

서정대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많은 기업 중에서 성장이 매우 빠른 ‘고성장기업’이 있다. 고성장기업은 비록 그 수는 많지 않지만 신규 일자리의 대부분을 이 기업들이 만들어낸다. 일자리 창출이 한국 경제가 당면한 최대 과제라고 진단했다면, 고용이나 매출 등에서 현저히 빠른 성장을 하는 고성장기업을 키우는 것이 근본적인 처방이다. 그럼에도 아직 고성장기업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이들에 대한 연구도 주로 특성 파악에 머물고 있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발굴·육성하려는 정책적 노력이 아직 발견되지 않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고성장기업은 흔히 건조한 지역에 사는, 시속 70km로 달리는 매우 빠른 영양의 일종인 ‘가젤’(Gazelle)에 비유된다. 가젤형 기업은 경제학자 버치가 1981년 발표한 논문에서 기업 중에서도 성장이 특별히 빠른 경우를 일컬으면서 사용됐다. 최근에는 성장 속도가 매우 빨라 짧은 기간에 대규모 다국적기업이 된 창업기업을 ‘고릴라’(Gorilla)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텔,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기업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고릴라’ 대기업 고용창출 저조

가젤형 기업 또는 고성장기업이란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이 아니다. 따라서 필요에 따라 적절한 기준을 사용해서 정한다. 최근에는 ‘상시 근로자 10명 이상인 기업으로서 매출액이나 상시 근로자 증가율이 3년 연속 20% 이상을 기록한 기업’이라는 기준을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창업한 지 5년까지의 신생기업에 한해 적용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장은 자생적 성장이기 때문에 인수·합병(M&A)을 통한 성장은 제외된다. 특히 고성장이라는 현상은 기업이 생존하는 기간에 계속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고성장을 거듭하는 기업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고성장기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한 번 고성장을 경험한 기업이 또다시 고성장을 할 확률이 높으며, 경기변동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러한 기업이 비록 그 수는 적지만 일정한 비중으로 나타나고 있음이 많은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그림 참조).
가젤형 기업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들이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고성장기업이 그 수에 비해 새롭게 창출된 일자리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2~4%의 고성장기업이 신규 일자리의 약 60%를 만들어냈다고 분석했고, 2009년 발표된 영국의 한 연구결과는 6%에 불과한 고성장기업이 새롭게 신규된 일자리의 54%를 창출한 것으로 파악했다. 최근 카우프만재단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연도에 관계없이 최고의 경영성과를 거둔 1%의 기업이 새로운 일자리의 약 40%를 창출한다. 또 창업한 지 3~5년 된 가젤형 기업이 전체 기업의 1%도 채 안 되지만 한 해에 창출되는 새로운 일자리의 약 10%를 창출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경영성과에서 최고 1%에 해당하는 기업 대부분이 종사자 20~250명의 기업이며, 보통 기업이 평균 한 해에 2~3개 새로운 일자리를 추가하는 반면 이들은 평균 88개 일자리를 추가한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네덜란드는 고성장기업이 창출하는 신규 일자리가 약 40%로, 미국이나 다른 유럽연합(EU) 회원국보다 뒤진다는 인식 아래 고성장기업 또는 고성장 잠재력을 보유한 기업을 적극 발굴·육성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대체로 EU 회원국은 유럽 국가가 미국보다 고성장기업 수가 적고 비율 또한 낮다고 판단해 개별 국가뿐만 아니라 EU 전체 차원에서 공동 노력을 펼치고 있다.
가젤형 기업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여 때문이지만, 높은 생산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다른 기업에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고성장기업은 대체로 일반 기업보다 생산성이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혁신’을 차별화의 원천으로 하는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가젤형 기업은 다른 분야 및 기업에 미치는 ‘확산 효과’(Spillover Effect)를 통해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한 관련 산업 기업의 성장에도 영향을 준다. 이처럼 고성장기업은 스스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함께 산업 내, 산업 간 지식의 환산으로 많은 기업의 성장을 견인하는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주목의 대상이 된다.
 
