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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형상, 다중지성
[경제와 책]
[14호] 2011년 06월 01일 (수) 조정환 economyinsight@hani.co.kr

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으리라고 예상되는 시대에 사람들은 하늘에 떠 있는 별의 안내를 따라 살거나 기억·습관·규칙에 따라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면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들이 어디서 기원하는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기억·습관·규칙을 의심하고 새로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오늘날이 바로 그러하다. 세계 최강국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폭발한 뒤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고, 원전 강국 일본이 제2의 체르노빌로 추락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노동은 나날이 불안정하게 되고, 정규직 노동운동은 빠르게 보수화된다. 이런 가운데 이른바 ‘암흑의 대륙’ 아프리카에서는 새로운 유형의 혁명이 폭발해 아랍권 전체, 아니 세계 전체를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하지만 어떤 변화가 가능한지, 어떻게 변화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해답은 명확히 주어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선 곳이 어디인지 모호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그 변증법
   
 
<인지자본주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살피기 위해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에 서 있는가’를 묻는 책이다. 이 책은 우선, ‘모든 것이 변했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전세계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화와 세계화의 이름으로 오래된 모든 것에 대항하는 십자군 전쟁을 벌였다. 경쟁력은 그들의 종교이며, 무기·돈·기술은 그들의 거룩한 삼위일체이다. 이기려면 싸울 적을 만들고, 더 많은 사람을 부릴 수 있는 돈을 모으고, 남들이 따라잡지 못할 기술을 개발하라. 이것이 그들이 따르는 계명이다. 오늘날 이들이 기대는 것은 원자력(핵), 금융자본, 그리고 3T(정보기술(IT)·생명공학기술(BT)·나노기술(NT)) 융합이다. 그것들이 생산하는 것은 전쟁, 양극화와 위기, 자연과 생명의 조작이고, 이를 통해 대중적인 공포와 우울, 불안이 조성된다. 이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악에 현혹되지 마라, 저항하지 말고 순종하라,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현재에 만족하라, 지속하는 모든 것을 잊고 도래하는 변화를 즐겨라. <인지자본주의>는 이런 신자유주의 논리에 반대한다.
이 책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에도 반대한다. 이 생각들은 원시주의·근본주의·사회주의 등에 의해 표현된다. 자연·종교·국가, 이 세 가지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탱하는 기둥들이다. 이 유형의 보수주의 흐름은 일체의 변화와 위기를 심화할 뿐인 신기루로 간주된다. 원시주의자들은 자연생태를 지키는 것만이, 근본주의자들은 종교적 전통을 지키는 것만이, 사회주의자들은 산업 전통을 지키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말한다. 원시주의자들은 생태 보전을, 근본주의자들은 움마 같은 종교 공동체의 사수를, 사회주의자들은 노동 공동체로서 국가의 장악을 사활적인 문제로 설정한다. 신자유주의가 조성하는 공황·불황·위기의 현실과 공포·우울·불안의 정서를, 이들은 추락과 붕괴의 징후로 재해석한다. 원시주의자들은 문명이 멸망한다고, 근본주의자들은 서방이 추락한다고,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붕괴한다고 말한다. 필요한 것은 변화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전통을 지키기 위한 투쟁, 고용과 노동을 지키기 위한 투쟁, 국가를 지키기 위한 투쟁, 이것들이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이들의 성전 논리다.

