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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관행적 수출 집착이 미래지향적 토론 막는다
[INTERVIEW] 얀오트마어 헤세 독일 바이로이트대학 경제학 교수
[167호] 2024년 03월 01일 (금) 베냐민 비더 economyinsight@hani.co.kr

 
독일은 무역에서 가진 강점을 즐겨 자랑한다. 하지만 이면에 국가와 국민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집착이 숨어 있다고 경제사학자 얀오트마어 헤세(55·Jan-Otmar Hesse)는 경고한다. 헤세는 바이로이트대학 교수로, 독일 경제사와 독일기업 역사 전문가다.


베냐민 비더 Benjamin Bidder <슈피겔> 기자
 

   
▲ 독일 바이로이트대학 교수로 독일 경제사와 독일기업 역사 전문가인 얀오트마어 헤세는 독일인들의 수출에 관한 강한 자부심 때문에 지속적으로 비합리적 결정에 빠진다고 경고한다. 바이로이트대학 누리집

 

 

   
▲ 얀오트마어 헤세 교수가 최근 펴낸 책 <수출 세계 챔피언: 독일 집착의 역사>. 바이로이트대학 누리집

독일인은 자신의 나라에 상당히 비판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일인이 자부심을 가진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수출 강국의 명성이다. 당신은 이를 ‘집착’이라 보는데, 수출 강국이란 명성에 긍정적인 점은 없는가.
독일인은 수출 전통에 자부심이 강한데, 바로 그 때문에 지속적으로 비합리적 결정에 빠진다. 수출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경제를 위해서는 좋아 보이지만, 사실 나라에 대해서는 항상 최선은 아니다. 독일인은 흔히 대안을 찾는 데 눈이 멀어 있다. 나라가 갈림길에 서 있을 때면 항상 정치권과 여론은 똑같은 행태에 빠진다. 이는 마치 동전을 던지는데, 확률과 달리 항상 같은 면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 마지막에는 항상 수출 확대로 이어진다.
예를 하나 들어달라.
바로 얼마 전에 경험한 사태다. 에너지 수입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지만, 2022년 독일의 무역흑자는 엄청나게 감소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객관적으로 거의 토론되지 않았다. 대신, 경쟁력에서 뒤처지게 됐다고 경고하기에 바빴다. 그사이에 무역흑자는 다시 회복됐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독일인들의 수출 자부심은 비합리적이며 미래지향적 토론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이런 행태는 당신이 최근 펴낸 책(<수출 세계 챔피언: 독일 집착의 역사>)에서 설명했듯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 수출은 독일이 선진 산업대국이 되면서 민감한 문제가 됐다. 정치권은 수십 년 전부터 관행화된 방식에 따라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즉, 수출이 줄어들면 바로 위기 담론으로 이어지고 국가 번영이 위태로워졌다고 한다.
 

   
 

