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평생 정조(정절)를 지키는 일이 가능할까? 결혼제도 ‘일부일처제’는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독일의 지성지 <디 차이트>가 인간의 결혼제도와 정조 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검토해보는 특집 기사를 마련했다.
현대인은 교통이나 통신 수단의 발달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져 정조 지키는 일이 더욱 어려워진다. 오늘 결혼한 부부가 내일 더 멋진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는 것이다. 그래도 부부간 정조는 아직은 지켜져야 할 이상이다. 사랑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인데, 그 사랑을 존재케 하는 게 정조이기 때문이다. 부부간 정조를 바라보는 2개의 시선을 살펴보고, “일부일처제가 자연의 섭리에 반한다”고 주장하는 학자 부부의 인터뷰를 덧붙인다.  _편집자

슈테파니 슈람 Stefanie Schramm 프리랜서 학술전문기자

독일 함부르크와 라이프치히에서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약 90%가 ‘부부간 정조를 지키기 원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전체 응답자의 50%는 이전에 ‘바람피운 적이 있다’고 했다. 전체 포유류의 3%가 암수 짝을 짓고 산다. 하지만 실제로 일부일처를 유지하는 포유류는 거의 없다.
거의 모든 사람이 한평생 부부간 정조를 지키며 살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한평생 정조를 지키며 사는 사람은 전체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상과 현실 간에 큰 괴리가 존재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부부간 정조에 대한 이상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부부간 정조를 향한 뜨거운 갈망
현대인이 느끼는 새로운 사랑에 대한 유혹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그래서 현대인의 부부간 정조에 대한 암묵적인 불문율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약하다. 현대사회에서는 한평생 한 배우자에게 정조 지키는 것만을 부부간 정조로 간주하지 않는다. 지금의 파트너에게만 정조를 지킨다면 이미 부부간 정조 의무를 다한 것으로 충분히 간주한다.
과거 인류의 진화에 견줘보면 인류의 절반이나 부부간 정조를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이 오히려 의아스러울 정도다. 실제로 지구상 생물체들이 일부일처를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심지어 암수 짝을 지어 사는 새들과 낭만적 이미지의 대명사 백조조차 DNA 검사를 해본 결과 거의 예외 없이 바람피우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람들이 부부간 정조를 지키게 하는 결정적 요인은 무엇일까? 부부간 정조와 바람피우는 것은 철저히 모순적 관계에 있을까?
브라운슈바이크공과대학의 심리치료 외래진료실 실장이자 심리학자 크리스토프 크뢰거는 부부간 정조에 관한 각종 설문조사와 통계 수치를 연구자료를 통해 집대성했다. 그의 연구자료에 의하면 사람들은 부부간 정조를 갈망한다. 크뢰거는 “사람들은 보통 보수적 가치관을 지녔다.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부부간 정조에 대해 추상적인 질문을 받으면 보수적으로 답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함부르크와 라이프치히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나온, 성인 10명 중 9명이 부부 혹은 파트너 간의 정조를 원한다는 희망사항은 이상에 그칠 확률이 크다. 현실이 그렇지 못하므로 머릿속으로나마 깔끔한 남녀관계를 갈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과 현실이 반드시 상반된다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기 때문에 이런 이상을 품게 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후손이 질적·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자신의 유전자가 더 많이 퍼져나간다. 남자에게는 여자가 많을수록 자녀가 늘어난다는 의미다. 반대로 여자에게는 부양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신뢰할 수 있는 남자는 물론이고, 더 건강하고 똑똑하고 귀여운 아기를 갖기 위해 이에 맞는 남성을 찾아야 한다. 부부 혹은 파트너 관계에서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새로운 파트너에 대한 욕망이 커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함부르크 에펜도르프 대학병원의 진화심리학자 디트리히 클루스만은 “사랑이 식고 나면 ‘새로운 유전자 프로젝트’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함부르크와 라이프치히 설문조사에서 바람피웠다고 응답한 사람의 약 75%는 “새로움이 주는 매력 때문에 바람피웠다”고 했다. “부부 및 파트너 관계에서 행복함과 성적 만족감을 느낀다”고 답한 사람들도 75%에 이른다. 즉 75%에 달하는 사람들이 부부 및 파트너 관계가 행복하고 만족스럽다고 느낀다 할지라도,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관계가 가져다주는 매력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람피운 대다수 사람들은부부 및 파트너 관계가 행복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바람피우게 되었다고 답했다. 우연이라고? 크리스토프 크뢰거는 이를 ‘기회의 콘셉트’라고 칭했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우연과 부닥칠 기회는 그 어느 때보다 많다. 과거 어느 때보다 현대인들의 이동성이 높아지면서 전세계 어디에서나 낯선 사람들을 금방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안방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열려 있다. 크뢰거는 “인터넷을 통해 만난 사람, 바람피운 부부, 이성 친구로 인해 진료실을 찾는 커플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바람피우기도 진화한다
