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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가치세를 누진세로 만들자
[한국경제 혁신]세제 개혁
[13호] 2011년 05월 01일 (일) 유종일 economyinsight@hani.co.kr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부가가치세를 누진세로 만들 것을 제안한다. 이는 일석사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정책이다. 원래 부가가치세는 장점이 많은 세금이지만, 소득의 상당 부분을 저축하는 고소득층에 비해 대부분의 소득을 소비로 지출하는 서민이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지게 돼 있는 ‘역진적 조세’라는 것이 큰 결점이다. 그런데 부가가치세가 반드시 역진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누진적 소비세를 도입하자는 제안이 여러 번 있었다. 이미 부가가치세 제도가 있는 우리나라는 간단하게 역진성을 누진성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일정한 기본소비액을 정하고, 그 이하의 소비에 대해서는 부가세를 면제해주면 된다. 그러면 연간 소비가 기본소비액에 못 미칠 때는 부가가치세율이 사실상 제로(0)가 된다. 소비가 기본소비액의 두 배일 때 실효세율은 명목세율의 반이 되고, 소비 액수가 커짐에 따라 실효세율이 명목세율에 근접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부가가치세는 자연스레 누진세가 된다. 기본소비액 이하의 소비에 대한 면세로 인한 세수 감소 문제는 부가가치세율을 인상하면 해결될 것이다. 부가가치세율 인상은 누진율을 강화하는 효과도 지닌다.
한 가지 구체적인 방안은 기본소비액을 가구당 1200만원으로 정하고, 부가가치세율은 20%로 인상하는 것이다. 물론 실제 정책에서는 가구원 수에 따라 기본소비액을 다르게 설정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복잡한 논의를 피하기 위해 평균적인 가구를 설정하고 그에 맞춰 논의를 진행한다. 기본소비액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제 혜택 방식은 연말정산을 할 때 신용카드·체크카드 사용 내역이나 현금영수증 등으로 입증된 소비지출을 증명하면 그에 해당하는 부가가치세액을 환급해주도록 한다. 부가가치세율이 20%일 때, 소비지출액의 6분의 1이 부가가치세액이 된다. 따라서 1200만원 이하의 소비지출에 대해서는 소비지출액의 6분의 1을 환급해주고, 소비지출이 기본소비액을 상회할 때는 최대 환급액인 200만원을 돌려준다. 여기서 말하는 환급은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것으로서, 매출 신고액이 매입 신고액보다 작은 사업자들에게 부가가치세를 환급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제도다.
이렇게 하면 연간 소비지출 1200만원 이하의 저소득계층은 실질적으로 부가가치세를 전혀 내지 않게 된다. 연간 소비지출이 2400만원일 때는 그중 400만원이 부가가치세액이지만 200만원을 환급받는다. 그러면 부가가치 2천만원어치를 소비하고 부가가치세를 200만원 낸 셈이므로, 실질적으로 부가가치세율이 10%인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월평균 소비지출이 200만원 이하인 가구는 모두 현재보다 부가가치세를 덜 내는 셈이 된다. 전 가구의 약 45%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소비지출이 중위 수준에 있는 가구는 현재와 대동소이한 부담을 지게 되며, 소비지출이 3600만원인 중산층은 실효부가가치세율이 13.3%로 오르게 된다. 소비지출이 6천만원이면 16%가 되고, 2억4천만원이면 19%까지 증가한다.
조세의 누진성을 강화함으로써 재정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확대하는 것이 본 정책 제안이 기대하는 첫 번째 효과다. 일석사조 중 제1조다. 우리나라는 재분배 기능이 부실해 시장소득 분배의 불평등도에 비해 가처분소득 분배의 불평등도가 낮아지는 정도가 미미하다. 갈수록 시장소득 분배가 더 불평등해지고 있어,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과 함께 재분배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2006년 4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까르푸 야탑매장 계산대에 줄 서 있는 고객들.

 
경제 투명화, 세수 증대 등 일석사조
제2조는 경제의 투명화 효과다. 기본소비액에 이르기까지는 소비지출 증명으로 소비액의 6분의 1이나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카드로 결제하거나 현금영수증을 발급받으려는 강력한 유인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런 거래를 거부하는 업소는 살아남기 힘들고, 음성적 거래와 탈루 소득이 대폭 줄어들 것이다. 경제의 투명화는 조세정의 실현뿐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효과를 낳는다. 특히 소득파악률이 제고되면 복지정책을 더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게 된다.
제3조는 세수 증대 효과다. 2010년 기준으로 부가가치세는 약 50조원이 걷혔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세율을 두 배로 하면 세수는 약 100조원이 될 것이다. 기본소비액 이하의 소비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환급하는 데는 대략 45조원이 들 것이다. 따라서 세수가 5조원가량 늘 수 있다. 특정한 소비지출을 기준으로 소득세를 감면하는 제도를 정비할 수 있어서 소득세 세수도 증가할 것이다. 이보다 훨씬 중요한 세수 증대 효과가 경제의 투명성이 제고됨에 따라 추가적으로 발생한다.
제4조는 정부의 경기 조절 능력 향상이다. 통화정책으로만 경기 조절이 충분히 되지 않을 때 재정정책으로 경기를 조절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려면 감세보다는 재정지출이 더 효과적이다. 하지만 효율적인 사업이 별로 없는데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은 낭비일 수 있다. 4대강 사업 같은 일을 벌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세정책도 나름대로 효용성이 있는데, 감세정책은 흔히 세금을 많이 내는 부유층에게 더 유리하고 그 결과 경기 부양 효과마저 감퇴된다는 약점이 있다. 앞에서 제안한 제도를 활용하면 이런 문제가 없는 효과적인 감세정책을 쓸 수 있다. 부가가치세를 환급해주는 기준인 기본소비액을 인상하면 완벽한 서민 감세이자 강력한 경기 부양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제안한 방안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온건한 것이다. 누진성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부가가치세율을 30%로 하고 기본소비액은 1300만원으로 하면, 기본소비액 이하를 소비한 가구는 전과 같이 실효부가가치세율이 0%가 된다. 여기에 1300만원을 초과해 2600만원에 이르기까지의 소비지출액에 대해 부가가치세액의 3분의 1을 환급해주는 제도를 추가한다. 그러면 2600만원을 소비할 경우, 기본소비액에 포함된 부가가치세 300만원과 추가적인 소비 1300만원에 포함된 부가가치세의 3분의 1인 100만원을 더한 400만원을 돌려받게 됨에 따라 실효부가가치세율이 10%가 된다. 중간 이하의 소득계층에 대한 효과는 전과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소비지출액이 2600만원을 넘어가면 지출액이 커질수록 실효세율이 더욱 가파르게 상승한다. 예를 들어 소비액이 6500만원일 때 실효부가가치세율은 22%, 2억6천만원이면 28%가 된다.
이제 우리나라는 복지 확대의 길로 들어설 것이 거의 확실하고, 이를 위한 재원 마련이 중대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 논의 과정에서 단순히 재원 확보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조세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특히 경제의 투명화로 조세의 수평적 형평성을 향상하고, 누진성 강화로 조세의 수직적 형평성을 제고하는 것은 조세 저항을 줄이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jyou@kdischool.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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