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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된 표현의 자유
[Scholars Column]
[16호] 2011년 08월 01일 (월) 로버트 스키델스키 economyinsight@hani.co.kr

로버트 스키델스키 Robert Skidelsky 영국 워릭대학 정치경제학 명예교수

최근 영국에서 열린 한 문학 페스티벌에서 ‘표현의 자유’ 토론의 패널로 참여했다. 자유주의자에게 표현의 자유는 ‘자유’의 핵심이다.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반면, 독재는 이를 억누른다.
물론 이는 서구인이 서구 바깥을 바라볼 때 갖는 시각이다. 우리는 작가와 언론인의 입을 틀어막고 투옥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정부를 비난한다. 국제 언론인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RSF)에 따르면, 올해 24명의 언론인이 죽임을 당하고 148명이 투옥됐다. 최근 아랍 국가들의 ‘민주화 봄’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희망 중 하나는 독재정부의 장악에서 언론이 해방되는 일이다.
 
자유로운 비판과 표현의 자유 옹호
그러나 서구 역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싸고 요즘 긴장에 휩싸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영국의 법률은 표현의 자유에 대해 두 가지 주요 제한을 부과했다. 하나는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말이나 글을 금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금지하는 것이다. 두 제약 모두 사회의 안녕을 유지하고 거짓말로부터 개인의 명예를 보호한다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대다수 자유사회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런 제약은 수긍할 만하다고 여긴다.
표현의 자유 규제는 최근 더욱 강화되고 있다. “종교적·인종적 증오를 선동하는”, 그리고 “동성애 등 성적 지향을 이유로 증오를 선동하는” 행위는 그것이 실제로 공공질서에 어떤 위협을 주었는지와 상관없이 대다수 유럽 국가에서 현재 불법으로 규정된다. 법은 직접적 폭력을 유발하는 표현을 처벌하는 데서 더 나아가 상대방을 모욕하는 표현까지 금지하는 쪽으로 강화되고 있다.
이런 경향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 이른바 ‘홀로코스트 부인’을 처벌하는 법률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축소하는 행위는 15개 유럽 국가와 이스라엘에서 범죄로 규정된다. 홀로코스트가 특별 규정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특출나게 혐오스러운 범죄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별 규정은 자기증식되는 경향이 있다.
프랑스는 ‘인간성에 반한다고 국제적으로 인정된 범죄’를 부인하는 발언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이슬람 국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인종학살’이라고 표현하면 불법으로 다스리는 반면, 일부 서구 국가에선 인종학살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오히려 불법이 된다. 일부 동유럽 국가들은 공산주의 시절에 일어난 ‘인종학살’을 부정하는 행위를 특별히 금지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 모습.
우리가 흔히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검열을 독재의 징표로 여겨왔는데, 최근 들어 역사 검열은 ‘자유’ 서구에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당국의 공식적인 검열은 문화적 검열의 빙산 일각에 불과하다. 공직자 등 공인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자신의 말이 타인에게 모욕을 주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모두가 인정하는 특정한 문화적 코드를 위반하는 행위는 개인의 명성, 나아가 때로는 그의 사회생활 전반에 상처를 입힌다. 예컨대 영국 내무장관 케네스 클라크는 최근 “어떤 유형의 강간범죄는 다른 범죄보다 덜 심각한 범죄”라며, 따라서 법 적용에서 차등을 둬야 한다는 생각을 내비쳤는데, 비판적 여론이 일자 즉각 사과해야 했다. 실수 연발 뒤 납작 업드려 사과하는 모습은 요즘 공직자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신의 고전적 에세이 <자유론>에서 “지식의 진보를 위해 자유 비판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 홀로코스트 등 특정 영역에서 그런 비판을 아예 제한하는 건 밀의 생각과 정반대 관점에 서 있다. 즉 진리는 이미 알려져 있으며,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 불경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역사적 진실이라고 최종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든 역사가들은 알고 있다.
 
