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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감세 주장은 ‘불량식품 강매’ 행위
[경제사 산책]
[13호] 2011년 05월 01일 (일) 박종현 economyinsight@hani.co.kr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최근 미국에서는 정부 예산을 놓고 큰 소동이 있었다. ‘예산 전쟁’(Budget Battle)이라는 언론의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지난 3월에는 위스콘신에서 주정부·공화당과 공공노조·민주당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공화당 소속 주지사가 재정 악화를 이유로 공공부문 노동자의 연금급여를 깎고 단체교섭권까지 제한하는 조치를 추진하자, 교섭권 제한은 재정 적자와 관련 없는 ‘노조 죽이기’이자 기득권층과 공화당의 강화를 위한 정략이라며 격렬한 저항에 나섰던 것이다. 지난 4월 초에는 ‘티파티’(보수주의 유권자 단체)의 응원과 압박 아래, 공화당 하원이 1천억달러에 달하는 예산 삭감을 요구하며 예산안 통과를 거부해 연방정부 폐쇄 사태가 벌어질 뻔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상원이 385억달러의 예산 삭감을 받아들이고 공화당도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던 가족계획 지원예산 삭감 요구를 철회함에 따라, 정부 폐쇄 법정 시한 1시간을 남겨놓고 사태는 일단락됐다.

   
지난해 2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출한 2011 회계연도 예산안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 상원 재무위에 참석한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 뒤로 시위자들이 실업 사태와 정부의 예산낭비를 항의하는 펼침막을 들고 있다.

‘재무성 견해’와 케인스의 <일반이론>
재정 적자가 경제적 논쟁의 주요한 대상이 된 것은 대공황 때였다. 당시 영국의 재무성 관료들과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불황에서 경기를 회복시키려면 재정 적자를 줄여 재계의 신뢰를 다시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믿은 반면, 정부 지출을 늘리는 확장적 재정정책의 효과에는 부정적이었다. 정부 지출을 늘리려면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려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금리가 올라가고, 금리 상승은 다시 민간의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국민경제 총수요의 총합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재무성의 견해’(Treasury View)를 가장 체계적으로 비판한 사람이 바로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그는 대공황에서 벗어나려면 재무성 견해를 이론적으로 논박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이 점에서 <일반이론>은 재무성 견해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서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불황의 핵심은 사람들이 주머니를 풀지 않으려는 것인데, 이 상황에서는 정부가 차입을 늘려 방해할 민간의 소비나 투자가 없으므로 적자재정에 기반한 경기부양책은 불황 탈출의 유효한 수단임을 유동성 선호, 유효 수요, 투자의 한계효율 등 다양한 이론적 장치를 동원해 입증하려 한 것이다. 이후 재무성 견해는 케인스의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구축효과’ ‘리카도 동등 정리’ 등의 개념화를 통해 다시 출현하게 된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대규모 재정 적자에 직면한 경제가 ‘불황에서 탈출하는 데 필요한 거시경제 정책이 무엇인가’를 놓고 대공황 때와 유사한 논쟁이 펼쳐졌다. 케인스의 후예는 정부 채무가 일시적으로 더 늘어나더라도 정부 지출을 크게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재무성 견해’의 후예는 경기회복에는 시장의 신뢰가 결정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재정 적자에 대한 단호한 해결 의지를 당장 금융시장에 입증하는 게 관건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때 영국과 미국에서 다른 대안이 선택됐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집권한 보수·자민 연립정부가 신속한 재정 적자 감축에 최우선순위를 둔 긴축정책을 진행 중이다. 미국은 확장적 정부 지출의 경기부양 효과에 더 큰 우선순위를 두고 재정 적자 문제를 천천히 해결하자는 오바마 행정부가 더 신속한 대응을 주장한 공화당의 반대를 이겨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두 나라의 향후 경제 성적표가 어떠한지에 따라 경제이론들의 공신력도 달라질 것이다. ‘단기적으로 재정 적자 해소와 확장적 재정정책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둘 것인가’라는 주제에 관한 한, 다수의 경제학자는 케인스 편에 섰다. 이와 관련해 미 재무성 차관, 하버드대학 총장,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등 화려한 경력과 강한 자아로 소문난 로런스 서머스가 최근 헤지펀드의 대명사인 조지 소로스 주최로 열린 학회에서 행한 도발적 발언이 화제가 됐다. “현재와 같은 불황에서 정부 지출을 줄이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다. 영국 경제에 대한 민간의 신뢰가 커져서 향후 2년 안에 호황을 맞게 된다면 거시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내 견해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며, 내가 범한 판단 착오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깊이 뉘우칠 것이다.”
