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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층 위해 ‘작은 목소리’라도 내자
[한국경제 혁신 공모전]한의원에서 빈곤한 이웃과 매일 접하며 느끼는 ‘그들의 소외, 우리의 무관심’
[14호] 2011년 06월 01일 (수) 문석용 economyinsight@hani.co.kr

문석용 한의사
 
나는 ‘워킹푸어’(Working Poor·빈곤근로 노동자)들과 날마다 살을 비빈다.
내게 워킹푸어나 사회적 소외계층의 이야기는 남 일이 아니다. 워킹푸어의 특징은 열심히 일하지만 빈곤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내가 일하는 한의원에 오는 환자들 상당수는 혼자 사는 할머니, 한 달에 이틀 겨우 쉬며 일하는 공사장 인부, 보호 1·2종, 차상위계층 심지어 의료보험조차 없는 사람 등 이른바 ‘가난한 이들’이다.
나는 환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간단히라도 나누려는 편이다. 그냥 증상을 묻고 침 놓고 끝내지 않는다. 환자들의 넋두리를 통해, 질환을 통해, ‘동네 트위터’에 능한 직원들이 전해주는 ‘스토리’를 통해, 그리고 의외로 자주 들려오는 자살 소식을 통해 그들의 삶을 온몸으로 읽는다. 한번은 생활고에 힘들어하던 어머니가 천장에 매달려 죽어 있는 것을 목격한 딸의 정신상담을 한 적도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 투신한 동네 주민 이야기는 서너 번은 들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 노년층 자살률은 압도적인 1위….
한의원을 개원한 뒤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이의 얼굴을 마주 대하게 된다. 월급받고 일할 때는 그냥 침만 놓아서 환자 개개인에게 별 관심이 없었는데, 개원 이후 그들과 ‘스킨십’이 많아지다 보니 힘든 삶이 그들의 몸에 나타나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 여성 중 30대는 취업률이 가장 낮다고 한다. 아마 출산과 보육을 나라에서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놀랍게도 65살 이상 여성의 취업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노년에 먹고살 길이 막막해서 허드렛일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서민층의 조용한 비명은 ‘출산파업’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신의 미래는 물론이고 아이의 미래까지 불안하므로 출산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전쟁 와중에도 꾸준히 아기를 낳던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온몸에 기록되는 빈곤, 가난의 대물림
고된 삶은 그들의 몸에 모두 나타난다. 하루 종일 폐지를 줍고 리어카를 끄느라 허리가 꾸부정한 할머니가 많다. 당연히 만성 요통에 시달리지만 별 방법이 없다. 수술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면 나이가 너무 많아 수술할 수 없다거나, 곧 죽을 텐데 뭐하러 수술하느냐고 하거나, 침 맞으면 견딜 만하다거나, 대부분은 수술할 돈이 없다고 말한다. 한 달에 이틀 겨우 쉬면서 술과 담배로 힘든 몸을 달래가며 일하는 공사판 막노동자는 주로 견배통·타박상·염좌·과로에 시달리는데 이 또한 끝이 없다. 기본적으로 혹사당한 근육을 쉬어줘야 호전되는 병인데 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힘든 삶은 그들의 몸에 그대로 기록된다. SBS 드라마 <싸인>처럼, 주검만 몸에 증거를 남기는 것이 아니다. “온몸이 아프다”는 항상 듣는 말이지만 빈말이 아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이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다. 쉬는 날이 거의 없이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14시간 식당일을 해서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는 아주머니들은 평균적으로 150만원을 받는다. 4대 보험 따위는 없다. 아무리 아파도 시간 내서 한 달에 몇 번 한의원에 들르는 것조차 힘들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빈곤의 악순환과 대물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해버리는 부모의 자식들은 밤 10시가 넘게 방치된다. 자기 몸 가누기도 힘든 할머니에게 맡겨지기도 하지만 그런 아이들은 인지발달이 느리고 몸이 약해 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하기 십상이다. 자녀가 자폐 증상 등의 문제만 안 일으켜도 다행이다.
그 아이들은 빈약한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와 주로 최하층의 일을 담당하게 된다. 빈곤이 꾸준히 대물림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한번 삐끗해 몸이 아파 일을 그만두는 순간, 혹은 몸이 너무 늙어 일을 하기 힘들어지는 순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최악의 주거 조건 속에서 아파도 참고 밥에 반찬 한두 가지만 놓고 먹고살아야 하는,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침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더욱 목을 죄어오는 건 꾸준히 확산되는 ‘하향 평준화 공포’다. 기어 올라가기는 어렵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순식간인 대한민국 개미지옥 만만세!
그래서 나는 고민하며 글을 쓰는지 모른다. 먹고사느라 하루하루가 힘겨울 뿐이어서 뭉치지도, 목소리를 내지도 못한 채 조용히 사그라지는 빈곤층을 날마다 지켜보면서 더 이상 참기 힘들어졌을지 모른다. 이명박 정부의 폭정,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날로 더해가는 왜곡된 언론, 거기에 더해 내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는 워킹푸어. 나는 그저 침묵하고 있기만 하는 것이 불편하다. TV 드라마에서는 재벌 이야기만 나오고, 신문에는 가장 부자인 사람들이 더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만 나오고, 수출 흑자가 늘었다는 자랑만 나온다. 그런데 왜 내 주위의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해지는가. 내가 아주 모기만 한 목소리라도 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그러했듯이 대개 중산층은 중산층과 어울린다. 그러다 보면 이 사회 밑바닥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탈출할 수 없는 절대 빈곤에서 신음하는 수백만 명이 보이지 않는다. 미디어에서 다뤄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 이야기는 재미없다(?).
당신이 환경에 좋은 일 하겠다고 쓰는 재생 휴지는, 퇴행성 관절염은 기본이고 온갖 척추 질환에 시달리는 수십만 명의 할머니들이 길바닥에서, 지하철에서, 그리고 상점에서 사정사정하며 얻어 하루에 겨우 1만~2만원 받아가며 모은 폐지다. 당신이 이용하는, 세계적으로 깨끗하기로 유명한 서울 지하철은 하루 12시간 일하고 겨우 80만~90만원 받는 비정규직 할머니들이 닦아놓은 것이다. 당신은 대학생인가? 대학 교정은 누가 청소하는가? 비정규직 워킹푸어 할머니들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하루 9시간씩 일하고도 한 달에 50만원도 받지 못할 것이다.

