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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노동’ 사회합의 재정립 요구
[Special Report Ⅱ]재림한 불안사회, 계급 논의 부활하나
[15호] 2011년 07월 01일 (금) 로베르 카스텔 economyinsight@hani.co.kr

로베르 카스텔 Robert Castel 프랑스 사회학자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삶이란 인생의 작은 부침에 쉽게 영향받는 위태로운 삶을 의미한다. 질병, 산재, 실업 혹은 인생의 예기치 않은 작은 사건에도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유지돼오던 일상의 균형이 와르르 무너지고, 이내 삶은 불행 내지 나락으로 떨어진다. 역사적으로 ‘사회적 불안정’(Social Insecurity)은 민중의 일상적 조건을 이루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수입과 지출을 맞추느라 늘 전전긍긍하기’ ‘입에 풀칠하느라 등골 휘기’…. 수세기에 걸쳐 이런 일상의 문제가 늘 민중을 괴롭혔다. 노동의 열매에만 기대어 인생을 살아가거나 삶을 연명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민중에게는 자본도, 재산도, 딴 주머니를 찰 여유도 없었다. 그렇기에 매일같이 내일을 걱정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불안정이란 미래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미래를 통제하기 위한 조건은 민중의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형성된 영국 도시 빈민가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물을 공급받고 있는 것을 그린 그림.
하지만 오랫동안 민중의 역사를 짓누르던 사회적 불안정이 비로소 극복된다. 사회보장제도가 정립된 덕분이다. 처음에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사회보장제도의 초석이 마련됐다. 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현실이 사회적 불안정의 큰 원인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0년대 초에 이르러 이른바 ‘위기’의 시대가 되면서, 사회적 불안정이 회귀한다. 노동자 계층을 보호하던 복지제도와 사회적 권리가 약화된 결과였다. 다시 나타난 사회적 불안정은 과거 민중의 삶을 짓누르던 만성적 사회 불안정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달랐다.

사회적 불안정은 빈곤층 문제 양산
사회적 불안정은 빈곤층 문제다. 빈곤층은 어떤 계층을 뜻하는가? 또 빈곤은 사회적 불안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대부분의 역사학자는 14~17세기, 산업혁명 이전 유럽 사회의 경우 인구의 절반가량이 빈곤층이었다고 본다. 그러니까 빈곤은 민중이 만성적으로 처해 있는 구조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조건을 뜻했다. 더욱이 빈곤은 만성적인 동시에, 한층 더 악화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태를 의미했다. 부아길베르의 다소 과장된 표현처럼, “빈곤한 사람이 거덜 나는 일”이 발생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흉년이 들거나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면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그나마 위태롭게 유지되던 삶의 균형이 무너졌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민중의 불행에 대해 깊이 천착한, 17세기 프랑스 건축가인 세바스티앵 르 프르스트르 드 보방(1633~1707)은 민중의 삶이 극도로 취약한 것은 고용 불안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당대 저임금 노동자의 현실을 이렇게 고발했다. “날품팔이꾼이나 막노동꾼으로 두 팔만 가지고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은 도시나 시골을 막론하고 매일같이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들은 언제나 구멍 난 1년치 생활비를 메우는 것만으로도 빠듯했다. 그러니 부양가족이 더 늘었다가는 금세 황천길로 갈 것이 분명했다.” 사회적 불안정을 이보다 더 생생하게 설명해주는 예가 또 어디에 있을까? 사회적 불안정은 대부분의 민중이 겪는 만성적 고용불안의 현실을 의미했다.
19세기 초에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18세기 말 프랑스혁명으로 노동질서가 변화했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프랑스혁명으로 조합 활동이 금지되고, 자유노동계약이 제도화됐다. 하지만 사용자와 피사용자 간 불평등한 역학관계로 인해 노동자는 생존만 가능할 정도로 매우 적은 임금을 받는 처지였다. 초기 산업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현실은 비참했다. 프롤레타리아는 생계를 위해 삶을 희생했다. 그렇다고 동업조합 활동 금지로 어려움에 처한 장인이나, 상인을 위해 하청 일을 받아 하는 노동자, 일용직 형태로 온갖 종류의 일을 하는 막노동꾼이라고 해서 이들보다 상황이 더 낫지 않았다. 임금은 쥐꼬리만큼 적었고, 항시 고용 불안정에 시달려야 했으며, 노동자의 권리는 전혀 누릴 수 없었다. “노동자가 노동을 제공하면, 고용주는 그에 합당한 임금을 지급했다. 노사의 상호적 의무는 그것이 전부였다. 더 이상 (노동자의) 일손이 필요하지 않으면 고용주는 노동자를 해고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한 번 해고하면 곤경에서 벗어나는 것은 온전히 노동자 몫으로 돌아갔다.”