수출 세계 챔피언
독일이 수입하는 것보다 더 많은 상품을 외국으로 수출하는 일이 왜 안 좋다는 말인가.
이 문제에 대해선 내가 동료들과 외식하러 가면서도 매번 같은 설명을 하게 된다. 그것은 이렇다. 일상생활적 직관으로 국민경제를 파악할 때 우리는 때때로 오류에 빠진다. 절약을 절대 원칙으로 삼아 가정 살림을 꾸려가는 전설적인 ‘슈바벤 지역의 주부’ 사례를 많이 든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정책을 이렇게 꾸려간다면 나쁜 정책이다. 국가부채는 가계부채와는 전혀 다르다. 무역흑자도 마찬가지다. 어떤 상인이 지출해야 하는 것보다 항상 더 많이 판다고 상상해보자. 그는 부자가 돼야 할 것이라고 보통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 간 무역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수출을 더 많이 한다는 것은 최소한 생산성이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수출이 많다는 것은 산업의 생산 역량과 생산의 질이 높음을 말해주는 지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무역흑자가 많다는 것은, 그 사업에서 발생하는 이윤의 사회적 분배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징후다.
돈은 결국 어디로 가는가.
수출을 잘하는 기업에 머물거나, 소유자의 은행 계좌로 들어간다. 그중 일부는 외국에 투자한다. 폴크스바겐이 외국에 공장을 짓고 이 비용을 국내에서 얻은 이윤으로 충당한다면 이는 자본유출이다. 더 큰 문제는 기업가와 주주가 개인 자산으로 국외에 투자해서 얻는 이익이다. 대부분 이 돈은 독일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럴 경우 부가 빠져나가는 것이다.
어떤 대안이 있을까.
이윤을 독일 안에서 보유하고, 학교나 도로 공사 등 독일에서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그것이 더 정의로운 일이다. 수출의 성과는 사회 전체가 쟁취한 것이니까 말이다.
이런 분배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국가가 투자를 늘리거나 강력한 임금인상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국민은 자기 주머니에 훨씬 더 많은 돈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국내에서 더 많은 돈을 소비하게 되고, 수입도 증가한다. 수요를 국내 생산만으로 다 채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통상적인 균형의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거의 이렇게 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독일에는 임금인상을 절제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국가경제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게다가 독일 기업들은 국외에 투자하면 국가로부터 사실상 보상을 받는다. 1960년대 이래 해외직접투자는 세금으로 지원받았다.
이론적으로 보면 생산의 국외 이전은 수출을 감소시키기 마련 아닌가.
정반대다. 이로 인해 더 많은 1차 제품이 독일에서 국외 공장으로 수출된다. 이것이 바로 독일이 1970년대 이후 점점 더 확대해온 성장모델이다. 국외에서 제품 생산이 늘어나지만 동시에 더 많은 제품을 수출한다. 폴크스바겐이 중국 등지에서 차에 조립하는 엔진은 대부분 독일에서 생산했다.
당신이 ‘수출 집착증’으로 진단한 사태는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
첫 번째 중요한 이정표는 1890년이다. 그해 강한 보호무역주의자였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뒤를 이어 레오 폰 카프리비가 독일 제국의 총리가 됐다. 독일 제국에서 수십만 명이 미국으로 건너가는 등 독일은 이민의 물결에 직면했다. 카프리비는 그 원인이 경제의 저발전과 돈벌이가 되는 일자리 부족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독일 국내시장에서 대량의 공산품을 구매할 만큼 독일이 부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출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 사회민주당 출신 헬무트 슈미트도 때로 수출 지향 정책에 좋지 않은 말을 했지만, 그의 고향인 함부르크의 주요 사업가와 은행들을 의식한 탓인지 적극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았다. 함부르크 공항은 슈미트의 사망 1주기를 추모하며 2016년 11월부터 ‘헬무트 슈미트 함부르크 공항’으로 이름을 바꿨다. REUTERS

