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수 북한대학원 교수

오늘날 북한의 공장가동률은 극단적으로 떨어져 있고, 국영상점은 텅텅 비어 있다. 하지만 국영기업의 가동이 완전히 멈춰버린 것은 아니다.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일부 공장·기업소는 가까스로 움직이고 있다. 그 배경의 하나로서 주목해야 하는 것이 이른바 ‘사적 자본’이다. ‘돈주’로 불리는 신흥 부유층이 다양한 형태로 국영기업에 자본을 투입해 기업을 움직이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사적 자본을 투입하는 기업의 운영은 경제위기 초기에는 식당·상점 등 서비스업에서 시작됐으나, 2000년대 들어 무역업·제조업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큰 틀에서 보면 국가가 시장에 의존(기생)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북한의 사적 자본과 ‘돈주’
이런 북한의 상황을 확인해준 것이 2009년 말 ‘화폐개혁’과 2010년의 이른바 ‘5·26 지시’다. 5·26 지시는 북한 지도부가 당 간부들에게 내린 지시로서, 주민들에게 공개한 것은 아니지만 주민 대부분은 인지하고 있다. 2005년부터 시작된 보수적 경제정책의 잠정 중단, 특히 시장 단속 중지 및 사실상의 허용을 골자로 한다. 북한 정부는 화폐개혁을 통해 돈주 등의 계층에 타격을 주고, 이에 따라 시장을 실질적으로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런데 정부의 예상과 달리 국영기업이 함께 타격을 받으면서 가동률이 더욱 하락했다. 정부가 파악한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국영기업들이 돈주에게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화폐개혁으로 돈주들이 타격을 입고, 그 돈주들에게 의존하던 국영기업들이 타격을 받으면서 정부는 크게 당황했다. 이는 북한 정부가 시장 통제를 철회하게 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국영기업 운영과 사적 자본의 연계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가 금융, 즉 대부다. 돈주 등 개인이 기업에 자금을 대부하고, 이후에 원금과 이자를 상환받는 것이다. 둘째는 단순 투자다. 돈주 등 개인이 기업에 자금을 투자하고, 이후에 이득금을 분배받는 것이다. 그런데 제조업은 개인이 기업에 대부 또는 투자를 하고, 원리금 상환 또는 분배를 받을 때 현금 또는 현물로 거래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개념적으로는 4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첫째, 개인이 기업에 현금을 대부·투자하고, 현금으로 상환·분배받는 경우다. 둘째, 개인이 기업에 현물을 대부·투자하고, 현물로 상환·분배받는 경우다. 즉 개인이 기업에 원자재를 제공하고, 생산물(제품)을 돌려받는 것이다. 셋째, 개인이 기업에 현금을 대부·투자하고, 현물(제품)로 상환·분배받는 경우다. 넷째, 개인이 기업에 현물을 대부·투자하고, 현금으로 상환·분배받는 경우다. 이 중 둘째와 셋째, 즉 개인이 기업에 현금이나 원자재를 제공한 이후 생산물로 돌려받는 경우는 임가공의 범주에 속한다. 개인이 국영기업에 특정 제품의 임가공을 의뢰하고, 그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다.
첫째와 넷째의 경우, 즉 개인이 기업에 현금이나 원자재를 제공한 이후 현금으로 돌려받는 경우는 단순 대부·투자 영역에 속한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 양자의 구분은 다소 모호하다. 사전에 정해진 이자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돌려받느냐, 분배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돌려받느냐는 차이만 있을 뿐, 개인 입장에서는 생산·구매·판매 등 기업 활동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자금만 투입하고 회수할 뿐이다.
한편 대부·투자 외의 유형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이른바 ‘개인기업’이다. 개인이 사실상 기업을 신규로 설립해 자신의 돈(자본)을 투입함은 물론, 구매·생산·판매 등 일체의 경영활동에 권한을 가지고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다. 심지어 함께 기업을 운영할 관리직원과 노동자들도 자신이 고용한다. 때로는 기존 기업을 인수하기도 한다. 사실상의 사유화인 것이다. 하지만 개인기업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개인기업은 특정 기관이나 기업소에서 명의를 빌린다. 해당 기관이나 기업소의 분공장, 지부, 지사인 것처럼 모자를 쓰는 것이다. 명의를 빌린 대가로 해당 기관이나 기업소에 일정 수준의 현금을 납부한다.