4% 가젤형 기업이 일자리 60% 창출
모든 기업이 성장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며, 성장을 추구한다고 해서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 또한 아니다. 많은 중소기업이 생존과 현상 유지에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성장기업 중에서 고성장을 하는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과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또 그렇지 못한 기업은 성장에 요구되는 것들을 알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거나 실패한다고 볼 수 있다.
성공 또는 성장 기업을 분석한 많은 연구·조사가 제시하는 특성은 거의 유사하다. 즉 지식과 기술, 혁신, 시장과 기술, 조직, 기업문화, 네트워크, 금융, 해외활동, 대기업과의 관계 등이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고속으로 성장할 때 성장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즉, 고성장에는 필연적으로 조직 내부의 여러 문제가 수반된다. 이러한 역경을 무사히 헤쳐나가는 기업이 고성장을 경험하고, 경영 전반에 걸쳐 한층 성숙한 조직으로 거듭나게 된다.
특이한 점은 고성장기업이 산업, 규모, 국가, 연령 또는 생애주기 단계, 인구적 특성 등과 관계없이 발견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기업 가운데 가젤형 기업이 많이 나타나지만, 기업의 나이와 관계없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하이테크 산업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에 걸쳐 분포하며, 가젤형 기업은 평균적인 기업보다 기술집약적이고 높은 연구·개발(R&D) 투자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다른 기업보다 임금수준이 높고 부채비율도 높게 나타나는데, 양질의 인력이 상대적으로 많고 성장에 필요한 외부 자금을 많이 활용해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러한 가젤형 기업이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발굴이나 육성을 위한 노력도 많이 미흡하다. 이러한 기업의 존재에 대해 정확한 파악조차 돼있지 않고, 어떠한 특성을 가졌는지 정도가 산발적으로 이뤄진 소수의 연구에 의해 알려진 정도다. 필자가 최근 벤처기업과 이노비즈기업(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을 지칭함) 등 혁신형 기업 4468개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 중에서 9% 정도가 가젤형 기업에 해당됐다. 고성장기업의 정의는 ‘3년 연속 매출액 증가율 20% 이상인 기업’으로 정했고, 분석 기간은 2005~2008년이다.
이 기업들의 평균 연령은 약 9년이며,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골고루 분포하는 점은 선진국의 많은 연구와 일치한다. 다만 고용 데이터가 불안정해서 매출액 데이터를 활용한 결과이기 때문에 선진국보다 그 비중이 높게 나타났으며, 만일 고용증가율을 기준으로 하면 이보다 적은 수가 가젤형 기업에 속할 것으로 판단된다. 전체 기업을 대상으로 하면 그 비중이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표 참조).
현재의 중소기업 정책이 ‘더 많은’ 사람이 기업가가 되게 유인하는 것이라면, 가젤형 기업 정책은 ‘적합한’ 사람이 기업가가 되게 유인하는 것이다. 전자가 신규 기업 수 증가에 초점을 두고 기업의 ‘경영 환경’을 원활하게 하는 정책을 중시한다면, 후자는 기업 성장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기업의 ‘성장 환경’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생존율 낮은 한국 신생기업 

가젤형 기업을 발굴·육성하려는 많은 국가들이 가장 중점을 둔 분야가 경영컨설팅이다. 그런데 기업 내부의 문제는 기업마다 다르게 나타남에 따라, 기업당 1명의 전문가가 맞춤형 컨설팅과 더불어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창구 노릇까지 겸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특히 가젤형 기업을 위한 정책은 철저하게 양에서 질로 선회해야 한다. 고성장 잠재력을 보유한 기업을 발굴해 해당 기업의 정책 수요에 맞게 ‘선택과 집중, 맞춤형 지원’ 전략을 펴야 한다. 이를 위해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의 소재를 파악하고, 이 중에서 고성장 잠재력을 보유한 기업을 어떻게 선정할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이들의 정책 수요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이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여건과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은 다른 국가보다 사업체 수와 고용 비중이 꾸준히 높게 유지되고 있다. 그 이유는 주로 영세기업 수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업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거나 고속 성장을 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 결과 고용이나 수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중기업(종사자 수 50명 이상)의 비중이 독일의 약 4분의 1 수준, 일본의 2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창업한 뒤 지속적 성장을 거듭하거나, 일부 기업이 고속성장을 하도록 지원해 고용 창출 기여도가 높은 중규모 이상의 기업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안정적인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근본 해결책이다.
대기업은 신규 고용 창출 능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됐다. 이제는 성장 잠재력이 큰 기업을 발굴해 집중 육성하고, 소기업이 중기업으로, 중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은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많이 생기는 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일자리 창출의 진정한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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