자유주의 원칙이 엄격히 적용되면서 노동자에게는 가차 없이 최소한의 생존 조건만 허락됐다. 그 결과 노동자는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살아야 했다. 대다수 노동자는 19세기 초까지 계속 사회적 불안정에 시달렸다.
우리는 대체 어떻게 사회적 불안정이란 현실에서 벗어나게 됐을까? 이런 만성적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조건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먼저, 노동자를 위한 사회적 권리와 복지제도의 정립을 꼽을 수 있다. 이는 사유재산이 사회적 불안정에 대한 유일한 해법이 아니라는 파격적 사상이 전파된 덕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가치관이 자리잡기까지는 수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사유재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적 불안정을 막아주는 최고의 바람막이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재산을 지니고 있으면 인생의 그 어떤 불행에서도 보호받을 수 있었다. 병이 나면 치료를 받으면 그만이었다. 재산을 지닌 사람들은 굳이 일할 필요가 없었다. 재산만 있으면 잠시 일을 쉰다고 해도 자기 입에 풀칠하거나 처자식을 먹여살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사유재산처럼 여윳돈을 넉넉히 가지고 있으면 모든 사회적 위험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사회적 존경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사회경제’라는 개념을 만드는 데 일조한 샤를 지드는 1902년 이렇게 말했다. “유산계급에게 재산은 최고의 사회 안전망이다. 재산만 있으면 다른 복지제도는 모두 쓸데없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에 재산을 소유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불안정을 극복하는 최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19세기 모든 독지가와 보수·자유를 막론한 정치 지도층이 이렇게 생각했다. 이들은 ‘불행한 계급’의 운명에 관심을 갖고, 민중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줄 방법으로 저축기금이나 공제기금의 장점을 설파했다. 하지만 재산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독지가나 정치 지도층만이 아니었다. 재산을 소유하는 것은 민중의 꿈이기도 했다. 임금노동자의 현실은 너무 비참했다. 많은 공장 노동자들은 그저 연장 몇 벌을 구하거나 작은 구멍가게라도 임대해, 자기 일을 시작해보는 게 꿈이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불안정을 극복할 해법으로 재산 소유 외의 다른 대안이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기까지 임금노동 형태가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라는 인식의 확산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임금노동은 산업자본주의의 발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임금노동이야말로 산업 비중이 높은 자본주의 생산 방식에 꼭 필요한 노동 형태였다. 그런데 딜레마가 발생했다. 임금노동자를 노동이 곧 상품인 지금의 열악한 상태로 그냥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그 지위를 개선할 것인지. 전자를 택한다면 마르크스가 말한 ‘가진 것이라고는 사슬밖에 없는’ 노동자계급이 현대사회에서 급격히 발전해 사회질서를 전복하는 혁명을 일으킬 위험이 있었다. 대신 후자처럼 임금노동자의 지위를 개선한다면, 이를 토대로 노동자를 위한 사회보장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었다.
결국 100여 년에 걸친 논쟁과 투쟁 끝에 후자가 해법으로 선택됐다. 이 소리 없는 대변혁은 이른바 ‘임금사회’를 탄생시켰다. 덕분에 재산이 없는 노동자도 현재를 보장받고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소유하게 됐다. 대표적인 예가 연금이었다. 그전까지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은 미래를 재앙과 비슷하게 인식했다. 이들에게 미래는 극빈자 시설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뜻했다. 하지만 연금제도가 등장하면서 고령층은 호화로운 생활은 아니더라도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소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일정한 조건만 충족하면, 다시 말해 꽤 오랫동안 일하며 보험금을 납입하면 모든 노인에게 연금을 수급할 권리가 주어졌다.