대중적 가치중립인가, 개인의 의사표현인가
공공질서와 도덕을 옹호하는 것이 역사의 임무는 아니다. 역사는 이미 일어난 사건의 기록일 뿐이다. ‘홀로코스트 부인’ 등 법에 의해 보호받는 역사는 역사가들을 안전한 발언만 하도록 길들이게 될 것이다. 확실히, 밀의 신념에 따라 산다면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운 말을 하는 사람의 권리를 보호해줘야 한다. 데이비드 어빙이 진실이 아닌 역사를 쓰긴 했지만, 오스트리아 당국이 그를 ‘홀로코스트 부인’ 혐의로 처벌하고 수감한 사실은 밀을 경악시켰을 것임이 틀림없다.
이와 반대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요는 “진실은 알 수 없다”는 주장에 기대고 있다. 인간의 삶과 상태에 대한 모든 언급에는 본질적으로 말하는 사람 자신의 고유한 관점이 투영돼 있기 마련이다. 일부 개인의 의견 표현이 타인을 모욕하게 될 것이 확실하고, 또 그것이 진실을 발견하는 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과연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지 아닌지 판단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럴 경우 그 표현이 얼마나 모욕적이냐가 유일한 판단의 잣대가 될 것이다. 특별한 단어나 표현, 주장을 터부시하는 이유는 그것이 특정한 개인과 그룹, 또는 관행이 우월하거나 열등하거나, 혹은 정상적이라거나 비정상적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미를 지닌 사회현상에 특정한 딱지를 붙이거나 혹은 가치 중립성을 더욱 추구하게 된다면 언어의 활력은 말라붙게 된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전형적인 사례를 보자. 대다수 사람들이 여전히 결혼을 원하고 있음에도 “모든 라이프스타일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주장 아래 대중적 담론에서 ‘가족’이란 말이 점점 ‘결혼’을 대체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엔 동성애를 ‘도착’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터부시되고 있는 반면, 1960년대에 급진적 철학자 허버트 마르쿠제는 ‘거부’의 한 표현으로서 동성애를 옹호하면서 이 도착 용어를 정확히 사용한 바 있다. 마르쿠제가 “억압하는 관용”이라고 부를 만한 오늘날의 사회 분위기에서 도착 같은 표현은 ‘낙인찍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태도가 확산되고 있는 뒤편에 깔린 사회학적 명제는, 우리는 더 이상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이고 단일한 문화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가부장적·위계적 사회는 기본적 가치들에 대한 그저 일반적인, 또는 깊은 성찰이 없는 동의를 내포하고 있다. 다문화 사회인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영국적인’ 또는 ‘네덜란드적인’ 공통 가치를 강제로 주입하려는 헛된 노력은,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라도, 공통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공적인 의사 표현은 문화적 교환에서 사용되는 공통 화폐다. 모든 사람은 특별히 언행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의 확산은 사회에 필요한 정치적·도덕적 토론을 오히려 말살시키는 애매한 말을 계속 증폭시키고, 공적인 의사 표현과 대중의 생각 사이에 큰 격차를 만들어낸다.
 
표현의 자유와 독트린
한편 표현의 자유는, 대중 언론이 이를 마음껏 왜곡·남용함에 따라 점점 옹호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권력 남용을 폭로하는 미디어의 자유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공익적 관점 없이 단지 유명인의 사적인 삶을 폭로하는 쪽으로 탐사 저널리즘이 흐를 때 언론의 명성은 일그러지게 된다. 연예계 가십 기사를 다루는 신문기자들은, 유명인들의 은밀한 침실에 자신의 카메라를 들여보내주지 않으면 “그건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공격하고 있다. 유명인 가십 기사는 점차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개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공격으로 변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독트린이란, 심지어 그것을 옹호하는 사람조차 그 독트린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 때 곤경에 처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전통적인 독트린은 지금 위기에 빠져 있다. 만약 우리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진정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려면 이 독트린이 지니고 있는 법적·도덕적·문화적 의미를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
ⓒ Project Syndicate·번역 조계완 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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