단기적 차원에서는 재정 적자 문제에 유연하게 접근하던 학자들도 장기적 차원에서는 엄격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재정 적자 증가를 장기적으로 용인할 때는 정부의 지급 능력에 대한 금융시장의 불신으로 금리가 급등해 투자가 어렵게 되고 성장 잠재력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재정 건전성이 국민경제의 중요한 장기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경제학자들의 대체적인 컨센서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컨센서스를 공유하지 않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재정 건전성은 단기적으로도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재정 강경파’(Fiscal Hawks)가 있는가 하면, 재정 적자의 정당성 여부는 이를 통해 행한 정부 지출이 경제나 사회에 미치는 효과로 판단해야 하므로 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에 얽매이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기능적 재정론’(Functional Finance)이 있다. 보수 쪽으로 갈수록 ‘방만한 재정 적자’의 해악을 우려하고, 진보 쪽으로 갈수록 ‘경직적 균형재정’의 폐단에 분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4월13일 재정적자 감축안 발표에 앞서 백악관에서 의회 지도부와 회의를 하고 있다.

불황 때 정부 지출 축소는 제정신 아니다?
“예산은 숫자들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다. 예산에는 우리의 가치관과 열망이 표현돼 있다.”(백악관 예산실장 제이콥 루) 385억달러의 예산 삭감으로 인해 교육·건강·인권·자활 등 많은 분야의 프로그램이 축소되거나 폐지됐다. 그럼에도 이를 추진한 공화당에 대한 여론은 나쁘지 않았다. “미국은 파산했다”는 티파티와 공화당의 선언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미국 재정은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가? 정부의 재정 건전성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채무나, GDP 대비 재정 적자로 가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은 전자로는 90%를 상회하며 후자로는 10% 정도의 수준을 기록 중인데, 다른 선진국에 비해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연방정부가 자금을 조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조달금리 또한 GDP 대비 재정 적자가 3.2%로 건실한 독일과 동일한 수준이어서, 시장논리만으로 보면 미국 재정은 아직 튼튼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올해 벌어진 예산 전쟁의 출발점은 오바마 정부가 주도한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과 무분별한 지출로 재정 적자가 급증했고, 이 흐름을 반전시키지 않고서는 미래가 없다는 공화당의 원인 진단이었다. 그러나 미국 의회예산국 자료를 근거로 <뉴욕타임스>가 분석한 실제 수치를 보면, 공화당의 주장과 역사적 진실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조2천억달러에 달하는 재정 적자 중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책으로 인한 부분은 2천억달러에 불과하고, 재정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부시 집권기의 감세 및 이라크 전쟁이며, ‘큰 정부’라는 민주당 정권 때 8500억달러에 달하는 흑자를 달성해 공화당 정권에 물려주었다는 점이 눈에 띄는 특징이다. 이는 재정 적자가 “부시 정부의 부자 감세와 정의롭지 못한 침략전쟁, 그리고 방만한 금융에 대한 규제 실패에서 비롯된 것”(로버트 라이시 버클리대학 교수)이라는 진보 진영의 진단이 진실에 더 부합함을 뜻한다.