연금 수급권은 훗날 노동자가 누리게 될 수많은 복지권리의 신호탄이었다. 연금을 시작으로 노동자는 건강보험·산재보험·실업보험 등을 수급할 권리는 물론, 고용주의 횡포에 대항할 노동자의 권리까지 얻게 되었다. 이로써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웬만한 문제에 모두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수익 추구 자본’과 ‘안전 추구 노동자’ 사이 절묘한 균형점
노동자의 지위 개선은 사회보장제도의 초석이 돼 사회적 불안정을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보장 혜택은 단지 노동자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노동자 가족(청구권자)에게도 제도의 혜택이 돌아갔다. 한편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회보장 권리는 실질적으로 거의 모든 국민에게 확대됐다. 이는 경제학자 프랑수아 에발드가 말한 ‘보험사회’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19세기 말에 시작된 안정화 과정은 정착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회적 불안정은 1970년대 초에야 비로소 해소된다. 이는 ‘산업자본주의(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산업자본이 사회경제의 주축이 되는 단계의 자본주의를 의미함)의 사회적 합의’가 낳은 결실이었다. 이 시기 비약적인 경제발전에서 보듯 자본과 기업은 이익을 보장받는 대가로 노동자에게 더 폭넓은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제공했다. 그 결과 사회적 불안정은 임금사회를 기반으로 정립된 사회보장제도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여전히 임금사회의 주변부에는 정규직에 예속되기를 거부하는 일종의 하층 프롤레타리아가 존재했다. 이른바 ‘제4세계’(Quart Monde·선진국인 제1세계에 존재하는 소외계층, 선진국에 살고 있지만 실질 생계는 제3세계와 다를 바 없다는 뜻)라고 부르는 이들이었다. 제3세계를 연상시키는 저개발의 고립된 섬에서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현대사회임에도 그곳에서는 과거의 사회적 불안정이 고스란히 지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저 이들을 사회적·경제적 진보와 더불어 소멸하는 존재로만 인식했다.
   
2010년 11월 로마에서 정부의 구조조정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산업자본주의는 비로소 수익을 추구하는 자본의 요구와 사회적 안전을 추구하는 노동자의 요구 사이에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냈다. 이는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찾아든 위기로 또다시 균형이 깨졌다. 처음에는 그저 일시적으로 성장이 멈춘 것으로만 이해됐다. 그러나 금세 위기라는 사실을, 그것도 2008년 가을 발생한 금융위기 때처럼 일시적 문제가 아닌 심각한 위기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 체제가 변화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산업자본주의가 끝나고 좀더 공격적인 체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국제 금융자본의 지배 아래 전 지구적으로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 아래 새로운 생산과 교환 방식이 강요됐다. 그 결과, 산업자본주의 시대 후반에 사회적 합의의 결실로 정립된 규제 시스템이 유명무실해졌다. 사회적 불안정이 회귀한 것이다. 원인은 사회적 불안정을 가로막던 보호막이 무너지고, 노동자의 사회적 권리와 복지제도가 약화·붕괴된 데 있었다.

다시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처지’로 전락
사회적 불안정이 다시 닥친 이유는 노사 관계가 완전히 새롭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실업난이 심화되고, 고용불안이 확산된 것도 원인이었다. 15여 년 전부터 프랑스 사회에는 빈곤한 노동자계급이 다시 나타났다. 일이 있는데도 처자식을 부양하거나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노동자계층이 등장했다. 일자리는 있지만 고용조건이 열악해 생계를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국가 보조금에 의존해 살아야 하는 노동자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예가 ‘능동적 연대소득’(RSA·실업수당보다 적은 급여를 받고 재취업할 때 그 차액만큼 정부가 보전해주는 제도) 수급자였다. 이처럼 노동과 복지 지원의 구분이 점차 모호해졌다.
오늘날 또다시 수많은 노동자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처지로 전락했다. 물론 이들의 처지가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사회보장제도 정립을 통해 이미 한 차례 사회적 불안정을 극복한 뒤 또다시 찾아온 위기라는 점에서 새로웠다. 새롭게 등장한 사회적 불안정은 과거와는 성격이 달랐다.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제도가 정립된 뒤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과거보다 더 견디기 힘든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 사회적 불안정은 민중 모두가 함께하는 ‘보편적’ 운명과 같았다.
더 발전된 현대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사회적 불안정은 과거보다 훨씬 불공정한 양상을 띤다. 과거에 사회적 불안정은 재화 부족으로 발생했다. 지금은 흉년이 들거나 혹독한 겨울이 찾아와 모든 사람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던 과거와는 사정이 다르다. 오늘날 문제는 부의 재분배가 원활하지 않은 데 있다. 현대사회는 과거보다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한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를 받고 있다. 수익지상주의를 추구하며 모두를 치열한 경쟁으로 내모는 체제 말이다. 이 체제에서 노동자를 위한 사회적 권리와 복지제도는 자유로운 시장 운용과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어떻게든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 치부된다. 하지만 그동안 노동권과 사회보장제도는 칼 폴라니의 표현대로 “시장의 폭력성을 완화”하는 바람막이가 돼왔다. 그렇기에 이를 제거하면 사회적 불안정이 심화되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사회적 불안정을 해소하는 유일한 길은 사회적 합의를 새로이 재정립하는 것이다. 산업자본주의에서 이뤄진 사회적 합의에 상응하는 새로운 합의 말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 계속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중요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는 시장의 이익과 노동자의 사회복지 권리 사이에서 또다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내야 한다.
ⓒ Alternatives Economiques·번역 허보미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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