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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확대, 진보적 대안의 출발점
[Special Report Ⅱ]재림한 불안사회, 계급 논의 부활하나
[15호] 2011년 07월 01일 (금) 안현효 외 economyinsight@hani.co.kr

안현효 대구대 교수·경제학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신자유주의’는 제도적 차원에서 금융 축적이 강화되고, 사회 양극화를 유발하는 축적 체제를 일컫는다. 이는 미시적으로 △규제 완화 △시장주의 △민영화로, 거시적으로는 △시장 개방 △작은 정부 △감세 △균형재정 등의 정책으로 현실화한다. 이념적 차원에서는 경쟁주의·업적주의로 표현되며, 결국 시장의 효율성을 지지하는 이념이다. 정치적 전략 차원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정치 연합을 추구하는 정치운동이다. 이런 다차원적 의미가 있는 신자유주의는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위기에 처했다.
해방 뒤 한국 경제는 박정희 체제와 그 이후의 체제로 나뉜다는 것, 그 구조 변화의 계기가 1997년이었다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소득분배의 양극화, 정규직-비정규직의 노동 과정 양극화, 대기업-중소기업의 산업 양극화, 수출-내수 부문의 양극화 등이 중요한 지표다.
1987년 이후 개선된 소득분배가 1997년을 계기로 악화됐고, 비정규직 노동이 구조화됐으며, 고용의 양과 질이 악화됐고, 종전과 같은 높은 투자와 소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또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가 확대되고, 대외의존도가 급증해 수출과 내수가 괴리되고, 산업연관관계의 축소 등이 나타났다. 결국 민생이 악화된 것이다. 그렇다면 양극화 심화와 민생의 악화가 저성장 때문인가?
   
1997년 12월3일 서울 세종로 정부 청사에서 임창열 경제부총리와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총재가 구제금융 양해각서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1997년 이후의 경제성장률은 이전의 한국 경제 수준보다는 못하지만 세계적 기준으로는 결코 낮다고 말할 수 없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양극화 심화와 민생 악화가 저성장으로 야기됐다고 할 수 없다.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개발도상국 시절의 고성장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형 신자유주의, 저진로·양극화 성장 체제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경제체제가 요구하는 구조조정을 충분히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생산구조와 분배구조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그런데 10년 뒤 2007년 대선에서 쟁점은 놀랍게도 양극화가 아니라 또다시 성장이었다. 2007년 대선에서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박정희 체제의 고도성장에 대한 향수 때문에 7% 성장률을 정책 목표로 제시했다. 하지만 7% 성장은 박정희 체제 이후 가능한 적이 없었다. 양극화가 심해졌지만 2007년 보수주의 정당이 집권한 배경에는 10년 동안 집권한 자유주의 야당의 정책이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성장이 분배를 해결할 것이라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에 대한 믿음도 작용했다. 그러나 양극화 해소를 기대하며 지지를 받은 보수 정권이 실제로 수행한 것은 감세 정책이었다.
다시 4년이 지난 지금, 성장률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듯하다. 이제는 분배가 쟁점인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1997년 이후 한국 경제는 나름의 성장 장치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성장에서 분배로의 낙수효과가 없음도 증명됐다.
소득 양극화는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소득 불평등이 확대됐다. 그런데 1997년 이후 한국 경제는 단순히 소득 양극화만이 아니라 산업구조 양극화가 극심하게 결합된 특수성이 있다. 홍장표 부경대 교수에 의하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의해 무력화된 축적 체제의 대안으로서 재벌 대기업은 고기술·자본집약적 고부가가치 부문, 중소기업은 노동집약적 저부가가치 부문으로 이원화해 노동시장을 계층화하면서 ‘저진로(Low Road)-양극화 성장 체제’가 등장했다. 저진로-양극화 경로에서 저진로 축적은 단순히 저성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주요 동력이 여전히 ‘저임금-저생산성’에 기초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양극화 성장은 저임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산업노동자를 고임금 그룹(조직노동자·정규직·대기업)과 저임금 그룹(비조직노동자·비정규직·중소기업)으로 양분한다.
한국형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는 양극화 성장 외에도, 차별의 저진로 성장 체제인 동시에 세계경제로의 포섭이 더욱 강화된 금융화 축적 체제라는 특징이 있다. 이런 체제가 등장하려면 정치·경제적 동력이 필요했다.