2007년 북한 평남 대안군에 있는 대안친선유리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북한 계획경제, 광범위한 시장 의존
북한 기업은 다양한 형태로 사적 자본을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기업의 이런 행동은 북한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즉, 불법 행동이다. 기업과 개인들은 불법임을 알면서 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일까.
첫째, 포괄적으로 보면 1990년대부터의 경제위기이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로 인해 계획경제의 물질적 토대가 붕괴됐고, 특히 중앙집중적 자재 공급 체계가 와해됐다. 게다가 재정난으로 인해 국가는 기업에 필요한 운영 자금을 제대로 공급해주지 못하고 있다. 국가재정이 바닥난 상태에서 은행이 기업에 자금을 대출해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둘째, 7·1 경제관리개선조치(이하 7·1 조치) 이후 기업의 실질적인 독립채산제 도입, ‘번수입’(벌어들인 수입) 지표에 기초한 국가기업이득금 제도 도입 등 기업경영 여건 변화 때문이다. 국가는 경제위기 속에서 계획 수행에 필요한 물질적·재정적 조건을 제대로 마련해주지 못하면서도 기업에 ‘자력갱생’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이 경향은 7·1 조치를 통한 기업의 실질적 독립채산제 도입 이후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반면 국가는 번수입 지표 도입을 통해 기업에 계획 외 경제활동을 공식 허용했다. 기업으로서는 부분적으로 시장경제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합법적인 공간을 부여받은 것이다.
셋째, 시장화의 진전으로 여러 가지 시장경제 활동을 통해 돈을 많이 모으게 된 개인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신흥 부유층이라 할 수 있는 돈주가 등장해 확산됐다.
넷째, 시장화와 관련된 제도화의 수준이 아직 높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소비재 및 생산재 시장의 허용에도 불구하고 금융 및 노동 시장은 아직 허용되지 않고 있으며, 소유권에 대해서는 북한 정부가 완고하며 경직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적 자본 활동의 소유 측면에서는 현실과 공식적 제도가 큰 괴리를 보임에 따라 지대(Rent)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무역회사, 공장, 기업소는 개인에게 명의만 대여해주고 상당한 금전적 대가를 수취할 여지가 생긴 것이다. 이런 배경과 조건 아래 직접적 당사자인 기업과 개인은 서로를 활용하게 됐다.
개인의 자본을 이용해 국영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큰 틀로 보면 계획경제가 시장경제에 의존하는 또 하나의 형태이자 방식이다. 북한에서 계획경제, 나아가 국가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기업과 사적 자본의 연계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결국 시장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계획경제, 특히 계획경제의 최말단 단위인 기업의 경우 최소한의 가동조차 보장받기 힘든 상황에 북한이 처해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런 현상으로 계획경제의 물적 기반이 침식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대부·투자, 특히 임가공의 경우 공장의 전기·설비·노력은 계획경제가 아니라 시장경제 영역으로 유출되고 있다. 나아가 국가가 계획에 의해 보장한 원자재와 생산물도 상당 부분 시장경제 영역으로 유출되고 있다. 국가계획 수행 혹은 노동자 복지로 포장해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부정부패로 연결돼 있다.
기업의 이런 불법적 행동에 국가는 어떻게 대응하는가. 한편으로는 묵인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통제를 가한다. 실제로 2007년 이후 국가는 이런 현상에 강도 높은 단속과 통제를 반복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했다.
　
보완 효과인가, 대체 효과인가?
국가가 기업의 이런 행동을 조장하는 경우도 있다. 기업에 계획목표를 달성하라고 무리하게 몰아치는 상황이다. 2009년 ‘150일 전투’ ‘100일 전투’가 그러하다. 당시 공장과 기업소에 개인 자본이 많이 들어갔다고 한다. 경영자들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계획 목표를 채워야 했고, 개인 돈을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 국가는 종합시장을 폐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사적 자본에 의한 기업 운영도 크게 다를 바 없다. 현재 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이런 추세는 유지·확대될 수 있다. 사적 자본에 의한 기업 운영은 당장은 국가 입장에서 이득일 수 있다. 시장경제가 계획경제 및 국가를 보완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은 계획의 물적·기능적 토대를 지속적으로 침식하고 있다. 시장이 계획을 대체하는 효과는 결코 무시하지 못한다. 결국 보완 효과와 대체 효과는 병존한다. 두 가지 힘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클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힘들다. 다만, 두 힘의 충돌은 북한 사회의 미래를 규정하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msyang@kyungnam.ac.kr

북한경제 Brief

북·중·러, 한 번에 3개국 관광하는 프로그램 준비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한 차례의 관광에서 이 세 나라를 돌아볼 수 있는 관광 프로그램을 함께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4일 <북한중앙통신>은 중국 관광 관련 인사들이 4월29~30일 이틀에 걸쳐 북한의 두만강 유역과 나선 일대의 역사 유적, 관광지들을 돌아보았다고 밝혔다.
3개국 관광 프로그램은 매주 수요일에 출발한 뒤 3박4일간 중국의 훈춘,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슬라뱐카·하산, 그리고 북한의 나선지구 등을 돌아보는 것이다. 세 나라는 이 관광 프로그램을 위해 이미 훈춘 산장국제여행사와 러시아 극동운수공동체, 북한 나선국제여행사가 현지 답사를 하고, 지난해 9월 ‘3국 무비자 관광 협정’을 체결했다.
　
북, “5∼7월 식량배급 중단 가능성” 밝혀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5월19일, “북한 당국이 평양에 머물고 있는 세계식량계획(WFP) 관계자에게 5∼7월 3개월간 식량배급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만일 북한에서 식량배급이 중단된다면 북한의 빈곤층이 받을 타격은 매우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 이유로 북한에서도 시장 중심의 경제활동이 확산되면서 빈부 격차가 크게 확대됐다는 점을 꼽았다.
이와 관련해 클라우디아 본 로엘 세계식량계획(WFP) 북한 사무소장은 1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 주최로 열린 ‘진보와 보수, 대북 식량지원을 말하다’ 토론회에 참석해 “식량 생산량과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이 줄면서 600만 명이 심각한 식량 부족에 노출돼 있다”고 북한의 악화된 식량 상황을 전했다.
　
북 휴대전화 가입자 50만 명 넘어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 수가 50만 명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5월19일, 북한의 이동통신업체인 ‘고려링크’를 통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주민은 3월 말 현재 53만5133명이라고 보도했다. <RFA>는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지난해 말 43만여 명이었다며, 그 뒤 석 달 동안 10만 명 넘게 늘어났다고 했다.
고려링크는 이집트 오라스콤텔레콤이 2008년 12월 75%의 지분 투자로 설립한 회사로, 이동통신 가입자 수가 2009년 6만9천 명, 2010년 3분기 30만1199명 등으로 빠르게 늘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