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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암을 꼭 정복하고 싶다”
[집중기획] 상상을 현실로 ③ 제약 대기업 머크의 벨렌 가리호 CEO
[167호] 2024년 03월 01일 (금) 막스 헤글러 economyinsight@hani.co.kr

 
신약 개발에는 수십억유로가 들어가기도 하지만 개발된 신약 10개 중 실제 시장에 출시되는 것은 1개에 불과하다. 의약품 가격은 어느 정도가 적정할까? 제약 대기업 머크의 벨렌 가리호 최고경영자(CEO)가 의약품 가격을 둘러싼 도덕 문제와 제약업이라는 대규모 비즈니스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줬다.


막스 헤글러 Max Hägler 카를라 노이하우스 Carla Neuhaus
<차이트> 기자
 

   
▲ 2024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연차 총회에 참석한 벨렌 가리호 머크 최고경영자. REUTERS

당신은 스페인 출신으로 마드리드의 병원에서 의사로 일했다. 머크의 최고경영자(CEO)로서 독일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독일은 다시 ‘유럽의 병자’가 된 것인가?
아니다. 독일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여전히 유럽에서 최강국이다. 다만 독일이 계속 유럽 최강국 지위를 유지하려면 신경을 써야 한다. 코로나19 대유행과 에너지 수급 위기 중에도 독일 정부는 신속히 대응했다. 하지만 독일이 미래에 얼마나 잘 대비돼 있는지는 내가 확신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기는 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인가?
독일 정부는 2023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새로운 제약 전략을 발표하면서 제약업계 혁신을 강력하게 지원하겠다고 공언했다. 바람직한 방향이며, 독일 제약업계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시급하게 필요하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애초의 목표와 반대의 결과를 빚는 결정을 내릴 때도 있었다. 머크는 제약 대기업으로 법정 건강보험공단에 특허권 대상 의약품의 할인 의무가 있다. 머크는 이런 의무 탓에 의약품 가격을 지속해서 낮춰야 한다. 의약품 할인 의무가 없다면 오히려 신약 혁신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특허권 대상 의약품의 할인율은 기존 7%에서 현재 12%로 크게 올랐다.

미국과 아시아가 머크의 최대 시장
법정 건강보험공단에 의약품을 할인해주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머크는 의약품 할인에 기본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적절한 할인율을 원하는 것이다. 최근 의약품 할인율을 7%에서 12%로 올린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의약품 할인율 인상은 제약업체들에 대한 벌이 아니다. 건강보험공단은 재정난으로 허덕이고 있다.
신약을 연구·개발하는 제약업체들에 의약품 할인율 인상은 상당한 타격이다. 신기술은 신약 개발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암이나 다발성경화증 등 치료약 수익이 점점 줄어든다면, 신약 개발에서 신기술 활용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머크는 상당한 수익을 내지 않느냐. 2022년 30억유로(약 4조3천억원) 수익을 기록했다.
그렇다. 하지만 무엇보다 머크가 글로벌 대기업이었기에 가능했다. 독일 헤센주 다름슈타트에 있는 머크 본사가 전세계 최대 규모지만, 머크의 독일 매출액은 비교적 낮은 편이다. 미국과 아시아가 머크의 최대 시장이다.
그렇다면 독일 투자를 줄이고 있는가?
머크는 당연히 독일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제약업계 전체를 본다면, 상당한 연구·개발(R&D) 예산이 미국과 중국으로 흘러가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는 독일이 신약 연구개발의 중추국가다. 이는 머크에 중요한 기반이다. 하지만 머크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혁신적 제약업체를 독일에 더 많이 유치해야만 한다.
독일 정부는 신규 반도체 칩 공장 두 곳에 상당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특수화학약품을 공급하는 머크가 상당한 혜택을 입고 있다.
대만의 TSMC와 미국의 인텔은 반도체 칩 공장 설립에 필요한 승인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두 기업의 임원들과 대화하면서 들은 말인데 좀처럼 믿기 힘들었다. 독일은 이제는 부디 관료주의의 장벽을 철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다. 독일 정치권은 남은 시간이 이제 얼마 없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한 듯하다.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독일보다 훨씬 더 많은 지원금을 쓰면서, 관료주의적 장벽도 훨씬 낮췄다. 그런 면에서 미국과 중국은 독일과 비교해 경쟁력이 두 배는 더 있는 셈이다.
머크는 직원들에게 난임시술비도 지원한다. 혁신적인 복지정책인데, 머크는 난임시술에서 글로벌 선두기업이 아닌가?
그렇다. 그래서 머크 직원들이 난임시술 혜택을 보아야 한다. 머크는 직원의 난임시술에 우리 회사가 제조한 호르몬이 사용되는지와 상관없이 직원들의 난임시술비를 부담한다. 직원의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배우자나 동반자도 난임시술 지원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이 제도에 대한 장벽이 낮다.
적지 않은 사람이 머크 하면 제약 부문을 자동으로 떠올린다. 동시에 머크는 반도체업계에 특수화학제품을 납품하는 주요 업체이기도 하다. 제약과 특수화학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나?
두 부문 모두 성장하는 시장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제약과 특수화학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제약 부문에서 기술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그래서 머크는 전체 그룹 내 노하우를 활용하는 이점이 있다.
사례를 들어줄 수 있는가?
머크는 신체의 개별 신경을 자극하는 생체전자장치를 연구 중이다. 생체전자장치는 장 질환 등 만성질환자나 고혈압 환자에게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향후 몇 년 안에 의약품도 개인 맞춤형으로 진화할 것이다. 그러면 누구나 약국에서 자신에게 꼭 맞는 약을 구입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발전하려면 AI 및 데이터 관리 등의 신기술이 필요하다. 즉, 머크는 생명과학, 헬스케어, 전자라는 서로 다르지만 완벽하게 상호보완되는 부문을 보유한 대기업이다.
 

