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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고리를 끊어라
[Cover Story] 세계경제 새 길을 묻다- ② 비상구는 있다
[17호] 2011년 09월 01일 (목) 알렉산더 융 외 economyinsight@hani.co.kr

알렉산더 융 Alexander Jung
크리스토프 파울리 Christoph Pauly
크리스티안 라이어만 Christian Reiermann
미하엘 자우가 Michael Sauga
그레고어 페터 슈미츠 Gregor Peter Schmitz
토마스 슐츠 Thomas Schulz
빌란트 바그너 Wieland Wagner <슈피겔> 기자

   
세계 각국의 주가가 폭락한 지난 8월19일, 한 여성이 온통 하락 표시가 돼 있는 도쿄 시내의 주식시세판 앞을 우산을 쓴 채 지나가고 있다. 이날 닛케이 지수는 2.2% 하락했다.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주름진 얼굴은 창백했다. 그의 목소리는 유럽 각국의 중앙은행 대표들과 벌인 격한 토론의 여파로 갈라져 있었다.
트리셰는 먼저 ‘금리가 안정적이고 인플레이션은 통제하에 있다’는 이제는 익숙해진 문구로 말을 돌린 뒤, “ECB는 새로 불붙은 유로화 위기를 손놓고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며, 많은 양은 아니더라도 어찌됐든 재정 부실 국가의 채권을 또다시 매입할 것”이라는 놀라운 결정을 발표했다.
트리셰가 8월 초 이런 내용을 발표한 목적은 금융시장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은행과 증시, 헤지펀드 투자 전략가들과 보험회사 경영진, 그리고 연금공단과 개미 투자자들이 가세해 만들어진 ‘금융시장’이라는 이 얼굴 없는 기묘한 존재에 국제정치는 지금 마구 휘둘리고 있다. 그로 인해 정치가 숨 가빠할수록 금융시장과 그 참여자의 불안은 더욱 가중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트리셰는 그들의 신뢰를 얻으려 했지만 또 한 번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미국 뉴욕 증시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뉴욕의 투자자들은 ECB에서 기존 입장을 바꿔 재정이 부실한 유로 국가들의 국채를 다시 매입하는 것을, 유럽이 현재 심각한 상황이고 아일랜드·포르투갈·그리스 등 이미 흔들리고 있는 나라들은 물론 어쩌면 이탈리아까지 위험하다는 소리로 받아들인 것이다.

위기감만 확대하는 ‘임시방편’과 ’연기’
미국의 투자자들은 거의 공황상태에 빠져 주식을 팔아치웠고, 그다음에는 아시아에서 불안감에 휩싸인 투자자들이 투매를 하기 시작했다. 8월4일 목요일 밤부터는 유럽 증시가 폭락했다. 금요일 밤까지 단 하루 만에 전세계적으로 2조유로 이상의 자산이 사라졌다.
이런 위기는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8월18일 세계 증시는 또 한 번 끝 모르게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유럽도 예외가 아니었다. 유럽 주가가 폭락한 핵심적인 이유로는 유럽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이탈리아 등의 재정 적자로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공포가 다시 찾아와 공업국가들의 수도를 덮친 것이다. 사방에서 새로운 금융위기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지만, 서방세계의 지도자들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거대한 재정 적자와 싸우고 있고, 유럽 각국의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여전히 유로화의 지속적인 불안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있다. 미국 정부가 민주당과 공화당의 연극 같은 분쟁 뒤에 결의된 새로운 부채 협상을 통해 얻은 것은 약간의 시간뿐이고, 브뤼셀의 유럽연합(EU) 본부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은 매주 점점 커지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위기와 싸우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모토는 한결같이 ‘임시방편’ ‘연기’, 그리고 ‘미화’다. 이런 행태에 위기감을 느낀 것은 증시뿐만이 아니다. 영국 런던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더블딥’(Double-dip), 즉 3년 전 경제불황을 겪은 미국이 또다시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을 경고했다. 수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8월 첫쨋주에 발생한 증시의 패닉이 2008년 9월15일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뒤 발생한 공포로 인한 경제적 마비 현상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경악을 한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은행들은 상호 대출을 중지했고, 금융기관들이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현금 액수가 며칠 만에 두 배로 증가했다.
ECB는 리먼브러더스 파동 당시 상호대출 중지에 뒤이어 몇 달간 유로존의 은행들에 무제한 유동성을 보장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는 단기적으로 상황을 호전시켰지만, 동시에 은행가와 주식 전문가들에게 또 다른 불안감을 갖게 하는 조치였다. ECB가 완화 조치를 계속 취한다면 언제가는 중앙은행으로서 가장 중요한 자산인 ‘신용’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을까? 금융위기의 2라운드가 시작되는 것인가? 그렇게 된다면 세계는 파산하는가?