사회적 울타리, 자본·국가·종교
우리는 지구정치에서 이 두 논리의 변증법을 목격한다. 하나가 여당이 될 때 다른 하나가 야당이 되고, 그 반대일 때 반대가 되는 방법으로 서로가 서로에 의존하면서 두 가지 전략이 지구정치를 이끈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서 영토주의와 자본주의의 변증법, 유럽에서 기독민주당과 사회당의 변증법, 미국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변증법, 아랍에서 신자유주의와 이슬람주의의 변증법, 러시아에서 보수파와 개혁파의 변증법, 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의 변증법,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의 변증법…. 이 변증법들은 창조론과 진화론, 목적론과 기계론의 변증법을 정치 영역에서 재현한다. 이 변증법의 해체 없이 생명이 도약하고 진화할 길은 막힌다. 반복과 순환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지자본주의>는 변증법적 순환 구조를 명확히 밝힘으로써 그것을 대체할 실제적 대안이 어떻게 가능할지 숙고한다. 이 책은 권력의 경제적 형태로서 자본, 정치적 형태로서 국가, 문화적 형태로서 종교 등이 사회적 방식으로 진화하는 인간 생명력을 감싸는 ‘사회적 울타리’라는 관점에서 변화의 문제를 다룬다. 사회적 울타리들은 한편에서 사회적 생명이 환경과 섭동할 수 있게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체의 창발적 자기생성을 억제해 사회적 진화를 가로막는다. <인지자본주의>는 생명의 자기생성 활동은 물질 형태를 취하는 인지 과정이며, 이것이 역사의 근본적 추동력이라는 관점에서 자기생성 활동을 분석한다. 인간의 자기생성 활동은 사회적 노동을 매개로 전개된다. 그래서 이 책은 근대의 역사적 자본주의를 상업활동에 기초한 상업자본주의, 산업노동에 기초한 산업자본주의, 인지노동에 기초한 인지자본주의로 시기에 따라 구분한다. 그중에서 특히 노동의 인지화를 자기생성적 특성으로 삼는 인지자본주의의 내적 변화 경향과 그 특징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먼저 자본주의가 인지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신체는 물론 영혼도 노동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교사, 의사, 간호사, 기자, 예술가, 지식인, 연구자, 연예인 등만이 영혼으로 노동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자동차나 배의 설계사나 디자이너, 씨앗 개발자, 부동산업자 등도 그러하다. 아니 모든 노동활동에서 영혼의 비중과 위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둘째로 현대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가치법칙을 정치적으로 독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의 가치법칙은, ‘매개적으로’ 정치적 법칙을 넘어 ‘직접적으로’ 정치적 법칙으로 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현대자본주의에서 가치법칙이 지속되고 있는지, 아니면 끝났는지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논쟁해왔다. 그 ‘경제학적’ 논쟁이 ‘정치적’ 평면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셋째, 유연화·민영화·세계화·금융화·정보화 등은 원시주의자·근본주의자·실재주의자 등이 주장하듯 환상이 아니고, 신자유주의자·포스트모더니스트가 주장하듯 유토피아를 실현할 근본적으로 새로운 기법도 아니며, 노동 인지화에 대응하는 자본의 전략 변경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노동 인지화에 따라 착취와 지배의 방식이 인지화하는 것이다.
 
상품 세계에서 공통 세계, 다중지성으로
인지자본주의에서 이런 변화 경향이 사회적 삶에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 이 책의 또 다른 주장이다. 전통적 생산공간인 공장은 작업장·사무실·대학·마트·철로·극장 등 실재적이고도 가상적인 연결망으로서 메트로폴리스로 전화하고, 노동시간은 시작과 끝이 있는 공간 형태를 넘어 초시간적 영원 형태로 전화한다. 생산공장에서 움직이던 전통적 노동계급은 점점 실업자·비정규직·프리터(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리는  젊은이) 등으로 분산되며, 그 결과 정치적인 것은 공장과 국가를 넘어 사회적 삶의 수준에서 생성된다. 중앙집중적이던 지성이 연결망적 형태의 다중지성으로 재편되고, 운동과 혁명에서 인지적인 것의 위치와 역할은 커진다.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들에 윤곽을 부여함으로써 이 책은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확인시킨다. 저자로서 내게 이 작업은, 상품(Commodity) 세계를 공통(Community) 세계로 전환시킬 실천 방향을 사유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내 개인사에서 <아우또노미아>가 사회주의 붕괴 이후 10년에 걸친 네그리-자율주의 수업 시대를 종합한다면, <인지자본주의>는 그 이후 10년간의 정치·철학적 편력 시대를 종합한다. 학술사적으로 이 책은, 여러 사람들에 의해 세계 각지에서 단편적으로 더듬어온 인지자본주의의 상을 체계화해 일관된 형상을 부여한 최초의 작업 성과다. 우리  시대를 진지하게 접근하려는 시도라면 이 책이 그려낸 형상과의 대면이나 대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이 다중지성의 용광로에서 새로운 집단적 비전으로 용해되고 새로운 사회적 실천의 에너지로 소비돼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다중지성의 정원’ 웹사이트 http://daziw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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