   
▲ 독일 다름슈타트에 있는 머크 본사 건물. 신약 개발에는 수십억유로가 들어가지만 개발된 신약 10개 중 실제로 시장에 출시되는 것은 1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REUTERS

“제약업은 고위험 비즈니스다”
머크는 2023년 12월에 수십억유로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던 다발성경화증 치료제 개발에 실패했다.
개발 중인 신약 후보가 대조군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제약 연구의 숙명이기도 하다. 제약업은 고위험 사업으로 최초가 되고자 할 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항암제 제비나판트(Xevinapant)나 자가면역질환인 루푸스(Lupus)를 치료하는 잠재적 의약품 등 현재 개발 중인 의약품은 충분히 많이 있다.
다발성경화증 치료제는 어떻게 됐나? 최종 실험 단계에 있지 않았나?
머크가 개발 중인 치료제는 다발성경화증에서 해로운 자가면역반응을 유발하는 세포를 구체적으로 차단하는 등 전체 실험 세 단계에서 정석대로 정확하게 작동했다. 그러다 연구 세 번째 단계에서 대조군이 갑자기 더 나은 성과를 냈다. 이전 연구 결과와 모순되는 것이어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다발성경화증 치료제 마벤클라드(Mavenclad) 특허도 향후 몇 년 안에 만료된다. 이제 손실을 보상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다. 연간 8억유로 이상의 수입이 걸린 문제 아닌가?
물론 머크는 이 간극을 메워야 한다. 머크는 평균 1년6개월마다 신약을 출시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래서 자체 연구를 강화하는 한편, 라이선스를 통해 도입할 수 있는 좋은 신약도 끊임 없이 찾고 있다. 머크는 최근 몇 달 동안 신약 후보 물질 세 개를 구매했다. 또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기술 분야 등에서 다른 제약회사들을 위한 서비스 제공 업체로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mRNA 백신이 최초로 개발되면서 잘 알려진 기술이다.
mRNA 방식은 종양학에도 유용할 것이다. 바이오엔테크는 2026년에 mRNA 기반 항암제를 출시할 계획이다. 머크는 mRNA가 전도유망한 시장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머크는 제조업체이자 동시에 공급업체로서 mRNA의 장래성을 적극 활용하려 한다. 이의 일환으로 mRNA 활성 성분을 체내의 올바른 위치로 운반하는 데 필요한 지질을 생산하고 있다.
당신은 의사 출신이다. 완전하게 치료할 수 있다면 어떤 질병을 치료하고 싶은가?
암을 정복해보고 싶다.
당신은 의사로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제약 연구가 공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머크는 의약품에 터무니없는 고가를 책정하지 않는다. 머크가 개발하는 의약품 10개 중 오로지 1개만 시장에 출시되며, 의약품 개발마다 수백만유로, 많으면 수십억유로가 들어간다. 즉, 실제 출시되는 의약품의 수익으로 개발 단계에서 엎어진 의약품 9개의 손실을 상쇄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가 전세계 모든 사람에게 의약품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재정 여력이 되는 국가는 많지 않은데, 머크의 최근 세전 이익률은 20%에 달했다.
머크는 주혈흡충증 (Schistosomiasis) 퇴치를 위해 개발도상국을 위한 의약품도 개발하고 있다. 주혈흡충증은 식수로 전파되는 기생충 질환으로, 머크에서 개발한 구충제 프라지콴텔(Praziquantel)이 도움이 된다. 머크는 현재 어린이에게 적합한 제형도 개발했다.
적지 않은 의약품이 자가 부담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나게 비싸다. 모든 국가가 독일과 같은 연대 기반의 의료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그런 이유에서 머크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국가에서는 독일 국내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책정한다. 일례로 미국에서 저소득층 의료보험 가입자를 위해 다발성경화증 치료제 마벤클라드(Mavenclad)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한다. 머크는 법적으로 허용되는 범위에서 머크 의약품을 필요로 하는 모든 환자에게 최대한 제공하려 노력한다.

중국에선 내수용 생산 중
마지막으로 다시 정치적 질문을 해도 될까?
물론이다.
머크는 전세계 곳곳에서 생산하고 있고, 중국과 대만에도 생산기지가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
현재 머크의 중국 직원은 약 5천 명, 대만 직원은 1천 명이 넘는다. 머크는 두 곳 중 하나가 없어지는 것을 전혀 원치 않는다. 그래서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10년 전부터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
정확히 어떻게 대비하는가?
머크는 전세계 시장에 투자하고 있으며, 자유무역과 국제협력을 지향한다. 세계화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현재 최고의 경제시스템이다. 그렇기에 탈중국은 머크에 선택지가 아니다. 그래서 머크는 중국에서 수출용이 아닌 중국 내수용을 생산하고 있다.
정치적 질문 하나만 더 하겠다. 당신은 독일 주식시장에 상장된 대기업 중에서 유일한 여성 대표이사다. 이런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는 것에 화나지 않는가?
내가 독일 주식시장에 상장된 대기업 중에서 최초의 유일한 대표이사이지만, 마지막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독일 경제가 다양성과 통합으로 나아가기까지 갈 길이 멀다.
무엇이 개선돼야 할까?
기업 임원진 여성 비율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다. 여성 임원 수가 늘어날수록 다른 분야의 최고직에 진출하는 여성도 점차 늘 것이다. 머크에서는 현재 임원진 이하 관리직 10명 중 거의 4명이 여성이다.

ⓒ Die Zeit 2024년 제4호
Ich würde gern Krebs besiegen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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