   
지난 3월 서울 경희대학교 구내에서 한 청소용역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그들은 존재하지만 중산층과 기득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중산층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짐짓 외면한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심이 자리잡고 있다. 출산파업과 보험상품의 폭발적 인기는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저소득층 지원은 세금 증가로 귀결된다는 기득권층의 끊임없는 세뇌에 길들어져 어찌 움직여야 할지 모른다. 지금도 먹고살기 힘든데 세금을 더 내라니!(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세금폭탄’이라며 열 올리던 할머니는 전셋집에 살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무슨 코미디인가?)
기득권은 중산층의 그런 공포를 교묘히 이용한다. 빈곤층은 경쟁에서 실패한 사람이며, 그들의 불행은 자초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세금은 부유층에게서 더 걷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마땅히 낼 세금인데도 안 내고 있던 것을 걷어야 한다. 기득권층이 경쟁 패러다임을 내세워 저소득층을 꼴등이라 몰아붙이고 자기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결국 자신들이 낼 세금이 두렵기 때문이다(이명박 대통령의 “나도 ××해봤는데…” 등 군대 가는 거 빼고는(!) 다 해봤다는 이야기들이라니!).

빈곤층은 유령이 아니다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사회취약 계층은 유령이 아니다. TV·신문·미디어, 그리고 사회적 담론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지만 그들은 이 사회의 무려 20%(절대 빈곤층 10%, 상대 빈곤층 20%) 정도를 점하고 있다. 우리는 왜 그들을 유령 취급하는가? 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1명은 100만원 벌고 나머지 99명은 1만원 버는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 서민들도 어느 정도는 먹고살 만해야 내수와 소비가 진작되고 사회가 안정돼 부자들도 더욱 부자가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서민을 착취하고 치약 짜듯이 짜내는 행태로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려 한다. 이런 불공정한 사회에서는 사회적 자원의 생산 효율성이 떨어진다. 대한민국 사회는 불공정한 룰로 경쟁을 시키고, 그 경쟁에서 이긴 기득권층에게 더 큰 상을 준다. 그래서 기득권층은 더 막강해지고 빈곤층은 탈출할 길 없는 빈곤으로 빠져든다. 빈곤층은 희망을 도둑맞고 약탈당했다. 기득권층은 빈곤층의 희망을 ‘착취’한다.
나는 모든 사람이 적어도 인간적인 삶은 살 수 있게 보장할 수 있는 부(富)가 대한민국에 이미 넘쳐흐르고 있다고 확신한다. 다만, 경쟁 패러다임에 경도된 기득권층이 자신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룰을 빈곤층에 가혹하게 강요하는 것이 문제다. 중산층·지식인은 빈곤층과 워킹푸어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정치인도 같이 관심을 갖고 복지를 구현하는 시늉이라도 해준다. 복지사회 구현은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빈곤층은 낙오자가 아니다! 그들 대부분은 잘못된 사회·경제적 시스템에 의해 구조적으로 낙오될 것이다. 그들을 왜 유령 취급하는가? 취약계층을 보살펴주는 따뜻한 사회,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사회야말로 사회적 자원의 효율성이 극대화돼 모두가 더욱 부자가 된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마라.
 
누가 빈곤층 아이들의 꿈을 죽였는가?
요즘 빈곤층 아이들의 꿈은 무엇인가? 그냥 ‘정규직’ 혹은 ‘기초수급자’다. 우리는 과거에 못살았지만, 그래도 “내 꿈은 대통령이다!”라고 큰소리치며 살았다. 30대 초반인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그랬다. 세계적 기업인 삼성과 LG, 현대를 배출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 육박한 지금, 대한민국 어린이들의 꿈이 어쩌다 그냥 정규직으로 몰락했는가. 누가 우리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압사시켰는가? 혹시 우리의 무관심은 아닌가? 비정규직이라는 ‘나쁜 일자리’, 최저 수준의 시간당 ‘최저임금’, ‘빈약한 사회안전망’ 제도는 모두 우리 손으로 뽑은 정치인들이 만들어놓은 정치적 합의의 산물이다. 패자부활전 따위는 용납하지 않는 우리의 잔혹한 경제·사회 시스템을 생각해봐야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35%는 자신이 결국 상위 1%에 속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상위 1%에는 1%만이 속할 수 있다. 오히려 지금 시스템에서 당신은 아마 60%의 확률로 빈곤한 노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여전히 나는 1% 상위 그룹에 속할 것이라고 꿈꾸면서 이 지옥 같은 현실을 외면할 것인가?
coke08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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