우리는 수출해야 산다
카프리비는 독일이 상품을 수출하지 못하면 사람을 수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 없이 국가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는 수출해야 한다”는 카프리비 연설의 핵심이었다. 이 연설은 향후 130년 동안 독일 경제의 수출 지향성을 정당화하는 데 반복적으로 사용된 일련의 핵심 논거를 담고 있다.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독일은 항상 수출에서 구원을 찾았는가.
카프리비 이후 모든 위기는 대외무역 확대로 극복됐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그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수출을 통해 문제에서 빠져나온다’는 생각이 정치지도자들과 국민 사이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따라서 수출에 유리한 정책이 수십 년, 수 세대에 걸쳐 반복적으로 추진됐다.
어떻게 그리됐나.
1970년대에 이상한 역학관계가 시작됐다. 수출이 조금만 감소해도 수출업계와 대중은 히스테리에 빠져 무언가 조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출이 다시 늘어 흑자를 기록해도 모두가 수출보조금을 바로 폐지하지 말고 일단 관망하기를 원했다. 1979년과 1980년에는 독일의 경상수지가 잠시 적자로 돌아섰다. 이는 결국 헬무트 슈미트 정부가 정권을 잃는 원인이 됐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1970년대 말, 세계적인 경제침체가 시작됐다. 미국은 슈미트를 설득해 독일이 경기부양 프로그램을 도입하도록 했다. 독일은 세계경제를 침체에서 구해내야 했다. 이것은 역사책에 기관차 이론으로 기록됐다. 슈미트는 투자를 확대했다. 이는 경상수지에 압박을 가했다. 여기에 1979년 유가 위기가 가세했다. 일시적 상황이란 점이 분명했지만, 기업 쪽에서 당장 보조금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누가 그렇게 추진했는가.
경제부 산하기관인 무역자문위원회는 당시 독일이 큰 위기에 처했다고, 정말 그 위기가 오도록 반복해서 말했다. 이 자문위원회는 수출기업 경영진들과 독일 무역정책의 결정권자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1년에 네 번 모여 독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했다.
정치가들은 거기에 귀 기울였나.
과학자문회의처럼 경제부 자문기구의 회의에 장관이 직접 참석하는 일이 일반적으로 거의 없다. 그러나 무역자문위원회의 경우는 달랐다. 회의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모든 회의에 최고책임자가 참석했다. 따라서 수출 중심의 경제는 정치와 밀접했다. 내 느낌으로는 지나치게 가까웠다.
좌파 정부가 집권할 때 다른 노선을 추구한 적이 없는가.
오히려 그 반대다. 빌리 브란트는 동방정책을 위해 철강산업이 필요했다. 게다가 당시 사민당과 가깝고 헬무트 슈미트의 친구이던 철강산업 경영자 에른스트 볼프 몸젠 같은 사람이 있었다. 당시 철강업계는 소련과의 사업 확장을 위해 정치인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슈미트는 때때로 수출 지향 정책에 좋지 않은 말을 했지만 결코 적극적인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슈미트의 고향인 함부르크에는 중요한 고객, 즉 영향력 있는 사업가와 은행가들이 있었다. 금융부문은 수출신용 사업으로 큰 이익을 보고 있었다. 슈미트도 이들을 공격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1986년 독일은 갑자기, 당신이 저서에 이름 붙인 ‘수출 세계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심지어 미국보다 더 많은 상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일시적 과열이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독일이 한 해 동안 석유 수입에 지급한 금액이 230억마르크나 더 적었다. 동시에 헬무트 콜 정부가 보조금을 크게 늘렸기 때문에 수출이 증가했다. 명목은 ‘경쟁력 강화’였다. 이는 실제 전혀 위기가 아님에도 위기라고 추정하는 관점에서 추진됐다. 여기에 더해 미국은 달러를 평가절상해 독일 제품을 더욱 저렴하게 만들었다.
독일이 제국이던 시절, 수출은 여전히 매우 저조했다. 수출국가로는 언제 전환됐는가.
1952년 독일은 사상 처음으로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당시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전후 유럽 재건 프로그램, 즉 마셜플랜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후 독일의 무역흑자는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고 계속 불어났다. 지난 15년 동안의 경제생산량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규모다.
 

   
▲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2007년 11월19일 마셜플랜 60주년을 기념해 베를린에서 연설하고 있다. 마셜플랜으로 독일은 처음 세계경제에 동등하게 참여하게 됐고 수출 성공의 기반을 닦았다. REUTERS

마셜플랜과 교역을 통한 변화
마셜플랜의 수십억달러가 수출 성공의 기반이 됐다고 보나.
돈이 많다는 점이 그렇게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더 중요한 것은, 독일이 처음으로 세계경제에 동등하게 참여하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프랑스나 영국으로 흘러간 미국의 원조에는 조건이 있었다. 이들 국가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와는 달리 독일과 비교적 자유로운 무역을 허용해야만 미국의 자금을 이용할 수 있었다. 미국은 이러한 무역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관철했다. 그 결과 독일은 유럽 분업 구조에서 제자리를 잡게 됐다. 이는 독일연방공화국 발전의 판도를 바꾼 사건이었다.
‘교역을 통한 변화’의 초기 형태라 볼 만한가.
그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미국은 독일이 또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막고 싶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독일이 시도한 자급자족 노력과 열망은 미국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마 경제적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미국은 유럽에서 자국 제품을 판매하기를 원했고, 이는 유럽인이 물건을 살 만큼 부유해져야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 Der Spiegel 2024년 제1호
Der Exportstolz der Deutschen ist irrational
번역 최현덕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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