그렇다고 부정이 꼭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것만은 아니다. 부정은 정의하기 나름이다. 스위스 취리히대학 심리학자 자브리나 브뤼스텔레는 “반드시 육체적 접촉을 해야만 부정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브뤼스텔레는 현대인들의 부정 실태를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조사한다. 첫 결과는 올여름에 나올 것이다. 브뤼스텔레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온라인 설문조사에 참여하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진화의 유전자에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바람피울 수 있는 환경까지 마련된 상황에서 현대인이 모두 혼외정사를 벌이지 않거나 바람피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의아할 지경이다. 하지만 부정을 저지르려는 경향만큼 인간은 인간관계에 대한 뿌리 깊은 욕구가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의 설명은 이렇다. 부모가 함께 자녀를 돌볼 경우 자녀의 생존율은 올라간다. 양육에 정성을 많이 들일수록 자녀의 생존율은 더욱 올라간다.
두뇌에서 형성된 옥시토신(뇌하수체 후엽 가운데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보통 자궁수축호르몬이라고 한다)과 바소프레신(뇌하수체를 통해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성관계시 분비가 촉진되면서 파트너와의 유대감을 증대시킨다) 호르몬이 조정하는 강력한 감정적 결합 역시 부부간 정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웨덴 스톡홀름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유전학자 한스 발룸 연구팀은 ‘바소프레신 수용체의 유전자가 변화된 남성은 결혼할 확률이 낮으며, 결혼 위기를 더 많이 겪거나 이혼율이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남성은 아내에게서 남편감으로는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을 확률도 높았다.
이는 일부일처에 적합한 ‘정조 유전자’가 따로 있다는 지금까지의 이론을 뒤집는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자존감이 높고 자아도취적 증상과 노이로제 증상이 적으며 우울 증세가 없는 사람일수록 바람피울 확률이 낮아진다. 바람피우는 것은 사람의 성격, 즉 부분적으로 유전자와 충분히 상관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이 외에 외부적 요인이 파트너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바람피울 확률을 낮추기도 한다. 크뢰거는 외부적 요인으로 부부 공동의 친구들이나 공동 투자 등 사회적 통제를 언급했다. 반면 자녀가 부부의 정조에 끼치는 영향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자녀는 부부관계를 굳건히 할 수도, 부부관계에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혼 자체가 정조에 미치는 영향 또한 분명하지 않다. 결혼한 부부는 동거 커플에 비해 바람피우는 비율은 절반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정조 지키는 사람들이 정조 지키지 않는 사람들보다 결혼하는 비율이 더 높기 때문일 수도 있다.
종교적 신앙은 부부간 정조에 끼치는 영향이 극히 제한적이라고 한다. 신앙인도 신앙심 때문에 정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만족스러운 부부관계를 영위할 때만 정조를 지킨다. 반면 크뢰거는 “외부 세계가 혼란스러울수록 지속적인 부부관계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이 더 커진다”고 말한다. 직장에서 압박감을 느끼는 사람은 배우자 및 파트너에게 더욱 기대게 된다는 것이다.
유전자와 호르몬을 무기로 진화라는 과정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매력적인 신세계와 따뜻한 가정의 유혹을 번갈아 들이민다. 사람들이 어찌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번민한다. 새로운 상대와 변화를 추구할 적절한 기회가 생기면, 인간은 자존감을 한껏 고양시키려고 ‘가정을 지키라’는 이성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어떤 경우는 배우자에 대한 깊은 사랑의 감정을 되찾기도 한다.

정조는 배우자에 대한 헌신
심리학이든, 사회학이든, 인류학이든 학문은 인간에게 정조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요인을 제시해왔다. 더불어  어떤 요인도 인간의 태도에 전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인간이 부부간 정조를 지키도록 하거나, 부정을 저지르도록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취리히의 커플 치료사 가이 보덴만은 “부부간 정조는 인식 과정”이라고 말한다. 즉, 정조는 감정과 성적 취향 등 여러 차원에서 부부간의 배타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특히 상대방에게 자신을 바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이를 제대로 표현할, 조금은 구식처럼 들리지만 아름다운 단어가 있다. 바로 ‘헌신’이다.
ⓒ Die Zeit·번역 김태영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