재정동맹 확대인가, 채무국 퇴출인가 
   
지난 8월3일 미국 뉴욕 주식거래소의 딜러들이 세계 각국의 주가 동향을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 부동산 시장의 붕괴 뒤 국제경제가 거의 파탄에 직면한 것이 겨우 3년 전 일이다. 과도한 부채를 지닌 자국의 은행과 보험사들을 구하기 위해 당시 서방국가 정부들은 스스로 거대한 부채를 짊어졌다. 정부들은 은행들을 국유화하고, 수십억유로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실시했다. 그와 동시에 각국 중앙은행들은 시장을 값싼 화폐로 가득 채웠다. 하지만 이는 전 재무장관 피어 슈타인부르크가 말한 것처럼 ‘불로 불을 끄는 행위’였다.
이런 조치들은 1930년대 세계 대공황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았지만, 동시에 불을 꺼야 할 소방본부에 불을 지른 것이다. 이제는 누가 불붙은 소방본부의 불을 끌 수 있을까? 3년 전 위기 극복 과정에서 제기된 이 불안한 질문이, 현재 국제사회가 파산에 이를지 여부를 가늠할 중차대한 질문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부채 증가가 아니라, 국가가 신뢰할 수 있는 부채 청산 계획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정부와 야당이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세금을 인상할 것인지, 아니면 복지예산을 축소할 것인지를 놓고 대립한다. 유럽에서는 지급능력이 있는 북부의 국가들이 경제력이 약한 지중해 국가들의 부채에 대한 지급보증을 거부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위기는 이미 서방세계에서 중요한 국가 지도자 2명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보수 유권자 단체나 ‘티파티’(Tea Party)의 반항아들을 물리치고 분열된 미국 사회를 통합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EU 정상회담을 치를 때마다 유로화 위기를 점점 더 조장한 범인으로 보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양이 이토록 약해진 일은 처음이다.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유럽과 미국과 일본을 동시에 마비시키는 경제위기가 발생한 적이 없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이 나라를 한꺼번에 옥죄면서 이른바 ‘자유 세계’에 대한 이 국가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감소시켰을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도 위협하고 있다.
적잖은 미국인들이 채무 부담이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라며 걱정하고, 유럽에서는 공통 통화인 유로화의 존립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더 이상 결단을 미룰 수 없다. 유로존을 유로본드(유럽공동채권) 발행과 재정 이전(Financial Transfer)을 포함하는 긴밀한 재정 동맹으로 확대하거나, 아니면 채무가 너무 많은 유럽의 일부 채무국들을 통화동맹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퇴출이 통화동맹에 남은 다른 국가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현재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위기에 둔감한 정치조직
서양의 부채 위기가 길어질수록 세계경제 전망은 더욱 암울해진다. 미국 경제가 불황에 빠지면 미국의 소비자들은 중국산이나 인도산 제품을 덜 구입하게 된다. 그리고 투자자들이 대규모로 유로화 또는 달러화 자산에서 이탈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안정적이라고 여겨온 국가마저 흔들리게 된다. 8월 초 스위스의 프랑크화와 브라질의 헤알화 환율이 너무 오르는 바람에 이 국가들의 수출업자는 자국 제품을 외국에 판매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세계는 지금 아래로 향하는 나선의 함정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다. 부채 위기는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빈약한 경제성장은 다시 부채 위기에 맞서 싸우는 것을 어렵게 한다.
이탈리아의 대은행 우니크레디트(Uni-Credit)는 ‘미국·남미·아시아·유럽의 동반 경제 하락’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위기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던 독일 같은 국가의 경제도 마찬가지로 하락세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이 ‘악마의 고리’를 끊으려면 유럽과 미국 정부가 지금 당장 행동을 개시해야 한다. 세계경제의 안정성이 여기에 달려 있지만, 정치적 위기 관리 조직은 여전히 이 문제를 둔감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 Der Spiegel·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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