민주화 세력의 신자유주의 도입
한국형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이른바 ‘87년 체제’ 논쟁은 이 문제를 둘러싼 논의다. 87년 체제론자들은 1987년을 중요한 분기점으로 본다. 따라서 현재의 우리 사회는 ‘포스트 87년 체제’로서 이전의 박정희 체제와 질적으로 구분된다. 중요한 특징은 정치적 자유주의 세력의 등장으로 민주화가 추진된 것이다.
반면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97년 체제’를 중요한 분기점으로 본다. 그는 1987년의 민중운동이 박정희 체제를 근본적으로 파괴하지 못했다고 본다. 결국 1987년 이후의 계급 대립은 1997년에 와서 신자유주의 체제에 자리를 내준 것으로 이해한다.
1987∼97년의 10년은 신자유주의로 가는 이행기라고 볼 수 있다. 많은 논자들은 이 시기에 단순한 독재-민주의 대립 구도에서 보수-진보의 대립 구도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한다. 이른바 ‘산업화 세력’으로 불리는 박정희 체제의 지배 블록은 체제의 한계에 직면한 이후부터 일관되게 신자유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해왔다. 김영삼 정부 시절의 ‘세계화’는 이런 신자유주의를 도입하려는 정치적 시도였다. 민주화로 인해 기존 박정희 체제를 구성하고 있던 ‘국가-재벌-금융’의 삼각 지배 블록이 해체됐고, 노동도 재벌도 더 이상 국가의 지배를 받기 거부했다. 그리하여 한국 자본주의의 장래를 둘러싼 투쟁이 시작됐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한 형식적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의 확보, 보수 대연합으로 대표되는 지배 블록의 재편, 기존 박정희식 개발독재에서 변화하는 새로운 축적 체제 시도 등은, 당시에는 구체화하지 못했더라도 이미 신자유주의를 목표로 했다. 1987~97년의 역사는 이행기 내지는 불확정적 시기였지만, 지배 블록의 지향은 결국 신자유주의였다. 다만, 이 시기는 계급적 역관계로 인해 신자유주의를 순수한 형태로 관철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1997년 위기 이후 집권한 민주당의 김대중 정부는 금융위기 대처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를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우선 정부·노동·금융·기업의 구조조정을 급진적으로 시행했다. 물론 김대중 정부가 시행한 신속하고 과감한 기업 구조조정은 효율적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위해 우선 도입한 고금리 정책은 대규모 도산을 초래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되었다. IMF는 기업 도산과 실업을 초래하는 고금리를 통해 투자를 급감시키고, 수출을 급증시켜 한국 경제에 달러가 신속히 확보되기를 요구했다. 다음으로 김대중 정부는 자본시장을 완전히 열고 규제를 철폐했다. 그 결과, 경제공황기의 일시적 현상인 줄 알았던 대규모 실업 사태와 뒤이은 불안정 고용 상태는 이후 10년 넘게 만성화된 구조로 전환됐다.
동시에 김대중 정부는 사회 안전망을 수립했고, 이는 나름대로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친복지’ 정책의 근본적 문제는,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부속물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정책이 좀더 확대되고 ‘복지와 경제의 동반성장’이라는 이념적 체계화가 이루어졌지만, 담론과는 달리 경제정책에서 김대중 정부보다 더 강력한 신자유주의적 개방 정책으로 나아갔다. 이는 궁극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거치면서 지지 세력의 이탈을 가져왔다.
과거의 민주화 세력은 새로운 대립 구도의 재편 과정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민주화 세력 자체가 신자유주의를 적극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주화 세력은 자유주의와 민중운동으로 분열했다. 결국 신자유주의라는 독수리 알은 백조의 둥지에서 부화한 것이다. 박정희 체제에 대한 반대, 즉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사회적으로 승인되면서 이는 반국가주의적 정서로 변화하고 이 정서를 보수주의자들이 시장주의로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자유주의적 비전은 사실상 신자유주의를 통해서는 실현할 수 없음이 드러났다. 2006년 노무현 정부하에서 발표된 ‘비전 2030’은 자유주의적 비전인 동반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혁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다. 물론 그 대안은 여전히 미미하다. 한 예로 비전이 달성된 2030년에도 복지지출은 전체 재정의 40% 수준으로, 현재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54.7%를 못 미칠 것이다. 이것 역시 당시에는 대담한 계획으로 간주됐다. 왜냐하면 2005년 재정 대비 복지지출은 25%에 불과해 사회 양극화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복지지출 수요를 감당하려면 증세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신자유주의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보수주의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합의는 세계 체제로의 편입을 더욱 강화해 양극화라는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시장을 확대하고 수출 중심의 재벌 기업이 주도해 더 많은 성장을 달성함으로써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재정적 자원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한-미 FTA에 민중이 극렬히 반대했음에도 다수 국민이 침묵한 것은 신자유주의적 합의가 먹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략의 성공 여부와는 무관하게, 아니 성공한다면 더욱더 내수 피폐, 중소기업 홀대, 비정규직 유지·온존, 즉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또한 대외 개방 강화와 더 많은 규제 완화, 경쟁 심화를 초래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대안이 다양하게 제출됐지만, 과거 민주정부 10년을 반성함으로써 대안의 수렴 현상도 관찰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신자유주의 정책이 더욱 선명한 형태로 등장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본질과 한계가 극명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서울 종로에서 시위하고 있는 시민과 학생들.