재정 적자의 해법을 놓고도 논쟁이 있을 것이다. 정부 지출 중 세금 수입을 초과하는 부분이 재정 적자임을 감안할 때, 정부 지출을 줄이거나 세수를 늘리는 것이 해결의 기본 방향이다. 두 대책을 섞어 적자를 줄이되,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보수는 지출 축소에 더 주목하는 반면, 진보는 증세를 해서라도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 정부 지출의 모든 부문이 재정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연방정부 예산의 주요 항목은 의료보장(23%), 국민연금(20%), 국방(20%), 재량적 지출(19%) 등이다. 재정에 부담을 주는 것은 노령건강보험(Medicare)과 빈곤층의료보장(Medicaid)으로 구성되는 의료보장(Health Care) 비용이다. 공화당이 강요한 385억달러에 달하는 예산 삭감은 재량적 지출 부문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재정 적자 감축과는 무관한 행위였다.
1950년대 아이젠하워의 공화당은 노조 권리를 옹호하고 최상위 계층에 대해서는 90%가 넘는 고율 소득세를 유지하는 등 서민에 대한 애정과 사회 통합에 대한 관심을 정책으로 입증한 바 있다. 영국 보수당의 조지 오스본 재무성 장관은 부유층과 당내 우파 의원들의 집요한 공세에도 불구하고 50%에 달하는 높은 개인소득세율을 유지해, 부자들이 높은 수준의 사회적 책임과 희생을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보수주의의 진정성을 보여주었다. 반면 최근 공화당이 예산 전쟁을 이끌면서 보여준 모습은 이들과는 대조적이다. 가령 재정 적자 해법에 대한 공화당의 당론인 ‘번영으로의 길: 미국과의 약속 회복’을 살펴보자. 이 개혁안의 핵심은 △최고 세율을 25%로 인하하고 세제 정비를 통해 세수를 늘리겠다는 것 △노령건강보험에는 바우처 방식을 도입해 현행 확정급여형 성격을 확정기여형으로 바꾸고 △빈곤층 의료보장에 대해서는 주정부에 보조금을 제한 없이 제공하는 현행 방식을 정액 교부금 방식으로 바꿔 지출을 줄이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노인과 빈곤층의 몫을 크게 줄여 이를 감세라는 형태로 부자에게 넘겨주자는 것이며, 재정 적자는 줄지 않을 것”(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이라거나, “국민경제의 파탄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 수천억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도록 만든 금융권 대신 노인과 빈곤층에게 재정 적자 감축 비용을 부담하도록 강요하는 부당한 처사”(해럴드 마이어슨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라는 비판이 있다. 이때 ‘감세’라는 해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율 인하가 근로 의욕을 높여 경제성장을 가져오고, 세율이 인하된 것 이상으로 소득이 크게 늘어 세수가 오히려 늘어난다는 ‘공급경제학’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여러 가지 전제 조건이 동시에 충족될 때만 성립하는 제한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감세는 경제이론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재정 적자의 해법이 결코 될 수 없다. 그럼에도 공화당이 감세가 재정 적자의 해법이라고 용감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라는 야수를 굶기자?
최근 공화당의 기본 전략은 ‘국가라는 야수를 굶기자’(Starve the beast)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감세를 단행하는 반면 어떤 증세에도 반대함으로써 정부의 세수를 끊임없이 줄이고, 세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 줄어들면 이것이 다시 지출 축소의 새로운 명분이 됨으로써 작은 정부를 향한 투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이들의 처지에서 보면 시장의 활력, 인센티브, 경쟁, 강한 개인, 자유와 책임 등의 바람직한 세상을 가로막는 것은 정부와 사회 안전망이다. 감세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핵심 경로가 되는 셈이다. 요컨대 재정 적자는 알리바이에 불과하며, 예산 전쟁의 이면에는 객관적 계산이 아닌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세계관과 신념의 문제이므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어려운 영역이다. 문제는 이데올로기를 숨긴 채 주관적 제안을 재정 적자라는 경제적 문제의 객관적 해결책으로 선전해 제대로 된 토론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만약 공화당이 재정 적자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정부 지출 축소와 사회 안전망 축소만을 주장했다면, 지금 같은 수준의 국민적 지지를 얻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판단과 경제적 판단을 뒤섞는 행위는 당장에는 영리한 전략으로 보이지만, 불량상품을 강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비윤리적 행위임을 감출 수 없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보수주의 지지 기반이 축소될 수 있다.
ecohis@gn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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