성장 통한 분배에서 분배 통한 성장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항해 제기된 대안으로는 동반성장론, 제3의 길, 역동적 복지국가론, 생태적 사회민주주의론, 기본소득론 등 몇 가지가 있다. 다양한 진보 대안의 차이는 특히 ‘민주정부 10년’의 평가를 둘러싸고 극심하게 나타났다. 한편에서는 민주정부 10년을 신자유주의라 부르기를 반대한다. 즉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복지를 강화해 사회민주주의적 요소가 있었다는 것이다.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와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진보주의가 비판하려는 규제 완화, 시장주의, 반노조주의, 경쟁주의 등은 ‘시장만능주의’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정부 10년은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이며, 이로 인해 신자유주의가 더 공고해졌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더 순수하게 보수적인 신자유주의 정부가 들어선 이래 양자의 차이는 수렴되는 듯하다.
자유주의 급진화의 역사적 배경에는 2009년에 발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가로놓여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는 진보적 자유주의와 보수적 신자유주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벽이 놓였다. 이와 같이 신자유주의 대항 담론은 다양하지만, 이 대항 담론은 현 경제 정세에서 분배를 통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통합되는 듯하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만약 민주당의 분당과 한나라당 주도의 대연정 제안 대신에 민주당·민주노동당·시민사회와 함께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내세운 전국적 차원의 복지 연합을 추구했다면 그 정치적 기반이 더 강화됐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런 평가는 현재의 민주당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한편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민중 삶의 고통을 불안감으로 정의하고 △일자리 △보육 및 교육 △주거 △노후 △의료 등 5대 불안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시한다. 5대 불안은 우리 삶을 경쟁주의로 몰아가서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그 지표들이 삶의 질 순위 하락,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자유주의 대안론에서 볼 때 한국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가진 큰 문제점은 양극화에 대한 대응으로서 ‘잔여주의적 복지 체제’다. 이는 차별과 경쟁주의로 인한 양극화 성장의 모순을 해소하는 목적으로만 사용됐다. 이런 맥락에 서 있는 한 복지는 정책의 중심 주제가 되지 못한다. 이에 반해 대안론은 복지에서 출발해 경제구조를 개편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본소득론’은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다양한 지지자가 있다. 기본소득은 자산 조사를 하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동등하게 지급하는 사회소득의 일종이다. 이것은 잔여적 복지제도를 탈피한, 보편적 복지제도의 가장 급진적인 형태다. 이런 점에서 앞에서 제시한 대안들과 일맥상통한다.
다양한 진보 대안의 공통분모를 묶어보면 ‘분배에 기반한 성장 모형’ 또는 ‘선(先) 분배 후(後) 성장 모형’이라 할 수 있다. 성장과 분배에서 분배에 방점을 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분배 문제를 해결해야만 지속 가능한 성장이 실현되리라는 점을 진보 대안의 내용으로 공표하는 것이다.

진보적 성장 모형의 딜레마?
   
 

진보적 경제정책이 복지(분배)를 우선시하는 이유는 사회적 통합과 연대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통합과 연대의 이념은 궁극적으로 성장주의와 대립한다. 진보주의의 이런 지향으로 인해 현실 정치에서 진보주의가 실천될 때는 큰 제약에 직면하게 된다.
양극화 성장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급진주의에서 얼마나 이탈할 것인지의 문제는 민생에 대한 민중의 요구와 욕망의 문제를 어떤 시계(단기냐 장기냐)에 놓을지의 문제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결국 장기에는 연대와 통합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하고, 단기에는 민생과 욕망, 경제의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 연결고리를 정력적으로 잘 실천해 보이는 것이 진보주의의 능력과 정체성을 동시에 유지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진보 담론이 통합되려면 장기적 이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단기적으로 구체적인 진보적 대안정책 중심으로 연구해야 한다. 진보적 싱크탱크는 대략의 방향을 넘어 실행 가능한 매뉴얼 수준의 정책 패키지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는 정치적 연대 과정에서 성공의 경험이 누적돼야 한다. 이미 진보적 정당정치는 비록 지방정치의 수준이지만 다양성을 정세적으로 통일해본 경험이 있다. 이와 동시에 중앙정치 차원에서 연대를 위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다양성 정치의 극한을 보여주는 야당의 분열은 오히려 장점이 돼야 한다. 그럼에도 정당 간 헤게모니가 불명확해 정당 간 자발적인 연대와 연합이 성공리에 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여기에는 시민단체와 지식인들의 참여 등 정당 외에 많은 요소가 필요하며, 엄청난 상상력이 요구된다. 한국 사회의 시민들이 겪는 경쟁의 결과에 대한 불안감, 이로 인해 발생한 아래로부터의 반신자유주의 요구는 연합의 강력한 추동력이 될 수 있다.
harryahn@daegu.ac.kr, rieudm@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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